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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높이뛰기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_^?

2025-03-09 저자: 신지영 출판사: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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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런데 나이가 어리고 학생이면 무례하게 대해도 된다는 뜻인가?

이런 말들은 모두 어리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취급당해도 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만큼, 불쾌하고 화가 났다. 필자가 어리고 학생일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고 학생이 아닌 상황이 되어서야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지위가 낮아 보이는 사람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21 결국, 언어는 나를 향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향하는 일이다. 그러니 상대의 감수성에서 어떻게 들리고 읽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37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있어서 연령 차별은 언어를 통해 학습되고 언어 사용으로 강화되며 일상화되는 특징을 갖는다. 일상화된 차별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무디게 만들어서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연령 차별은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차별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누구나 더 큰 기득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연령 차별은 사라지기가 정말 어려운 차별이다.

그래서 더욱 주목해야 하는 차별이기도 하다.

43 그런데 한국어 사용자들은 매일매일의 언어 사용을 통해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지금의 한국어는 이처럼 한국어 사용자들이 추구하는 이념을 담지 못하고 우리를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연령 차별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도구다. 그런데 그 도구가 생각을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담지 못한다면 언어를 바꾸어야 할까,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까?

65 이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 표현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주류의 관점을 벗어나야하고, 익숙함으로부터 탈피하여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문제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언어 감수성이 높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감수성이 높다는 것은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니, 언어 감수성이 높다는것은 언어 표현에 예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66 오늘보다 더 성장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사실 프로불편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 나의 편안함이 타인의 불편함 위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감수성을 가지고 예민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애쓰는 것이니 말이다. 특히, 가장 일상적이어서 감수성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 언어인 만큼, 언어 감수성을 가지려는 시도는 최고의 프로불편러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0 말하는 사람이야 의미를 새기면서 하지 않는다 해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이 그 의미가 새겨진다면 안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표현을 바꾸자는 얘기가 일리가 있다면 좀 불편해도 우리가 바꿔서 다음 세대에게는 그 부적절한 표현을 물려주지 말아야 옳지 않을까?

88 공손성의 요구 뒤에 숨어 있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일상의 갑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었다.

126-127 호칭어는 상대와 나와의 관계는 나의 입으로 고백하는 말이다. 상대가 나와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지를 상대가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호칭어를 통해 고백하고 있으니 상대가 어떤 호칭어로 나를 부르는지에 우리는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상대가 생각나는 적절성과 내가 생각하는 적절성이 늘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생각하는 관계와 내가 기대하는 관계가 늘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호칭어를 듣고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기도 하고심지어 감동을 받기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213 정치적 의도야 어떻든 WHO의 지침은 이름으로 인해 특정 집단이나 지역 등에 부적절하게 낙인을 찍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즉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귀 기울여야할 지침임에는 분명하다.

213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이처럼 사태를 바라보는 틀을 짜는 일이다. 이름을 지으면 짧은 한 마디로 복잡한 사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효과를 갖는다. 그래서 명칭을 어떻게 붙이는가를 명칭이 의미하는 바를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한 큰 틀을 정해버리는 효과를 갖게 된다. 명칭 짓기는 누구의 어떤 관점에서, 누구의 어떤 입장에서 틀을 짜는가에 따라 매우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는 정치적인 행위가 된다. 그래서 명칭을 두고 벌어지는 줄다리기는 늘 치열하고 민감하며 어떤 명칭으로 사태를 기술하는가를 통해 그 사람이 가진 정치적 관점을 드러내게 한다.

219 시민들의 배경은 매우 다양하다. 재난 관련 보도나 홍보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과 소통하는 일이라는 점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재난 관련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리 때는 ‘나에게 익숙한 말이지만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인가’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하고 쓰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말이 알아듣기 어려워 정보에서 소외되고 그로 인해 재난을 피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238 전문가의 진정한 전문성은 비전문가에게도 전문적인 내용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더욱 돋보이는 법이다. 또한, 잘 쓰인 기사는 누구나 읽고 이해가 되어야 한다.

239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 즉 모두가 주관자로서의 역항르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보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언어 민주주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240-241 해당 언어 사용자들이 그 언어를 가지고 얼마나 다양한 표현을 해 보았는가에 따라서 언어의 표현력은 달라진다. 학문 분야가 만들어기지 전에 이미 그 분야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분야가 만들어져 발달하는 과정에서 해당 분야에서 하고자 하는 표현의 내용이 생기면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가 어떤 분야에 대해 표현력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한국어 탓이 아니라 한국어 사용자들의 탓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 어떤 분야의 논뭉르 쓰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한국어로 전문적 표현을 만들어가지 못한 그 분야 전문가들의 책임인 것이다. 영어로 전문적인 표현을 잘할 수 있게 된 것은 영어권 전문가들이 그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온 덕분이지 영어 태생적으로 그런 표현을 잘할 수 있는 언어였기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