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의 모양
📝 감상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저 역시 일에서의 정체기 혹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기도 했고, 한때 열렬하게 일했던 시기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내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가늠하기 너무 어려웠거든요. 펀딩 당시에는 몰랐기에 추가 구매로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책을 받아들자마자 정말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이 책의 작가님이신 초여름님과는 물론 다른 점들이 분명 더 많겠지만 7년 동안 정말 열렬히 일을 사랑하며 전념해 왔던 것과 그 일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지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 기여하려고 했다는 점, 그 과정에서 행복하고 충만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소진되기도 하고 지쳐가기도 했다는 점들에서 혼자 내적 친밀감을 많이 느껴왔는데요. <움직임의 모양들>에 포함되는 네 권의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꺼내놓지 않았지만 알아주길 바랐던 마음들이 어루어만져지는 것만 같아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어요.
🔖 62 글로 옮기면 경험은 나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혼란스럽다고 쓰면 혼란이 나에게서 종이로 옮겨간다. 쓰는 사람은 해방 되는 기쁨을 누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 역시도 지금의 이 시기를 건너가면서 꼭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어요. 사실 글을 쓸 때마다 ‘세상에는 멋진 글들이 훨씬 더 많은데 내가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기나 할까‘ 등등 회의적인 생각들로만 가득했는데요. 누군가에게 읽힌다면, 그래서 그 누군가와 글을 통해 연결이 된다면 물론 가장 좋겠지만 일단 저 스스로 이전의 시간들을 잘 정리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제가 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저를 읽힐 수 있는 형태로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딘가 부족해보이더라도, 멋지거나 대단치 않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저만이 쓸 수 있는 글들을 써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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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계절
12 첫 번째. 실패와 소진에 대한 두려움. 7년 간 몰두했던 사업을 정리하면서 나는 나의 한계를 크게 느꼈다. 다시 마음을 쓰며 일하는 게 가능할지, 일과의 관계 맺음을 고민해야 했다.
13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갈까?
내가 해온 일, 잘 아는 업계에서 일할 것인가?
다른 도전을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내게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18 길 위에 있는 사람은 걸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다 걸어야 한다. 그 후에야 다음 갈림길도 만날 수 있다.
28 우리가 불확실한 길을 선택할 때 가장 큰 자산은 ‘가능함’의 근거가 되어주는 사람들인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사실 ‘불가능함’ 그 자체도 가능성일 뿐이다. 불가능의 근거가 훨씬 튼튼해 보일 때가 많지만 결국 모른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기어코 더 기울어지게 만드는 힘이 필요할 뿐.
31 세상 속에서 내게 맞는 자리를 찾는 것만큼이나, 그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어떤 인생을 줄지를, 나는 결정해야 한다.
39 범위
- 3개월 안에 조직 안에서 일을 다시 시작한다.
- 앞으로의 3년만 보고 결정하자. 이 3년은 전환과 가능성의 시간으로 바라보기로 한다.
방식
- 티타임을 공개적으로 열자. 내 생각의 협소함을 넘어서 선택지를 만들어보자.
- 해온 일, 잘 아는 업계에 국한하지 말고, 가능성을 크게 열어둔다.
43 결정을 위한 질문
- 나의 직무가 회사의 핵심 가치 사슬(Value Chain)에 기여하는가
- 나와 조직의 모양(Fit)이 맞는가
- 나의 합류로 지렛대 성장(Leverage)을 할 가능성이 나와 회사 양쪽 모두에 있는가
- 보상이 동기를 방해하지 않는가
- 나의 일경험과 이어지는 맥락이 있는가
- 일을 제대로 할 만큼 권한, 자율성이 주어지는가
- Best version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면?
- Worst version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면?
- 네트워크. 함께 일하게 될 배경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내가 보내게 될 하루는 어떤가?
81 나는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경험하는 삶을 원한다.
91 오래 하고, 오래 지속할 수 있을 만큼 기쁘게 하며, 속도와 강도를 올려야 할 때에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매일 적정한 선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104 자기가 준비된 기분이 들 때까지 일을 미루는 건 자신에게서 실수하고 망쳐보며 성장할 기회를 뺏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106-107 무엇으로 불리는가.
무엇으로 불리고 싶은가.
소속감과 인정에의 욕구가 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좀 짜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사실이라 반박이 불가하다.
삼중 고리 학습
58 선언은 힘이 없다. 시간을 살아내서 말하자.
76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좋은 리듬을 찾고자 하면서 한편으로는 쏟아지고 요란하게 기울어지는 몰입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모든 걸 쏟는 순간에 역설적으로 고요함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89-90 어떤 일을 하려면 그 일을 ‘하겠다’고 애쓰는 것보다 그냥 그 일을 할 만한 ‘인간’ 그 자체가 되는 게 더 적합한 방법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합리적인 말이다.
가슴 뛰게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할 만한’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
110 잘 쉬거나, 멈추는 일이 도피가 아니라, 베이스캠프를 찾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14 문제에 대해 많이 말한다고 해결할 힘이 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는지 생각하면 힘이 난다. 공동으로 해낼 수 있도록 힘을 만드는 일.
118 회의가 잘 안 될 때 체크할 3가지
- 용어 정의가 같은가
- 이야기 맥락이 같은가
- 숨은 이해관계가 있는가
121 휴식에 규칙을 만들자. 못 쉬면 억울해져서 주기적으로 불행해진다. 마음이 혼란하고, 자책감이 들면 멈추고 명상 후 다시 시작하자. 습관처럼 SNS를 볼 때는 ‘30분 알람’ 후 비행기 모드로.
일주일 중 반나절(6시간)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 일주일 중 반나절(6시간)은 나를 위한 휴식시간으로 확보하자.
은유와 말하기
15 내가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끔찍하지 않도록. 일은 내가 세상을 살아간 흔적을 남긴다.
17 5. 디자인은 경험이다.
‘전체적 체험’이란 말에 밑줄을 그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때로 자기 관점을 포기하는 일이다.
18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서의 디자인.
28 그 흰 부분이 그냥 남은 부분, 여백인 게 아니라 그 또한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41 글쓰기는 사랑과 미움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만드는 작업 같다. 경험을 돌이켜 질문하고 내것으로 만드는 일. 서술자라는 자리에 서면 내 경험을 쓸지라도 나를 벗어날 수 있다.
42 누군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위한 글쓰기, 해체적인 글쓰기를 더 탐색해보고 싶다.
43 “잘 듣는다는 행위는 사실 그 사람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할 거라는 기대를 버리는 일 같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스스로를 조금 바꿔야 한다. 그런 수고로움을 사람들이 자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기 어려운 게 아닐까”
46 나는 그걸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엉망인 채로 어쨌건 나아가는 사람들.
48-49 아무것도 망치지 않고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의심 없이 가능한 확신이 있을까.
우리는 자주 그런 불가능을 바란다. 망신을 당하고, 깨지고, 틀리는 건 아픈 일이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멋이 없다고들 본다. 단번에 선을 그어 나아가고 싶다. 시작점에서 도착점까지 이미 한 번 선을 그어 본 사람처럼. 팔꿈치에 고정핀이 달리기라도 한 양 정확하게.
그러나 이런 욕망은 우리가 언제나 삐끗할 수밖에 없는 존재란 사실을 반증한다.
이건 내가 성장에 관해 아는 유일한 사실이다. 나아가고 싶은가?
방법은 하나 뿐이다. 여러번 삐끗하라. 삐긋하며 사방으로 틀린 선을 그어라. 때로 끊어진 것처럼 보여도, 모두 다 다른 방향인 듯 보여도 괜찮다. 형상은 시간이 만들어줄 것이다.
62 글로 옮기면 경험은 나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혼란스럽다고 쓰면 혼란이 나에게서 종이로 옮겨간다. 쓰는 사람은 해방 되는 기쁨을 누린다.
72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게 무엇인지, 각자가 가진 욕망과 결핍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일이 재밌다.
77 서사가 하는 일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이야기는 시든 마음에 물을 주듯이 삶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을 살리고, 타인을 통로로 세상을 넓히게 해준다. 때로 지하철에서 서로를 짐짝처럼 내팽개칠 때 느끼는 인간에 대한 혐오를 내려놓도록 해준다.
은유로서의 취미
79 취미에 미쳐가는 30대의 친구들을 보면서, 최근엔 어떤 생각에 다다랐다. 사람들이 삶을 이해하는 은유로서 취미가 기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80 이런 이야기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오늘의 태도를 재정비하고 은유에 기대어 시간을 해석하게 만든다.
기분에 따라, 상태에 따라 유난히 더 잘 들리는 메시지도 매번 다르다. 인내심이 필요할 때는 몸의 고통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은유가 와닿았다.
81 물속에서 숨을 참는 일은 슬픔에 잠겼을 때 죽지 않는 일과 나란하다. 발장구를 치며 나아가는 일은 처음 시작하는 일에서 애쓰는 모습과 나란하다. 발끝과 허리를 세우고 춤을 추는 일은 정확한 고통을 사랑하는 일과 나란하다. 한 코 한 코 마무리 짓는 성실함은 일상을 잘 살고 싶은 마음과 나란하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취미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은유가 된다.
89 특히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면서 나는 ‘아부해왔다.’는 기분에 대해 말했다. 설득하는 유능함을 장착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때로 그게 바깥세상에 아부하고 나의 진실을 왜곡하는 중이라는 더러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정돈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정돈해서 말해야만 하는 들리게, 호소해야 하는 상황들에 아주 잘 순응하면서 훈련되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96 이야기는 공간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운신할 폭을 그 안에 마련한다. 납작하게 가두는 이야기가 아니라, 느끼고 생각할 여백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런 욕망을 사랑하는데, 그런 욕망이 활개칠 판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99 무언가를 애써서 짓는 일은 무질서라는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99 무엇이든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일. 그러면 에너지를 들여도 흩어지기 쉽다는 걸 알면서, 얼마나 어떤 일에 에너지를 들일 것인가.
100 좋은 흐름은 자원이 모인다. 피드백이 있다. 일이 고도화된다. 사람이 온다. 일의 윤리가 만들어진다. 더해지는 참조 점이 많아진다. 그러면 무언가가 된다. 말로 하기 어려운 느낌에 가깝지만 그 느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영역을 가로질러 반복되고 있다.
101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우리의 노력을 어디에 어떻게 넣고 모아야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사유를 엮다
47 현실에는 계층이 반영되고 둘 중 무언가가 나의, 당신의 현실이 된다.
48 글방을 경험하며 퇴고 없이 쓰기, 해체적으로 쓰기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다.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는 글과는 다른 종류의 글도 쓰여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글은 이해를 구하는 글이 아니다.
64 ‘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계속 늘어나서 그 늘어난 만큼 또 우리가 어느새 많은 것들을 해가고 있을 것 같아요.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이 성능 좋지 않은 배터리를 가지고 오늘을 또 살아보자.
70 루틴은 자꾸 바깥의 중력장에 시간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발명해낸 개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람. 빼곡한 ‘해야 할 일(To do)’ 목록과 스케줄러. 넘치는 메일함과 방대해진 사회적 네트워크. 이 모든 건 시간의 구조를 뒤트는 거대한 중력이다. 물리적 의미와는 또다른, 우리 삶의 시간 구조를 바꾸어버리는 힘인 것이다.
71 물리학적으로 시간은 흐르지 않고, 우리도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의 존재가 가진 중력, 우리 안의 힘과 욕망의 영향을 받는다.
72 초침이 흐르는 환청이 들리고, 바쁜 바보처럼 행동하고 싶을 때 기억하라. 시간은 흐르지 않고, 우리는 시간을 비틀어 낼 수 있는 중력 그 자체이다.
75 연결은 피곤한 것이다. 눈이 마주치면 다른 존재라는 세계가 열린다. 그건 버겁고 무서운 모험이다. 혼자 존재하는 일은 편하다. (…) 자기 폐쇄적 세계는 즐겁고 안온하다.
77 바라보라. 응시하라. 연결 되어라. 친절하라.
87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공부’라는 결론인데, 자기 위치를 읽는 공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위치를 읽는 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포털 같은 걸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너는 어디에 있나.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는가.
88 타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곁에 서는 것’뿐이라고 했다. 곁에서 이야기한다는 건 위치를 바꾸어 이야기한다는 것과 다르다. 곁은 누군가를 중심에 두는 위치다.
105 모든 말은 결국 걸러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위해 말하지만, 그 연결이 얼마나 인위적인지, 이미 만들어진 연결에 의존하는 일인지 의식하지 못한다. 결국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포기한다. 이미 강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에 접붙이는 이야기 방식이 가장 적게 오해를 산다. 그러나 오해를 적게 사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생각하면, 사실 크게 오해받기를 감수하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진실에 가깝지만 전해지지 않는 이야기는 어떻게 자리를 찾을까? 깨어진 말과 글들이 모인 공간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노래하듯, 고함 치듯 소리를 던지는 이야기들로 이야기로서 소용이 있다.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세상이 숨긴 비밀처럼. 암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