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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

2025-02-10 저자: 마사 누스바움 출판사: 알에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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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홍성수, 세상을 바꾸는 단초

5 사회가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누스바움은 두려움이 증오, 혐오, 분노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9 세상을 분석하는 건 이론과 논리의 힘이겠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렇게 간절한 호소가 서로의 마음이 동하게 만들 때 가능할 테다.

서문

12 내 마음을 살펴보니 두려움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며, 모호하고 다양한 형태의 두려움이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려움이 더 심각한 감정인 분노, 혐오, 시기와 같은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 어떻게 그런 감정을 생산하는지에 대해, 확신하긴 이르지만 곧 정리할 수 있을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장 오해 아닌 이해를 위하여

28 사람들은 삶의 기준이 낮아지고 있다고 느낄 때 그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대면하기보다 절대자인 악당에게 매달리거나 환상을 품는다. 우리가 벽을 세워 ‘그들’을 막을 수 있었다면, 혹은 ‘그들’을 굴종하는 자리에 묶어놓을 수 있었다면, 긍지를 되찾고 남성성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 이렇게 두려움은 유용한 분석 대신 공격적인 타자화 전략으로 이어진다.

29 첫째, 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미국 사회는 결코,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 적이 없다. 장기간의 노력과 협력, 희망과 연대로 가능한, 여전히 꿈틀거리는 열망이자 과정일 뿐이다. 정의롭고 포용적인 미국은 한 번도 현실에서 온전히 존재한 적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둘째, 지금 이 순간 평등을 향한 우리의 행진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대재앙을 목도한 상황은 아니다. 희망과 노력으로 위대한 선을 완수해나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정파에 상관없이 공포는 위험을 과장할 뿐만 아니라 그 과장이 실제 재난으로 이어지는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29 (…)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를 두려움과 의심과 비난이 압도해버린다. 그 감정 자체가 문제가 되어 경청과 노력과 협력을 가로막는다.

33 절대 왕정은 아래로부터의 두려움을 먹이로 삼습니다. 군주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복종을 이끕니다. 외부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자발적 예속을 가능하게 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돌봄과 보호를 원하니까요. 그들은 보호받기 위해 강력한 절대 군주에게 의지합니다. 반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며 모두가 수평적 신뢰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신뢰는 단순한 의존이 아닙니다. 노예들은 주인의 잔인한 행동에 의존할 수 있지만 주인을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신뢰는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고 각자의 미래를 동료 시민들의 손에 기꺼이 맡긴다는 뜻입니다. 절대 군주는 신뢰를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34 사람들은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낄 때 통제력을 움켜쥐려고 합니다.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38 철학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겸손한 마음을 바탕으로 진실하게 논쟁을 주고받겠다는 약속이다. 평등한 인간으로서 기꺼이 상대의 의견을 듣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성찰하는 삶을 뜻한다. 이와 같은 소크라테스식 개념에 따르면 철학은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위협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 공허한 주장을 하지 않되, 듣는 이가 언제든 반박할 수 있는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사고의 구조를 세운다.

40 감정은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도 있지만 협력을 증진하거나 정의를 향한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규범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이는 우리가 정치적 감정을 직접 만들어갈 여지가 크다는 뜻이므로 좋은 소식이다. 동시에 게으르고 호기심 없는 이들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두려움, 증오, 분노, 혐오, 희망, 그리고 사랑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고 그러한 감정이 민주주의적 열망을 약화시키거나 차단하기보다는 뒷받침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느끼는 과도한 증오나 두려움에 대해 “미안하지만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인종 혐오, 여성 멸시,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 장애인을 혐오하는 감정들 중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을 수 있으나 앞으로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지 않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한다. 온당한 사회라면 사회 제도를 설계해 집단적 증오를 최소화할 방법에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 다른 많은 이슈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증오와 혐오를 유발하는 정책 대신 희망, 사랑, 협력을 장려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41 그가 요구했던 사랑은 선한 의지와 희망이 인류에 대한 존중과 결합되는 것이었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스스로 사고하며 결국 아름다운 목표를 위해 뜻을 같이할 사람들로 타인을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철학은 바로 이 목표와 희망을 공유한다.

2장 생애 최초로 마주한 두려움

50 필요한 것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이 그것을 제공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55 약간의 짜증이나 불편함을 넘어선 분노를 느끼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에게 어떤 일을 했으며 그 일은 잘못되었다는 인과적 사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지각만 있으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곧 닥칠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일에 대한 괴로움과 이를 물리칠 힘이 없다는 무력감의 결합이 두려움이라고 정의했다. 두려움을 인식하는 데 언어는 필요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모호해도 괜찮은 감각만이 필요하다. 나쁜 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나는 꼼짝할 수 없다는 것.

59 두려움은 사실 지독한 자기애적 감정이다. 어떤 형태로 뿌리내리든 타인에 관한 모든 생각을 몰아낸다. 유아의 두려움은 전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란 후에도 두려움은 타인에 대한 걱정을 몰아내고 자신만 생각하는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 우리를 되돌린다.

60 물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염려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확장일 뿐이며 자신에게 강렬한 고통이 닥치면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다.

74 유한성에 대한 인식이 루소가 간절히 열망했던 연민과 호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76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그들의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고 심리 상태에 알맞은 말을 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77 두려움은 자신의 행복에 위협이 임박했다는 생각 때문에 생겨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가올 사건이 생존이나 행복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인식할 때, 그 일이 곧 닥칠지도 모르며, 실제로 발생한다면 상황을 통제할 수도 물리칠 수도 없다고 느낄 때에만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정치인들에게 말했다.

79 루크레티우스는 정복 전쟁이 인간의 취약성과 무력함 때문인 경우가 ㅁ낳다고 말했다. 적이 소멸되면 안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81 그렇다면 해로운 정보 폭포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정확한 사실과 이를 토대로 한 공개 토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으로서 반대할 수 있는 독립 정신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언제나 반대하는 이들을 위협한다. 두려움은 사람들을 지도자의 품이나 동질 집단의 품에서 위로를 구하며 숨어들게 만든다.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혼자 발가벗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82 반대하는 정신에 대해, 그리고 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위해서는 우선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고 기꺼이 혼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93 상호 의존과 평등을 중심으로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인간이 탄생과 함께 겪는 나르시시즘을 극복해야 한다. 타인을 노예로 삼으려는 욕망을 배려와 선한 의지로 대체하고 유아기적 공격성의 한계를 수용해야 한다.

3장 두려움이 낳은 괴물, 분노

106 모든 인간은 이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무력하고 우주는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과, 나는 독재자이며 모든 사람이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무력한 신체, 자기애,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의 조합이 그 모순을 만들었다. 이는 ‘정당한 세상’이라는 미숙한 사고의 형태로 나아가 삶의 고난과 불운 앞에서 타인을 비난하는 경향으로 평생 지속된다.

108 하지만 분노의 이 두 가지 요소는 분리될 수 있다. 피해를 되갚아주겠다는 마음 없이 잘못된 행동이나 부당한 사건 자체에 분노하는 것도 가능하다. 올바른 신념에 따른 분노라면 개인적·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인식하고 중대한 규범이 위반되었을 때 항의할 필요가 있다.

‘이행 분노 Transition-Anger’

  • 복수라는 소망에서 자유로운 한 가지 분노
  • 항의를 통해 앞으로 전진하기 때문
  • 이미 지나가버린 고통을 숙고하기보다 해결 방법을 찾는 분노

110 고통을 고통으로 갚겠다는 것은 손쉬운 생각이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더 많은 고통만 양산하는 거짓 유혹일 뿐이다.

110 배신한 쪽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벌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가? 배신 당한 쪽의 삶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 집착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리고 심지어 더 쓸쓸해지거나 참담해지기도 한다. 보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미래의 행복과 자기 존중을 원한다. 하지만 보복으로는 결코 이를 이룰 수 없고 세상을 훨씬 암울한 곳으로 만들 뿐이다.

114 명성과 달리 존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빼앗을 수도 없다.

126 많은 백인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그들의 자유와 우리의 자유가 분리될 수 없습니다.”

126 이 연설에도 분노는 담겨 있었고 이는 보복의 형태로 쉽게 변형될 수 있었다. 하지만 킹은 응보주의를 곧바로 노력과 희망으로 재편했다. 압제자의 고통과 추락은 고통받는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정의를 향한 지적이고 창의적인 노력만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129 이 진보적 운동에서 중요한 점은 킹이 그랬던 것처럼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동료 시민들의 말과 행동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다.

4장 혐오와 배제의 정치학

162 스스로 인종 차별 주의자가 아니라고 믿는다고 해도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164 혐오는 대상에 대한 환상을 먹고 자라므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이를 없앨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72 또한 <모던 패밀리>를 보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고 동성 커플도 아이들을 사랑하며 전통과 격식보다 사랑과 회복력 유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인종 문제와 관련해 진화하고있는 우리 사회에는 비극도 필요하지만 희극도 필요하며, 좋은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비극과 희극을 아우르고 있다. 인종과 성적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혐오와 낙인을 한꺼번에 다룬 오스카상 수상작 <문라이트> 같은 장편 영화가 그렇다.

5장 시기심으로 쌓아 올린 제국

176 시기는 ‘내가 잘살기 위해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외치며 사회적 협력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든다. 이는 형제자매 사이의 시기심과 비슷하며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시기하는 아이는 사랑과 관심을 원한다기보다 다른 형제자매가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한다.

177 시기는 긴장과 적대감을 초래하고 이 적대감은 궁극적으로 사회가 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된다.

181 나는 시기심이 불확실성에서 태어난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그 뿌리는 두려움이다. 즉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두려움이다. 인간이 완전하다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시기도 없을 것이다. 혹은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필요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한다면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시기의 힘을 이해하기 위해 불확실성과 무력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86 클라인이 밝혔듯이 시기는 개인의 삶에서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그녀의 분석은 롤스의 사회적 분석과 놀랍게도 일치한다. 시기는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아가 성장하면서 원하는 대상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시작하면, 파괴적인 소망 대신 너그러움, 창의성, 사랑과 같은 건설적인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면, 시기심의 고통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여전히 유혹은 있겠지만 시기심이 삶의 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189 또한 경쟁 대신협력이 필요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드라마나 음악 등의 예술 과목을 육성해야 한다.

202 이와 같은 정치적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세 가지 측면을 살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은 그들이 살아가는 제도에 반응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측면은 상호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치 제도는 사람들이 시기심을 거부하면서 해밀턴과 같은 길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항르 한다. 포용 또한 정치 제도의 역할이다. 국가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소외되었던 집단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통해, 그들 역시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능을 발산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204 루스벨트는 이 권리들이 시기심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한다고 생각했다. 개개인 모두 당연히 갖고 있는 것을 시기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경제재 몇 가지에 대한 권리 보장이 시기심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린다. 시기심이 만연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205 시기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감정은 인간의 불안한 삶 자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인간관계든 정치계든 순수함에 대한 추구가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한 증오의 해결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시기심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자라지 않는 조건, 사랑과 창조적인 업적을 국가의 길을 밝히는 조건으로 만들어 시기심의 고삐를 묶어야 한다.

6장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

226 여성 혐오는 견고한 이해관계를 지키겠다는 남성들의 결심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성차별적인 믿음을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도구가 가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므로 여성 혐오자들은 이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더 열등하다는 믿음 없이도 여성들을 아내이자 엄마, 성적 대상으로 한정하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231 소년이 여성은 가정에 있어야 한다는 성차별주의에 기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문제는, ‘네 자리로 돌아가라’는 여성 혐오다. 여성들이 내 삶을 뒤흔든다는 깊은 불안과 분노가 뒤섞인 상태다.

232 일부 여성들은 가족 돌보기를 우선하지 않고 개인의 독립과 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여성들을 도덕적 종교적 이유로 반대한다. 이기적인 ‘규칙 위반자’들을 비난한다. 가끔 그 비난은, 전통적인 임무를 우선하면서도 사실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 때문에 더 불이 붙는다.

232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정에서 아이들을(가끔은 나이 든 부모를) 돌보기로 한 모든 배우자를 존중해야 하지만, 남성에게는 선택권을 쥐어주면서 여성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말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평등한 사회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태도다.

24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유독한 감정들의 조합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한 모든 감정을 뛰어넘어 모두를 위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전략이다.

7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간다

251 나는 생각으로 멈추지 않고 실제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다. 희망은 무기력해서는 안 되고 무기력할 수도 없다. 희망은 행동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 이런 소규모 행사들이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거대한 추상보다 작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감정적 자양분을 얻는다. 삶 전반에서 선하고 유용한 어떤 것이든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감정적 자양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254 하지만 깊은 사랑을 간직한다는 것은 곧 두려움과 희망에 사로잡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때로 깊은 슬픔에도 사로잡힌다. 우리는 희망과 두려움을 거부하는 스토아학파의 관점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희망과 두려움이 사촌 관계라는 그들의 입장은 인정해야 한다. 두려움이 있는 곳에 희망도 있다.

255 두려움은 일어날지도 모르는 나쁜 결과에 집중하고 희망은 좋은 결과에 집중한다.

255-256 나는 희망이 좋은 세상에 대한 비전과 이를 위한 행동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희망과 관련된 행동은 간혹 두려움으로 인한 행동과 비슷하다. 나쁜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은 좋은 가능성을 불러오는 것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256 그런 희망은 헛된 꿈일 뿐이며 작업에 돌입하는 일을 미루게 만들 뿐이다. 일은 하지 않고 감정과 환상에만 빠져 있는 사람보다 특별한 감정적 태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편이 낫다.

  • 현실적 희망과 게으른 희망

256 희망의 아름다운 상상과 공상은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한 행동을 추동한다. 이와 같은 동력 없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두려움과 희망의 차이는 미미하다.

257 희망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늘 선택의 문제다. 그렇다면 무엇에 집중하고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260 희망은 선택이고 현실적인 습관이다. 결혼이든 직업이든 인간관계든 인간이 겪는 모든 상황에는 언제나 좋은 것과나쁜 것이 뒤섞여 있다.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우리의 감정적 상태에 달려 있다. “정말 끔찍해.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삶의 실패에 집중할 수 있다. 반대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괜찮은 부분에 집중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두려움으로 미래를 기다릴 수도 있고 “정말 멋질 거야”라고 희망을 품은 채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다.

두려움 뒤에는 희망이 있다

261 희망은 두려움의 반대편에 있다. 둘 다 불확실성에 반응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그 결과 희망과 두려움의 작용은 무척 달라진다. 희망은 전진하고 두려움은 물러선다. 희망은 취약하고 두려움은 자기방어적이다. 모든 사람이 희망을 품으면서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 친구들, 가족들에 대한 희망을 품지만 동시에 나와 이들의 건강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같은 목표를 향한’ 희망과 두려움의 차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의와 번영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한 미국의 노력에 대해서 말이다. 같은 결과를 지향하지만 희망과 두려움은 극히 다르다. 스위치의 작용과 비슷하다. 같은 것을 동시에 희망하거나 두려워할 수는 없다. (희망의 시기와 두려움의 시기를 오갈 수는 있지만 말이다.)

두려움은 타인의 독립성에 대한 믿음보다 통제하고자 하는 군주의 욕망과 비슷하다고 이미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은 통제하려는 사람, 군주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내 욕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무엇도 좋지 않으며 불확실성과 취약성의 여지도 없다. 여기에 희망은 없다. 내가 원하는 것 전부를 갖지 못했으며, 신뢰할 수 없는 타인이나 기회에 의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의 정신은 타인의 독립성에 대한 존중, 군주적 야망의 포기, 마음의 확장과 연결되어 있다. 스토아학파는 희망이 ‘확장’과 ‘고양’이라고 말했다. 시인들은 희망을 비상과 연결시킨다. 인도의 시인이자 철학자 라빈드라낱 타고르는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에게 ‘기회의 바다로 두려움 없이 들어간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희망의 모습이다.

262 하지만 미래를 향한 두려움에 가득 찬 접근은 결과를 통제해줄 누군가의 보호나 독재적 지배자를 구하게 될 위험을 내포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인종 문제의 미래를 두려워하는 시선이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는 희망의 스위치를 켜서 평화와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선한 결과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64 믿음은 비현실적이거나 이상적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목표는 빨리 이루어지지도, 우리 시대에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의미 있는 전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인류가 결코 유지할 수 없는 완벽한 정의처럼 목표가 비현실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희망은 절망과 냉소로 이어지기 쉽다. 진실한 삶이야말로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다. 결점 많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혹은 실제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전부 포용하는, 믿음으로 강화된 희망을 품어야 한다.

265 킹은 완벽한 세상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의 가능성을 믿으라고 촉구했다. 이에 따르면 현실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희망이 품어야 할 이유다. 이상주의는 절망의 전조이므로 희망과 믿음은 가까운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

265 인간관계에는 더 섬세한 믿음이 필요하다. 성 바울의 말대로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면 타인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만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상대에게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고 그 역시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보이는 것은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하나의 형태일 뿐이다.

266 내가 언급했던 믿음과 비슷한 형태의 사랑은 바로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최소한의 선을 행하고 또 변할 수 있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266 킹이 언급했듯이 행동과 행동하는 사람을 분리하는 일이 이 사랑을 돕는다. 악한 행동을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행동 이상으로 성장과 변화가 가능한 존재다.

267 사람들은 선한 행동을 기대받으면 보통 그 기대에 맞춰 살아가려고 한다.


271 미국의 국민 시인이라고 불리는 월트 휘트먼은 미국에 시인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인들은 ‘다양성의 중재자’,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평형을 맞추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휘트먼은 내가 언급했던 사랑의 습관을 시인들이 직업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보이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진실로, 한없이 복잡한 존재로, 에고와 분리해 바라본다. 이와 같은 사랑은 반 자기애적이다. 신비하고 무한한 복잡성을 ‘타인’들과 서로 나누고, 동시에 개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하고 존재하게 한다.

272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설가 랄프 엘리슨은 자신의 위대한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이 미국의 ‘민주주의적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길을 막고 있는 통나무와 소용돌이’를 극복하는 ‘희망과 인식, 즐거움의 뗏목’이라고 말했다. 뗏목은 허클베리 핀과 노예 짐이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상대를 끔찍한 형상이나 무기력한 신체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사고가 담긴 호수로 인식하게 되는 미시시피강 여행에 대한 훌륭한 상징이다.

엘리슨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영웅이자 이름 없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라며 소설을 연다. 그리고 자신이 유령은 아니라고 말한다. 신체가 있고 ‘마음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단지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은 나를 둘러싼 거울에서 ‘나의 주변, 그들 자신, 그들의 상상 속 허구,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본다고 그는 말했다.

275 문학은 고독한 사색의 순간 내면의 눈이 되어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동적이고 적극적인, 함께 창조할 수 있는 경험도 필요하다.

275-276 예술이야말로 인간의 다양성을 자연한 운명으로 여기며 피하지 않고, 즐겁고 유쾌하고 안타깝고 기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리가 된다.

278 소크라테스의 추론은 듣는 세상, 고요한 목소리, 이성에 대한 상호 존중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희망을 실천하는 것이다. 함께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논쟁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공유한다. 용기에 대해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고 진짜 용기가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했다.

(…) 상대편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정치적 논쟁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켰다고 그는 말했다. 이제 그는 상대를 존중하고 그들의 논리에 호기심을 갖는다. 막상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면 양측이 어떤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어디서부터 차이가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86 역량 접근법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역량의 관점으로 정의하며, 최소한의 정의가 존재하는 사회라면 모든 시민이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 생명: 일찍 사망하거나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만큼 초라해지지 않는 상태로 평균 수명까지 산다.
  2. 신체 건강: 생식이 가능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며 적절한 영양과 주거를 보장받는다.
  3. 신체 보전: 자유로운 이동, 성폭력이나 가정 폭력 등으로부터의 안전, 성적 만족감과 생식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보장받는다.
  4. 감각, 상상, 사고: 기본적인 수학, 과학, 문자 훈련 등의 적절한 교육으로 함양된 인간적인 방식으로 상상하고 사고하고 추론할 수 있다. 종교, 문학, 음악 등 스스로 선택한 경험과 사건과 관련된 상상력과 사고를 활용할 수 있다. 정치적·예술적 표현이나 종교와 관련된 정신적 자유를 보장받는다. 즐거운 경험을 누리고 해로운 고통은 피할 수 있다.
  5. 감정: 자신 이외의 사람이나 사물에 애착을 갖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들을 아끼고 그들의 부재를 슬퍼한다. 사랑과 슬픔, 갈망과 감사, 정당한 분노를 적절히 경험한다. 두려움과 불안이 감정적 성장을 훼손하지 않는다. (이 역량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인간의 성장에 중요한 유대 관계의 형태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6. 실천 이성: 선의 개념을 형성하고 각자 삶의 계획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종교 의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7. 관계:
    1. 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하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공존할 수 있다. 타인의 처지를 상상할 수 있다. (이 역량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관계를 구성하고 확장하는 기관들을 보호한다는 뜻이자 집회와 정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이다.)
    2. 자신을 존중하고 모욕당하지 않을 사회적 기반이 있다. 타인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 존엄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위해서는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민족, 계급, 종교, 국적에 따른 차별 금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8. 인간 이외의 종: 동물과 식물, 자연계에 관심을 갖고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간다.
  9. 놀이: 웃고 놀고 오락 활동을 즐긴다.
  10. 환경 통제:
    1. 정치적: 개인의 삶을 좌우하는 정치적 선택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정치 참여의 권리가 있고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2. 물질적: (동산과 부동산 등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으며 타인과 동등한 재산권, 동등한 고용 기회를 갖는다. 부당 수색 및 압류에서 자유롭다. 직장에서 실천 이성을 행사하고 다른 직원들과 서로 존중하는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며 근무한다.

293 낙인은 보통 친밀한 접촉의 부재로 발생한다.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낙인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젊은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급속히 줄어들었다. 이제 그와 같은 낙인은 사라져야 한다. 인종, 계급, 나이에 대한 낙인도 마찬가지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