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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2023-08-01 저자: 박상영 출판사: 인플루엔셜

🔖 책갈피

15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겍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 수도.

37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조차 확실할 수 없었던 내 삶을, 궤적을 누군가 믿고 지켜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101 “그 정도 쉬는 걸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휴식에도 질이 있어요. 상영씨는 지금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되어 있어요. 야생으로 치면 언제나 맹수에게 쫓기거나 최선을 다해 사냥을 하고 있는 상태인 거죠. 그러니 몸과 마음 모두 쉬는 연습을 해야 해요. 생각을 멈추고 최대한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102 세상에서 내가 가장 못하는 게 있다면 생각을 멈추는 일일 거다.

111-114 생각해보면 우리 몸에도 일정 이상의 나트륨이 존재하고 결국에는 인간의 손이 닿는 자연은 일정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인간의 삶은 서로가 서로를 부서뜨리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과장된 생각에까지 도달해버렸다.

120 핸드폰을 들어 가슴 벅차게 아름다운 광경을 남기려 했지만, 사진에는 내가 느끼는 환희의 10퍼센트도 담기지 않았다. 결국 촬영을 포기한 채 그저 기억 속에 아름다운 장면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161 조하나는 유아 휴게실 앞에서 유아차 한 대를 빌렸다. 하나의 말에 따르면 H 백화점에서 대여해주는 유아차가 가장 좋다고 했다. (나는 백화점에서 유아차도 빌려준다는 거, 심지어는 백화점별로 유아차의 퀄리티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177 일반적으로 도시의 고양이들이 쉬이 배척당하는 존재라면, 가파도에서는 고양이가 쉬어갈 수 있는 쉼터나 급식소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191 도시의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대상이 추상적이고 왠지 금기시되는 으스스한 종류의 것이라면 섬에서, 자연에서 죽음은 생의 일부다.

200 때문에 예전부터 나는 손쉽게 타인을 받아들이고, 어렵지 않게 신뢰감을 쌓아 올리는 종류의 살마들을 동경해왔다. 그들은 나처럼 사사로운 일에 붙들려 있지 않고 경제적으로 감정을 사용할 줄 아는 존재라는 생각에 때로 열등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221 어쩌면 사는 건 몰랐던 통증을 늘려가기도 하며, 그 통증에 익숙해지기도 하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울적하기도, 담담하기도 한 생각이었다.

223 우리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너무 다른 색깔의 작업을 해왔다는 게 이상하게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223 가파도에서 겨울은 바닷물이 점점 더 육지를 향해 들이쳐오는 계절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