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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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뉘앙스에 관한 이야기다. 적은 양으로 큰 변화를 만드는 문장력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메일을 최고로 아름답게 쓰는 업계에서 일한다. 잘 쓴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딘가 다르다. 수심은 옅어지고 기쁨은 두 배가 되며 동료와 웬만해선 척을 지지 않는다. 오해가 줄고 마음을 얻고 때로는 돈도 더 크게 얻으며 일하는 자신을 꽤나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온갖 최신 기술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메일이라는 올드미디어로 내밀한 업무를 주고받고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이메일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된 세상에서도 우리가 연마한 기술은 유효할 것이다. 이메일을 잘 쓴다는 건 나의 욕망과 상대의 욕망을 읽고 그 사이를 유창한 언어로 오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13 생성형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최종 확인자가 나라는 점에서 검토와 수정은 불가피하다. 이 꼼꼼한 책임감까지가 문장력이다.
13 나는 늘 이런 것이 궁금했다. 내 실속을 챙기면서도 무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냥하면서도 얕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돈 더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비굴하지 않을까? 거절하면서도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싸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을까?
14-15 내 길목이 아닌 그대의 길목까지 미리 가서 서 있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게 좋은 문장이란 말이닫. 예쁜 촛불과 향기로운 꽃길에 버금가는 환대의 기운을 문장에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럼 수신자가 모를 수 없게 된다. 사뿐히 밟으며 걸어오고 싶어진다. 비단을 깔아놓은 내 마음 위를.
그렇게까지 타인을 모시면 내 마음이 닳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 마음이란 그런 식으로 닳아 없어지는 게 아니다. 밥 먹고 온 사이에 이파리가 부쩍 길어진 스킨답서스 화분처럼 마음은 자라고 또 자ㅏ란다. 우리 내면의 지옥한 구석구석을 살피며,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함께 갈고닦을 것이다. 다정함도 기술이므로. 혼란스러운 세상일수록 서로에게 친절해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70 당신을 좋아하다가 내 인생이 바뀌었다는 걸. 그건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는 말과는 다르다. 그해 여름 나는 당신에게 열광하다가, 급기야 말을 걸다가, 이메일 주소를 수소문하다가, 말을 고르고 또 고르로 지우고 새로 쓰다가, 답장을 기다리다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당신 쪽에 가까워지고 싶은지 온몸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당신이 응답해주기 전에도 그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
79 ‘치우치다‘라는 동사는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이지만 사랑이야말로 이 동사를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나는 여러분이 살맛나는 사랑을 받아보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당신을 살맛나게 한 그 사랑은 필시 당신 쪽으로 치우친 마음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균형을 잃을 것을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당신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 그토록 달콤하기도 한 것이 바로 편애이고, 편애의 뛰어난 방식 중 하나가 바로 ‘특별 호명술’이다.
84 상대의 빛나는 면을 관찰하는 동안, 그에게 받은 아무리 작은 것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기억하는 동안, 한끗이 다른 제목은 이미 쓰이고 있다. 내가 아닌 상대에게 쓸 때만 그 진가를 발휘하는 특별 호명술의 본질을 잊지 말도록 하자.
내마금지
내용과 분량, 마감기한, 금액, 지급일
- 첫인사와 간단한 자기소개, 지면)회사 소개
- 청탁할 업무 소개
- 왜 당신에게 청탁하는지. 당신의 탁월함 중 어떤 부분이 이 업무에 어울리는지 설득.
- 내마금지 명시
- 회신 희망 날짜 알림. 끝인사
96 다정함이라는 기술은 결국 상대의 시간과 노고를 소중히 여기는 씀씀이다. 그것을 귀히 여길 때 돈 얘기도 구체적으로 쓰인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돈 얘기를 생략하지 말자. 첫 메일에 시원하게 적어버리자.
121 하지만 나는 안다. 그에게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을 만큼의 우환들이 있다는 것을. 그는 단지 또다른 희소식을 만드는 쪽으로 자기 몸을 가져다놓는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기쁨을 크게 나누고 깊이 음미한다. 어떤 희소식도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아는 이들은 그렇게 한다.
131 책은 작가의 저력 말고도 편집자의 미감, 기획력, 작가에 대한 이해, 시대를 읽는 눈, 윤문과 디렉팅 실력의 총합임을 알아차리면서 편집자 덕질은 시작된다.
151 무엇보다 좋았던 건 수정요청을 힘껏 받아들이는 게 나의 긍지임을 알게 된 것이다. ”너무 좋은데?“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다시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그게 아무것도 안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자존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게 무진장 소중했다. 작가의 본령은 다름 아닌 수정 작업에 있다는 진리를 수백번째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167 그 미래를 오게 하려면 아껴야만 한다. 유한한 시간을, 하루하루를. 아침과 점심과 저녁의 집필 체력을. 한계를 지닌 나의 몸과 마음을…
거절 메일을 쓸 때마다 실감하는 건 인생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내 메일을 받을 상대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서 쿨하고 따뜻한 미덕을 두루 갖춘 답장을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211-212 이 이야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다가갈수록 빨리 개선된다는 점이다. 다정함은 느리고 더딘 방법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의외로 효율적이다. 아주 예외적인 인간 말종이 아닌 이상, 사람에게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본능이 있으니까.
우리를 진짜로 바꿔놓는 건 옳은 논리가 아니라 좋은 기분이다.
251 누군가 날마다 상냥하다는 건 정말 뿌리깊게 강인하다는 의미다.
269 결국 더 구체적인 사람이 이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이 이긴다. 그런 사람은 현피를 떠도 꿀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