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브다니의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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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간의 재료가 달라진다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도 바뀌지 않을까? 우리가 매끈한 가죽과 살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까끌까끌한 털로 뒤덮인 존재라면, 혹은 석고처럼 단단해보이지만 잘 부스러지는 존라면? 인간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매끈한 피부는 인간의 본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24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꿔요. 그런 욕망 중 쉽게 승인되는 것들은 거대한 시장을 이루죠. 하지만 승인받지 못한 욕망들도 결국은 어디론가 흘러들어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어요. 그런 갈망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26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 혹은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란 대체 뭘까요? 그것은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서 한 사람의 뼈를 이루게 되는 걸까요?
27 욕망의 형태 역시 처음에는 추상적이고, 마치 조각을 빚듯 구체화하기 전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거라고 했죠.
33 이 가게에 와서야 새삼 깨달은 건, 피부가 엄연한 기능성 기관이라는 거였어요. 피부는 감염원과 화학물질, 가벼운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탈수를 막고, 체온을 조절하고, 외부 자극을 감지해요. 손님들은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려요. 손님들에게는 피부의 기능 따위보다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우선이거든요. 피부가 자기표현의 매개체라고만 생각하는 거예요.
80 언젠가는 다시 그 거리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싫지 않았거든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온몸을 바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요.
81 하지만 수브다니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만은 알아요.
그는 정말로 금속 피부를 달고 싶어 했죠.
다른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수브다니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