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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릅니다

2023-07-27 저자: 김설 출판사: 위고

🔖 책갈피

6 나는 오빠를 보내는 과정을 글로 쓰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의 행동들을 비로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7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혹은 나같이 막막한 여정에 있는 이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신만의 애도의 길을 걷는 데 조그마한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


16 내 마음이 말했다. 가지 마. 그런데 머리는 말했다. 가야지. 그래도 가야지. 이게 마지막이야. 오빠를 눈에 담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지금이 아니면 다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

18 왜 마지막으로 어루만진 것이 오빠의 얼굴이 아닌 손이었을까. 아마 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빠의 삶을 잡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좀 더 빨리 잡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23 그들은 간절히 외쳤다. 누구를 향해 저리도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 세상을 떠난 오빠일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일까 아니면 남겨진 우리일까. 대체 누구를 위해 온몸에 힘을 싣고 울부짖는 걸까.

23 오빠가 없는 세상은 어떨까. 오빠와 함께 사라져버린 것은 무엇이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것을 놓아주고 어떤 것은 짊어지고 살아가게 될까. 하지만 그런 모호함 속에서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무언가 확연히 달라졌고 달라지리라는 것이었다.

25 떠난 자가 아닌 남은 자를 위한 선택이었다. 충분히 추억하고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남겨진 이를 위한 배려다.

26 도대체 오빠는 죽기 직전 어떤 생각을 한 걸까. 남겨질 엄마를 걱정하고 모아둔 재산을 맡길 정신까지 있었으면서 도대체 왜 떠난 걸까.

28 엄마가 가능한 한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아들이 자살한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는데 그것을 궁금해하고 멋대로 추측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삶이 함부로 더럽혀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8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자살 유가족의 또 다른 이름을 알게 되었다. ‘자살 생존자’. 자살 시도 후 살아남은 이가 아니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을 자살로 잃고 남겨진 이를 자살 생존자라고 한다.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을 말한다. 내가 자살 생존자라고? 일반적인 사별보다 몇 배 더한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자살 고위험군에 속할 만큼 자살 위험성이 매우 높은 상태일 수 있다고? (…) 그런데 일반 사별과 자살로 인한 사별이 다르다 말한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그리도 아프게 하는 걸까.

29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시계를 돌린다. 끊임없이 ‘만약에’를 외치고 과거로 돌아간다. 만약 내가 이렇게 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되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

30 우리가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한 건 답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저 살아달라는 부탁, 살려내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31 엄마가 말했듯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잘 쉬는 것이다. 남겨진 나와 우리를 잘 보살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45 다시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할 수 없는 건 잊어. 너무 불안해하지 말자. 나도 내 삶을 살자. 내 삶을 살아야, 내가 건강해야 부모님도 지킬 수 있지.

47-48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이 평범한 질문이 이렇게 당혹스럽고 무례한 질문이었나.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두려워진다. 나의 앞므을 건드리는 말들이 많아진다. 점차 겁쟁가 되어간다. 사람을 만나는 일,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무서워진다. 꽤나 솔직한 편이었던 내게 비밀이 많아진다.

지금껏 대화를 나눴던 수많은 얼굴이 스친다. 그간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내 질문에 누군가는 곤혹스럽지 않았을까? 솔직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 자신만의 어둠을 숨기느라 당황하지 않았을까?

49 요즘의 나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기운 없고 멍하다가도 일이 주어지면 흐트러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기운차게 해낸다. 그러다가 조그마한 자극에도 털썩 무너진다. 정신을 차렸다가 흔들렸다가 무너지는 일이 자주 반복된다. 이런 내가 불안하다.

63 오빠가 세상을 등진 이유를 알게 된다면 지금의 괴로움이 덜어질까?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오빠가 왜 죽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모호했던 현실이 명확해지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줄어들거라는 기대감 혹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인간 본성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 가족은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오빠가 떠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저마다 각자의 답을 찾아갔다.

65 방식이 다를 뿐, 우리 모두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나간 이유는 무엇인지, 남겨진 자로서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말이다.

75 떠난 사람이 살아온 방식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의 방식대로 그의 삶을 마무리 짓기. 이것은 살아생전 아들의 삶을 존중하고 명예를 지켜주고픈 엄마의 진심이자 노력이었다.

78 엄마는 아들의 회사에 가서 책임을 따져 묻기보다 아들의 명예를 인정받고 싶어 했다.

79 엄마는 그날 그 자리에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당당하게 나갔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삶이 함부로 왜곡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91 그래, 자기답게 살면 됐지, 스스로 행복하면 됐지. 나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내게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되자, 아빠를 향한 시선도 조금씩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96 가까운 이의 죽음은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에서 우리 가족은 각자 자신의 책임을 생각했다. 모든 것이 마냥 내 탓 같았다. 탓, 잔인하리만큼 처절하게 가슴에 꽂히는 그 죄책감이 누구보다 아빠를 가장 많이 변화시켰다.

101-102 나는 바란다. 아빠, 엄마, 나, 오빠. 우리, 서로가 중요하더라도 가족만이 삶의 전부가 되지 않기를. 각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를. 사소하든 사소하지 않든, 그게 취미가 되었든 반려동물이 되었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소명이나 사명감이든, 무엇이라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105 나는 알고 있다. 남은 가족 중 가장 외로운 사람은 아빠라는 것을. 엄마와 나는 주변에 챙겨주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감정을 살펴볼 줄도 아는 반면, 아빠는 술과 담배 말고는 달리 위로받을 길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돌보는 데 서툴다.

111 내일이면 월요일. 출근이다. 두렵다. 숨이 막힌다.

120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고 나약한 사람은 고통받고 퇴출되고 사라져야 마땅한가? 이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지금도 저 사무실 어딘가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고통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121 이제와 생각한다. 잘한 일일까.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우리 가족의 요구를 회사는 이행하고 있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내가 더 적극적으로 추궁하고 잘잘못을 따졌어야 했던 게 아닐까.

124 이유는 다양하지만 때로 살마들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기도 해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누군가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스스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비천함과 비겁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요.

125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해야 했다. 또 다른 과로 죽음과 자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 오빠를 잃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픔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는 폭력적인 문화,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시스템에 맞서 쌍루 용기가 내게 있는 것 같지 않다. 내가 가진 작은 용기와 능력 안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37 괜찮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괜찮음의 정의도 괜찮아진 상태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모든 순간 괜찮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금의 나처럼 괜찮은 순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순간을 오가면서 살아간다.

142 이제 나는 다가오는 순간의 기쁨도, 슬픔도 모두 피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순간의 나를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나아갈 것이다.

149 자살은 마지막 선택이었을 뿐,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규정할 순 없다. 자살이 오빠의 삶을 뒤덮어버리지 않게 걷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