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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사랑

2024-08-02 저자: 정예인 출판사: 글항아리

🔖 책갈피

8 편집자로 일해오면서 늘 독자를 고려하며 책을 기획하고 편집해왔지만 작가로서의 나는 독자를 고려하며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독자를고려하면 나는 아무엇도 쓸 수 없다.

8 설사 내가 더 외로워질지라도, 누군가는 덜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21 어차피 내가 쓴 글은 그래봤자 나라는 세계이자 한계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다만 그 한계와 제약이 만들어낼 고유성을 믿어보기로 한다.

29 설명하는 삶에 지쳐버렸다. 지쳤다는 건 결국 오랫동안 끈질기게 시도하고 노력해왔다는 뜻이다. 믿음과 우정과 사랑과 인류애 그리고 그 비슷하게 좋은 것을 다 그러모아서 사람들에게 ‘다른 모양의 삶’이 있음을 알리고 납득시켜보려고 한참 애를 써봤는데 ‘이해시키는’ 데에는 전부 실패했다. 이런 방면으로는 좀처럼 포기를 모르는 나지만, 애초에 이해시키려는 건 내 욕심임을 천천히 알아가게 되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니 화가 나거나 괴로울 일이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136 ‘다시 일을 좋아하고 싶다. 잘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잠깐 멈춘다.’ 예전의 나라면 절대로 할 수 없을 결정.

138 이 휴가가 끝나면 모든 게 꿈처럼 흐릿하게 날아갈까? 이후에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조금이라도 달라질까? 나아질까? 전력 질주하지 않고 오래오래 씩씩하게 걷고 싶다.

153 그는 물리적으로 나와 한 공간에 있기만 해도 만족하는 반면 나는 그것보다는 연결감, 통하는 느낌, 서로를 향한 관심 같은 것에 매달린다.

182 이 순간에는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보다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나에게 더 중요했나보다.

187 원가족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으로 묶여버렸다는 점에서 어딘가 억울하게 느껴지는데, 선택가족이라는 옵션이 더해지면 내가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볼 가능성이 생긴다.

190 가족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계속 새롭게 만들어 지는 것이다.

192 우리 삼총사는 종마저 초월한 퀴어가족이고 이 관계에서 안전감, 안정감, 안락함을 느낀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지는 못한다. 그 사실은 나에게서 안전감, 안정감을 빼앗고 불안과 소외감을 더한다.

195 오래된 관계가 큰 국면을 맞이해 막 변화할 때, 나로 인해 나의 원가족에게까지 상실감을 안기게 되어 서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대로 맛있는 콩가루 집안이다.

200 성인이 되고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①내가 아무것도 아닌 걸 알게 되고 ②그걸 받아들이고 ③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데 온통 쓰고 있다(아직도 해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205 여자는 글을 써야만 살 수 있으며 그렇게 자기 세계를 만들기 시작하면 현실과 충돌하고 계속해서 분열할 수밖에 없다.

206 구리고 별로인 나를 견디기. 그걸 계속해야 한다. 어른의 삶이란 그냥 그런 것이다. 그걸 잘하는 게 짱이다. 내 성에 안 차는 나를 참아주기 위해, 아무것도 아니어도 열심히 살아도 된다고 허가한다. 열심히 사는 것처럼 안 보여도 이게 나의 열심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열심 없이 어떻게 사는지 알지도 못한다.

208 모든 관계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려니 기력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이별은 개슬프다. 그래도 나만 슬펐으면 좋겠다. 나만 슬프다면 차라리 괜찮다.

221 하여간 이들(나로 살기 위해 분투하는 여자들)에게 쓰지 못한다는 건 아무것도 못 하는 것과 같다. 쓰는 일만이 유일하게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권력이니까.

227 그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그다지 바라는 바가 없는 사람처럼 굴었지만, 실은 비관과 체념이야말로 오히려 희망과 기대를 선명히 품었던 사람이 잘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애시당초 위험한 씨앗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