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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의 사전

2024-06-04 저자: 구구, 서해인 출판사: 유유히

🔖 책갈피

프롤로그. 작업자의 사전을 시작하며

8 구구 이렇게 우리가 관성적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장에서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말이 되기도 하고, 사회 규범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작업자’의 말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아요.

11 구구 저에게 작업이라는 건 내가 원해서 매일의 작업량을 정해놓고 그걸 해내기 위해 정진하는 시간과 상태를 말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원하니까, 원해서 벌여놓은 무엇이라는 점에서는 기획자로서의 작업과 외주 용역자로서의 일을 서로 구분하게 되죠.

12 구구 일에 있어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일을 할 수 있음(없음)’을 가늠하기 위해서 인 것 같아요. ‘할 수 있음(없음)’을 가늠하는 일이 곧 작업물의 퀄리티나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13 구구 저는 감정이 풍부하다는 게 일할 때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하거든요. 일하는 상대와 금방 친밀해졌다고 느끼는 한편, 또 금방 멀어졌다고 느끼면서 마음에 파장이 생기기도 하는거죠.

14 해인 제가 본 구구님은 일을 할 때 절대로 완성도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우선순위가 여러가지 있을텐데, 그 중 완성도가 2순위가 될 수는 없는 사람, 그래서 본인의 성에 차지 않는 무언가를 바깥으로 내보냈다고 여기는 순간에 구구님이 꽤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근데 완성도만큼 주관적인 게 어디 있겠어요. 제가 구구님 콘텐츠의 구독자로서 정확히 이 부분이 좋았다고 의견을 전할 때도, 이미 본인이 만족하지 않는 상태의 콘텐츠였으면 스스로에게 아주 가차 없으시더라고요. 그럴 때 조금 놀랐어요.

22 구구 기대되는 건, 일에 대해 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거라는 점이에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나만의 원칙을 좀 더 분명하게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역시 글을 쓰는 일, 언어화 하는 작업입니다.

1부. 과정

공유오피스

26 구구 공유 오피스에서는 물리적인 장소뿐 아니라 일하는 감각, 몰입도, 생산성, 뿌듯함 등을 다른 작업자들과 공유하며 느낌의 공동체를 이룬다.

27 해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유오피스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건 집중과 몰입을 위한 최소한의 가능성이 우리 안에 남아있다는 믿음이라는 점이다.

레퍼런스

33 해인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나 드라마를 끝까지 보는 경험은 중요하다. 작품과 나의 관계는 무수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만 알 수 있으며, 그중에는 ‘잭팟’도 있고 ‘지뢰’도 있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큐레이션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그래서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작품들을 만나는 아리송함을 축적하는 경험은 계속될 운명이다.

메모

36 구구 오늘은 영감, 내일은 쓰레기가 되는 기록 뭉치.

37 해인 오히려 쓰고, 쌓는 쪽보다도 비우고, 버리는 쪽의 쾌감이 더 크다.

미팅

43 해인 회의 참가자들이 같은 곳에서 같은 이야기를 공유했다는 믿음은 실제로 작업을 실행할 때 보란 듯이 부서지곤 하므로, 미팅에서 논의된 사항은 사소한 것이라도 문서의 형태로 남기는 편이 좋다.

장바구니

50 구구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은 바로 구매하기 때문에 장바구니라는 불필요한 단계를 거치지 않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삶과 욕망의 불합치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욕망은 관념상의 장바구니에 영영 갇힌 채 실체화되지 못하고, 오직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물건만이 실체로써 곁에 남아 욕망의 결핍을 증명한다.

취향

57-58 해인 개인과 집단이 공유하는 모수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타인의 목록은 올해 내가 놓친 콘텐츠를 발견하는 장이 된다. 문제는 그것이이제라도 알게 된 데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내가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지?’라는 조급함을 가져올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2부. 결과

리브랜딩

69 해인 리브랜딩이란, 휘둘리지 않는 동시에 유연해지는 작업의 총체인지도. 모쪼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리브랜딩이 사랑을 받으리라는 확신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옛날 버전이 더 나았는데?’라는 혹평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마감

71 해인 마감에 대한 고통은 내가 최소한의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인가 라는 의문으로 확장된다. 제때 마감을 들고 도착한 나를 맞이한 사람은 차분히 바통을 이어받아서 이어달리기하면 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목을 빼고 나를 기다리던 사람은 뒷목을 잡고 달려야만 한다. 돌고 도는 트랙 위에서, 그런 식으로 마감은 적어도 둘 이상으로 이루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시민의식을 고취하기도 하고 또 반대의 이유로 꺾기도 한다. 더 늦기 전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까. 그런 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비용

76 구구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이 인정하지 않는 항목은 작업자가 비용으로 상정하더라도 결코 비용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의 통장에 찍히는 비용은 자본의 승인을 받은 금액뿐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79 해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쓰기 좋은 때는 결과물을 이미 손에서 떠나보내어 적당히 거리 두기가 가능하면서도, 작업 기간 동안 의미 있던 세부 사항을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작업 공개일로부터 너무 ㅁ러어지지 않은 시기다.

성장

80 구구 작업자에게 가장 자주 요구되는 덕목. 기록, 회고와 같은 용어들 역시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소비된다. 작업자는 작업을 하지 않고 있는 순간조차 성장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에 작업자들은 일상의 작은 편린마저 작업의 일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다. 작업자들은 매일을 작업의 소재로 삼기 위해 분투하고, 꾸준한 기록과 회고를 통해 작업과 일상을 꼐속해서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ㅈ오 성장은 아주 오래전에 쏘아버린 화살이 삶이라는 과녁에 꽂히듯 매일을 착실하게 살아내는 와중에 찾아오기도 한다. 강박을 버리고 매일을 그저 쌓아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작업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성장의 제1조건이다.

유료화

85 해인 자기 작업물에 부과되어야 할 합당한 가치를 셈하다가 지쳐버린 창작자는, 역시 돈이 안 되는 일이 사장 재미있다는 결론을 붙들게 된다.

전문성

85 해인 작업자들이 저마다 하나씩 걸치고 있는, 남들 눈에는 보이지만 자기 눈에만 보이지 않는 신비한 투명 망토. 나만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이는 주변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그 전문성이라는 게 이미 자기 어깨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3부. 관계

바이오

97 해인 물론, 바이오 영역을 빈칸으로 두는 이용자도 있다.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차라리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기를 택한 쪽으로 해석된다.

지인

101 해인 지인은 프리랜서 작업자인 내게 함께 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제안해 주고는 한다. 고마움이 흘러넘친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지만 아무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걸, 인생의 작동 방식은 ‘외딴섬처럼 살기’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커뮤니티

103 해인 다정하지만 치열하게 임할 수 있는 자기소개 훈련의 장. 나는 2020년 이후로 일하는 여성들이 모인 몇 군데의 커뮤니티에 속하면서 대체 불가한 즐거움을 얻었다. 그중 최고의 가치는 막연하게 늘언호던 자기소개가 구체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내가 이것저것을 하는 살마이라고 해서 단지 ”이것저것을 하고 있는데요“라고만 표현하지 않기까지는, 사람들 사이에 무작위로 섞여서 나를 소개하는 연습이 간절히 필요했다.

타깃

104 구구 화살에 꽂힌 인간은 피 대신 돈을 토하며 시장의 논리에 충실히 복무할 뿐이다.

105 해인 대중을 메이저와 마이너로, 고객을 밀레니얼과 Z와 알파로 나누는 공고한 분류법 앞에서 타깃은 생각한다. 나는 여럿 중 하나가 아니라 ‘나’로 존중받고 싶다고.

4부. 표현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124 구구 1인 작업자는 작업뿐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며, 실패 또한 온전히 감수해야 하므로 애초에 그냥 한다는 것은 판타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