← 목록으로
책 > 에세이

날마다 좋아지고 있습니다

2023-06-17 저자: 김지언 출판사: 일토

🔖 책갈피

5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걸 성장의 레시피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크든 작든 목표에 닿는 것, 그것을 충분히 누리고 만족하는 것, 그렇게 얻은 단단함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과제로부터 도망치는 요량이 필요했다. 도망쳐서는 나아갈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불안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이었다. 나아가기 위해서 도망가야 할 때도 얼마든지 있었다.

18 귀여움이 정말로 대단한 건 행동을 부른다는 데 있다. 귀여움이라는 너무나 무해하고 하잘 것 없는 것이 마음을 움직이고 결국엔 손과 발을, 이번 경우엔 지갑을 움직였다.

19 예전에 타라 브랙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기억난다. “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을 틀렸습니다. 더 많은 보살핌을 받은 자가 살아남지요.” 귀여움이야말로 곧 보살핌이고, 보살핌은 살아갈 힘이 된다. 우리는 모두 한때 살기 위해 귀여웠고, 귀여움은 모든 걸 이긴다!

22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서로의 정원에 무언가를 심고 있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33 고등학교 체육, 기술, 가정 시간에 중간고사 대비 수학 문제집을 풀면서부터 우리는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의 구분을 머릿속 어딘가 새겨넣은 걸까? 한 어른으로서 자신을 돌보기 위해 하는 일들은 뒤로 한 채 돈 버는 일만 중요하다고 여기고 산 거 아닐까. 무엇보다 그걸 모두가 그냥 내버려둔 게 아닌다.

34 과정을 나누는 것이 진짜 풍요가 아닐까. 요리할 때 감자라도 썰게 시키는 건 귀찮은 일을 나눠서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얘기하자는, 우리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초대 같다.

58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참 잔인하다. 아픔을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아픔을 극복할 자원인 관계까지 모조리 앗아가니 말이다.

59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아줘.” “나를 좀 도와줄 수 있어?”

63 똑똑함은 강함이었고, 방어막이라는 것을 배웠다.

64 혼란은 불안을 표면 위로 끌어올렸다. 믿었던 유능함이 두꺼운 가면처럼 느껴졌고, 가면을 벗었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는 무가치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오히려 더 잘하면 잘할수록, 더 칭찬받으면 칭창받을수록 무서웠다. 높아질수록 떨어질 때 더 아플 것 같았다. 성적은 방패이기도 했지만, 칼이기도 했다.

64 사랑받고 싶어서 뭐든지 잘하려고 했던 것이, 그것밖에는 몰랐던 것이 마음 아프다.

73 내가 나의 상태를 인정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터였다.

74 가까운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쓸모있는 인간일 때나 별 쓸모없는 인간일 때나 나를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나의 쓸모 때문에 나를 좋아한느 건 아니라는 것도.

75 낙엽을 떨어뜨린 앙상한 나무에는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 여전히 이어서 하고 싶은 일, 대단치 않아도 순수하게 즐거운 몇몇 순간들이 걸려 있었다. 때로는 얻기 위해 잃는다는 걸 믿게 되었다.

79 삶이 비스듬한데, 나 혼자서 지금 바로 서 있다고 착각한느 게 아닐까 하고. 내가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중심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불편하고 힘든 상태에 길들여져서 어디가 중심인지를 잊었을 수도 있지 않나.

79 가끔 내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걸 의심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우리는 불편하고 이상한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편안함을 찾을 수 있으니까.

83 성적이 곧 나의 가치라고 믿는다. 능력에 따라서 나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능력이 없는 나는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가 된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실수를 당연한 학습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보다는, 실수는 철저히 피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실수한 것을 숨기려다 보니 역으로 계속 실수하게 된다.

쉴 때 죄책감을 느끼도록 훈련받는다. 쉬는 시간마저도 잘 사용해야 한단느 것을 강조하며, 쉬는 시간의 의미를 성적을 잘 내기 위함에 둔다. 편안하게 쉬지 못하고, 무너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린다.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구분한다. 그 시간에 영어 문제 하나,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게 중요하다.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 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집안을 돌보는 책무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84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한국식 교육이 알려준 방식으로는 3년이 아니라 30년, 40년을 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성과는 있을지언정 나의 건강과 행복은 지켜내기 어렵다.

89 우리는 참 주관적이다. 그래서 삶도 당연히 주관적이다. 일어난 일만큼이나 일어난 일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중요해진다. 나에 대해,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지금 내 일을 해나감에서도 나에게 유리하고 친절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너무 강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불리하고 무자비하게 해석하는 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맘 편지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져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각자의 주관으로 정신 승리하면서 살면 좋겠다.

91 약간 배고픈 상태에서 마시는 보리차는 선명한 색과 신선한 맛으로 다가왔다.

92하지만 결핍은 쏙 빼고 충족의 순간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앞뒤가 안 맞았다. (…) 결핍이 충족을 만들 뿐만 아니라, 결핍의 순간도 충족의 순간만큼 행복을 줬다.

(…)

지금 나에게 좀 부족한 게 있어야 욕망이 생기고, 욕망이 있어야 행복이 있는 거구나. (…) 나에게는 이제껏 부족함이 부족했다. 그리고 부족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랐다.

93 지금 이 부족함 때문에 내일 조금 더 큰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팽팽하던 마음이 느슨해진다.

105 틀리다는 건 그저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정답이 아닐까. 그런 의믜에서라면 난 줄곧 틀린 답을 써내는 학생이었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것을 좋아한 죄로 나의 선택은 그다지 응원받지는 못했을 뿐이다.

(…) 잘 생각해보면 ‘대중’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다 아주 사소하게라도 남들이 수긍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산다. 모두 어떤 면에서는 틀린 답을 낸다.

106 내가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힘을 실어주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자주 틀려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다 좋다는 게 나는 싫었고 고민 끝에 내가 좋아하는 걸 택해버렸다. 그리고 뭔가가 깨졌다. 한 번 깨지니 두 번째는 덜 어려웠다. 내가 원하는 것에 솔직해질수록 다음 선택을 내릴 때 필요한 만큼의 용기가 생겨났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걸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쉬운 길은 없는 것 같다. 눈을 질끈 감고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수밖에.

113 문제와 씨름할 때는 문제가 없는 곳으로 가보기로 한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문제가 없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116-117 문제가 반복될 때, 그때야말로 자기를 마주할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내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살펴보고 내 몫을 인정해본다. (…) 당장은 받아들이기 버거운 진실일 수 있지만, 막상 받아들이고 나면 별것 아니다. 필요하다면 앞으로 다르게 해나가면 된다. 내 몫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제는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을 너무 모르면 당장 자존심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을 직히사지 않은 결과는 반드시 내가 짊어져야 한다.

122 나는 남의 눈치 안 보고 ‘마이웨이’하는 사람보다는 남들이 미워할까, 무시당했다고 느낄까 눈치 보는 소심한 사람과 친구 하고 싶다. 내 눈에는 그들이 훨씬 멋있어서다. (…) 더 나은 집, 더 화려하고 멋진 집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집과 어우러지는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이 너무 근사해서 언젠가는 꼭 따라 하고 싶다. 앞으로도 쭉 눈치를 보면서 소심하게 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