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책 > 에세이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2023-12-23 저자: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출판사: 창비

🔖 책갈피

10 재난을 직시하는 일은 힘들고 괴롭지만 이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진실이 있습니다. 진실에 대한 태만과 무시는 세계를 바꿀 기회를 놓침으로써 우리 자신과 사회를 위태롭게 합니다.

재난을 기록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재난만큼이나 고립이 위험하다는 점입니다. 무력감은 외로운 사람을 좋아하기에 재난 이후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힘은 누군가를 치유하는 힘이기도 하니까요.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를 토닥일 수 있을 때 우리는 폐허와 절망에서 구원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존엄하고 평온한 일상을 향한 열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39 다만 저는 보통 사람들을 믿는 거예요. 그들에게 올바른 정보가 주어지고 옳은 사실 관계를 알려주면, 욕하고 비난하던 사람들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시선이 바뀔 거고, 생각이 바뀔 거고, 반성을 할 테고. 아니면 반성까지는 몰라도 본인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쯤은 알게 되지 않을까, 고인에 대한 모욕만큼은 더 이상 못하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에 대한 그런 기대가 있는거죠.

43 ‘이태원 참사 생존자’라는 것은 제 인생의 일부일 뿐이지 저의 온전한 정체성이 결코 아니라고 주변인들에게는 충분히 말할 수 있지만, 마이크를 쥐고서는 차마 그 이야기를 못 하겠어요.

90 그럼에도 사회와 제도,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참사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겪은 상황을 또다른 누군가가 다시 겪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고, 그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

114 이태원 참사는 이태원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났을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이태원에 간 사람들의 잘못이 아닌, 해야 할 일을 안 한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참사죠. 그래서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를 이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말한 것처럼 “왜 갔느냐”가 아닌 “왜 못 돌아왔는지”를 말이에요.

129 어렸을 때는 꿈이 컸는데, 지금은 그냥 보통의 삶을 살고 싶어요. 그냥 평범하게, 힘들지 않게. 사실 그 평범하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요. 저는 10년, 20년 후에 그냥 평범하게만 지내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153 거리에서 씩씩하게 계시는 줄 알았거든요. 아니었어요. 그 자리에 있는 게 힘든데도 계속 가시는 거였어요. 더 응원하고 싶어지고 더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특히 아빠는 분향소에 있는 언니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시는 분이라 집회 현장에 앉아 계시는 게 힘들었을 텐데 마음이 아프고 존경스러웠어요.

159 이제 제 꿈은 평범하게 사는 거예요. 부모님 곁에서 아무도 아프지 않고 멀리 떠나지 않고 가족끼리 자주 만나면서 살고 싶어요.

185 단순한 분향소가 아니라 연결고리가 된 거예요.

202 또 우리 사회는 참사 이후에 참사의 원인이 된 정책적 허점이나 참사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사연에 되게 집착하더라고요. 기자들이 장례식장까지 쫓아와서 한마디라고 해달라고 하고요. 그런 과정에서 이 나라에서는 죽음이 결국 그냥 한번 소비되고 마는 이슈거리에 불과하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어떤 사람의 사연이 얼마나 더 절절한지, 얼마나 더 대단한 사람이 죽었는지만 중하게 여기고 있구나, 진짜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어이없게 희생당했다는 사실이 충격인데 왜 그렇게 다들 사연에만 집착하는 걸까 싶어요. 죽어서도 인간의 쓸모를 나누려고 하는 것 같아요. 뭔가 더 애절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그만큼 더 마음이 아픈 건가요? 언론을 접할 때마다 더 마음이 쓰이는 죽음과 마음이 안 쓰이는 죽음이 따로 있나하는 생각을 진짜 자주 하게 돼요.

211 사람들이 ‘불쌍하다’ ‘힘들겠다’ ‘많이 아프겠다’하고 마는 동정에서 그치지 않기를, 참사를 남의 일로만 여기지 않는 ’공감’의 마음을 가지고 그의 곁에 단 한명이라도 끝까지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28 모두가 내 일이라고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슬픈 소식은 덜 발생할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남의 일이 아니었어요. 이번에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찌 남의 일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31 자기 말이 좀 애매하게 들리지 않느냐며 되레 세빈씨가 나의 생각을 살폈다. 유가족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조심스러움이리라. 혼란스러운 속내조차 편히 드러내지 못하는 그 모습이 속상했다.

239 경찰들도 표면적으로는 저희를 보호한다고 서 있는데, 저희한테 등을 보이고 밖을 향해 서 있는게 아니라 등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우리를 향해 경계를 서고 있더라고요. 저분들이 지키고자 하는 게 대체 누군지…

246 어떻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드시죠? 제가 계속 이렇게 좀 어중간하고 애매한 말들만 하고 있는데,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확실한 답을 아직 내리지 못했거든요.

247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길,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보다 안전한 세상이길 바라요. 사람들의 하굣길, 퇴근길, 친구와 놀러 가는 길이 안전했으면 좋겠어요.

266 청년들한테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얘기들 하는데, 청년들 탓이 아니라 그냥 사회가 그렇게 가르치는 것 같아요.

266 근데 아무도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니까 더 불안한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그렇게 된 건지를 모르니까.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들으면 ‘그래, 안 좋은 일이지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최선을 다해도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지’ 생각할 텐데 지금은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인 거잖아요. 의문점 열가지 중에 하나라도 답을 들으면 ‘그래, 국가가 그래도 우리를 위해 신경 쓰고 있구나. 많이 노력했구나’ 이렇게 생각할텐데 아무 설명도 없잖아요. 제가 원하는 대답은 하나도 못 들은 것 같아서 그냥 우리는 이렇게 버려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내가 이렇게 있다가 죽어도 그냥 한 사람이 죽었다, 이런 얘기만 나오겠구나 싶고요.

277 전 이태원에 있는 시간에 가장 저답게 있을 수 있어요. 남들의 기준에 따라서 꾸미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제가 무슨 옷을 입든 상관하지 않고, 제가 어떻게 하든 차별적인 시선으로 쳐다보지 않아요. 그런 이태원에서 살다보니 저 또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외국인들을 봐도 낯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들은 태어난 곳이 다를 뿐이지 지금은 나와 함께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같은 지역공동체의 일원인 거죠. 인종과 세대가 복합적이어서 다양성이 존중되는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넓은 시각을 갖게 해준 곳이기도 하고요.

289 저는 유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그냥 시민인데 이렇게 슬퍼하는 제가 스스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91 사람들이 모여서 슬픔이 머무르는 이 자리에 사랑을 심는다면 좋겠어요. 슬픔만이 동력이 되는 추모제가 아니라, 그 이후에 이태원이 원래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다시 자리잡아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는 그런 축제가 되었으면 해요.

293 이태원 참사는 단순히 희생자의 숫자로 설명될 수 없었고, 이태원 참사를 통해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배웠다.

308 머릿속으로 ‘여기에서 그런 일이 있었지’하면서 이태원 참사를 항상 기억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들 잊은 것 같아 보이지만 여전히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요. 그래서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이태원에 어서 생겼으면 좋겠어요.

325 장례는 산 사람들을 위한 절차라고 생각하거든요.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것도 있지만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잘 보내주고 다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고 나서도 잘 살아갔으면 하는 사람들이 제 장례의 상주가 되길 바랐어요.

326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언니가 기억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언니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좋은 이별을 할 권리가 그 친구들에게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28 저는 미술치료사이기도 해요. 상담사의 일차적 목표는 내담자를 잘 지원하는 것이지만, 사회적인 위치를 봤을 때 상담사는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 의무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이미 우울해진 다음에 처치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들이 우울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그러려면 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활동을 해야 해요.

329 언니랑 이루고자 했던 상호돌봄은 쉽게 말하자면, 인생에서 혼자 대처하기에는 힘든 일을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보자는 거였어요.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 자기가 받아줄 수 있는 한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관계가 되어보자는 거예요.

331 원래 저는 한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내린 결론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그 질문에 또 새로운 답을 찾으면서 다음으로 나아갔죠. 이번에는 답을 쓰지 못했어요. 그래서 더이상 질문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