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세계의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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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스스로 고전을 찾기 시작하는 그 순간,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 시작하는 참일 것이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에 관심이 가는 때는 대개 삶이 모퉁이에 서 있을 때다. 모퉁이 저편에 뭐가 있는지는 돌아봐야 알고, 걸어봐야 안다. 탐색하는 순간에 제대로 ‘돌아보고’도 싶고 ‘내다보고‘도 싶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고전을 찾는다. 시간을 이겨낸 생각을 필요로 한다는 자각이 우리를 읽게 만든다.
8 그때도 옳았는데 지금도 옳은 무언가를 구하다 보면 당신은 당신이 되어 간다.
9 허영이면 어떤가, 그 안에 즐거움이 있는 걸. 허영심이 없었다면 나는 고전소설을 읽기 위한 노력을 훨씬 덜 기울였으리라고 확신한다.
10-11 나는 고전을 읽을 때 가장 자주, 창작자의 삶이 얼마나 롤러코스터 같았는지 생ㅇ각한다. 항상 좋았던 삶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비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 사람의 특징을 만들어낸다. ’매일‘이라는 물방울을 떨어뜨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돌덩이를 다스려보려 한 사람들을 보는 일이,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잘 살게 한다. 정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정답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10 고전을 음미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다시 읽기’다. 싫어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고전을 시간을 지나 다시 읽거나, 좋아해서 다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 고전을 다시 읽으면서 발견하는 것은 작품의 ‘새로운’ 부분과 나 자신의 ‘달라짐‘이다. 독서는 언제나 그 사이 - 작품과 독자 - 에서 새로워진다.
13 가볍게 팔랑이며 휩쓸리는 마음은 부질없게도 ’남‘을 향한다. ’나’에 집중하는 일은 고독하고 판추적인 되곤 한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마음을 둘 수 없을 때, 생각에 무게추를 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다. 그럴 땐 오래된 책일수록 좋다. 최소 10년은 된 책, 때로는 2천 년도 더 된 책.
14 긴 시간 수많은 승객이 지나친(내리지 않고 그저 지나가기만 한 승객이 훨씬 많은) 오래된 기차역 같은 책들 앞에서, 나는 지나가는 여행자가 된다. 그 역에서만 볼 수 있는 전망에 마음을 잠시 빼앗기고, 이름 붙여본 적 없는 무언가가 조금은 채워진 채 나는 다음 기차에 올라 다음 역으로 떠난다.
그 자리에 서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72 어떤 것들은 망가뜨리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아게 된다. 의미를 알게 될 즈음엔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뒤다.
73 죽기 전까지 삶은 이어지고, 어디에서 이야기를 멈추느냐에 따라 그것은 행복한 이야기일 수도 비극일 수도 있다.
77 “어머니는 말 잘 듣는 딸이 되라는 요구에서 그치지 않고 나를 많이 다그쳤지만, 나 역시도 어머니가 당신 본연의 모습(그게 더 낫건 아니건 간에) 충실하길 원하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78 엔딩은 한 번뿐이며, 나빠 보인 것들도 과정에 있을 뿐이다. 자신의 시선과 언어를 갖고 세상을 조망하는 사람은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라기는 그렇다.
89 고독하더라도 탐색을 멈추지 않고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영토를 찾기를 멈추지 않는 일. 그 길 위에 더 오래 서고 싶다.
89 환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환상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걸음을 떼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삶은 언제나 기대보다 무겁다. 어느 나이에도.
93 사랑은 어렵다. 사랑이 어려운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사랑을 하면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해서 나쁘다는 극적인 전개도 있지만, 평범한 사랑에도 악은 깃든다.
243 의미는 발견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야기가 되기 전까지는 기억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이야기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방법 말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낙원은 그렇지 않은 이들의 눈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일지라도, 거기에서 탄생한 즐거움은 이 모든 일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동정하지 않고 애틋해할 수 있다.
272 각색된 작품을 감상하고 원작을 읽을 때의 주의사항. 뭐가 더 나은지를 따지기보다, 매체가 달라지는 와중에도 무엇이 끝끝내 살아남았는지를 살피면 좋다. 모든 게 달라진 것 같은 순간에도 끝내 남은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278 정신없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고전소설을 즐기기 위해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세상에 대한 경험. 사람에 대한 경험. 예술에 대한 경험. 동시대의 예술이 부연설명 없이 내지르고도 이해받을 확률이 높다면,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의 예술은 그것이 놓인 사회적 예술적 맥락이 있다면 해상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고전으로부터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