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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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어머니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움직이는 선한 사람들과 호기심으로 행동하는 나쁜 사람들을 구별해 냈다.
43 글을 쓰며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그에 따른 소외를 고발하는 일 사이에서 좁다란 길을 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 행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살던 환경의 수치스러운 장벽들(’우리 집은 잘 살지 못한다’는 인식)이기도 했으니까.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이 모순 사이에서 흔들리는 느낌이다.
48 그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앞에서 뻣뻣해지고 소심해졌으며, 어떤 질문도 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영리하게 처신했다. 이 경우 열등함을 인식하되 그것을 최대한 숨기면서 거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아니었다면, 다시 말해 열등하지 않았다면 분명 알 수 있었던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77 아버지는 내 미래의 남편을 자기 아들처럼 여기며, 그와 학벌의 차이를 넘어 남자들끼리의 은밀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매우 기뻐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정원과 혼자 직접 만든 차고를 보여줬다.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그 청년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그가 할 줄 아는 것을 바친 것이다. 그 청년은 그저 예의가 바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내 부모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품성이었고, 그들에게는 얻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노동자였다면 용감한지 술은 마시는지 알려 들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식과 단정한 품행이 선천적으로 훌륭한 내면의 표시라고 깊이 확신했다.
78 몇 년 전부터 기다려 왔던 것이고, 걱정 하나를 던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아무나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혹은 불안한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모아놓은 돈으로 이 젊은 신혼 부부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한없이 베풀어서 그와 사위 사이를 갈라놓는 문화와 권력의 차이를 만회하길 바랐던 것이다. “우린 이제 필요한 게 별로 없어.”
81 그는 내색하지 않고, 감정을 숨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91 내가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두고 가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일을 마쳤다.
99 삶이 먼저, 문학은 그다음이다. 삶이 문학이 되기 위해 꾸며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99 ‘자리, 사람이나 물건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란 뜻의 La place가 과연 한 남자, 아버지의 자리만을 의미할까? 내게는 그 자리, 혹은 공간이 한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아버지가 있었고, 내가(작가) 있었던 자리, 다른 세상으로 가면서 문턱에 버리고 간 자리. 나는 그 ‘자리’의 가능성을 이곳에라도 적어두고 싶다.
100 아니 에르노의 서술의 주체는 늘 ‘나’인데, 책을 덮고 나면 언제나 우리의 ‘나’가 되어 있다. 개인적인 것, 내면적인 것은 사회적이라는 그녀의 말을 이렇게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