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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존재의 목소리

2024-11-12 저자: 김석 출판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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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9 비슷해보이지만 정동, 정서, 경험은 조금씩 다른데,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감정이라면, 외부에서 관찰 가능하고 타인이 알 수 있는 것이 정서다. 반면 정동은 감정과 정서를 모두 포괄하면서 신체와 무의식까지 아우르는 상태다.

15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기 때문에 개인이 자기 욕망에 따라 살기보다 스스로를 불안의 늪에 빠뜨리는 과도한 신경증 사회다. 한마디로 개인이 만성적인 자기 착취에 시달리며 고갈되는 사회다. 결국 개인 치유에 매달리기보다공동체 관계와 인간 상호작용의 양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16 개인의 행복과 완전한 치유는 건강한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불안의 사회적 치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1장 불안은 병이 아니다

31 신체 질병처럼 정신 문제를 범주화하다 보면 자칫 개인의 특수성이나 사회관계적 맥락을 소홀히 할 수 있으며, 정신장애를 지닌 인간은 비정상이고 치료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 무제를 다룰 때 이런 의학 모델이나 시선이 전제하는 병리 관점을 경계하면서 치료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회복과 건강한 주체 정립을 목표로 해야 한다. 중증 정신병이나 중독 같은 경우 의학 모델에 따른 진단과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것을 너무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정신 문제의 본질을 개인 삶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면서 삶의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증상에 대처해야 한다. 정신장애에 대한 실존적 접근과 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2장 정상과 비정상

41 정신의학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복잡해지는 현실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정신적 고통, 나이나 호르몬 변화로 생기는 기분 변화나 우울감 등을 정신장애로 단정하는 ‘진단 인플레이션’은 우리 자신의 내면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47 실제로 정신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은 환경, 사회, 인간 관계 등으로 다양하다. 사람의 정신 문제를 생물의학적 차원에서만 규명하면서 질환으로 단정하는 것은 자칫 수많은 사람을 환자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

58-60 이처럼 우리는 정신장애를 지나치게 증상을 통해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개인사, 사회와 연관 지어 총체적으로 이해하면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사회 갈등이 구조적으로 전제될 수밖에 없는 문명의 삶에서 스트레스나 정신 고통은 필연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심리의 고유성에 주목할 때 정신장애가 왜 나타나는지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경계할 수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살면서정신 문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고, 정신장애자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봐야 한다. 다음과 같은 프로이트의말은 이런 점에서 새겨볼 만하다.

모든 사람은 반쯤만 정상이다. 정상적인 자아는 이런저런 부분에서 어느 정도는 정신병 환자의 자아에 가깝다. 한쪽 끝에서는 멀어지고 다른 쪽은 가까워지는 정도가 우리가 막연하게 ‘자아의 변질’이라고 이름 지은 것의 잠정적인 척도가 될 것이다.

정상 자아와 비정상 자아의 구분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이 있다면 그것을 잘 이해하고 조절하면서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살면서 자주 경험하는 우울, 강박, 불안, 여러 형태의 스트레스는 정신질환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일상적 양상으로 이해하면서 이것에 휘둘리지 말고 잘 다스리며 삶을 지속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3장 불안과 우울

64 불안은 어떤 위협적 상황이나 불안전성에 대한 자동반응이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인간의 정동이기 때문이다.

(…) 반면 불안은 미래의 위협을 준비하거나 이를 조심하는 것, 혹은 회피 행동과 연관된 과잉 각성 및 근육 긴장과 더 관련이 깊다.

65-66 불안에는 환경이나 상황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기질이나 상황을 해석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더 크게 작용한다. 또 두려움이나 스트레스보다 불안은 범위가 더 포괄적이고, 여러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불안을 인과관계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질병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공동체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안장애는 지금의 코로나 상황처럼 어떤 불확실성 uncertainity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방어 심리, 성향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불확실성이나 위험 상황은 객관적 지표라기보다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상태다. 불안은 상황에 대한 각자의 심리적 대응이고, 방어 심리도 공격성이나 파괴성의 발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꼭 특정 상황에서만 불안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불안은 복합적이며 환경과 주체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실존적 정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67 또 불안은 상당 부분 무의식적 원인을 가지기 때문에 증상보다 그것이 시작되고 유지되게 만드는 심리 메커니즘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심층 심리를 분석하려면 대면 상담이나 정신분석이 더 효과적이다. 불안은 외적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공포반응이라기보다는 그런 상황에 대처할 때 생기는 복합적인 정서다.

71 불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불안을 외면하거나 잘못 이해하면서 불안에 지배당하는 상황이 문제다. 그러므로 불안을 일상적 정서로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우울도 마찬가지다.

77-78 반면 인간은 삶의방식과 존재의 본질을 스스로 규졍하고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철학에서는 이런 본질은 ‘실존 existence’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종합하면서 미래를 만드는 자유의 실존자existant므로 불안을 느낀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아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직결되는 관계다. 인간이란 하나의 유한과 무한의 종합,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종합, 자유와 필연의 종합, 요컨대 하나의 종합이다. 종합이란 두 개의 첫 사이의 관계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이른바 인간이란 아직 자기는 아니다.

인간의 본질과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종합에 의해 완성되어야 한다. 이 종합을 통해 인간은 자신은 물론 타자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이중성이 인간에게 절망, 두려움, 불안을 준다. 이 이중성은 인간 안에 모순되게 공존하는 동물성과 영혼의 본성 둘 다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78 내 삶의 본질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만들어야 하기에 역설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온전히 홀로 떠맡아야 하는 고독이 인간의 운명이다.

78 ‘나다움’ 혹은 ‘고유성의 실현’이 중요한데, 자신도 모르게 세속에 물들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어갈 때 불안은 경종을 울린다. 하이데거는 나의 고유한 실존이 대상화되거나 물화될 때, 우리는 위기 징후로서 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80 인간은 매 순간 선택에 직면하고, 이 선택을 위해 치러야 하는 고통이 바로 불안이다. 선택을 피할 수 없다면 불안이라는 고통을 즐겨보자.

4장 불안시대, 불안사회

85 ‘공동사회’로 번역되는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는 감정을 나누고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 자연공동체에 가까운 것으로 친구, 친족, 종교 등에서 볼 수 있다. 게젤샤프트Gesellschaft는 특정 목적과 이익을 위한 선택적 의지를 통해 모인 결합체로 회사 같은 것이 전형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게마인샤프트적 관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이에 따라 불안심리가 발생한다. 공동체 관계가 개인에게 힘을 주고 보호막이 되기보다 경쟁에서 배제당한 개인에게 좌절감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86 하지만 더 근원적인 문제는 사회심리 요인이다. 이는 실제 위험보다는 불안을 과대하게 느끼게 하고, 보이지 않지만 큰 심리적 고통을 주면서 원인도 알 수 없는 무엇이다. 현대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불안을 심층적·구조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 소비사회, 경쟁사회, 물질만능사회가 계속해서 불안한 개인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자극 반응이 아니라 내적 작용이기 때문에 개인마다 양상이 다르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도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 우린 개인적 의미의 불안장애가 아니라 구조적인 사회적 불안을 살펴봐야 한다.

89 이처럼 오늘날에는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거리를 두고 이를 상상의 장면으로 즐길 수 있게 보호해주는 환상의 작동 여부가 중요하다. 환상의 대상이 실제가 되고, 바이러스 재난처럼 상상 속에서 가능했던 일이 삶에 직접 침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이 주는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 한국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환상의 붕괴가 갑작스럽고 폭력적으로 일어나는 사회다.

5장 치료에 대하여

106 그러나 우리가 불안에 대해 말할 때는 관찰 가능한 증상보다는 주체가 느끼는 기분, 정서, 인지를 종합해 불안을 이해하고, 불안을 내 삶의 부분으로 수용하면서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111 더구나 불안은 철학자들도 지적하듯 객관적으로 진단이 가능한 질병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삶이나 본성과 관계된 본원적 정서에 가깝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불안이 인간의 근본 기분이라고 했으며,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불안이 실제로 우리를 속이지 않는 유일한 정동이라고 하면서 불안을 중시했다.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직접 느끼게 해주는 정서라는 것이다.

불안을 긍정적으로 살리려면 앞으로 정신건강 서비스에 인문학도 참여해야 한다. 설사 약물을 써서 중증 증상이 완화되고 고통이 해소된다고 해도, 삶에서 긍정적 힘을 발휘하면서 자기 운명의 주체로 서는 단계로 나아가려면 인문학의 개입이 필요하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강조하는 로고테라피logotheraphy(의미치료), 나 자신을 알고 자기의 고유성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실존적 주체로 서도록 도와주는 철학치료, 무의식에 대한 통찰과 자기만의 욕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신분석 관점의 접근이 인문학적 치료다.

112 그는 심리치료가 성적 불만족보다는 존재의 불만족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리치료가 내 삶의 목표와 존재 이유, 나의 구체적인 사명과 개인적인 소명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114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과 우울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통제하지 못할 때 생긴다. 어떤 불안을 왜 안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치료하기보다 나를 집요하게 붙드는 집착이나 갈등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115 들뢰즈Gilles Deleuze가 <차이와 반복>에서 강조하듯 반복은 똑같은 것을 재현하는 것 같지만 그것에 의미가 들어가는 순간 창조가 된다. 날마다 수동적으로 하는 반복이 무력감과 우울을 가져온다면,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지속하면서 무언가를 창조하기를 반복한다면 삶에 활력이 생길 수 있다. (…) 삶의 에너지는 우리가 어떻게 전유하는지에 따라 파괴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창조적으로 발휘될 수도 있다.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에너지를 쏟을 때 우리는 그것에 에너지를 집중하면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122 치유의 공동체는 사회제도나 물질적 복지가 좋은 집단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 건강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가능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다.

6장 건강한 자아와 행복을 위하여

125 우리는 타자에게서 어떤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 닮으려고 하며 동시에 타자와 우리를 구분하기 위해 분리 노력을 하는 데 정체성은 이런 과정의 산물이다. 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내면에 더 깊이 들어와 있으며,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128 진정한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나 사회에 맞추지 않고 나의 고유한 존재being를 찾고, 그것과 관계를 잘 맺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 존재가 본래 실체가 아니라 완벽히 채워지지 않는 무nothing이자 순수한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 욕망이란 존재의 텅 비어있음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존재에 충실하려는 윤리적 태도이기에 괴로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능동적인 자세 전환이 필요하며 내 욕망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주체는 불안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130 우리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현재 상황이나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표징이다. 현실에 만족한 사람은 새로운 모험이나 불확실성에 몸을 던지지 않고 관성적 삶을 반복한다. 이런 삶에는 불안도 긴장도,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도 없다.

130-131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우리는 불안이라는 다소 거추장스러운 상황에 직면한다. 한국에 <툭하면 기분 나빠지는 나에게>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팀 로마스 Tim Lomas 의 책은 원제가 ‘무정적 감정의 긍정적 힘 The Positive Poser of Negative Emotions’이다. 이 책에서는 슬픔, 불안, 분노, 죄책감, 질투, 지루함, 고독, 고통이라는 8가지 부정 감정이 삶에서 어떤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는지 기존 심리학 연구를 참조하고 사례를 살피면서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불안은 주변의 위험한 요소를 살피고 주의를 기울여 위험을 피하는 ‘감시자’ 기능을 하며 불안 덕분에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 성장할 때 생기는 감정이 불안이다. 로마스의 책은 불안뿐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부정 정서들이 우리가 잠시 멈춰서서 삶을 성찰하게 하고 동기를 유발하면서 새로운 선택으로 유도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불안은 한계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가능성을 나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나의 고유한 존재성을 실현하는 모험을 할 때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정서다. 우리는 불안을,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로 전유하면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132 그렇다면 어떻게 타자의 욕망에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이는 정신분석이 말하는 ‘애도’를 통해서 가능하다. 애도란 내가 애착을 가졌던 대상이나 사람, 욕심을 떠나보내면서 상실을 삶에 정착시키는 작업이다. 욕망에서 애도는 큰 역할을 한다. 욕망은 대상에 대한 탐심이 아니라 “존재 결여에 대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욕망의 본질은 어떤 대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열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사회에서 인간은 존재가 아니라 자꾸 존재를 과시하고 확인시켜줄 수 있는 대상에 집착한다.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이 말한 것처럼 존재의 삶이 아니라 소유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소유나 물질은 내 본질을 실현시켜주지 못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애도고, 우리는 애도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135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기념, 의식을 통한 위로와 의미 부여, 상실에 대한 공동체의 인정과 지지 등 사회가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슬퍼해주는 것이 바로 사회적 애도다. 이러한 사회적 애도가 있어야 개인의 애도가 가능하다. 애도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대상이 찌꺼기처럼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트라우마 같은 정신장애다.

불안은 애도의 부재에 대한 경종으로, 우리가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욕망에 필요한 결여가 메워지면서 내 존재의 틈이 없어질 때 느끼는 정서가 바로 불안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인간이 타자와 관계 혹은 나의 진정한 욕망을 찾고 그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나침반이다.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윤리는 자신의 욕망에 철저한 것이다. 나의 욕망을 알고, 그것에 충실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우리의 정신도 건강해질 수 있다.

136 인간의 문명 자체가 공감과 소통 위에서 성립되었다고 주장한 사상가 제레미 리프키 Jeremy Rifkin 은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주변의 특정한 관계와 만남을 통해 삶을 꾸리는 것이 인간을 고유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나아가 사회관계가 우리를 만들고 본성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치유를 완성해주는 힘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139 개체성을 보장하면서도 타자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연대와 존중은 무조건적 사랑과는 다르며 오히려 냉정함에 가깝다. 동질성이나 정서적 교감에 기초한 사랑은 결국 내 편에게만 잘해주는 패거리 문화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며

145 글은 우리의 망각을 막아주고 기억을 영구화하는 동시에 본래의 의미를 왜곡시킬 수도 있는 묘약이자 독약의 이중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145 불안도 파르마콘 비슷한 역할을 한다. 불안은 우리 영혼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는 독이고 자칫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이끌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을 잘 활용하면 영혼을 정화하고 새롭게 들여다보면서 자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치료제가 된다. 불안은 미래에 대해 경고하는 선지자, 위기를 대비시키는 훈련관, 성공의 추진력을 제공하는 동기 유발자, 내 안전을 지키는 감시자, 내 삶의 한계를 넘도록 이끄는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면서 회피할 게 아니라 적극 수용하면서 이와 연관된 내 욕망을 향유할 수 있는 행복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