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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소설

파친코 1, 2

2023-10-18 저자: 이민진 출판사: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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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고향 1910-1933

“’고향’은 이름이자 단어이며, 강한 힘을 지닌다. 마법사가 외는 어떤 주문보다도 혹은 영혼이 응하는 어떤 주술보다도 강하다.” - 찰스 디킨스

부제가 달려있는 챕터

1 - 부산, 영도 | 늙은 어부 부부의 아들 훈이와 홀아비 네 딸 중 막내 양진이 만나 선자를 낳기 까지

2 - 1932년 11월 | 이삭의 등장

4 - 1932년 6월 | 고한수와의 만남

12 - 1933년 4월, 오사카 | 선자, 이삭이 오사카로 건너가 요셉과 경희를 만남

15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65 “빨래할 때 무슨 생각해?”

한수는 선자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여자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한수는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싶을 때 질문을 많이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을 말로 하고 난 후에 행동으로 확인시켜주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오히려 한수는 어떤 사람이 알고 보니 남들과 별다를 바 없음을 알았을 때 가장 실망스러웠다. 한수는 멍청한 여자보다 똑똑한 여자를 좋아했고, 드러누울 줄만 아는 게으른 여자보다 열심히 일하는 여자를 좋아했다.

67 “저는 빨래할 때 빨래를 잘할 생각을 합니더. 빨래는 제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라예. 제가 옷을 더 좋게 할 수 있으니까예. 깨지면 내버려야 하는 항아리랑 다르다 아닙니꺼.”

68 여기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이제 이곳이 예전과 다르게 보일 것 같았다.

71 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수를 보면 낯설었다. 선자와 함께 있을 때의 한수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한수는 선자의 친구이자 오빠였고, 선자가 빨래를 이고 다가갈 때마다 빨래 보따리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74 “어딜 가든 사람들은 썩었어. 형편없는 사람들이지. 아주 나쁜 사람들을 보고 싶어? 평범한 사람을 상상 이상으로 성공시켜놓으면 돼.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법이거든.”

74 선자는 한수가 이야기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수의 말을 다 기억하고 한수의 모습을 모두 간직하고자 했다. 한수가 하려는 말은 무엇이든 이해하려고 애썼다. 선자는 어렸을 때 모으던 바닷가 유리 조각과 장밋빛 돌멩이처럼 한수의 이야기를 아주 소중히 여겼다. 한수가 선자의 손을 잡고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기에 선자는 한수의 모든 말이 놀라웠다.

77 아버지는 그런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입은 것이나 가진 것은 사람의 마음과 성격이랑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다.

120 불구였던 아버지는 남들보다 더 가난하게 자란 어머니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하숙집 손님들이 밥을 먹고 나면 세 식구가 밥상 하나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여자들보다 먼저 먹는 법도 없었다. 밥을 먹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 그릇에 아버지랑 같은 양의 고기와 생선이 놓여 있는지 확인했다. 여름에는 하루 종일 고기잡이를 하고 나서 또 수박밭을 돌보았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이어서였다. 겨울마다 새로 튼 솜을 구해 와서 식구들의 겉옷에 넣었고 솜이 부족하면 본인 옷에는 새 속을 넣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우겼다.

“너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아버지가 있데이.”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했고 선자는 어머니와 자신을 아끼는 아버지의 사랑을 자랑스러워했다. 부잣집 아이가 제 아버지의 그득 쌓인 쌀가마니와 금반지 더미를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75 요셉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삭이 어떤 해도 입지 않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동생이 도착하면서 느낀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속 타는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201 조선인이나 부라쿠민(部落民)의 피가 흐른다는 소문이 따라다니는 젊은 고깃간 주인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모든 손님을 공평하게 대하라고 배웠다.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죽은 짐승을 다뤄야 하는 도축업은 여전히 부끄러운 직업이었고, 이는 중매쟁이가 다나카에게 맞선을 주선하기 어렵다고 한 주된 이유였다. 그래서 다나카는 외국인들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09 사실 시아주버니인 요셉은 경희 같은 양반가 여인은 집 밖에서 일하면 안 되지만 출신이 보잘것없는 선자는 장에서 일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셈이었다. 선자는 경희가 많은 면에서 우월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지라 그런 구분이 서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경희와 살면서 모든 이야기를 솔직히 나누다 보니, 선자는 경희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응어리진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경희가 잘되든 아니든 일단 김치 아줌마 일을 해보면 훨씬 더 행복해지리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2부 모국 1939-1962

“아무리 고개를 넘고 내를 건너도 조선 땅이고 조선 사람밖에 없는 줄 알았다.” - 박완서

부제가 달려있는 챕터

1 - 1939년, 오사카 | 이삭이 경찰서에 잡혀감

3 - 1940년 4월 | 김창호와의 만남 → 갈빗집에서 김치와 반찬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됨

4 - 1942년 5월 | 이삭이 죽기 직전 풀려난 것을 노아가 발견함

6 - 1944년 12월 | 한수의 재등장

7 - 1945년 | 다마구치네 농장으로 이주한 선자의 가족, 양진과의 상봉

9 - 1949년, 오사카 | 오사카로 다시 돌아온 선자네, 김창호의 경희에 대한 짝사랑

10 - 1953년 1월, 오사카 | 양진과 선자의 대화, 노아와 모자수, 모자수와 하루키

246 요셉은 조국이나 대의를 위한 죽음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살아남는 것과 가족을 지키는 것만이 중요했다.

255 선자는 옷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고향에서 제일 장사를 잘하는 시장 아주머니들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276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자들이나 일본 편에 선 재수 없는 조선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나 또 다른 곳에서 그저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수많은 동포가 있었다. 결국 배고픔 앞에 장사 없는 법이었다.

284 “니가 엄마를 달랜데이, 노아야. 니가 엄마를 달래.”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아들을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칭찬하면 안 되고, 그랬다가는 화를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선자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선자가 잘한 일이 있으면 항상 칭찬했다. 선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아버지는 습관처럼 선자의 정수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거렸다. 다른 부모였다면 딸을 응석받이로 키운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불구인 아버지가 자신의 멀쩡한 이목구비와 팔다리에 감탄하는 것에는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선자가 걷고 말하고 간단한 암산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선자는 아버지의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반짝이는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며 의지했다. 누구도 칭찬을 바라서는 안되고, 특히 여자는 더 그러했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 선자를 아주 애지중지하며 길렀다. 선자는 아버지의 기쁨이었다. 선자는 노아도 그렇게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고, 아들들을 보내준 하나님에게 온 마음을 다해 감사했다.

299 선자는 양팔을 흔들며 아기가 아장아장 뛰는 흉내를 내다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이삭도 소리 내어 우성ㅆ다. 그 순간, 모자수가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자신 외에도 단 한 사람 더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선자는 아이들에 대한 자랑스럽고 기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307 이삭이 노아의 손을 잡고 꽉 쥐었다.

“너는 아주 용감해, 노아야. 나보다 훨씬, 훨씬 더 용감해. 너를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360 “(…) 난 사업가야. 난 너도 사업가가 되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그런 모임에 갈 때마다 남한테 휘둘리지 않고 네 머리로 생각하고, 반드시 네 이익을 챙기면 좋겠어. (…)”

362 “(…) 애국심은 그저 이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잊게 돼.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은 그 이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을 이용하지. 넌 조선을 바로 잡을 수 없어. 너 같은 사람이나 나 같은 사람이 백 명이 있어도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어. 일본이 빠져나가고, 이제 소련과 중국과 미국이 거지같이 작은 우리나라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어. 네가 그들과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조선은 잊어버려. 네가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해. 그 부인을 원해? 좋아. 그럼 그 남편을 없애버리거나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385 “잘 들어, 사람들이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늘 네 잘못은 아니야. 우리 형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19 “그럼요. 하지만 싸움은 금지예요. 싸움을 한다고 남자가 되는 건 아니죠.” 고로는 아빠가 없는 아이를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남자가 되려면 화를 참는 법을 알아야 돼. 네 가족을 돌봐야지. 훌륭한 남자를 그렇게 해. 알겠냐?”

21 학교에 다닐 때 그런 조롱이 괴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런 말들이 일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금 이렇게 평온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9 “노아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서 오늘 들러달라고 했어. (…) 넌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 대단해! 네가 아주 잘아스럽구나. 아주 자랑스러워.” 한수가 활짝 웃었다.

이렇게 대놓고 호들갑을 떨며 기뻐해준 사람은 없었다. 가족 모두가 행복해했지만 주로 학비 걱정에 속을 태웠다. 노아도 돈 때문에 걱정스러웠지만 어떻게든 다 잘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53 선자는 경희가 창호한테 기다려달라고 하기를 바랐지만, 그랬다면 경희답지 않았을 것이다. 창호는 남편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사랑했고 어쩌면 그것이 경희를 사랑한 이유일 터였다. 경희는 자신의 본질을 훼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54 항상 좋은 습관을 가진 훌륭한 학생이던 그가 몇 차례의 소소한 좌절을 경험하고 여러 번 신중하게 시도해본 결과였다.

55 한수가 말했다. “모든 것을 다 배워. 네 머릿속을 지식으로 채워. 그건 누구도 너한테 빼앗아 갈 수 없는 유일한 힘이야.” 한수는 ‘공부하라’는 말 대신 ‘배우라’고 말했고, 노아는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배움은 일이 아니라 놀이였다.

63 고로는 사업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고, 자신의 행운 중 일부를 자진해서 쉬지 않고 일하는 모자수의 공으로 돌렸다.

67-68 “넌 걱정이 많아. 그래서 네가 그 자리에 완벽한 거야.” 고로가 활짝 웃었다.

모자수는 그 말을 생각하다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모자수만큼 가게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 고로는 절대 틀리는 법이 없었다. 모자수에 대한 생각도 틀리지 않았을 터였다.

80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고,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모자수는 고정돼 보이지만 무작위성과 희망의 여지가 ㅏㅁ아 있는 파친코를 왜 손님들이 계속 찾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86 존은 부모와 함께 살면서 늘 행복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식으로 선택받지 못했다는 점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유가 무엇일까? 존은 알고 싶었다. 분명히 물행으로 치닫는 입양도 많이 있었지만, 존은 자신의 운명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운명보다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선택’은 어머니가 존에게 항상 쓰던 말이었다.

91 노아는 아키코의 현미경 아래에서 샅샅이 파헤쳐지는 표본이 되고 싶지 않았다.

104 아키코는 항상 노아를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상상 속 모습을 덧씌워서 보고 있었다. 아키코는 모두가 꺼리는 사람과 어울려주는 자신이 특별한 살마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노아라는 존재는 아키코가 좋은 사람이고 배운 사람이며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조선인일는 사실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든, 노아는 그저 자기자신으로 있고 싶었다. 때로는 자신을 아예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키코와 함께라면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었다.

105 아키코는 노아를 한 인간으로만 볼 수 없었고, 노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저 한 인간으로 여겨지고 싶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111 선자가 어떻게 폭력배들을 옹호할 수 있겠는가? 사방에 조직범죄자들이 있었고 선자는 그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다른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많은 조선인이 폭력배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일본 정부와 좋은 회사들은 조선인들을 뽑지 않았고, 제대로 교육받은 조선인조차 고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친절했고 공손했다. 그렇지만 선자는 이런 말을 차마 아들에게 할 수 없었다. 노아는 공부하고 일하며 이 거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아이였고, 그렇게 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해씩 때문이었다. 선자의 아들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 없었다.

114 남자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용서 없이 사는 것은 숨을 쉬고 움직이기만 할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3부 파친코 1962-1989

“나는 민족의 정의를 이렇게 제안한다. 민족은 상상의 정치 공동체이다. 본성적으로 제한돼 있으며 주권을 지녔다고 상상된다.

민족은 ‘상상된다’. 제일 작은 민족의 구성원일지라도 동포 대부분을 알거나 만나거나 심지어 소식을 듣지도 못하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 동질감이라는 관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제한돼’ 있다고 상상된다. 인구가 10억 명에 달하는 제일 큰 민족이라도 유동적일지언정 한정된 경계가 있고 그 너머에는 다른 민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주권을 지녔다‘고 상상된다. 이 개념이 계몽사상과 혁명이 신성하게 부여된 계급적 왕국을 무너뜨린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각자에게 만연할지 모르는 실제의 불평등과 착취에도 민족은 항상 깊은 수평적 동포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동포애가 지닌 두 세기 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런 제한된 상상의 산물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던지게 했다.” - 베네딕트 앤더슨

150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선자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을만큼 강렬했다.

162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자를 사랑했다. 다른 어떤 여자보다도 선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170 그렇지만 요즘 젊은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돈을 받지 않았기에 한수는 선자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172 선자는 차가운 물을 틀어서 세수를 했다. 어찌 됐든 한수가 자신을 조금은 원하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을 깨닫자 당황스러웠다. 선자의 삶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정도면 됐다.

175 어린 나이부터 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하는 책임이 꺼려졌다.

179 숫자 2를 그렇게 쓰는 여자라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사가 쓴 가지런한 두 선은 표의무자의 획들이 담긴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리사가 청궈에 평범한 글을 적어놓아도 노아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다시 읽었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토록 우아하게 글씨를 쓰는 손에 춤추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180 진정한 애정을 느끼며 외로움이 사그라진 후에야 두 사람은 그토록 오랜 세월 외로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87 다이스케는 일반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일자리를 구하거나 혼자 살 수도 없었지만, 아야메는 다이스케가 사람들의 낮은 기대치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207 하루키는 모든 범죄 중에서 살해 후 자살하는 경우를 가장 잘 이해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이스케를 죽인 다음에 자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 다이스케를 죽일 수 없었다. 입에 담지도 못할 그런 짓을 아야메에게 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었다.

209 ”(…)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다를 바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일본 놈이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든, 얼마나 좋은 사람이든 더러운 조선인일 뿐이야.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

210 ”하지만 다 나아져. 삶은 엿 같지만 늘 그런 건 아니야. (…)“

210 ”야, 삶은 늘 고달프지만, 그래도 게임은 계속해야지.“

211 모자수 ”잊어버려. 난 괜찮으니까 .이제 난 괜찮아.“

237 “어쨌든 직원 말이 틀리지는 않지. 그리고 솔로몬도 이 상황을 이해해야 돼. 우리는 자칫하면 추방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조국이 없어. 삶은 솔로몬이 통제할 수 없는 일투성이니까 적응은 해야지. 내 아들은 살아남아야 해.”

253 그들은 모두 가능성과 두려움, 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254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행운아일 거라는 희망을 품고 게임을 계속했다. 어떻게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겠는가. 에쓰코는 이 중요한 면에서 실패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이길지 모른다눈 터무니없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믿어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파친코는 바보같은 게임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258 에쓰코가 손바닥을 펴서 입을 틀어막고 솔로몬의 말을 되새겼다. 후회스러운 날들 다음에는 또 다른 날이 오기 마련이었고,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해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269 씨, 핏줄. 이런 한심한 생각에 어떻게 맞설 수 있단 말인가? 노아는 규칙을 모두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면 적대적인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294 “(…) 내가 내 가치를 확신하거나 우리 관계를 확신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

300 오늘 밤은 직장 동료들과 네 번째 갖는 포커 게임 자리였다. (…)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예닐곱 명이 참가했다.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301 오늘 밤은 돈을 좀 되돌려줄 계획이었다. 참가자들은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 꽤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솔로몬은 그들과 계속 카드를 치고 싶었다. 분명히 솔로몬을 만만한 호구로 생각하고 초대했을 것이었다.

306 장칼로는 중산층 일본인들이 생각하거나 수군거리는 것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20년 동안 산 이탈리아계 백인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이상했다.

309 “새겨듣게. 빌어먹을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주로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기에 태어나 부러진 손톱으로 이 세상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은 이 망할 게임의 규칙도 몰라. 그런 사람들이 진다고 해도 그들에게 화조차 낼 수 없어. 그런 사람들에게 삶은 지독하게 가혹하고 또 가혹한 법이야.”

311 “제다이, 잘 알아두게. 자신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다는 걸 아는 것보다 더 엿같은 건 없어. 그것만큼 엉망진창에 형편없는 존재가 또 없지. 내 휘황찬란한 조상들이 태어난 일본이라는 이 윋한 나라에서는 모두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고 싶어 해. 그래서 살기에 안전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룡 마을이기도 해. 멸종된 곳이라는 말이야, 친구. (….) 더 이상 전쟁이 없는 데다가 평화로운 시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보통이 되고 싶어 하고 남과 달라지는 걸 두려워해서 이 나라가 개판이 된 거야. 또 다른 문제는 일본 지도층이 영국인이나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거야. 한심한 망상에 빠져있어. (….)”

312 “(…) 조선인들이 평범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잖나. 분명히 자네 아버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파친코 일을 하기로 했겠지. 아마 자네 아버지는 훌륭한 사업가일 거야. (…)”

322 솔로몬은 할머니와 큰할머니가 비난하기보다는 신기해하며 듣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피비의 가족을 좋지 않게 여길까 봐 걱정스러웠다.

351 언니가 남자들은 동정받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남자들은 그보다 공감과 존경을 원한다고 했다. 쉬운 조합은 아니었다.

359 “널 미국 학교에 보낸 건 아무도…” 모자수가 잠시 말을 멈췄다. “아무도 내 아들을 깔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아빠, 그런 건 상관없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잖아요?“

362 노아가 죽은 지 11년이 흘렀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파도에 깎여 둥글어지는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던 가장자리가 무뎌지고 부드러워졌다.

363 선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수도, 심지어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370 조선계 일본인들이 역사의 피해자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을 만났을 때 누구의 삶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의 폭넓고 복잡한 인생사에 절로 고개가 숙여져서 2008년에 기존 원고를 치우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