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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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합리성은 종종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얼마만큼 있는가로 결정되기에, 기득권은 사회의 모든 갈등에서 더 ‘합리적인’ 주장을 하기 쉽습니다. 근거는 지식의 형태로 존재하고,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시간이 투여되기 때문입니다.
7 언어가 무기가 된다는 말. 낯설고 두려운 표현이지만 누군가를 괴롭히고 상처를 입히는 무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는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데 힘이 되는 무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1부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33 타인의 삶을 내 경험에 따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일은 고 황현산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고 자기 경험치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전선은 하나가 아니다.
36 과학이 절대적으로 옳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한 시대의 가용한 자원을 활용한 최선의 설명이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말하건대 우리의 연구는 과학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51-52 명시적 편견 explicit bias 과 암묵적 편견 implict bias
명시적 편견은 의식적 수준에서 인간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나 믿음을 뜻합니다.
반대로 암묵적 편견은 무의식적 수준에서 가지고 있는 태도와 믿음을 뜻합니다.
55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기에 따돌림, 차별, 폭언과 같은 자극은 연구 윤리상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요건 중, 스트레스 호르몬을 가장 크게 증가시키고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까지 가장 오래 걸리는 급성 자극은 다름 아닌 사회적 평가 위협 social evaluate threat 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위협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혈압, 우울증, 심장병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가장 크게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58 저는 이 결과를 볼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과 한국인은 인종차별 성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검열과 긴장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암묵적 편견을 바꾸는 길은 권력의 적극적인 재분배를 통해 소수자의 삶을 바꾸어 내는 것과 함께, 우리 스스로가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나 역시 내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하며 행동하는 일이라고요. 차별하는 줄 모르고 하는 차별 행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저는 차별금지법이 그 인식과 경계와 행동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62 이 사건을 둘러싼 시스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비난해도 저항하지 못하는 가장 약한 존재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 분노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교사가 선하지는 않고 모든 학생이 선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인 공동체가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의 문제점을 상세히 따져보지 않고 교사 개인과 학생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직관적이고 쉬운 일입니다. 그만큼 폭력적이고, 또 그만큼 문제 해결로부터 멀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63 역사 속에서 그 싸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격리하고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었고, 그렇게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67 “한 인간이 이상을 좇아 떨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불의에 맞서 싸울 때마다, 희망의 작은물결 ripple of hope이 세상에 보내진다. 그렇게 쌓인 물결들은 억압과 차별이라는 가장 강력한 장벽조차 무너뜨리는 파도를 만들어 낸다.”
72 소수자들은 차별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행위와 무관하게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하고 그 긴장은 삶을 지배한다.
77 고정관념을 가진 대상을 계속해서 직접 만나 관계를 맺는 것 역시 내재적 편견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동체에 존재하는 부정적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미디어를 통해 고정관념을 바꾸려는 시도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TV에서 게이나 레즈비언을 매우 매력적으로 그릴 때, 동성애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78 윌리엄스 플라톤은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만큼 불공정한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적극적 우대정책이 없다면 불평등이 계속 유지된다. 적극적 우대정책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대에 서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수단이다.
89 코리건 단기적으로는 혐오 발언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동성애자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정신질환 역시 당사자가 사회에 나오고 존재를 드러내야 낙인을 줄일 수 있다.
96 만남이 상호 이해로 이어지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는 그 만남이 위로부터의 지지를 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97 근거는 언어의 형태를 한 지식으로 표현되는데, 그 지식의 생산에는 자본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동권 투쟁에 나선 장애인을 비난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처럼, 공동체가 오랫동안 누적된 차별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할 때, 차별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당사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와 기회를 빼앗깁니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 합리성과 억지를 구분하는 ‘합리적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2부 지워진 존재, 응답받지 못하는 고통
108 사회적 약자들의 싸움에 연대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의 투쟁을 함부로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된다. 연구자는 이미 존재하는 사실관계에 따라서, 그 데이터에 기반해 세상을 이해한다. 그런 합리성은 종종 보수적인 현실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역사는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의 질서에 도전하며 판에 균열을 만들어 낸 이들이 열어왔다. 많은 경우, 연구자의 언어는 그 변화를 사후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124 폭력의 원인이 되는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닌, 또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요.
144 기관에서 사후 조치를 한다고 해도 민원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관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후 조치를 할 경우 구급대원은 내가 속한 조직이 내 편에 서서 행동한다는,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가 속한 조직이 내가 당한 폭행을 심각한 일로 인식하고 부당한 현실을 함께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구나’하고 말입니다.
158 연구자들이 밖으로 나가서 일하는 이들의 삶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61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회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푸는 대신, 큰 칼을 휘둘러 자르는 것은 칼을 휘두른 이를 영웅처럼 보이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웅적 결정은 종종 상황을 악화시킨다.
3부 한국 사회의 ‘주삿바늘’은 무엇인가
170 바뀌어야 하는 건 동성애자의 성적 지향이 아니라 전문가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윤리를 어기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라고. 그런 이들은 우리 연구팀이 같은 데이터를 이용해 한국에서 전환 치료가 성소수자의 우울증 및 자살 생각과 자살 시도를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인다고 출판한 결과는 읽지도 인용하지도 않는다.
172 연구가 피해자 집단의 고통을 가중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폭력이 남긴 폐허 위에서 상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 물어볼 수 있는 것일까?
176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질병권의 개념은 질병을 경험하는 인간이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필연적으로 아프고, 질병을 갖게 된다. 그것은 예방할 수 있는 불행한 일이 아니라, 생명체가 살아가고 또 늙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은 온전하지 못한 삶인가? ‘치유’되지 못하는 질병을 가진 이들은 내내 그 멍에 속에서 허우적대야 하는가?
178 “(…)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생산되지 않은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누군가가 매우 의도적으로 준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와 내 동료들이 변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하며 당장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현실이 변화할 가능성은 요원합니다.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과학의 자정능력도 실은 그 구체적인 과정을 바라보면 누군가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82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정책을 실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뉴욕시 보건담당 부서는 실현 가능하면서도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HIV/AIDS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휘둘리지 않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정책을 고안했습니다. 이 같은 노력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188 인간은 질병 이상의 존재이고,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간 역시 잘라낼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지요.
188 한국 사회의 HIV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첫걸음은 혐오와 사회적 낙인을 거두고 그 바이러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난 수십 년간 과학 연구를 통해 인류가 알게 된, HIV 감염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191 나는 이 글이 비감염인이자 비장애인인 세 사람이 HIV 감염과 장애에 대해 나눈 기록이라는 한계와 함께, 현장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살아온 두 활동가의 시간이 쌓아온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204 하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이미 고착화된 세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가능성을 말하며 그 강고한 장벽에 몸을 부딪치면서 만들어 내는 균열이라고 생각합니다.
210 특정 집단에서 어떤 질병의 유병률이 높다고 그 집단을 병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또한 예방 차원에서 병의 원인은 변경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질병은 나이가 들면 발생 위험이 늘어난다. 그러나 나이 듦이 원인이니 나이를 줄이자고 제안할 수도 없고, 제안해서도 안 된다. 나이는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 같은 성적 지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인정해야 할 존재의 일부이지, 바꿀 이유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211 특정 집단을 원인으로 지칭하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고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복잡함을 직시하는 ‘불편함’은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요소이다.
215 “우리는 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인종을 포함한 여러 정보를 이유로 그 사람에 대해 쉽사리 판단하곤 합니다. 스스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가 상대방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고정관념은 편리한 만큼, 그릇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228 종걸 누군가를 법에서 배제하자는 건 어떤 차별을 합법적으로 승인하는 효과를 낳는다. 당시 사태가 한국 사회에서 혐오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229 김승섭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등장했을 때 우리가 그걸 가볍게 넘어간다면, 그 효과는 이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다양한 소수자 학생들 역시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을 때 학교가 보살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신호를 주어서는 안 된다.”
229 미류 평등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혼자 하려면 너무 힘들다. 어떤 행위를 차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공동의 상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의식적·무의식적 훈련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
239 더 나은 내용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그 내용을 사람들과 나눌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4부 우리의 삶은 당신의 상상보다 복잡하다
254 김승섭 피해자가 피해를 겪고도 계속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무지한 것이지요. 당당하고 확신에 찬 생존자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거 같아요.
260 김승섭 저는 그 말이 임 검사가 서 검사에게 건네는 위로였던 거 같아요. 적어도 나만은, 당신을 이해해 줄 수 있다는.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연대랄까요. 그 자리에 함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요.
265 김일란 제가 세월호 참사 146일의 기록으로 집회 영상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 영상의 주제가 ‘당신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고통에 연대할 수 있습니다.’ 였어요. 저는 과거에 오랫동안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처럼 동일시하여 연대해야 한다는 당위를 간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당위는 현실에서 상대와 나의 차이를 확인하는 좌절로 이어졌어요. 돌이켜 보면 그건 실패가 예정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오만한 태도였어요.
289 김승섭 살아가면서 어떤 사건을 만나게 되고, 그 사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이 경험 때문에 다음 일을 하게 되는 거예요.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 연구를 하다 보니까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고, 트라우마 연구를 했다는 이유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을 만나게 되고, 그 연구가 천안함 생존 장병으로 이어졌어요. 제 입장에서는 매번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한 것뿐인데, 밖에서 보면 어떤 의지와 신념이 있어서 커다란 문을 여는 걸로 보이는 것 같아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297 김승섭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과의 싸움.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는 이들과의 싸움. 우리가 당연히 세월호도, 천안함도, 변희수 하사 사건도 깊게 모를 수 있어요. 타인의 고통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러면 조금 침묵하고 기다릴 수 있잖아요. 판단을 유보하고 배워가야지요. 우리가 그만큼 알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면서 상대방을 모욕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몇몇 정치인은 그 저열함에 기대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 특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요. 하지만 나에게 편견과 고집이 있다고 해서 공공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마구마구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타인의 삶에 대해 판단할 때, 마땅히 지녀야 할 조심스러움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그 조심스러움이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 같고요.
300 김승섭 생존 장병들이 58명이었고 지금 전역한 사람이 34명인데, 그들은 다 달라요. 생존 장병들이 바라는 게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모든 참사나 재난에서도 각 인간은 고유하거든요. 개인마다 고유한 관계와 역사와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욕구와 고민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공통의 사건을 겪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여길 때가 많아요. 물론 공통의 요구 사항은 있겠지만, 우리가 피해자를 대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303 사람이 나아가는 건 답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질문을 잃지 않아서 나아가는 거예요. 중요한 질문들을 놓지 않고 있어서, 삶에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어서 그 긴장으로 나아가는 거거든요.
(…)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좋은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 글을 써서, 우리 모두 시스템의 일부였기에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미래도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304-305 만약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게 100인데 10밖에 못 왔어요. 그럼 90만큼 남았다고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0만큼 견디고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세상이 나아가는 건 항상 힘겹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이루어 낸 작은 성과들, 어렵지만 겨우겨우 버텨낸 무언가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지 않으면 우린 항상 져요. 내내 초라해지고, 내내 지쳐요.
또 하나, 저는 역사의 일부 특별한 순간을 빼놓고는 객관적인 조건이나 정세에서 뚜렷한 희망이 있었던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래요. 그렇다고 “희망이 없다”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지요. 희망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정세나 조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희망은 어떤 에너지이고 의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다 열심히 해봤는데도 세상이 바뀌지 않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을 때, “세상에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할게 아니라 “나는 지쳤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것 같고 그러면 이다음에,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고 아직 그만큼의 좌절을 겪지 ㅇ낳은 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또 다른 싸움을 해줄 거라고 믿거든요. 그렇게 역사는 이어달리기처럼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307 저는 언어를 통한 이해가 우리의 감정을 통해 가닿는 공감의 크기를 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올바른 말도 싫어하는 사람이 하면 안 듣게 되잖아요.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우리는 마음을 내어줄 때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309 고통이라고 하는 건 개인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고통은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누구나 외롭고 힘든 면이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놀랍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자꾸 실망하게 되고 세상을 경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고통에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 응답을 잘해낼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그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고요.
310 예민한 사건들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감각을 곤두세우기 위해 내 몸을 사건 속에 던져놓는 씨줄과 논문과 책을 읽는 공부를 하면서 사건을 바라볼 통찰을 찾는 날줄이 만나는 지점을 계속 찾는 과정이에요.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을 최대한 넓히고, 그 안에서 글을 쓰려고 해요. 공부만 되고 마음이 안 나가는 글은 논리적일지 모르지만, 딱딱해서 사람들이 다가오기 어렵고요. 학술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는데 감정적인 글은 투정을 부리는 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교집합을 찾는 게 내내 어려운 점이에요. 그 과정을, 나의 감정과 나의 관계 속에서 계속 출렁이듯이 헤매면서 버티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