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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에 갇힌 자기 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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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에 갇힌 자기 계발

2024-07-14 저자: 마크 코켈버그 / 연아람 역 출판사: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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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이라는 절대명령

8 스스로 세운 기대치가 너무 높아 절대 다다르지 못하는 데다 현대인의 삶은 속도가 점점 더 빨리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일이 빨리 쉽게 당장 이루어지길 바란다. 빨리 쉽게 당장 이루지 못하면 자괴감에 빠진다. 심하면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9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할 거라 믿도록 사회화되어서 실패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것도 개인의 성공과 자유라는 사상이 강력한 기술과 결합해 죽음을 초래하는 경우다.

11 이런 기술은 정보를 제공하고 성찰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재단하고 타인과 비교하도록 부추기며 견디기 힘든 혹독한 자기 수양과 자기 감시, 정량적 지식의 세계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는 특징이 있다.

15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기 계발이 정치와 뗄 수 없는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기 계발 행위를 억압에 대한 일종의 저항 운동으로 보기도 한다. 구조적 폭력이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흑인 여성들의 요가나, 혐오 범죄에 대한 대응으로 호신술을 배우는 아시아계 여성들, 고유 언어를 다시 배우는 미국 원주민들이 대표적인 예다. (…) 좋은 의도의 자아 계발이 초래한 자기 계발 사회와 문화 전반의 문제적 측면이 바로 이 책의 핵심 논의다.

16 과연 어떻게 자기 계발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기술을 거부하지 않고 강박적인 자기 계발 문화를 탈피할 수 있을까?

너 자신을 알라_자기 인식과 자기완성의 전통

19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또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불멸하는 잣니의 영혼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기억해내고 정의와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는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면을 가꾸고 적극적으로 자기 성찰에 임해야 한다.

19 그보다 근대 철학에서 개인은 고유한 실재와 자아를 구축할 것을 요구받는다. 우리는 내가 누구이며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규정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한계나 과거를 깨닫 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며 자신만의 삶과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22 강한 의지가 있는 인간은 고난을 견뎌 낸다. 중요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이다. 우리는 인격을 갖추고 덕을 길러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외적인 것에 마음을 두거나 걱정하지 말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23 죽음은 언제나 현존하고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그러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 타인이 기대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24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쇠퇴한 이후 삶이 불안정해지면서 그리스인들은 의지할 것이 필요했다. 그들의 마지막 보루는 바로 자아였다. 이렇게 시작된 인간의 내적 여정은 이후 기독교인들, 현대에 이르러서는 자기 계발과 자기 관리에 열광하는 이들에 의해 성실하게 계승되었다.

30 자아의 기업가 정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재창조해야 한다. 자아가 혁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30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런 자율성에 대한 믿음은 착각이다. 현대 국가와 기업들이 여전히 푸코가 이야기한 통제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35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사람들은 자아를 탐구하고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상적 자아를 전시하며 자기 계발 이야기를 고백한다.

36 여기서 그(루소)가 서술하는 독특하고 고유한 자아는 거짓 없고 진실된 자아다. “나는 내가 부도덕하고 비열하게 행동했으면 부도덕하고 비열한 대로, 선하고 너그럽고 관대했으면 또 그러한 대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다.”

37 모든 사람은 개성 있고 진실된 자아를 투명하게 전시해야 한다. 그 목적은 앎과 발전이다.

39 정량화되고 데이터화되며 육체와 영혼이 발가벗겨져 전시되는 와중에 우리는 쉴 새 없이 비교되고 분류되며 평가된다. 인문주의 ‘친구들’은 경쟁자이자 적이 된다. 루소처럼 쉽게 피해망상에 빠지고 평가는 자기혐오로 끝이 난다. 이것은 절대 이길 수 없는 경주로 우리는 언제나 패자다. 우리가 하는 고백은 분석되며 평가는 명확하고 항상 똑같다. 부족해. 우리는 늘 탐작하지 않다.

43 루소와 뒤르켐은 나르시시즘 문제의 근원이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현대 사회에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역설적이게도 자기 몰두는 사회적 문제라는 것이다.

특별한 나를 만들어야 한다

36 인간은 주체이고 미래를 향해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존재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며 자유롭다.

자기 계발인가 자기 착취인가

66 게다가 이 철학(에픽테토스)은 사회의 근본 구조에 의문을 던지지 않기 때문에 노예제를 비롯한 다양한 형식의 억압과 헤게모니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70 그러므로 진심으로 자아를 발전시키고 인간성을 실현하고 싶다면 사회 질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낳은 구역질 나는 소외와 착취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76 그것들(자기 계발 문화)은 우리의 불행을 먹고 살고 사람들의 관심을 사회 변혁이 아니라 개인의 자조와 자기 계발에 돌리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떠받치며 심지어 이런 시스템에 의해 조장된다.

81 사람들은 온갖 자기 계발 앱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추적하고 행동을 기록한다. 20세기의 정보기관은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세상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24시간 감치 체제에 몰아넣은 채 얌전히 자신에 관한 데이터를 생산하여 그것을 상품화하는 기업들에 업로드한다.

83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다. 가해자와 희생자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자아를 계발하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결국 불평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착취가 자기 착취로 재규정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은 여전히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는다.

86 자기 계발 문화와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라는 맥락에서도 마찬가지로 테크노 솔루셔니즘은 문제의 복잡한 사회적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기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86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테크노 솔루셔니즘이라는 이념에 젖은 사회가 장려하는 효과 빠른 해결책을 스스로 원하고 또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집단행동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거나 인문주의자들의 방식대로 천천히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은 너무 고된 일이라고 여긴다. 대신 기술적 편법의 형식을 취한 신속한 해결책이 크게 환영받는다. 자기 계발을 위한 기술이 병들고 불공정한 사회를 해결하기 위한 하이퍼루프인 셈이다.

89 모든 사람이 자기 계발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 게다가 인간의 능력을 향상하는 기술은 그것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능력 계발이 가능한 특권층과 능력 계발이 되지않거나 덜 되는 비특권층 사이에 간극을 초래한다.

90 다른 계급들이 감시의 대상이 되거나 기술의 도움에 의존하면서 감시 자본주의의 배를 불리는 사이, 오프라인에서 자기 계발을 하고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개인적인 서비스를 받는 일은 새로운 사치가 되고 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_분류, 측정, 정량화, 개량

96 이는 디지털 기술이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고 비교하고 추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정량화된 인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인식은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우리에게 없었던 지식이다.

98 두 번째로 AI가 전에는 없었던 나에 관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데 반해 나는 그 정보를 전혀 이용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다.

99 이런 AI가 주도하는 지식 생성 프로세스는 AI와 AI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선사한다.

99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지만, 무엇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간주되며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는 기술과 그 기술을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들에 의해(적어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

111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나 스토아 철학의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 또는 근대적 자율성이나 실존주의적 견해를 수용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자기 계발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112 기술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관계적 자아와 사회 변혁

117 자기 계발 vs 서사적 자아로서 발전과 성장

118 자아가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면 그것을 업그레이드하거나업로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개량은커녕 통제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9 인간은 자아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고 이것을 수행해야 할 과제이자 노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과정을 통해 개선되고 발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들인 노력의 결과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실천한 것, 타인의 행동과 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다시 말해 우리가 (적어도 완전히는) 통제할 수 없는 일들, 우리를 어려움에 빠뜨리기도 하고 도와준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이들에 의해 일들에 의해 생겨난 부산물이다. 분명 타인은 자기 계발에 장해가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주변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며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는 그들 때문에 성장한다.

120 내가 누구인지는 오직 삶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고 다양한 사건을 헤쳐나가면서 드러난다. 바로 내가 되어 가는 것이다. 자아는 사물이 아니라 이야기다.

121 의미와 자아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그리고 이야기로 표현된 후에야 발전한다. 찰스 테일러 역시 자신이 누군이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서사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연결한다. 우리는 삶의 특정 사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삶 전체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누군이지는 세상과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며, 이것은 서사성에 의해 달성된다. 자아는 진화하는 이야기다.

122 테일러는 이것을 ‘이믜의 지평’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나는 내가 만든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결정되지 않은 것들, 주어진 것들에도 영향을 받는다.

123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해 완벽한 통제권도 자율성도 자유도 절대 갖지 못한다. 따라서 자아를 계발하는 일은 실존주의자들의 생각처럼 설계나 구상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계발은 스스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는 하지만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는 하나의 과정이자 이야기다.

123-124 우리는 언어를 통해 자아를 이해하기 때문에 자아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때때로 우리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삶이라는 이야기의 일정 부분이 지나고 난 뒤에야 자기 자신을 깨닫는다. 이 역시 우리가 자아라는 이야기를 직접 써 내려갈 수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통제하는 완벽히 자율적인 작가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꼭 한계인 것만은 아니다.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타인과 사건들을 한계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긍정적인 것, 애초에 자아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타인은 나를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고, 자아 형성의 배경이 되는 서사, 지평, 전통들은 내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124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알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도덕적으로나 다른 여러 측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도와주고 내가 그에 보답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생물학에서 그렇듯이 문화에서도 상호 의존성, 소통, 교류가 결여되면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

125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면 인간의 자아는 관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아는 오직 타인과 더 넓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다.

126 아프리카의 벤다어에는 “무투 은디 무투 은가 바투 muthu ndi muthu nga vhathu”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람은 타자를 통해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케냐의 신학자 존 음비티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를 “나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며, 우리가 있기에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바꿔 썼다. 개인은 매우 사회적인 존재로 집단과 공동체의 일부로 간주된다.

127-128 나아가 자기 계발에서의 ‘자기’는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관계적일 뿐만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교에서는 자아를 사물로 보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심지어 영구적이고 불변하는 자아는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개체라는 의미의 개별 자아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아는 환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철저하게 관계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계발하거나 개선할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자아를 세계의 중심에 두고 몰두하는 것은 잘못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아 중심성은 이기심, 경쟁으로 이어져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 계발 실천에서 우리는 자아에 전념하기보다 타인에게 관심을 쏟는 편이 낫다.

132 또 자아가 전통적인 사회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념을 거부하고 자아를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 아니면 완전히 지배(하향식 또는 다른 방식으로)당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132-133 자아는 데이터로 단순화시킬 수도 단순화시켜서도 안 되며 타인에 의한 지배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올바르지도 않다는 인문주의자들과 루소, 칸트식 계몽주의 지지자들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자아가 자율적이라는 말은 틀렸다. 인간의 자아는 타인에 의해 형ㅅ엉되며 기술은 물론 자신이 성장해 온 기술 환경의 영향도 받는다. 인간의 자아는 사회적 관계성과 기술적 관계성이라는 특징을 모두 지닌다.

134 물론 인간에게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스스로 자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자유가 어느 정도는 있다. 그마저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사회의 영향을 받지만 말이다. 인간은 누구에 의해서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 의해서도 창조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그냥 태어난다. 그리고 성장하고 발전한다. 우리는 영원불변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135 또 우리가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나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육체오 우리가 사는 사회, 문화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도 상호 작용하면서 성장한다. 인간은 일정 정도만 만들어지고 일정 정도만 선택권을 갖는다.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나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인간은 어느 정보만 변할 수 있다. 문화 지평이 존재하고 우리가 거주하는 자연환경이 낳은 생물학적 한계와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는 변한다. 한계는 극복될 수 있기도 하고 꼭 극복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한계를 뛰어넘는 일 자체가 현대 서구 문화의 지평이라고 할 수 있다.

126-127 그러므로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기 인식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며 타인을 기꺼이 수용하고 주위 환경에 건설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면 루소가 권고한 자기애, 즉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앟ㄴ고 인정하는 자기애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 자기애가 있다면 대개 자기 자신과 남을 희생시켜 개선하고자 했던 것마저 파괴해 버리는 집착적인 자기계발을 할 필요가 없다. 진정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자기 계발 행동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성장을 시작해야 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주고받을 수 있는 타인과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받았고, 이야기와 역사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빈 캔버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원자재나 줄기 세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에게는 서사적 정체성이 있고 인격이 있으며 전통이 있고 육체적, 유전적 한계가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꾸고 발전시킬 수 있지만 자신을 와전히 알지도 못하고 완벽하게 통제할 수도 없으며 무엇이든 될 수도 없다. 절대적인 자율성과 자아 창조는 불가능하다. 이런 한계가 절대 불변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기 자신과 한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계는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상처 입기 쉽고 의존적이며 내가 아닌 것, 타인과의 상호 작용 안에서 발전한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은 필연적이면서도 어쩌면 비극적인 울타리 안에 긴밀하게 묶여 있다.

141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꾸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루소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올바른 종류의 정치적 질서 안에서만 자기답게 살고 도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43 자신을 길들이는 데 너무 집착하지 말고, 삶을 살고 긍정하라!

146 더 나은 사회를 만들면 더 건강하고 덜 파괴적인 방식으로 더 나은 자아를 만들 수 있다.

153 현대 기술은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현대 기술 철학을 따르면 기술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취할 수도 있다. 그것은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기술이 우리 자신과 사회를 바꾸는 데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자, 새로운 기술이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관점이다. 기술과 문화가 어떻게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 많다.

다른 서사를 품은 기술이 필요하다

154 새로운 종류의 자기 인식과 자기 계발이란 수치가 아닌 질에 관심을 두고 고유의 한계를 인식하며더욱 지속가능하고 심오한 자기 발전을 가져다주는 것을 말한다.

155 울이ㅔ게 필요한 기술은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새로운 형태의 개인적, 공동체적 성장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사회를 바꾸고 새롭고 더 나은 문화를 창조하는 기술이다.

156 이처럼 기술의 사용과 인간의 활동은 문화와 사회를 벗어나서 발생하지 않는다. 기술은 인간 활동, 인간의 집단적 경험에 대한 해석 방법, 특정 사회와 문화 안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방법의 일부다.

157 동시에 기술은 게임을 구성하고 바꾸기도 한다. 기술은 우리가 지닌 가치와 일을 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157 이러한 변화는 천천히 일어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결정론은 없으며 어느 정도는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유도하여 게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 또 기술과 사회의 관계는 복잡하고 그 둘은 함께 진화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58 기술은 다양한 활동과 다양한 게임을 가능하게 하기에 궁극적으로 새로운 삶의 형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만약 게임을 바꾸고자 한다면 기술을 바꾸거나 적어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사회 제도를 바꾸려 하면서 기술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피상적인 변화에 불과할 것이다.

160 자아란 함께 쓰고 해석하고 살아 내는 일종의 이야기다.

161 오히려 기술과 해석, 기술과 의미, 기술과 문화는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서사는 우리가 쓰는 기술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기술은 서사에 영향을 미친다.

162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기술은 나의 행동과 서사, 궁극에는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다. 기술이 지닌 서사적, 해석적 힘은 의도되지 않은 것일 테지만 분명 과소평가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자기 계발 문화를 원한다면 다른 서사와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164 그것이 어떤 목적을 지닌 것이든 기술은 의미를 창출하고 인간과 인간이 일을 하는 방식도 바꾼다.

166 새로운 기술이 생긴다는 것은 새로운 메시지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사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AI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다. AI는 인간을 위한 새로운 서사를 만드러낸다. 변화를 원한다면 이 서사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새로운 기술, 즉 새로운 종류의 AI, 다시 말해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현실과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함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새로운 공저자가 필요하다.

168 기술은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 우리가 사는 사회 문화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테크노컬처라는 용어는 특히 인간의 역할, 기술이 인간과 인간 문화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 강조하는 데 유용하다. 기술은 스스로 기능하지 않는다. 기술을 만들고 사용하고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인간이다. 기술이 스스로 발전하더라도 언제나 인간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 세계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며 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해석적, 관계적 존재다. 인간의 해석은 필수적이며, 결정과 통제도 요구된다.

169 그러므로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개선을 바란다면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지만 이런 변화를 위한 새로운 기술과 물질적 근간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내면을 향한 자기 성찰뿐만 아니라 외부를 향한 포용력,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자아와는 그다지 관련 없고 추상적 의미에서의 ‘사회’ 혹은 ‘문화’와도 거의 무관한 것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필요한 것은 기술 개선을 ㅜ이한 노력인데, 사회 문화적 변혁을 가져오거나 적어도 그러한 변혁의 비전이 이식된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기술 개선을 위해 노력하되 이것이 서사, 의미, 가치 개선을 위한 노력도 의미한다는 것을 명심하여 문화 개선에도 힘써야 한다.

170 발명가들과 기업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삶의 양식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또 단순히 어떤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제공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서사를 쓰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좋은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 좋은 기술은 인간의 가치와 관점을 바꿀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현실을 개선하고 인간의 서사를 향상하며 인간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좋은 기술은 우리의 자아도 바꿀 수 있다. 개인 정체성과 집단 정체성도 바꿀 수 있다.

170 정치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시민으로 IT 전문가들이 제공하고 광고가 추천하는 기술적 ‘해결책들’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인지, 개인이나 사회로서의 우리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맞는지 자문해야 한다. 만약에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바꿔 쓰는 행동에 나섬으로써 공저자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일을 AI를 비롯한 기술을 소유하고 개발하는 사람들, 그것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개인, 공동체, 사회 모두가 이야기의 편집자이자 공저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172 기술이 인간 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새로운 기술과 경험을 시험해 보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과 사회를 바꿀지 상상해 보자.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저 “무엇이 좋은 삶인가?”가 아니라 “기술과 공존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이다.

176 좋은 삶이 가능하려면 좋은 행성이 필요하다. 인간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번영해야 한다. 우리는 환경을 인식하는 ‘느린’ 형태의 자기 계발을 고민하고 그것에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형식이되 기술이 가미된 자기 계발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177 자기 계발은 서로 경쟁하는 개인들의 서사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함께 이룰 수 있다. 함께 인간의 서사, 사회, 기술을 개선하고 그것을 통해 함께 우리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

178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이야기, 인간이 반드시 유일한 주인공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자신을 오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이 늘 부족하다거나 인간을 무력화하기 위해 탄생한 듯한 데이터 신들에 비해 인간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인간은 어리석은 짓을 자주 하고 개선의 여지가 많은 존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좋은 일, 충분히 선한 일도 많이 한다. 우리는 기계나 신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을 위한 서사가 필요하다.

179 어차피 인간은 어떤 것에서든 의미를 찾아낸다. 인간은 본래 의미를 형성하고 부여하는 존재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서사를 쓸 때는 어떤 일이나 역할에 인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서사와 삶과 문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인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181 AI가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기술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더 포괄적인 정치적, 사회적, (기술) 문화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182 단순히 우리의 처지만 개선하는 게 아니라 아예 판을 바꾸어 보자. 자기 자신을 바꾸는 데 집착하지 말고 사회를 변혁하자.

진정한 자기 계발을 원한다면 ‘자아’가 아니라 좋은 삶과 좋은 사회에 관심을 쏟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만 할 것이 아니라 경험에 기반한 지혜를 획득해야 한다. 타인, 비인간 존재, 기술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을 충분히 고려한 관계적 관점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새로운 ‘우리’를 찾는 데 기여하며, 지금보다 더 나은 기술과 메체를 개발해야 한다. 또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 소망할 가치가 있는 사회와 테크노컬처를 구축하는 데 공헌해야 한다. 이것을 기술의 능동적, 서사적 역할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에 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 나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날에야 비로소 더 나은 ‘자아’도 탄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