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책 > 에세이

번역: 황석희

2024-01-14 저자: 황석희 출판사: 달

🔖 책갈피

7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 상대의 말은 물론, 표정과 기분을 읽어내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도 번역이고 콧속에 들어온 차끈한 아침 공기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 것도 일종의 번역이죠. 그 과정에서 때론 오역을 하기도 하고 과한 의역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반드시 정역해야 하는 제 일과 달리 일상의 번역은 오역이면 오역, 의역이면 의역 그 나름의 재미가 있죠.

24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인정하고 고치는 건 쉽지 않다. 늘 자존심의 문제거든. (…)

“아빠는 반성에 자존심 같은 거 없어.”

28 어느 분야든 천재 소리 듣는 사람 중에 열심히안 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 분야이ㅡ 재능이 있는데다 ‘성실’이라는 재능까지 있는 거지.

28 방향을 제대로 잡은 사람은 같은 노력을 해도 훨씬 빨리 좋은 결과에 이른다. 보통 ‘일머리가 있다’ ‘요령이 있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 선의로 하는 말이라면 선문답하지 말고 곧바로 요령을 가르쳐주는 게 좋잖아.

30 실패하고 배우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이는 성실함. 이런 미련한 성실함은 단순해 보여도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조직의 입장에선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치명적일 때가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하지만 개인에겐 결과보다 노력이 중요할 때도 있다. 이상론, 낙관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렇다. 갈수록 재능이니 결과니 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력과 성실을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나는 아주 고깝다. 뭔가를 성취해낸 사람을 보면 노력의 방향을 잘못 잡았을지언정 바보 같고 우직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인 경우가 훨씬 많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주위에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 그렇다. 노력과 성실도 재능이라는 걸 언제쯤 이해할는지.

77 괴리감이 커지면 자기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 그리고 정체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자기 실력까지 의심하게 된다. 아주 몹쓸 악순환이다.

89 너무 꼰대 같고 재미없는 소리지만 일정한 성취에 기본이 되는 건 따분하고 지루하고 고된 반복을 묵묵히 견디는 무던함, 그리고 제 살길을 어떻게든 찾아내 지속할 줄 아는 현실감이다. 대개는 그런 것들이 쌓여 성취가 된다. ‘대개는’.

107 오지랖은 자신의 알량한 경험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보내는 어긋난 호의다. 그래, 일단은 호의라고 믿자.

122 시도해도 불편하고 그냥 둬도 불편하고. 무슨 성격이 이렇게 불편하게 생겨먹었는지 모르겠다.

129 영화 번역가는 관객의 편의를 위해 작업하는 사람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달자다. 기계적으로 쉽게 윤색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고, 작품ㅇ르 온전히 감상하러 온 관객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130 힘들 때도 원칙대로 정당하게 사람을 대우해서 운이 들어온 거고 복을 받은 거라고. 뻔한 권선징악 전래동화의 결말처럼 그렇게 순진하게 믿고 싶다.

139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일부러 상대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더라.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과의 마지막날이 있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래서라도 소중한 사람에겐 물론이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마지막 인사는 무던히 하는 게 좋다. 억지로 상냥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상처를 줄 필요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후회가 남지 않을만큼은 인사하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148 기본적으로는 덧없는 것이고, 그 덧없음의 힘으로 진실과 직면하는 것이고, 세계와 싸우며 동시에 말ㅇ르 거는 것입니다. (한강 작가)

195 어떤 영화를 좋게, 혹은 좋지 않게 봤다면 내게 어떤 면이 좋았고 좋지 않았는지, 어떤 감상이 있었는지를 쓰면 된다. 남의 감상을 끌어와서 평가하는 건 영화평 아니라 ‘타인의 영화평에 대한 평’이다.

225 무엇이든 경험해야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단언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고 경솔하고 무례한 일이다.

226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비난의 근거는 가난이 아니라 무책임이어야 한다는 거다.

227 당신은 분명 당신 최선의 것으로 날 채우셨다. 그 최선은 최고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음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