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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돌봄

2023-05-29 저자: 조기현 출판사: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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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청소년이나 청년이 하는 돌봄은 생산성을 빼앗기는 손실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돌봄 하는 사람을 저평가한 맥락을 반성해야 할까? 돌봄을 하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아니면 돌봄 하는 삶이 손해 안 보고 불행하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37 가족 보호자건 남성 생계 부양자건, 가족 안에서 강제로 부여된 구실 때문에 고통받는 점은 닮아 있었다.

38 돌봄을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사랑을 강제로 떠맡는 경우는 없다. 대등한 관계에서 개인과 개인으로 나눌 수 있어야 사랑이다. 돌봄을 가족 책임으로 두지 않는다는 말은 그런 의미다. 돌봄은 일상을 뒤흔드는 ‘사고’가 아니라 ‘사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간병을 선택할 자유’와 ‘보호자에 관한 보호’가 보장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은 마음을 연결해주는 신호음이 된다.

43 눈 앞에 있는 한 ‘인간’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상상할 때 비로소 ‘사람’으로 보인다. ‘가족’이라는 틀은 한국 사회가 개개인에게 성원 자격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틀이었다. (…)

가족 안은 닫힌 공간으로 바뀌어 폭력의 온상지가 됐고, 가족 밖은 아무 보호막이 없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세계가 됐다. 가족이나 가구 단위에 기반한 제도들은 가족을 통하지 않으면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누군가의 ‘가족’이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부재한 셈이다.

54 이런 과정을 거쳐 다른 돌봄 정책에서도 어떻게 아픈 사람과 돌봄자를 함께 파악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농니 장기 요양보험에서 요양등급은 당사작 돌봄이 필요한 정도를 파악한 뒤 이요할 수 있는 요양 서비스 양을 정한다. 우선 요양 등급 신청은 어떤 과정이고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55 가족만이 돌봄에 책임과 권한을 지니고 판단을 내리는 주체라는 전제와 공공이 돌봄 서비스를 민간에 떠넘긴 뒤 감시하는 구조가 짝이 돼야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57 또한 조사표를 통해 주돌봄자의 연령, 성별, 상태 등이 모이면 다른 정책을 구상하는 데 쓸 만한 데이터가 된다. 공적 제도 안에서 돌봄자의 자리가 좀더 뚜렷해지는 셈이다. 돌봄이 필요한 아픈 당사자와 돌봄자를 고루 살필 수 있는 정책적 관점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요양 등급’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58 성별 분업이야말로 돌봄을 가려주는 ‘사회적 커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커튼은 남성에게 돌봄을 보이지 않게 가려준다.

60 돌봄자를 위한 상시적인 심리 지원이 필요하다. (…) 삶에서 겪는 문제가 청소년기뿐 아니라 청년기에도 계속되는데 상담 지원은 받을 수 없었다. 언제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심리 지원이 절실하다.

60 경제적 지원은 돌봄과 부양의 지속성을 높이는 방법일 수 있다.

65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학업과 진로 이행, 또래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 수 있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데 시간을 쏟으면 학업이나 진로 이행에 쓸 여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진로 이행과 가족 돌봄을 병행하다 보니 일상에서도 에너지가 더 많이 들어간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또래들 사이에서 흔한 사례가 아니어서 수비게 공감을 얻기 힘들다. 자기가 겪는 문제를 함께 상의하거나 참조할 수 있는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영 케어러에게 가족 돌봄은 고립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가족 돌봄을 하는 아이와 하지 않는 아이의 미래에서 나타나는 격차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73-74 우리는 아이가 돌봄의 ‘대상’일 뿐 아니라 돌봄의 ‘주체’일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한테서 교육 받을 권리와 놀 권리를 빼앗으려는 시도는 아니다. 오히려 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아이에게 교육과 놀이를 보장할 길을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 서비스가 아무리 확대돼도 일상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돌봄 행위를 대체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돌봄을 해왔고, 하고 있다. 앞으로 고령 인구가 늘어나고 출생률이 줄어들면서 노인을 돌보는 아이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금 영 케어러라는 호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 케어러를 우리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하고 영 케어러에게 무엇을 보장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76 돌봄이 불행이 되는 맥락은 이윤을 내는 일과 내지 않는 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인 셈이다.

76 돌봄 민주주의는 돌봄을 하거나 돌봄을 받는 위치에 있느 사람들이 겪는 피해와 불평등을 해소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돌봄 민주주의 사회에서 돌봄은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인 동시에 모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77 함께 돌봄 책임제는 가족 돌봄 때문에 고용에서 차별을 받지 않을 보호 장치, 돌봄에 주는 충분한 보상, 돌봄의 공적 가치를 인정하고 명시한 헌법,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일정한 나이가 된 때 영유아, 노인, 장애인하고 함께할 수 있는 돌봄 책임 복무제 등이 주요 내용이다. 초중등 의무 교육 과정에 돌봄 교육을 넣자는 주장이 가장 눈에 띈다.

78 의무 교육 과정이 아니더라도 성장 과정에서 돌봄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돌봄은 불행이나 억압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이 될 수 있다.

80 희준의 일상은 두 가지 상반된 가치 사이를 진동한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과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성공하고 싶다가도 중학생 때부터 지나친 경쟁에 지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걱정된다. 뭐든 하고 싶은면 다 배운 때를 그리워하면서도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지금이 좋다. 일상에서 경쟁의 세계와 협력의 세계를 오간다.

81 학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늘리고 능력을 키워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죠. 알아요. 하지만 집에 계신 제 할머니는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요. … 학교는 능력 향상을 중시하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능력을 키우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데,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서서히 싹트죠. 이런 모순에 가장 많이 직면하는 사람이 영케어러 아닐까요.

81 그 영 케어러는 학교 다니는 내내 학교와 집 사이에서 헤맸다. 대립되는 두 가치 사이에서 무엇을 존중하고 긍정해야 할지 알지 못한 때문이었다.

94 “문제를 알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는데,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 못하면 길을 못 찾는 거죠.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는 좀 나아갈 길을, 조금씩 나아가는 길을 찾은 거 같아요. (…) 저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많이 해방감을 느꼈어요. (…) 연민에 빠지지 않고 객관화하려고 노력했어요.”

97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폭력 상황을 벗어나는 핵심 요소였다 또한 경제적 자립은 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여성 전체의 ‘행복한 삶’에 필수적이었다. 여성의 주체성이 확립되어야 가정과 일터의 문화도 바뀔 수 있었다.

98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정신 장애 당사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 집에도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으면 좋겠다.

100 정신 질환에 붙는 ‘낙인’과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양육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수전의 오빠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를 만난 때 어른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야. 너희들이 그 병을 고칠 수 없어. 하지만 도울 수는 있지. 질문을 해도 좋고, 도움을 요청해도 좋아. 너희들과 관계없는 일에 죄책감이나 실패의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단다. 그러니 네 생활을 계속 유지하거라.”

103 “제가 의식적으로 가족한테 거리감을 만들었던 거 같아요. 너무 개입하면 제가 같이 무너지더라고요. 거리를 두고 내가 서 있어야 돌볼 수도 있잖아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어야 부모님이 일을 벌여도 나도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고요. 마지막 순간에는 늘 저를 위한 선택들을 했던 거 같아요. 부모님을 안 놓으려고요. 끝까지 놓지 않고 붙들고 있으려고요. 그러기 위해서 꼭 마지막에는 제 중심적으로 선택하며 살았어요. 너무 가까워서 서로 죽일 정도의 시간도 보내고, 좀 떨어져서 걱정돼서 죽을 거 같은 시간도 겪어보니, 현실적으로 조율하게 되는 거죠.”

103 내가 나를 잘 돌봐야만 타인을 돌보는 일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심리적 거리를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쏘다야 한다.

104 가족들의 삶을 ‘문제’로 보기 이전에 그 삶 자체를 ‘인정’한 덕분이었다. 가족들이 도움을 요청하거나 꼭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돕기, 아름이 더불어 살기 위해 만든 관계의 규칙이었다.

121 첫째, 자기도 여유가 없는데 다른 형제의 가난을 그대로 떠안아 ‘공멸’하는 리스크, 둘째, 자기도 여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난한 형제의 생활 보호를 신청(부양을 거부)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느끼거나 형제간의 거리가 생기는 리스크, 셋째, 독신이면서 재산이 없는 형제가 부양 또는 입원할 필요성이 발생한 때 자기는 다른 가족을 간병 중이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거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서 맡을 수 없게 되는 리스크, 또는 자기가 떠안아서 무너지는 리스크, 넷째, 부모 간병이나 상속 문제로 형제끼리 다툰 끝에 고나계가 나빠지거나 인연을 끊는 리스크.

124 술 뒤에 갑춰진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유’가 없는 중독과 의존은 없다. 중독과 의존의 맥락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렵고 지치고 복잡하다. 중독과 의존의 계기를 모두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많은 이들에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125 주거 빈곤과 문제 음주의 관계는 영국에서 시행하는 ‘하우징 퍼스트 housing first’ 정책 덕분에 설득력이 높아진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홈리스에게 조건 없이 영구 임대 주택을 지원하는 이 프로글매은 영국, 프랑스, 캐나다, 뉴질랜드 등 전세계 100여 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따. 문제 음주를 치료하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주거를 지원하는 ‘트리트먼트 퍼스트 Treatment First’ 정책을 대신한 하우징 퍼스트 정책은 치료 여부에 상관없이 주거 안정을 먼저 보장한다. 치료는 당사자의 ‘선택’일 뿐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제때’라는 시간이 다가올 수 있게 안정된 환경부터 제공하는 셈이다. 2019년 자료에 따르면 하우징 퍼스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알코올 섭취량이 많이 줄어다.

126 주거는 재생산이 일어나는 대표적 공간이다. 주거는 물리적 조건인 동시에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공간이다.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곳,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곳, 마음을 둘 수 있는 곳은 자기를 마주하고 자기를 보살필 수 있느 조건이다. 그런 조건이 주어질 때 마음의 힘도 기를 수 있따.

133 할머니를 돌보는 일이 지닌 쓸모는 돈을 판단하는 쓸모를 한참 넘어서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한 쓸모가 경훈이 돌봄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다.

138 우리는 이제까지 ‘이상적인 돌봄자’로 ‘딸’이자 ‘여성’이 상정된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145 할머니가 지닌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맺으면 그만이다. 경훈은 비로소 할머니의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있게 됐다.

155 내 문제를 나만의 문제로 가두지 않고 공동체의 문제로 끌고 가는 힘에 주목하고 싶었다. 그런 힘은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이들이 어찌해볼 수 있는 길을 만들려 할 때 필요할 테니까. 고통 이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참조가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56 정부는 2019년부터 커뮤니티 케어 선도 사업을 추진하고, 사회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며 사회서비스원 시범 사업을 실시하는 중이다. 요양과 돌봄이 시설이나 병원에 집중되고 사회 서비스가 시장에 좌우되는 상황에 문제 의식을 느낀 탓이다. 그렇게 살던 곳에서 잘 돌보고 돌봄 받을 수 있는 바탕을 그려가는 중이다.

163 내가 겪었던 아픔이나 어려움을 아직도 사회에서는 겪고 있잖아요. 내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걸어왔던 그 어려움을 나눌 수 없을지 고민했어요.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게 소외된 것 같고 삶의 지침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고 느꼈던 거였잖아요. 그래서 제가 청소년 시기에 겪은 걸 비슷하게 겪고 있을 청소년들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자원봉사를 시작했어요. 비슷한 경험을 교류하고 공감하며 서로 성장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봉사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을 많이 했죠. 자원봉사 경험이 사회복지라는 것을 선택하는 데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까 내가 이걸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때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도로 시작했어요.

172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유색 인종에게, 이주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현실은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이다. 이런 사람들은 돌봄을 수행하지만 사회의 모든 방면에서 취약한 조건에 있기 때문에 돌봄에 관한 공적 논의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남성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거나 부유한 사람들은 돌봄을 하지 않는데도 돌봄에 관한 공적 논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돌봄을 하지 않는 사람은 돌봄을 잘 받고 돌봄을 하는 사람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돌봄을 받으면서 돌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지는 ‘무임승차권’을 회수해야 한다고 트론토는 제안한다. 회수해야 하는 무임승차권은 모두 다섯 가지로, 보호형 무임승차권, 생산형 무임승차권, ‘나만의’ 무임승차권, 부트스트랩 bootstrp형 무임승차권, 자선형 무임승차권이다. 이 다섯 가지 무임승차권은 돌봄을 둘러싼 현실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우리의 일상적 관계를 지배하는 관념들을 되볼아보게 한다.

  1. 보호형 무임승차권 - 외부의 위험에 맞서 안전 담당
  2. 생산형 무임승차권 - 돈을 버는 역할 담당
  3. 나만의 무임승차권 - 내 가족에게 하는 돌봄만 잘하면 된다 → 경제적 불평등
  4. 부트스트랩 무임승차권 - 돌봄이 필요할 때 돌봄을 사면 된다 (시장 지향적)
  5. 자선형 무임승차권 - 사회의 영역이 아닌 개인의 자선이 필요한 영역 (돌봄을 시장의 잔여분으로 보는 시각)

176 돌봄이 상품이기 이전에 의무이자 권리라는 합의가 맺어져야 이런 무임승차권들을 회수할 수 있다.

177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돌봄으로 상호 작용을 하고 있었다.

178 결국 돌봄은 서로 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184 가족 난민은 자기가 뭔가 필요할 때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면서 자기를 필요하게 여기고 소중히 대하는 존재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188 영 케어러가 비자발적으로 생애 과업을 포기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사회적 지원을 필수다. 그렇지만 남들처럼 ‘정상’적인 생애 이행을 할 수 있게 돕는 쪽보다는 삶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우리의 생애 주기는 이미 재편되고 있으며, 재편돼야 한다. 지금 영 케어러를 이야기하자. 돌봄은 삶의 걸림돌이나 예외가 아니라 다른 생애 주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95 낸시 프레이저는 돌봄이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가 되지 않는 대안을 제시한다.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이다.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은 누구나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우리 삶을 재구성한다. 프레이저는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을 거쳐 만들어질 세계를 이렇게 묘사한다.

모든 일자리는 돌봄 제공자인 동시에 노동자인 사람들을 위한 방식으로 고안될 것이다. 모든 살마은 지금의 상근직보다 주중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취업을 가능케 하는 서비스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 상당수 비공식적인 노동은 공적 지원을 받고 단일한 사회보장 제도 체계에서 임금노동과 동등하게 통합될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민주적으로 자기 관리 형태를 띤 돌봄 노동 활동에 합류할 수도 있다.

208 돌보는 이에 관한 언어도 서서히 바뀌었다. (…) 모임에서는 다른 언어를 썼다. 내가 돌보는 인느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그 사람은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인지 말한다. 어느새 자기가 돌보는 이가 지닌 장점을 자랑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이 만나면 아픈 이가 지닌 역량을 함께 발견하는 대화도 할 수 있따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돌봄 받을 권리가 생기려면 이런 대화가 일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