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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2023-08-27 저자: 장일호 출판사: 낮은산

🔖 책갈피

7 나 역시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그만큼 간절하게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쓰는 사람은 쓰지 못한 이야기 안을 헤매며 산다. 세상에는 모르고 싶은 일과 모르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9 읽는 사람은 자유로웠다. 재능 없음을 탓하지 않아도 좋았따. 책장을 펼치면 누적된 지혜가 고스란히 누워 있었다. 행간에 숨기도 하고, 행과 행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세상과 몇 번이고 거듭 화해했따. 무언가를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겠는 일이 많아지는 게 좋았따. 경합하는 진실을 따라 나는 기꺼이 변하고, 물들고, 이동하고, 옮겨 갔다.

10 살아가는 일은 사라지는 일이지만 나는 내 젊음을 부러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나는 여기에 두고, 여전히 ‘처음’인 많은 것들에 매번 새롭게 놀라면서 다음으로 가고 싶다. 행간을 서성이며 배운 것들 덕분에 반드시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앞으로를 기대한다.

1부 문장에 얼굴을 묻고

15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은 애도를 방해한다.

20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21 “그리하여 절실함은 언제나 내게 이상한 수치심을 주었다.”

31 한 사람의 독서 목록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책 선물’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내게 보여 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선물로 보낼 책 목록 안에 일정 부분 담기게 되리라 여겼따.

35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를 돌보고 아낀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우리의 건강함이 마음에 들었다.

36 나는 사랑을 ‘어떤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관계를 지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40 우리 앞에 둘러쳐진 지성과 전문성의 휘장 뒤에는 두려움의 대양이 넘실거리고, 열등감의 강물이 흐ㄴ른다. 마음속에는 항상 보기 싫은 것들의 목록이 길게 펼쳐져 있었따. 나는 그렇게 유약했고, 사람들의 반응에 과민했으며(남들에게 오해를 받으면 내 영혼의 일부가 허물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근원적인 열등감, 외로움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따. 우리는 온종일 전문성의 가면 뒤에 숨어 지낸다. 그리고 일터를 떠나서는 다시 술병 뒤로 숨는다.

44 결혼 절차 중 우리가 유일하게 합의한 건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함께 먹는다’였다. 물론 맛있는 건 술이었다.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삶을 나누는 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46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뾰족한 연필심은 뚝 부러져 나가거나 깨어지지만, 뭉툭한 열필심은 끄덕없듯이, 같이 뭉툭해졌을 때에서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말들이 있다.

54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다.”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해야 했떤 스무 해 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따.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

62 나는 때때로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동의한다.

69 내가 원하는 게 가난을 이해하고 싶은 게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새로운 세계에서 좌불안석하면서도 나느 안도했다. 물론 나는 지금도 가난으로 인해 어딘가 부서지고 망가진 내면이 언젠가는 사고를 치고 말 것이라고 긍긍한다.

70 하지만 가난은 돈의 많고 적음으로만 구별되지 않는다. 문화와 교양과 취향으로도 드러난다. 나는 그 말에서 내가 빠져나온 세계를 본다. 그리하여 안온한 세계에서 구경한다.

76 이제는 그저 일정 부분 망가진 울퉁불퉁한 길을 일단 걸어가본다.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기르는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려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빈곤은 이런 방식으로 산업화되었다) 나에게도 있다는 걸, ‘가난한’ 우리도 이 세계의 일부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이자 시민이라는 걸 믿으면서.

79 “(우리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순 없지만 네 인생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줄 순 있어”라고 했던 그 사람의 말을.

79 “여기 남은 사람이 4분37초의 노래를 듣는 일이 여기 남지 않은 사람의 4분 37초를 대신 살아주는 일이 되는 건 아닐까, 감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어떤 헤어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순간이 아니라 일생이 필요하기도 하답니다.”

80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슬픔이 묵직하게 방문하면 마음 둘 곳을 몰라 서성인다. 가능하면 몰려오는 감정을 피하지 않고 맞선다. 나는 내가 누군가의 팬임을 일부러라도 숨기지 않는다. 특히나 아이돌 팬을 낮잠아 보는 여전한 시선을 알기에 더욱.

81 “어차피 아무것도 그렇게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하여간 잘 안아도 해서 좋아하는 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좋아하고, 상관없이 좋아하는 거죠. 좋아하는데 그 사람에게서 조금씩 다른 면을 보게 되고, 그걸 보게 되는 과정도 즐기는 것, 그게 좋은 것 같습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 참을 수 있고, 그래서 내 속의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이겨내고, 전엔 어색해했던, 삐뚤게 봤떤 그 다른 면을 이젠 온전한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게 덤으로 얻는 겁니다. 그 덤으로 내가 조금씩이지만 변하는 것 같습니다.”

83 “(…) 인정하기 싫지만 음반 시장 상황은 아주 안 좋아요. 음반 시장에 속해 있고,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고민하게 돼요. 안 될 걸 안다고 나마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싫어요.”

85 살아 있는 일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덤을 만드는 일임을, 슬픔은 그 모든 일을 대표하는 감정이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89 성폭력이 여성 개인의 존엄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기보다, 그 여성에 대한 남성의 독점권을 위반한 범죄로 간주한 것이다.

91 그(권인숙 교수)가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 서 있었으므로, 나는 처음으로 과거가 나를 반드시 망가뜨리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95 “이제는 놀다가 넘어진 일만큼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라고. 그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 주라고.”

2부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101 다만 사랑하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와 다른 존재의 입장에서 그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살펴보는 마음,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해하는 마음은 없었다. 대상이 고작 ‘짐승’이었기 때문이다.

103 귀로 듣는 사연과 눈앞의 사연은 그 무게가 달랐다.

105 존재가 있어야 부정도 할 수 있다는 말, ‘아니’라는 이름 안에 담긴 분명한 존재감은 우리의 삶을 바꿨다.

109 사랑은 피곤을 동반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는 일임을 배웠다.

110 나도 한때는 사람 돌보는 거나 동물 돌보는 거나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따.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무언가가 되어 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공부 잘 하는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꼭 그런 게 아니라도 보통의 시민으로 제 몫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렇기에 때론 다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그저 내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 이대로, 매일매일 똑같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동물을 돌본다는 것은 현재지향적이다.

113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되,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개입하지 않는다. 고양이의 어떤 무심함이 사람을 살린다는 걸 나는 안다.

121 그러나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는 만들지 말”아야 할, 그 무엇.

123 국민의 삶이 변해 간다면 국가도 응당 그 변화에 응답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124-125 데이비드 모건은 가족의 핵심으로 친밀성과 돌봄, 경제적 부양을 꼽는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이지만 구성원 간 상호작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다고 본다. 가족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doing family)’이라는 관점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는 이 제안은 이후 가족사회학 연구를 확대하는 데 기여한다. 인구 통제의 관점에서 가족을 ‘인정’해왔던 국가가 아닌, 가족을 ‘구성’하는 개인으로 논의를 돌려놓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126 제도가 금지의 형태를 갖는 것은 다른 이의 자유로운 삶을 훼손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금지 자체가 제도의 목적이어서는 안 되며, 개인이 그려 나가는 삶의 지도를 국가가 대신 그려 줄 수도 없다. 더욱 다양한 욕망으로 다양한 관계로 가족을 꾸리려고 할 때, 제도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127 그 법(생활동반자법)의 너른 우산 아래 근사하게 손을 맞잡고 살아가는 다양한 모양을 한 사람들의 안녕이 결국 나와 우리의 미래일 테니까.

134 우리는 여자애들이 야망을 가질 때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꺾어 버리고 길들여 왔는지 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고 나니까.

135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그 문장을 읽은 이후 나는 또 한번 달라졌다. 실패나 실수를 이전보다 덜 두려워하게 됐다. ‘내가 해도 될까’, ‘잘할 수 있을까’, ‘못할 것 같아’라는 생각을 물리치는 데 저 문장만 한 부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래희망도 생겼다. 모건 부인처럼 ‘같이 망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실패하고 실수해야 잘하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된다고, 두렵다면 함께 망해 주겠다고, 그러니 우리 더는 조심하지 말자고 손 내밀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나이 먹는다면 뒤에 오는 여성들에게 지금보다는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다.

150 우리가 예의를 지켜야 하는 ‘남’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152 “아무래도 나는 네 나이를 겪어봤으니까 내가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완벽하게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그 반대보다는 쉬울 거야. 그러니까 윗세대가 이해하려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161 누군가가 목숨 걸고 투쟁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전해야 한다. 이 ‘당연한’ 문장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이 죽어, 몸으로 쌓아 올린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165 모르겠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연결된다.

168 ‘사실’은 때로 고통스러워서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에 더 마음이 기울곤 한다.

169 “혼란의 한가운데 있기는 쉽지만, 틈새에 있는 건 어렵다.”는 문장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다름을 이야기하되 또 이해하는 자리를, ‘틈새’를 만드는 일을 나는, 그리고 우리는 해낼 수 있을까. 성공도 좋지만 그보다는 잘 놀고 싶다. 묘지에서 하는 이 운동회의 필요와 어려움을 알아봐 주는 ‘동료’ 독자들과 함께. 한 독자가 남긴 말을 나는 오래 품고 산다. “정보의 평등이 정의의 지름길입니다.”

3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 앞에서

174 더는 죄송하기 싫었다. 경험상 이럴 때는 차라리 솔직한 게 낫다. 문제의 성격을 막론하고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솔직함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178 월급은 직무와 연차에 따라 고정돼 있는데, 한창 일할 연차의 임금 인상률이 가장 높게 설계돼 있다. 노동자 간에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일을 최소화하되, 회사의 ‘허리’를 응원하는 형태다.

179 허투루 일한다는 건 내 이름뿐만 아니라 이 매체가 쌓아 온 신뢰에 먹칠하는 일이었다. 불안을 밥 먹듯 먹으며 시간을 쌓는 동안 나는 ‘나만의’ 일하는 스타일과 리듬과 호흡을 가지게 됐다. 그러므로 나에게 내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졌다는 건 엄청난 변화였다.

180 어른의 고민이라면 책임감에서 출발해야 하는 법이다.

203 앞에 놓인 일들을 한번씩 가늠할 때마다 막막해서 차라리 사라지고 싶었다. 다짐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되는 쓸모란 얼마나 무서운가.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바람과 잘 할 수 없다는 낙담은 단짝이라, 내가 나인게 싫어지는 시간만 성실했다. 일과 일상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한 몸처럼 지낸 지 오래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생활이 불규칙해졌다. 닥친 마감과 기획안으로 엉킨 생각이 밤새 몸을 들쑤셨다. 아침에 눈떠 보면 죄 시답잖았다. 모든 게 나처럼 시시했다.

205-206 정답을 찾고 싶어서 책을 읽지만 책에는 정답이 없다. 자기계발서만 아니라 모든 책이 마찬가지다. 대신 책에는 ‘질문’이 있다. ‘실마리’를 잡는다면 그나마 나쁘지 않다. 정답은 여러 개이며 결국은 내가 써야 한다.

208 내가 그러했듯,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 낙차에 실망할까 지레 겁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대도 실망도 당사자 몫이다. 선배는 그 모든 걸 온전히, 하지만 나보다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겪게 해주는 사람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209 어떤 직업을 좋은 일, 필요한 일로 만드는 힘과 책임은 그 직업군에 속한 사람에게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을 뒤에 오는 사람에게 권할 수 있으려면 내가 선 땅이 좋아지도록 부지런히 일궈야 한다. 저 짧은 두 문장을 자신 있게 건네려면 그만큼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한다. 일의 조건과 환경을 바꾸는 일을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 어디 기자만이 그럴까. 세상의 많은 일이 그런 노력에 힘입어 나아진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때로 망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아주 망친 일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217 하지만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을 전부 해 볼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경험을 선택하고, 놓친 경험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230 “어떤 불행은 나를 비켜 가리라는 기대보다는 내게도 예외 없으리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위로받는다.” 이 예외 없는 시간을 불행으로만 흘려보내지 않겠따고 다짐했다.

236 “(…) 그(환자)는 자기 삶의 맥락 속에 앉아 있으므로 나는 그를 ‘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237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이 있다는 걸 헤아렸다. 그 과정에서 ‘증상의 뿌리’가 사회임을 마주한다. 그는 ‘내가 아프다’는 것이 곧 ‘우리가 아프다’는 일임을 알게 된다. 전문가에게 부족한 것이 “자기 지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지식을 바라보는 태도”임을 깨닫는다.

240 그보다는 아픈 몸을 대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242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일이 좋아서 그랬다. 좋았다기보다 불안했다는 걸 뒤늦게 께달았다. 잘하고 싶어서 안달했다는 것도. 그 모든 것은 ‘좋아한다’ 안에 뒤죽박죽 담겨 있는 감정이기도 했다.

246 나는 선배들을 통해 마음은 정확하게 셈해 갚는 게 아니라 흐르는 것임을 배웠다. 고마워하되 미안해하지 않고, 받은 마음을 아직 서툰 타인을 위해 내어 주는 법도 함께 익혔다.


254 그러나 그 ‘다 아는 말’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이 들어 있는지. 그리고 그 삶 하나하나는 얼마나 구체적이고 육체적인지. 우리가 지레 빤한 말이라 치부한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목숨 줄이고, 실존의 테두리임을 다시 깨닫는다. 그 선이 비단 타인뿐 아니라 나도 지켜주는 섬이었음을 깊이 수긍하면서.

255 더불어 이 책은 사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다 아는 말’이란 없으며, 그런 ‘앎’은 앎이 아니라고, 그러니 이웃뿐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새 말이 지나가는 길을 함께 터 주고 넓혀야 한다고 일러 준다. 가끔은 그 일을 ‘독서’라 불러도 좋다고 조용히 끄덕이면서. 그 발화가 고맙다. 한두 번이 아닌 누군가의 일생에 걸친 발화라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