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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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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2023-01-29 저자: 김신지 출판사: 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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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더 나은 시간을 주기로

프롤로그. 아직 쓰지 않은 용기

6 바빠서 나빠지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그때 분명 나빠지고 있었다. 열심히 살수록 내 삶에는 소홀해지고 있었으므로.

7 이 책에는 그렇게 ‘내 시간’을 되찾은 이후의 얘기를 담았다. 내 시간은 다름 아닌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것들로 채우는 시간이었다.

8 안으로 깊어진 뒤에 밖으로 열리는 마음이 있었다. 삶의 여백에 앉아서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었다.

1부.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

23-24 내어줄 것이 남아있는 이상 무엇이라도 더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다들 어떻게든 자기 것을 챙기려고 속으로 셈만 하는 세상에서, 너는 어쩌려고 이렇게 사람을 믿는 걸까.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사랑할 수 있는 걸까.

27 이것이 마땅히 당신의 삶일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것, 생일 선물처럼 손에서 손으로 건넬 수 있다면 새로운 삶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그건 지금의 삶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한 또머지 또 다른 삶을 창조해 내는 일이라고.

32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쉬운 일이고, 쉬운 일어서 나는 자주 미워했다.

36 때론 미워 보일 정도로 욕심내 뭔가를 챙기다가도, 문득 마음이 허물어질 때면 남에게 속없이 다 퍼주기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자고. 너 역시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 어깨를 쳐주면 좋겠다고. 내가 가진 단점, 나약함, 자주 하는 거짓말들, 사과하지 못한 실수들, 떳떳하지 못했던 많은 순간, 나만 아는 비겁함, 자신은 보지 못하고 바깥으로만 손가락질하는 이 마음을 네가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37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 배우고 싶다. 사랑이 가장 쉬운 일이 될 때까지. “그런 게 사랑이지.” 말하게 될 날까지.

47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곳에 제자리처럼 깃드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문학이라고.

52 다정한 말을 온몸에 콩고물처럼 묻히고 말랑한 인절미의 마음이 되어 돌아가는 길은 하나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57 어떤 마음이 너무 귀해서 미안해지는 건 그 속에서 내가 잊고 살던 ‘더 나은 것’을 보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런 셈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각도 없이 돕는 할머니 곁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배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57 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한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64-65 내가 사라졌다고 여긴 많은 것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다. 충분히 어두운 곳에, 충분히 고요한 곳에, 속삭임으로 말해야만 들리는 곳에. 그러니 내 곁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그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일이었다.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충분히 어두워져야만 한다는 것. 이상하게 그 밤엔 그것이 남은 삶에 대한 은유로 들렸다. 계속 걸으라는 말로도 들렸다. 우리는 어둠 속을 걸을 수 있는 존재. 캄캄한 마음으로 걷다가 어둠에 서서히 눈이 익었을 때 비로소 보게 되는 것, 내가 언제고 글로 옮기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었다.

69 우리가 속도를 얻은 대신에 잃어버린 건 어떤 ‘이야기’가 생길 가능성인지도 몰랐다.

71 그러고 보면 낭만은 진흙 속의 진주 같기도 하다. 잘 닦인 진열장 너머에는 없는 것. 진흙 속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 나중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지금만 생각하며 일단 몸을 담글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만 만져지는 것인지도.

75 가끔은 좀 무모해지고 천진해지고 싶다. 체면을 챙기거나 나중을 따지느라 좋은 순간에 뒷걸음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돌아보면 낭만은 언제나 반 발짝 앞에 있었다. 고작 반 발짝인데 거의 전부인 반 발짝이어서, 거기 서기 전에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 그러니 언제나 반 발짝의 용기를. 혹시나 옆에 선 이가 뒷걸음질치려는 기미가 보이거든 손목을 잡으며 말해야 하니까. “그렇게 되면 낭만이 없지!”

79 어떤 모진 일이 일어나더라도 멈추지 안혹 굴려야 하는 삶. 일이 있어 슬픔이 덮인 날도 있는가 하면 이렇게 마음이 괴로울 때도 일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던 날도 있겠지.

83 “(어르신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하나하나 말씀을 들어보면 지금 선 자리가 최선을 다한 자리구나 싶어요.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주인공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97 나 괜찮은데, 안 추운데, 안 아픈데, 하고 지나왔는데 막상 몸의, 마음 어딘가를 열어보면 다친 후 아문 흔적이 있던.

103 우리가 무엇이면 충분했던 사람들이었는지 잊지 말자고.

133 서둘러도 삶에 자꾸만 지각하는 사람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자각 속에서만 비로소 제대로 하게 되는 일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데에, 더 잘 사랑하는 데에 남은 시간을 쓸 것이다.

142 이사 날짜가 다가오던 것처럼 지금도 시시각각 삶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면, 내가 가진 마음과 에너지를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 데 써야 했다.

143 하루치의 삶에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할 것. 동시에 결코 오늘의 기쁨을 소홀히 하지 말 것.

2부. 삶이 결국 우리가 쓴 시간이라면

162-163 시간이 생기면? 하루를 어떻게 쓰고 싶어? 혼자가 된 밤이면 일기장 여백에 틈틈이 ‘진짜 가지고 싶은 시간’에 대해 적어보곤 했다. 괴로운 것을 피해 뒷걸음치는 인생 말고, 좋은 것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런 물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덜 쓴 희망을 발견한 사람처럼 조용히 기뻐졌다.

163 그저 창밖을 더 바라보고 싶었던 그 날 아침처럼, 내가 바라는 건 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을 땐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지는 일.

166 하지만 어느 순간 일터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크다고 느껴진다면, 숨을 고르며 생각해 봐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지. ‘왜’를 계속 물어야 한다. 이렇게 살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이유를 놓쳐선 안 되니까.

168 변화를 원한다면 뭐든 해보면 되는데, 선택이 두려우니까 내가 내려야 할 결정이 사주나 점괘 안에 이미 쓰여있기를 바라는 듯이 기대는 것이다. (..) 미래가 궁금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예언이 아니라 바라는 미래를 현재에서 먼저 살아보는 일일 테니까.

169 회사일의 맹점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도 아닌 것을 그 반대로 여기면서 자신을 그것에 바치게 된다는 데 있다. 맡은 일을 문제없이 완수하는 건 중요하지만, 만일 어느 시점에 ‘나’는 빠지고 ‘일’만 남는다면? 나를 대체한 누군가가 하든, 내가 맡았던 일을 쪼개어 나누든 ‘일’ 자체는 굴러가도록 금세 세팅이 될 것이다.

174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다앙함. 사전에서는 긍지를 이렇게 말한다. 늘 입에 담기엔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뜻풀이를 보니 이해가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긍지를 잃어갔던 건 조직이 요구하는 것에 함몰되어 나에 대한 믿음보다 의심을 키워갔기 때문이었다. 나를 계속 부족한 인간으로 평가했다.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마음으로는 사실 무엇도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이미 믿고 있으니까.

187 현지 사람들은 짐작 못 할, 혼자서만 감동한 풍경과 기억을 품고서 그 땅을 떠나는 게 여행자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203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다는 ‘자율성’, 어떤 것을 배워가면서 더 나아진다고 느끼는 ‘성취감’, 마음 맞는 사람이 나를 알아주는 ‘연결감’. 그러니까 지금의 삶은 이 세 가지를 가지런히 놓고 나를 조율해 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217 삶에서 무언가가 올 때 좋은 것만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만큼은 나이가 들었다. 체에 거르듯이 좋은 것만 취할 수는 없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다른 것에 대해 늘 생각한다.

226-227 높여 잡은 목표와 엄격한 규칙에 따라 나를 통제하려 드는 것보다는, 느슨한 규칙을 가진 채 나를 너그럽게 대하며 조그만 성취감을 느끼는 방식이 좋다. 마음 속에 금지하는 것보다는 희망하는 것이 많은 편이 좋지 않을까.

237 제대로 보지도 않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고, 볼 때마다 새로이 알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지금 막 도착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걷고 싶다고.

241 순서를 뒤바꿔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일상이야말로 마음의 네 귀퉁이를 붙들어주는 것이다. 펄럭이는 마음이 허공에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것은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과와 의무였다.

253 내가 어떤 순간들로 지탱되는 사람인지도 아렉 되었다. 그건 한편으로 한 번뿐인 이 삶이 ‘무엇으로 충분한 삶인지’ 깨닫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260 지금 겪는 계절을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좋은 계절을 만나게 할 뿐.

261 감탄도 재능이구나. 좋은 순간을 발견하는 것도, 좋은 것을 좋게 말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구나.

262 다른 건 아껴도 감탄은 아끼지 않는 사람이 한번 되어보고 싶었다.

263 말하는 순간 더 서명해지는 마음. 내 안에서 흘러나와 다른 이까지 물들이는 환한 기분. 그것이 그 속에 있었다.

263 눈앞의 지금을 더 좋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삶을 ‘그냥 그런’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269 이게 이럴 만한 일인가 싶다가도, 누가 나를 믿으면, 허물없이 대해버리면 마음이 녹는 걸 어떡하나. 나는 왜 이런 데 약할까. 내가 하지 못하는 걸 상대방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해내서 그런 걸까. 이렇게 대하면 부담스럽겠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속으로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다가 데면데면한 채 상황을 끝내버릴 때가 많은 사람, 그게 평소의 나다. 돌다리만 두들기고 있으니 건너오길 기다려주던 맞은편 상대가 떠난 적도 많다. 주말에 내 메신저가 너무 조용한 건 지금껏 그렇게 살아와서 겠지… 아무 때고 내게 전화해 나야, 하고 말을 건넬 사람이 없는 거겠지. 생각해 보면 그런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친구들도 있었다.

271 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건 짐짓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아 보여도 동시에 온전한 내 시간, 내 장소, 내 마음을 보장받고 싶다는 욕구기도 하다. (…) 하지만 세상에는 어떤 선을 넘어야만 그 선 뒤로 열리는 관계도 있다.

272 허물없이 지낸다는 게 결국 서로의 허물을 보게 돼도 괜찮다는 말이구나.

290 그렇게 생각하면 미래는 닥쳐오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하는 일 같다. 선택의 기로마다 너는 어떤 미래를 선택하고 싶으냐고,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 사람이냐고 스스로에게 묻는 일. 묻다 보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마중 나가는 마음이 된다. 미래가 올 방향으로 걷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나가 있는 그 자리에 미래는 당도할 것이다. 삶이란 결국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일의 연속일 것이므로.

296 ‘정착’은 한 자리에 고여있는 따분한 일이 아니라 나의 자리라고 느껴지는 곳에 잘 머무는 일이란 걸 안다. 떠나는 행위가 도망이 되지 않을 때만이 눈앞의 풍경을 온전히 껴안을 수 있다는 것도.

297 이 버스가 도착하는 곳이 이국의 땅이길 바라는 불가능한 열망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손끝으로 만져보는 일. 내가 어디서든 어떤 모양으로든 살아볼 수 있는 용기와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걸 잊지 않는 일. 가보지 못한 땅은 더 이상 나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그곳에 있지 못해 우울한 내가 아니라, 언제든 그곳에 갈 수 있는 나와 살고 있다고 느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