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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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자기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찾아가야 간신히 어느 정도 자기에게 어울리는 걸 알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23 자신의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모든 순간에 대해 그 맥락을 스스로 짚어나가고 보듬어나가는 일이다.
25 글쓰기는 관념의 유희, 당위의 강요, 기준의 폭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매일 매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은 나의 시선이 나만의 것으로 생생하게 유지된다는 것으로 증명된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은 곧 가장 생생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27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텍스트의 매력이라면, 그처럼 각자를 오직 자기 자신만 접속할 수 있는 세계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32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시간, 자극을 통해 사라지거나, 단순하게 처리되며 정의되는 대상, 쉽게 규정하고 재생산되는 언어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을 멈춘 채 바라보며 대상 이면, 인간 이면의 풍요로움을 발견해가는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이 세상에 이롭다. 그는 더 큰 인간을, 더 큰 세상을 탄생시킨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권리’를 탄생시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던 ‘입장’을 이해하게 하며,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대상’을 알게 하고, 억압되고 억눌리고 은폐되었던 그림자 속 존재들을 들춰내 ‘존재’하게 만든다.
40 지금 이 순간, 오늘 내가 보내는 나날들이 그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라는 존재에 의해 응시되고, 그래서 기록되고, 그렇게 늘 내 삶을 한 번 더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느낀다는 것이 작은 보물들을 쌓아가는 느낌을 준다.
51 물론 글쓰기가 어느 단계를 넘어 좋아지려면 온갖 비판을 뚫고 성장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점을 아는 것, 그래서 그 장점의 존재 자체로 지지받는다는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지받지 못한 글, 지지받지 못하는 글쓴이는 존재할 수 없다.
52 글쓴이만이 가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이 정서를 통해 드러난다. 그 정서는 다소 우울할 수도 있고, 인간애를 지닐 수도 있고, 세계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53 그리고 에세이는 그 정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균열을 일으키며, 세상을 마주하는 순간에 파열음을 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무척 멋진 자기만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58 오히려 계속 써나가면서 깊이를 더해간 사람의 열쇠가 더 깊은 창고를 열어젖힌다. 계속 쓰면 더 깊고, 더 아름답고, 더 멋진 창고의 열쇠가 주어진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열쇠와 깊은 창고에 관해 알 거라고 생각한다.
60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나의 방식이 옳다는 경험들이 누적되어 삶 속에 작은 확신을 이루고, 그런 확신들이 모여 자기의 스타일이 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끝까지 하나의 방법으로 시도해보고, 그 방법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확정 짓고, 또 다른 방식으로 그 무언가를 해보고, 나에게 잘 맞는다고 느끼면 그 스타일을 기억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63 글쓰기는 계속 우리 과거를 다져나가면서 삶의 내부 혹은 자아의 안쪽을 채워 넣고, 그것을 삶의 기반으로 삼는 일에 가깝다.
67 그러나 훈련의 본질은 글쓰기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들어온 것을 나가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담이 꽤 덜어지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들어온 게 그저 나가는 것일 뿐이므로, 그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며 그저 흘러가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그런 믿음이 삶의 여백을 이룰지도 모른다.
68 그저 잘 들어오고 잘 나가게 해줄 것, 나의 역할이란 나에게 맞는 방식에 따라 삶이라는 물길이 잘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라는 것, 그게 사실상 인생의 전부라는 것. 때때로 그렇게 생각하면 삶이라는 게 참 투명하고 명료해서 어렵지 않게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77 결국 작가라고 느끼는 데는 두 가지가 핵심인 셈이다. 하나는 나를 작가로 여겨주는 사람들의 존재. 둘은 나 자신이 현재진행형으로 글 쓰는 사람일 것.
81 글을 쓸 때, 사회에 관해서는 가능한 한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되, 삶에 관해서는 최대한 옹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달리 말하면, 사회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되, 삶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낙관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비판해야 할 것은 나름대로 좋은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아니고, 옹호해야 할 것 또한 사회구조나 사회의 권력이 아니다.
82 충분히 많은 것을 사랑하고, 다양한 가치를 이해할 줄 알고, 매일의 삶의 기쁨을 놓지 않으며, 더 나은 삶을 향해 가야 한다고 믿는다.
91 글쓰기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기보다는, 언어라는 심층적이고 거대한 구조나 힘의 도움을 받아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아가게 하는 활동처럼 느껴진다.
99-100 대개 계속한 것은 시대를 뒤바꿀 만큼 엄청난 무엇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내 삶을 증명하는 고유한 무언가만큼은 남긴다. 계속하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삶의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오름으로써 삶이 내 것이 되고 신비로운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03 그런데 그런 자기 결점들을 어떤 식으로 극보가려는 시도, 그런 결점들에 대처하는 방법 자체가 때로는 그 사람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자기의 어떤 구멍과 그 구멍을 메우려는 시도가 곧 그 사람이자 그 사람의 삶이 되는 것이다.
103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오히려 내가 가진 결점들이야말로 내 삶을 살려내고 내 삶의 길이 된다고 느낀다. 남들보다 집중하기가 힘들고 몰두하기가 힘들면,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게 되고 실제로 더 효율적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삶을 더 잘 살아내는 방법을 찾아가게 되는 듯하다. 나의 결점이야말로 내 삶이 가야 할 길의 가장 결정적인 힌트가 되어주는 셈이다.
112 나는 세상의 맥락에 따라 세상에 충실한 게 아니라, 내 삶의 맥락에 따라 나에게 충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내 삶 안에서, 나의 맥락에 따라, 내가 내어놓고 꺼내놓고 건네주는 일에 절박할 만큼 충실해야 한다고 느낀다.
어쩌면 우리의 존재란 그런 것이다 .세상 전체에서 보자면야 모든 인간은 대체 가능하고, 한낱 부품일 뿐이고, 먼지 같은 존재다. 그러나 각자의 삶은 각자에게 전적이어서, 우리는 그 속에서 충실함을 느낀다. 내가 하는 말, 내가 꺼내어놓는 것들, 내가 전하고자 하고 주고자 하는 것들, 그것들은 다 이 세상에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그러나 내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런 것들에 충실하면서 내 삶을 얻기 때문이다.
129 그러므로 핵심은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자주 느끼는 데 있다기보다는, 불만족이나 비도달, 비성취 상태를 어떻게 견디느냐에 있다.
130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에 망가지지 않고, 그 시간을 이겨내는 이들이 결국에는 삶을 제대로, 잘 살 줄 아는 이들일 것이다.
130 그런 건 대개 마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일상을 이끄는 의식이나 자기만의 습관화된, 믿을 수 있는 일련의 행위 같은 게 있어야 한다.
131 무엇이 되었든 사람은 자기를 구하는 방법을 알아가야 한다. 삶에는 반드시 스스로를 구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계속 찾아오기 때문이다.
138 앞으로 내가 쓸 책들도 다르지 않ㅇ르 것이다. 지금 이 시절에만 쓸 수 있는 글들, 이 시절에만 유효하고 의미 있는 글들, 그리하여 결국 이 시절을 박제하고 증언하며 내 삶을 이끌어줄 그런 글들만을 계속 쓰게 될 것이다.
146 나의 진실에 충실하며 나의 리듬에 발맞추고 나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쓰고 살아가면서도, 나의 글을 읽을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와의 인연을 기억하며 그 앞에서 예의를 갖추고, 가능하면 의미 있는 울림을 주고자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 나에게 글쓰기란 그런 것이다.
147 이제 그 글들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고, 출간됨으로써 그 쓰임을 다하게 되었고, 더 이상 내가 간직하며 어떤 가능성을 품을 수 있는 존재로서의 가치는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167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면, 나의 이야기를 하긴 하되 그 이야기로부터 느끼고 이해할 만한 것을 늘 같이 전달하면서, 적어도 읽는 이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나쯤은 건네길 바랐던 것 같다.
190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즐겨 읽지 못할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욕망은 책을 쓸수록 더 커졌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와 가까워진 사람들, 호감을 나누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글을 읽히고 싶은 마음, 특정 영역에 갇혀서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 좋아하는(그들만이 감격하고 인정하는) 글을 쓰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것이다.
194 대개 그들이 나름대로 성취를 거둔 과정을 보면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는 모험을 하고, 자신이 동경하는 것에 충실하며, 무엇보다 깊은 열망으로 꾸준히 시간을 투여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195 그런데 스스로의 초라함을 이겨내며 그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5년, 10년, 15년씩 하는 사람들만이 결국에는 자기 분야에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가지게 된다.
196 그런데 삶이란 원래 그렇게 어설픈 나날들, 우습고 비웃어주고 싶은 시간, 스스로도 확신 없는 불안으로 쌓아간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무엇이 맞을 것이다 .
199 살아가면서 어느 한 영역에서만큼은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고, 어느 한 영역에서는 끊임없이 새로 배우는 초심자가 되고, 어느 한 영역에서는 그저 웃고 즐기는 해맑은 아이가 되고 싶다.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면, 바로 그런 데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길 원한다. 그런데 자유는 여기를 벗어난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자유는 여기와 저기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마음의 힘에 있다. 자유란 벗어남이나 무조건적인 해방이라기보다는,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오갈 수 있는 힘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삶에서 부지런히 오갈 수 있는 장소들, 옮겨탈 수 있는 자아들을 적절히 만들어두는 것이얌라로 참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203 나아가 어떤 사람의 글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것도, 그 살마의 글에서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 솔직함이, 진심이 엿보일 때다.
210 소설이 삶의 정답을 내려주진 않는다. 그보다 소설ㄹ은 무수한 욕망의 과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아마도 소설의 성공이란, 얼마나 정확하게 우리의 욕망을 직시하게 하는가, 우리의 의식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온갖 욕망을 얼마나 날카롭게 벼려내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 욕망이 어떤 식으로 우리 삶을, 우리의 관계를, 우리의 세계를 파괴하는지, 혹은 살려내는지까지 드러내는 데 달려 있을 것이다. 그렇게 훌륭한 소설 속에는 우리 삶보다 더 정확한 삶이 담겨 있다.
227 내가 즐기려는 이 순간에 관해,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에 관해,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해, 그런 통념과 매 순간 싸우는 일이 곧 글쓰기인 것이다.
232 넘어서면 더 나은 것이 온다는 이 믿음은 무척이나 중요해서 어느 순간 나를 사로잡는 감정, 언어, 자기합리화, 거부감 같은 것을 넘어서게 하고, 결국 그 믿음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한다. 그렇게 믿음이 삶을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한다.
235 내가 쓴 글이 내게 되돌아와 실제로 내 삶을 이루고 내 삶을 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지를 기준으로 글을 쓰는 것이, 누구에게 인정받는 데 몰두하는 것보다 혀녕한 게 아닐까?
240 내가 언제까지나 나 이상의 것을 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 매일 쓴다.
250 자존감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만 제대로 쌓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주위에 지속적으로 서로 존중과 인정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고, 서로에게 안정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조건 자체가 자존감을 이루는 게 아닐까. 그런 것들을 무척 자연스럽게 해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질테지만, 그런 게 어려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그런 작은 성취들,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는 경험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251 나의 자존감이란 내 안에 쌓인 단단한 영혼의 힘이라기보다는 매일 주워 모으는 조약돌 탑 같은 것이다. 나에게 삶이란 그 조약돌이 무너지지 않게 매일 다듬고 모으고 쌓아나가는 일이다.
264 우리는 늘 어떤 삶을 택하면서 어느 삶을 버린다. 그리고 지나간 삶의 흔적들을 만나곤 한다.
271 그렇게 보면, 한 사회에 속해서 글을 써나가는 일이란 사호와 함께 변해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때의 변화란 사회에 적응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변해가는 세상에서 또다시 맞서 싸울 지점들을 계속 새로이 찾아 나서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278 나의 언어로 어떻게 이 생활을, 이 삶을 살아낼 것인가.
281 다시, 나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삶은 내가 놓인 이곳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며, 이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