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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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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잘 좋아하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게 있으면 좋다.

고 우겨왔다. 나로서는 모든 걸 좋아한다는 말이 꼭 무엇도 대단히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게 “좋아해”라고 말해놓고 저쪽에 가서도 똑같이 “좋아해”라고 말해놓고 저쪽에 가서도 똑같이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배신당했다고 느낀다. 그사람을 많이 좋아할수록 그가 어떻게든 날 차별해주지 않으면 쓸쓸해져 버리는데, 너무 쓸쓸해지면 급기야 그 사람이 미워진다. 또 나는 다른 일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기면서도 글쓰기만큼은 항상 내가 남들보다 더 잘해내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누가 글을 엄청 잘 쓰면 때로 슬퍼지기까지 해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을 미워한 적도 있었다.

그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건 나를 슬프게 하고, 내게 자부심을 주는 건 그만큼 나를 수치스럽게 하고, 내가 갖고 싶은 건 나를 초라하게 하고… 그런 일이 내게는 너무너무 많다.

사람들 앞에서는 이런 내 모습을 잘 감춘다. 그 정도의 상식은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길수록 거기에는 모난 마음들이 불현듯 솟아나는 나에게 짙은 애정과 미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쌍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미워해버리라며 우울한 얼굴로 권유하려는 건 아니다. 미움을 쿨하게 받아들이라고 주장하려는 것 또한 이다. 내가 그렇게 미움이 아무렇지도 않은 쿨한 사람이라면 애당초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걸 당연하다는 듯 구구절절 읊지 않는다. 당연하다면 이미 그 상태일 것이기 때문에.

굳이 고백하자면 나는 속 좁은 사람이다. 누군가 “네가 싫어”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 화들짝 놀라 혼비백산할 사람. 그가 나를 왜 싫어할까 종일 고민하고, 그가 날 좋아해주기를 바라며 굽신대다가, 그럼에도 그가 날 계속 싫어하면 상처받은 나머지 결국 원한을 품고 그를 두고두고 싫어하게 될 사람. 그런 자신이 흉해 보여서 스스로를 또 미워하게 되는, 그런 사람

그런 나를 어떤 사람들은 종종 곤란하게 여긴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암은 나쁘다는 것이다. 나쁜 건 품지 말고 쉽게 털어버리라는 것이다. 나는 나를 곤란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싫어할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기왕이며 상냥하고 쾌활하게 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나쁜 걸 누가 모른다…’ 사실 곤란한 건 내 쪽이다. 나라고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닌데. 세상 모든 맞는 말이 그렇듯 나도 맞는 말대로 할 수 있었으면 진즉 그렇게 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로선 미워하지도 미움받지도 않을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에 차라리 그 안에서 뭐라도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진실, 때로는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진실,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진실,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진실…

굳이 그런 걸 알기 위해 일부러 무언가를 싫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로 나는 적어도 나에 대해 풍요롭게 알게 되었다. 미움을 가진 나를 잘 견딜 수 있을 만큼. 무엇보다 내게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다른 사람을 보면 가장 먼저 이 사람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지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가령, 나를 곤란하게 여기는 살마들도 어쩌면 미움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애당초 미워하는 일 자체를 금지하려는 셈인지 모른다고. 싫어하는 건 나쁘다고 말하는 식으로, 싫음을 싫어함으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걸 지키고 있는지 모른다고. 상대방 역시 나처럼 딱히 좋은 것의 집합은 아닌 모양이라고.

그런 습관은 상대가 나를 곤란하게 해도 그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을 내게 길러준다. 미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할수록 사람을 더 잘 견디게 된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25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넣는다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26 그러나 한 사람의 자립성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로 망가지지 않는다. 때때로 그 영향은 한 사람을 지탱하거나 그의 내부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게 도와주고. 그건 그 사람이 누군지와 무관하지 않다.

27 지금 아는 건 이따금 나에겐 나를 격려하거나 흔드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기쁘고 후자는 두렵다. 그러나 흔들림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 그건 내가 앞으로 알게 될 것과 가까이에 있다.

54 다만 그럼에도 나를 매료시키는 쪽은 언제나 기존 세계의 바깥으로 가보는 이들이었다. 원래의 기준이 스스로에게 최선인지 의심해보는 쪽. 다른 세상을 궁금해하는 쪽. 삶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경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하고 배반하며 제 세상을 운동시키는 쪽.

57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만 생겨나는 그 자신의 세상이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내 말은 어디까지나 내 방식일 뿐이니 가끔은 일부만 취하거나 반박하거나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말해왔다. 나아가려면 익숙했던 무언가를 두고 가야하고, 그 익숙함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다.

61 단지 오래전에는 배반하는 용기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반당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 심연을 들여다볼 용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내가 아는 그 사람이길 바라는 걸 그만두는 용기. 그 애가 낯설어지길 바라는 용기. 그 애가 저 자신에게 온 초대장을 들고 제 세상으로 나가도록 밀어줄 용기. 언젠가 내 온 마음을 다한 존재의 뒤편에 놓여야만 한다는 슬픔을 감내할 용기. 내가 미처 몰랐던 건 누군가를 향한 커다란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런 용기란 정말로 아프다는 것이다. 무뎌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만큼.

106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109 그 애는 내가 번 돈들이 비행기 티켓처럼 기억에 남을 모양으로 뭉쳐지기보다는 찰기 없이 부서져나간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132 모두를 싸잡지 말라며 연설을 시작하는 남성을 볼 때면 꾸역꾸역 억지로 밥을 밀어 넣은 듯 목구멍이 콱 막혀왔다. ‘당신은 내가 감히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노여웠군요. 당신도 자신의 기분을 이유로 나를 휘두르고 처벌할 힘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군요. 당신은 이 모든 뉘앙스가 지속되길 바라는 군요. 그 뉘앙스가 누군가를 질식시킬 때조차 자신의 불편함부터 말하는 당신이, 무엇도 바꾸지 않음으로써 뉘앙스에 가담하는 바로 그 사람이군요.’

137 그렇다 해도 사진에 묻어 있는 누군가의 구체적 악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 여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악의.

139 그런데 핵심은 자기 자신에게서 소외되지 않을 때 생겨나는 관계에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혼자가 익숙해진 만큼 무섭지 않았지만 더는 혼자이지도 않았다. 그동안 주변에는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런 일 정도로 나를 혼자 두지 않을 사람들이. 그들은 나에 대한 진실과 내가 맺는 관계가 택일의 영역에 있지 않다고 알려준다. 사람을 방해하는 것도 사람. 사람을 버티게 하는 것도 사람. 누군가는 구체적 악의를 가르치지만, 후자는 구체적 선의를 가르친다. 그런 게 구체적 악의에서 나를 구한다.

147 나는 읽고 쓰는 일을 놓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었다. 나를 망치려는 상대가 원하는 걸, 결코 호락호락하게 내어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이 용감하고 담대한 거라면… 얼마든지 그러겠노라고. 나는 산 책들을 단단히 그러쥐었다.

178 그처럼 이미 잘려진 것 앞에서 그와 비슷한 모양으로 마음을 잘라보는 것 또한 후회라면, 나는 후회한다. 후회는 바뀌니까, 살아 있는 것들을 홀로 내버려두는 환경을. 후회는 발견한다. 어디가 잘려나간다 해도 사랑을 주고받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후회는 포함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한 마음을. 후회는 그토록 많은 걸 한다. 요즘 나는 후회하는 일보다 후회가 하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 데려온 개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듯이, 개에게도 동생에게도 내가 열심일 수 있듯이. 되돌릴 수 없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180 듣다 보면 동생의 ‘죽고 싶음’에는 더 잘 해내고 싶음, 돌아가기 싫음, 더 나아가고 싶음 등이 있어서, 나는 그렇게 잘려나가고도 동생이 퍽 입체적이라는 데 내심 감동하는 동시에 어이없어 한다.

181 - 언니, 나도 후회 없이 살아보고 싶어.

하지만 사는 일엔 후회가 있다. 호두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내 가족은 개의 꼬리를 자르는 이 세상을 후회하게 되었으니까. 그 개를 데려온 동생과 쭉 같이 살기 위해, 어느 때보다 온갖 데 열심인 나의 지금은 후회에서 온 것이니까. 동생의 후회란, 실은 동생이 더 입체적인 삶을 꿈꾼다는 증거이니까. 그 꿈이란 꾸는 것, 꿔 오는 것, 빌려오는 것이라서. 나는 동생에게 빌려줄 수 있는 최대한을 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184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무언가에 바쳐지는 누군가의 평생…

내가 사랑하는 건 인공, 인간이 공을 들이는 것. 그런 게 나를 견디게 한다.

185 그러니까, 부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끝내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내년, 언제나.

192 내가 도망가지 않으면 아이들도 도망가지 않는다. 내가 진지하게 대하면 아이들도 진지해진다. 조금만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조금만 알려줘도 아이들은 나무가 갈색이지만 갈색이지만은 않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아차린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심장도 빠르게 뛰고 체온도 높아서 그 열기로 뭐든 익힐 수 있다.

197 삶에 무엇을 중심으로 두는지는 세상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 방식에 무엇이 맞고 틀린지는 점점 더 모르겠다. 단지 내게는 선호와 불호가 있으며 불행하게도 숫자 같이 유용한 것으로 세상을 보는 게 내가 선호하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돈을 좀 만지며 살 텐데. 아쉽지만 그렇다 해도 나로서는 내 호불호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내 막내 삼촌 또한 그럴 것이다.

208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에게 배워온 것 또한 그 밤의 바람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당황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의 무언가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210 그러나 수업이란 수업을 하는 이가 듣는 이와 함께 배우며 자신의 부족함을 만회해보는 일이라는 듯, 삶을 더 오래 겪어본 문우는 그가 가진 진실을 선뜻 말해준 것이었다. 칠십 다 먹어가도 친구도 우정도 어렵다는 자신의 진실을.

216 우리의 얼굴에는 낯익은 과거와 낯선 현재가 혼재되어 있다. 서로 모를 시간이 늘어간다는 게 서로가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래된 친구란 어쩌다 한 번씩 보든, 어떻게 변하든 꼭 가족 같다.

217 어쩌면 서로를 이해하는 이들끼리만 친구로 남게 되는 걸까? 서로의 무심함을 문제 삼는 대신 이해의 영역에 두면서, 서로가 모르는 시간이 불어나는 걸 지켜보면서?

222 - 아직까지 제게는, ‘나 자신의 이럴 수밖에 없음’에 대한 글이긴 한데요.

어째 쓰면 쓸수록 저도 에세이가 뭔지 도통 모르겠답니다…

이 글을 포함해 그토록 많은 에세이가 우정에 대해 쓰는 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228 한편 이렇게도 생각한다. 그 시기 나는 무력하다고 느꼈지만, 나와 같은 존재가 필사적으로 가리고자 한 걸 지켜주는 힘 또한 가지고 있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