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까지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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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웬디의 안타고니스트는 그러니까, 장애 그 자체이기보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줄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26 가까운 곳에 나를 지지해줄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 적당한 거리의 타인이 보내주는 선의에 기대어 나아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훼방 놓으려는 가까운 적대자들의 기운에 지지 마시길. 믿을 사람도, 버틸 원동력도 오로지 나 자신뿐인 상황일지라도 논리적은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43 동시에 그동안 흐지부지 그만두느라 놓쳐온 수많은 엔딩이 아까워졌습니다. 목표를 이루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놓쳐서가 아니라 내가 시작하고 시도한 일의 결과를 받아들일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면 성공담을, 이루지 못했다면 성장담을 이어서 써 내려갔을 테니,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결말을 보지 못한 채 미완으로 남은 이야기는 본편뿐 아니라 거기서부터 파생되었을 외전까지 포함인 셈입니다. (…) 하지만 그 끝에서 저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을 겁니다. 큰 성장이나 변화는 없더라도 무언가를 끝까지 해낸 사람의 선택에는 후회나 미련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을 테니까요. 그것이 설령 그만두는 선택일지라도.
75 누군가 철저히 숨기고 싶어하는 부분을 알게 된다는 건 그를 이해할 근거가 생기는 것이라서, 이 이상 미워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도 그가 숨겨온 가장 연약한 부분을 근거 삼아 이해하고 싶어집니다.
어쩌면 혜진은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잦은 전학 탓에 자신을 따라다니는 오해와 소문에서 벗어날 방법은 하나였을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야기하기. 이 경우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과 친구가 되거나 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뿐 자신이 밝힌 진실 이상의 억측이 따라다니지는 않을 테니까요.
87 반짝이는 동료들과, 가족들과 협업한다는 건 나의 자부임과 동시에 나의 부족함을 수시로 재확인하는 일이니까요.
88 미라벨의 능력은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아닐까. 미라벨만이 집 안에 숨어 있던 브루노 삼촌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처럼, 위기를 감지하는 힘은 내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마음을 쏟을 때 발현되는 능력이니,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결핍을 알아보고 미소 뒤에 숨겨진 진짜 표정을 읽어낼 수 있는 게 미라벨의 힘이 아닐까 하고요. 슈퍼 파워에 비하면 다소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관계에서 필요한 건 꽃을 피우거나 날씨를 자유자재로 바꾸거나산을 옮기는 힘이 아니라 잘 알아채는 능력이잖아요. 그래야 찢어지기 직전의 너덜너덜한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무너지고 흩어진 가족을 다시 이어 붙인 미라벨처럼요.
105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족과의 관계는 크게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습니다. 내 기분을 단번에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가족과 분리된 나의 고유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서로가 알게 되었다는 게 큰 변화입니다. 그러니 가라앉은 기분 또한 얼마든지 스스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요. 더 이상 가족에게사로잡혀 내게 주어진 기회와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놓치진 않을 겁니다.
이 ‘베를린 사건’은 가족은 나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며, 내 삶을 망치는 것도 구원하는 것도 오로지 나여야 한다는 걸 알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모를 실망시켜야 했지만, 필요하다면 저는 또 그들을 실망시킬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게 나를, 내 삶을 살리는 일이라면요.
116 독일어와의 싸움에서 매번 패하면서도 완전히 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게 나를 나아지게 하는 패배였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은 압니다. 나 아닌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승부에서는 이겨도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요. 치카는 요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포토푀를 만들기 위해 자신과 싸우는 중입니다. 이런 승부라면 조금은 무리해도 괜찮겠지요.
134 캐런은 마침표를 찍기 전,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죽음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고요. 소설 속 주인공의 선택은 결말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삶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골몰하고 궁리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고요. 결과를 알더라도, 혹은 모르더라도 내가 기꺼이 책임지고 싶은 모습을 선택하는 것만이 좋은 선택이며,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게 이 소설의 엔딩이라고요. 그러니 예고된 죽음을 알면서도 아이를 구하기를 선택한 해럴드에게 죽음이란 선택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해럴드가 책임지고 싶은 삶의 일부였을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 아침을 맞이했을 거예요.
147 좋아하는 일 대신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삶이 각박하기만 한 것도,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고 해서 충만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요.
163 저는 아버지로부터 아주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러니 여러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159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건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170 남다른 재능이 없는 4등이, 꿈이든 직업이든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향상심(더 높아지거나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도 필요하지만 항상심(한결같은 마음)이 더 중요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173 실력에 대한 확신은 스스로가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작가 활동을 시작한 지 7년이 되어서야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었거든요. 7년이나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다는 건 내게 실력이 있다는 것이겠지, 하면서요. 무엇이 되기 전까지 중요한 건 확신이 아니라 그것이 좌절되어도 계속 좋아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당장의 점수가 어떻든 킵고잉 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190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건 우수한 여성뿐만 아니라 저 같은 평범한 사원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199 벤저민이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해요. 때론 미친 척하고 딱 20초만 용기를 내볼 필요가 있다고. 그럼 장담하는데 멋진 일이 생길 거라고요. 고무적인 말이긴 하지만 모험에서 더 중요한 건 용기의 다음 단계입니다. 예상 밖의 어떤 일이 벌어지든 수용하는 단계. 용기만으로는 모험을 지속할 수 없어요. 외국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계획하고 어떤 걸 기대하든 그와 정반대의 결과가 펼쳐지는 게 외국 생활이거든요.
207 그렇게 크고 작은 시련을 겪으며 나는 신이 아닌 이야기의 힘을 믿는 어른으로 자라났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갈 용기가 되어주고, 삶의 단서가 되어주는 이야기의 힘. 그런 이야기를 만나면 이야기함에 잘 보관해두었다가 필요한 순간에 꺼내 부적으로 사용합니다.
219 아마 우리는 서로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 테지만, 나의 부분이 아닌 전체, 그러니까 내가 어떤 풍경의 사람이고 싶은지를 이해하고 같은 풍경 속에 있기를 선택한 사람이니, 그 풍경 속에서는 내가 몇 킬로그램인지, 남편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되었거든요.
236 슬픔의 무게가 변하는 걸지도 모르지. 어느 순간이 되면 견딜 만해져. 이제 슬픔에서 기어 나올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슬픔의 벽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야. 가끔은 잊기도 하고. 그러다 어쩌다가 그 슬픔을 찾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그 자리에 그대로. 뭐랄까.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들 대신 존재하는 거야. 그래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지. 이 마음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그건… 사실 생각보다 괜찮아.
엄마의 말대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마음을 짓누르는 돌덩이 같은 슬픔이 차츰 동글동글한 돌멩이가 되어갈 뿐. 지금은 수시로 튀어나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베카의 돌덩이도 반들반들한 돌멩이로 변해가겠지요. 돌멩이가 주머니에 있다는 사실이, 언제든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익숙해질 거예요. 모나고 거칠었던 울퉁불퉁한 돌덩이가 마음을 구르고 굴러 낸 상처에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이 애도일 겁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에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시간이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자기만의 애도 방식을 찾을 수는 있게 해줄 겁니다.
249 왜 살아야 하는지, 고난뿐인 삶을 왜 견뎌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부디 사소한 이유로 살아주세요. 삶의 의미 같은 건 없어도, 눈물이 터질 듯 코끝이 찡하고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귓가가 간지럽고 눈이 부시고 군침이 도는, 당신만의 체리 한 알을 떠올려 주세요.
부디 이 편지도 당신의 체리이길 바라며.
259 죽음은 막을 수 없고 언제 죽을지도 알 수 없으니, 기억에 영원히 남을 순간을 많이 만들어두는 게 우리가 시간에게 할 수 있는 작고 귀여운 반항이겠지요. (…)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게 삶을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잘 살고 싶어지거든요. 제게 ‘잘’ 산다는 건 나르 ㄹ만나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는 삶이에요.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나도. 나를 만나 다행이었던 삶.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나랑 만난 게 득을 본 것 같은 삶. 사는 동안 그런 기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