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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소설

설자은, 불꽃을 쫓다

2025-03-09 저자: 정세랑 출판사: 문학동네

📝 감상

역시 정세랑… 믿고 보는 정세랑!

1편에 비해 어둠의 기운이 더 서려서 다소 무겁기도 하지만, 여전히 문장마다 스며있는 정세랑표 다정함 덕분에 균형감이 잘 맞는 책


🔖 책갈피

78 한 사람으로서의 자은은 하지 않을 일을, 관직에 있는 자은이라면 망설임 없이 할 것이었다. 거인의 손가락 중 하나이기에 어딘가 구름 속에 있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행했을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더 큰 힘에 종속되어버렸다. 그 힘을 끌어 쓸 수 있는 대신 본연의 모습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스스로만 느끼는 줄 알았더니 곁의 인곤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래,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의 자네라면 그보다 나쁠 수 있었음을 이해하겠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에는 위로도 아래로도 끝이 없네. 그 틈새에서 살아남은 것만 해도 나는 운을 충분히 누린 거야. 그러니 그저 햇빛에 매일 감사할 뿐, 지나간 날들을 곱씹지 않아.”

💚 97 “지난날의 과오에 쫓기는 자가 많을 테고, 오지 않은 날들에 쫓기는 자도 더러 있을 테지. 어느 쪽인지만 명확히 알아도 덜 쫓길 텐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긍휼이 여기게. 쫓기다 사로잡힌 자들을.”

💚 105 과연 존재한 적 있을지 의심스러운, 무구했던 지난날로 돌아가자며 눈앞의 모든 것을 오손이라 명하고 내치려는 자들이었다. 그 말들은 단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비롯되는가? 그럴 리 없다. 그보다는 허공을 휘감은 염오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내 외치는 것에 가까울 것이었다. 광증이 없는 이들도 입을 다물 줄 알 뿐, 흉중은 흡사할지 몰랐다.

143 무도함이, 잔인함이 가까이 도사리고 있다 해서 늘 짚어낼 수 있는가? 자은은 점점 끔찍한 것들일수록 빛깔도 냄새도 없어 경계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여기게 되었다.

161 “앞으로는 틀리지 않을 거야. 나는 자네들을 덩어리로 보지 않네.”

💚162 “어찌되었든 날을 더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입버릇 같은 혼잣말을 거듭했다. 누구나 더이상 새날이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날을 더해가며 산다. 그뿐이다. 야단을 떨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고 경망스러운 자들이나 달리 굴 것이다. 일어난 일들, 일으킨 일들 모조리 품고 견디면 된다. 그럴 수 있다.

말하다보면 믿기는 날도 더러 있었다.

💚214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니에요. 어린 시절처럼 같이 소원을 비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나 했던 것입니다. 이뤄지지 않을 소원을 빌고 잊고 다시 빌고… 모두 그렇게 살지 않나요?”

238 나아가려는 의지가 깃든 제안이었다. 지난날을 갈무리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권해오는 게 분명했다.

💚 273 가까운 사이일수록 또렷한 상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 276 거처가 주는 안정감, 돌아가고 싶은 마음, 이어져내려온 이야기의 일부이고자 하는 바람… 그 마음이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겠지만 없는 자는 없으리라.

297 “성정이 원래 저런 걸 모르고 따랐나? 잠잠한 듯 제멋대로인 성정인 걸 모르고 친우가 되었나? 거푸 태어나야 고쳐질 못난 부분은 받아들여주는 게 친우지. 그 나이를 먹고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