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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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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2025-06-08 저자: 황석희 출판사: 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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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갈피

8 아무래도 번역가로 20년을 살다 보니 타인과의 관계도, 세상일도 번역가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이 책은 대체로 오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어학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진 않는다. 번역가의 눈으로 본 다양한 오역들, 내가 일상에서 겪은 오역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일상의 번역가인 당신들의 오역은 어떠했는지, 그것으로 뭘 느꼈는지도 궁금했다.

20 진의를 애써 감추고 있는 까칠하고 까다로운 문장을 번역할 땐 평소보다 많은 애정을 쏟아 원문을 살펴야 한다. 아무리 실력 좋은 번역가도 겉으로 보이는 문자만 보고 직역하다간 정반대의 오역을 내놓기 일쑤다. 남들은 오역하고 몰라주더라도 우리끼리는 좀 더 애정을 쏟아 서로의 원문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37 나는 고생을 덜 하는 작업을 원하는 게 아니라 고생을 해도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걸 원하는 편이다.

47-48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 때면 나라도 나를 다독이고 믿어야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나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은 마냥 나를 믿을 수가 없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위로나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실질적인 증거다. 아주 사소한 것이더라도 열심히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증거. 아주 볼품없고 하찮은 것이더라도 나를 자꾸만 못난 놈이라고 말하는 못된 나에게 이것 보라며 들이밀 증거가 필요한 거다. “기록이 보여주리라. 내가 버텨 왔음을(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프랭크 시나트라도 에서 불렀듯이 내게 보여 줄 기록이 필요하다.

아무리 볼품없더라도 작은 증거들을 모아 가기를. 애써 바둥거려도 나 혼자만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인 것 같을 때, 그 결정적인 자학의 순간에 그것들이 내 최후의 버팀목이 될는지도 모르니까.

69 (뮤지컬 번역은)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영화 번역과 이런 면에서 다르구나. 언어의 물리적인 한계로 내가 표현해 내지 못한 공백들을 배우가 감정 표현으로, 호흡으로, 연기로 메운다. 비단 배우만이 아니다. 그 공백을 연출자가 연출로 메우기도 하고 안무감독이 동작으로, 음악감독이 음악으로 메우기도 한다. 내 번역으로 채우지 못한 설득력을 각자의 영역으로 멋지게 채워 넣는다.

89-90 엄마의 생각이니까 안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엄마의 생각이니까 제일 중요하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알고 제일 아끼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엄마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들어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도 옳다. 정작 중요한 의견들은 일방적인 애정이 섞였으니 무가치하다 여기고 내 인생에 지분 한 톨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경청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이런 완벽한 오역이 있나. “엄마의 생각이니까 제일 중요한 거야.”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문장을 너무나도 오랫동안 태연하게 오역해 버렸다.

92 그 누구에게도 정의되지 말자. 특히나 내게 무가치한 사람이 하는 좋지 않은 말에는 더욱. 그들에게 정의되지도, 한정되지도 말자.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이며 나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누군가의 의견을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아끼는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하자.

105 내가 오늘 보냈던 하루가 행복하고 충만했기에, 그렇게 사는 삶도 있음을 깨달았기에, 내 남은 매일을 오늘을 보낸 방식대로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가사다. 무언가가 되겠다, 혹은 무엇에 매진하겠다는 맹세가 아니다.

106 애초에 그 길을 택한 이유는 모두가 인정하는 눈부신 결과를 내고자 함이 아니라 그저 그 길을 걷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존은 그 길에 인생을 걸지 않아서, 혹은 영혼을 바치지 않아서 안 풀린 게 아니다. 존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생의 전부를 갈아 넣어 왔다. 문제는 이미 하루하루 어린 시절 자기의 맹세를 지키며 살아왔음에도, 자꾸만 모두가 나만 빼고 나아가는 것 같으니 그 조급함에, 결과에 집착하게 된 것뿐이다.

121 꿈을 향해 날아가려면, 역설적이지만 반드시 현실이라는 땅에 한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부디 영웅담 같은 것들에 휘둘리지 않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쓰다 보면 자꾸 거창하게 뭐나 되는 척하게 돼서 꾹꾹 누르는 편인데 그런 메시지들을 자꾸 받다 보니 언제 한번 얘기해야겠다 싶었다.

자꾸만 지치고 숨이 막히고 현실이 생각 같지 않겠지만 그 길이 원래 그래요. 고된 길을 걸으면서도 때때로 그 하루가 보람차고 즐거워 슬쩍 웃게 되기를, 그런 날이 생각보다 많기를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147-148 저런 ‘한심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어설프고 한심하고 그저 즐겁고 우스꽝스럽던 시절이. 그런 시절은 단순히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는 시간이다. 사회적 기대나 압박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그때 느끼는 교감들은 여러 가지 득실 계산이 자연스레 개입하는 나이가 되면 절대 갖지 못한다. 그렇게 쌓인 청년기의 한심한 기억들은 놀랍게도 성년기를 위한 완충 지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지칠 때마다 그 충격들을 완화해 주는 두꺼운 스펀지처럼. 그러니 너무 건설적으로만 살려고 아등바등할 것 없다. 목적 없이 흘려보낸 한심한 시간이 역설적으로 언젠가 가장 쓸모 있는 기억이 되기도 하니까.

223 누구의 말이건 이런 가벼운 말을 진실이나 되는 양 호응하고 인용하는 세태가 참 싫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말은 그들이 그저 미련했기에, 노력하지 않았기에 가난하게 죽는다고 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련하지도 않을뿐더러 몸을 갈아가며 노력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죽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많이 봤다. 그들 중 많은 수는 오히려 주어진 책임을 저버릴 수 없어 평생을 기꺼이 억척스레 떠안고 살았기에 가난했다.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 책임이라니, 뭐 이렇게 비인간적인 말이 다 있다. 그리고 이렇게 그럴싸한 싸구려 모토를 격언처럼 떠받드는 세태가 우려스럽다. 이럴 때 보면 분명 가난을 죄악시하고 멸시하는 사회인데 그놈의 가난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가난했다고 배틀을 벌이니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진지하게 연구할 많나 가치가 있는 사회학 주제가 아닐까. 가난은 쉽게 죄악시할 대상도, 자랑할 대상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실존적이고 실제적인 비극이다.

233 성공은 ‘오로지 운’도 아니고 ‘오로지 노력’도 아니다. 개화할 정도로 충분히 쌓아 온 노력이 좋은 때를 만나 결실로 구체화하는 게 성공이 아닐까. 그러니 남들이 운이 먼저라고 하든, 노력이 먼저라고 하든, 또 다른 뭔가가 먼저라고 하든 일단은 멈춰서 고민하기보다 뚜벅뚜벅 제 길을 갔으면 좋겠다. 개화할 만큼의 노력이 쌓이지 않았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매번 좌절하는 것도 그렇지만 성공은 운이라며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누워만 있는 허무주의도 우리의 앞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가 뭐라건 자기 의지로 걸어야 한다. 외부에서 유발한 동기는 가치도 효용도 없다. 내부에서 유발한 동기만이 나를 투과하지 않고 남는다.

264 개인이고 사상이고 사건이고 뭐든 판단하는 ‘대판단의 시대’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나를 제대로 판단하는 게 아닌가 싶다. 궁극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깊이 숙고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우린 나와 관계도 없는 타인의 모습은 쉽게 평가하면서 정작 나의 모습이 어떤지 진지하게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면의 거울을 보지 않고 살다 보니 나의 내면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전혀 모른다. 오물이 묻었는지, 인상이 구겨지진 않았는지, 괴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닌지. 자주는 아니더라도 의심이 들 때 한번씩은 들여다봐야 한다. 어느 날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매번 손과 입을 쉽게 놀리는 악플러 따위가 되어 있는 추한 모습에 크게 놀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