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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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살면서 쏟아온 애정에 너무 많은 애씀이 녹아서일까. 늘 그랬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이 없는 배우처럼. 조명이 꺼지면 관객의 박수도 마다한 채 서둘러 무대 위를 떠날 것 같은 사람.
47 사람마다 최선은 너무나 다른 모양새를 가졌다. 옥이 시집가서 시어머니로 만나게 된 아버지의 엄마는, 옥이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최선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 차이는 옥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며느리의 도리라는 명목으로 최대한 맞추고 참아냈다. 요구는 요구를 끝없이 낳았고, 불편한 요구를 억지로 삼켜내며 옥은 옥의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30년쯤 하고 나서야 비로소 오래된 욕구를 행동으로 옮겨 시어머니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61 공연에 몰두하는 일은 미처 돌보지 못한 감정이 방출하는 열을 다스려주었다. 얽히고설킨 타래 같은 감정을 차분히 돌보기에는 속은 너무 뜨거웠고 나는 어렸다. 모조리 태워내고 싶은 오기와 비장함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 지금 돌아보면 무대라는 공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없었던 건 ‘비생상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가슴이 답답해 손에 잡히는 대로 다 꺼내어, 털어내고, 펼치고 싶었다.
무대 위는 감정이 유용한 재화가 되는 유일한 장소였다. 무대 밖에서는 꾹 참고 무시하라고 배운 감정을 무대 위에서는 합법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다. 드물지만 무대 위에서 만나는 어떤 순간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영원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죽어도 좋다는 마음과 일치했던 순간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는 숨구멍을 찾았다. 무대에 집착하던 그때의 나를 지금에서야 설명할 수 있다.
66 엄마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글을 쓰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흘러나왔다. 한참을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엄마를 옥으로 쓰고 싶었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엄마를 다시 쓰고 있다.
엄마가 이름표 때문에 슬펐던 건 아닐지 혼자 마음대로 상상했다. 누군가의 딸, 아내, 며느리, 그리고 엄마. 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엄마는 나 말고 당신을 ‘엄마’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내가 있어서 엄마는 엄마가 되었고, 엄마다. 엄마라는 이름표만이라도 없다면, 엄마가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를 열심히 쓰면서도 엄마를 애써 지우려 했다. 그렇게 쓰고 또 쓰고 돌고 돌아서 결국 엄마다.
67 결국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겠지만 저물어가는 풍경을 가장 선명히 기억하려는 마음으로.
75 박 간호사님은 아버지와 내게 호스피스가 제공하는 의료 처치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보호자 마음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복지사 수녀님이 동행하는 이유도 환자뿐만 아니라 완화치료를 함께 겪어가는 가족들 마음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다.
75 엄마의 돌봄을 아버지에게 믿고 맡기는 것도 나를챙기는 일이었고, 나를 잘 챙기는 건 결국 엄마를 돌보는 일과 연결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돌봄으로 연결되었다.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돌봄의 순환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동시에 서로에게 힘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나는 몸으로 배워갔다.
76-77 나는 이 순간을 회상하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과하다고 느껴 잘 쓰지 않았던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같이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순간은 분명 행복이었다.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이 쉽게 불행으로 치부되는 삶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았지만, 일상을 부지런히 골라내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삶이 소중해졌다. 죽음을 앞둔 삶도 여전히 삶이었고, 죽음을 포함한 삶이야말로 완전한 삶이 되었다.
90 엄마 없는 집이 낯설고 엄마 없는 삶이 그려지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삶이 있었지만, 내 삶에는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주인 없는 방에 쓰러지듯 누워 한참을 울었다.
94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삶을 충분히 사랑했기에 죽음을 미련 없이 맞이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말하는 엄마에게서 설명하기 힘든 생의 에너지를 느낀다. 이제 엄마의 ‘다 살았다’를 다르게 듣는다. ‘있는 힘껏 사랑했다.’
154 정확히 엄마가 바랐던 바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주위 사람들 고생시키지 않고 싶어 했던 엄마가 이겼다. 엄마가 이기는 결과는 늘 이런 식이었지. 그것이 결국 나를 위한 엄마의 최선임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마지못해 엄마를 위해 졌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를 견디기 힘들다. 그런 나조차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남겨진 나는 잘 살아야 한다.
167 묻지 않는 마음이 궁금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 마음이 서툴렀던 우리의 최선이었다는 걸 이제 안다. 궁금해도 묻지 않는 마음을 생각한다. 묻지 않아도 전부 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도 생각한다. 두 마음을 나란히 붙이고 보니 사랑과 닮았다.
179 언제부턴가 사람을 책으로 상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면 그 사람의 삶을 내 손으로 펼쳐보는 상상. 적당한 조명 아래 편안한 책상에 앉아서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미처 단어로 태어나지 못한 순간까지 상상하며 책을, 삶을, 사람을 읽는다. 사람을 쓰는 일은 어쩌면 가장 성실한 사랑일지 모른다.
185 이미 지나버린 장면에 다른 해석이 생긴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209 산다는 건, 살기 위해 의지하고 기댔던 존재의 부재까지 견뎌야 하는 일이란 걸 나는 이제야 알아가는데.
235-236 가까운 이에게 말로 털어놓은 슬픔은 그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싫었다. 하지만 단어를 엮어 종이 위에 글로 펼쳐놓은 슬픔은 딱 종이 한 장의 무게로 압축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쓴 글조차 기어이 무겁게 읽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동료’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무게를 알아봐주는 완벽한 타인에게 나는 적극적으로 기대며 나를 돌보고 엄마를 돌보았다.
쓰는 일은 기대는 일이었다. 고이지 못한 슬픔은 나를 통과해 글이 되었다. 서로의 글 속에서 다양한 삶이 교차했고포개어졌다. ‘살아간다’는 저마다의 임무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내는 동료가 모여 공동체가 되었다. 그곳에서 글로 삶을 나누는 일은 기꺼이 뒤엉키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엉성하고 조잡해도 얼기설기 뒤엉켜 서로에게 기대고 기댈 품이 되어주었다.
236 나의 슬픔을 돌봐야 엄마의 아픔을 돌볼 수 있었다. 엄마 앞에서 숨긴 슬픔을 외면치 않고 다시 꺼내 돌볼 수 있었던 것도 쓰는 일을 통해 가능했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나를 돌보았다. 나를 돌보는 방법은 엄마를 돌보며 배웠다. 쓰는 일은 돌봄의 순환 한가운데에 있었다.
237 슬픔이 파도 같다는 사실을 배웠다. 바다에 파도가 없기를 바랄 수 없었다. 파도를 마주하는 마음으로 슬픔을 보았다. 큰 파도가 덮칠 때는 힘을 빼고 몸을 맡겼다. 한참을 몰아치다가도 어느새 잠잠해지면 물 위로 떠올랐다. 파도는 바다가 생명이라는 증거였다.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마주하고, 슬픔 가운데, 어느 때보다 살아있다고 느꼈던 순간은 결코 모순이 아니었다. 내게 생명을 주고 죽음까지 가르쳐준 엄마 곁에서 나는 삶을 아끼지 않는 법을 배웠다.
243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비바람이 한바탕 지나가면 꽃잎이 떨어진다. 조금 이르게 진 꽃이 아깝고 아쉬운 것도 찰나의 심상일 뿐, 떨어진 꽃잎은 묵묵히 생의 임무를 다하고 초록에 자리를 내어준다. 머지않아 꽃이 진 자리에 잎이 자라나 초록이 될 것이다. 슬픔은 진정 생장의 시간이었다.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낸 뒤에는 더는 같은 존재로 머물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나의 엄마에게 이 책을 바친다.
나의 슬픔이 시작된 사람에게 무성한 초록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