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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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40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그것은 할 수 없는 일과 다르다. 할 수는 있다. 할 수는 있는데 정말 하기 싫다. 때려죽여도 하기 싫다. 그러나 정말 때려죽이려고 달려들면 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은 가능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41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 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무경은 고모의 그 일을 해주었다. 고모는 무경이 그 일을 해주었을 때 자기 안에 있는 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보았다. 대체 언니는 어떤 눈을 지녔기에 그 나이에 그 마음을 봤을까, 목경은 아찔해지곤 했다.
45-46 저는 일기의 문체도 좋아합니다. 약간은 헐렁하다고 할까요. 가끔 소설을 읽다가 작가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엄선했을 단어들의 연쇄를 보면 빡빡한 박음질이 떠오릅ㄴ디ㅏ. 징그럽다, 질린다, 싶지요. 그럴 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일기 중 몇 개를 골라잡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일기의 문장은 자연스럽고 좀 바보 같고 인간적이고 무엇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요. 훅 뜯어낼 수 있는 시침질처럼 말입니다.
47 한계가 곧 개성이다. 언제나 힘이 되는 주문입니다.
48 일상적인 날들을, 그 일상이 아무리 세밀하고 아름답게 묘사될지라도!줄지어 가는 개미들을 엄지로 꾹꾹 눌러죽이듯 압축시켜 굵직한 줄거리에 복무시킨다. 책 속의 거대한 이야기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책 속에서라면 눌러 죽일 그런 시간이겠지. 근데 지금의 이 소리, 바람은 아깝다 그러기엔. 행복이란 것 자체가 원래 김샌 상태인 것 같다.
48 글을 읽기 전까지 저도 몰랐습니다. 읽고나서는 제 생각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진작 읽었다면 다음의 문장을 소설에 써먹었겠지요. ‘줄지 가는 개미들을 엄지로 꾹꾹 눌러 죽이듯 압축시켜 굵직한 줄거리에 복무시킨다.’
51 이와 같이 목경의 모험이 사랑 안에 귀속되는 근대적인 방식의 탐색 로맨스였다면, 무경과 고모의 모험은 자아 탐색의 길 끝에서 자기 구원을 발견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 또한 모험의 끝자락에서 두 사람이 “대관식”으로 여겨질 만한 감정적 공유를 한다는 점에서 직계친족은 아닌 여성 간에 계승되는 일종의 영웅 서사로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54 우선, 어떠한 일의 수행성을 따질 때 두 가지 준거를 세울 수가 있다. 하나는 그것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가 하는 (불)가능성의 문제이고, 또하나는 하고 싶은가, 하고 싶지 않을가에 따른 의지의 문제이다. 이 소설에서는 가능성과 의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수행 명제를 도출해낼 수 있다.
1️⃣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음(불가능-무의)
2️⃣ 할 순 있지만 하기 싫음(가능 - 무의)
3️⃣ 할 수 있으니 해야 함(가능 - 유의)
57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에서 얻게 되는 구원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구원에 관한 것일 테다. 고모에게는 가족 내 독박 노동에서 해방되어 또다른 생활 공동체를 꾸리고 살아갈 수 있는 힘, 그리고 무경에게는 의지 없이 하는 일들에 속박되지 않고 오직 자신이 믿는 현실을 따를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명백한 구원이리라.
59 그 안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쓸 수 있는 것을 쓰겠다는 마음이다.
김멜라, 제 꿈 꾸세요
74 덜 손해보는 선택지보다 손해보더라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일에 마음을 모았다.
96 펜이란 말이 깃털에서 왔다면, 우리의 펜은 날개에서 온 것입니다. 날개의 일부, 바람과 맞닿은 살이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글을 쓰는 동안엔 날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하늘을 날듯 문장을 쓸 수 있을까요.
98 “연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애인은 마중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왔구나, 잘 왔어, 그런 인사와 함께 손님을 맞이해줘야 한다고. 그 말을 들으니 흐리고 침침하던 제 마음에 빛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랬구나. 이제껏 사람들이 내 문을 두드린 건 문이 닫혀 있어서가 아니라 내 마중을 바랐던 거였어. 환영 인사가 필요했던 거야.
99 그러던 어느 새벽, 저는 알았습니다. 나쁜 꿈이 저를 살리고 있었다는 것을요. 더러운 물이 모이는 제일 낮은 자리의 수챗구멍처럼 꿈은 저를 위해 온갖 두려움과 슬픔을 자신의 통로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죽고 나면 저는 다시 태어났고, 꿈에서 슬퍼하면 현실에서 울지 못했던 울음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악몽이었지만 그 꿈의 숨은 뜻은 이해와 보호였습니다.
102 자귀모 회원들이 저승의 아늑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원한 때문이지만 <제 꿈 꾸세요>에서 귀신들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해야 할 어떤 말을 아직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사랑만을 남겨두는 이 마음은 언뜻 보기에 순하고 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원한과 미련을 승화시킨 뒤에만 지닐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이다.
성혜령, 버섯 농장
118 정말 증왜야할 대상은 그런 회사에서 십 년간 나오지 못한 너 자신이 아니냐고. 물론 기진은 말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진화는 쉽게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기진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137 그때 기진에게 진화는 모든 것을 나누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는 걸 일찍 알았어야 했다.
140 하지만, 이야기를 일는 동안 때때로 저는 멀리 달아납니다. 저에게서 벗어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것이 순간의 착각일지라도, 결국 같은 문제로 돌아오게 되고 현실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여러 번 당겨서 느슨해진 고무줄처럼 제 마음도 조금씩 고집스러운 탄력을 잃어가며 확장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142 다시 말해, 이 소설에서 죽음은 모든 이를 특정한 상황에 연루되게 하고 책임의 문게로 묶어놓는다. 죽은 자리에서 은밀하게 번지는 균사체처럼.
142 개인의 책임이 언제나 자본의 문제와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밝힘으로써 책임의 불평등을 고발하는 셈. 그러나 소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고발은 피해자의 언어이기에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143 이들은 마치 백화점에서 책임을 고르듯 편안하다. 원하는 상황에만 연루되고자 하는 이들의 태도는 오히려 타인과 결속되지 않으려는 노력에 가까워진다. 이때의 책임은 단절에 가깝다. 다시 말해, 책임의 제스처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알리바이가 되는 셈이다.
144 그 세계(불평등으로 짜여진 신자유주의적 세계)란 모두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나눠가지며 살아가는 세계, 한 개인이 시민 주체로서 책임의 한계를 그을 수 없는 세계, 부의 분배가 책임의 상한선을 정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타율적 복종을 넘어선 적극적 복종으로 책임에 응답할 때 그녀는 기이한 방식으로 주권을 획득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재배치하며 삶을 발명하고 있는 이 독조은 세계를 인정하면서도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145 유튜버가 선의를 가장해 고양이의 상처를 고의로 만들 수 있다면, 기진은 도움을 가장해 진화의 불행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타인에게 연루되어 있는, 거대할 정도로 과잉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책임에 선을 긋는 행위는 자기만족을 위해 시례의 댓아과 범위를 선별하는 일일 뿐이라는 것, 그것은 그냥 자위를 하다 쓰러지는 모양새처럼 아주 볼품이 없다.
151 그러므로 남자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진화와 기진은 눈앞에 일어난 이 죽음이 자신들에게 기회임을 직감한다. 이제 부모를 잃은 고등학생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죽음을 목전에 둔 청년세대로서 남자의 죽음에 아주 적극적으로 연루되고자 한다. 골프채와 판자때기를 손에 쥔 기진과 진화는 기꺼이 죄를 뒤집어쓴다. 선택적 책임을 넘어선 책임, 죄 없는 책임을 인위적으로 짊어짐으로써 주인 의식을 온전히 획득하겠다는 시도이다.
152 기성세대를 향한 부양의 의지도 연민의 시선도 없는 이들의 매장 행위에는 선대의 죽음에 기생해 삶을 개척하려는 절실한 의지가 숨어 있다. 사기를 당해도 털어낼 수 없고, 가난을 당해도 속수무책인 부조리한 현실 앞에 합법적이고 건강한 시정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지 오래이기에 이들의 매장 행위는 실로 공정성을 향한 열망이 발명해낸 섬뜩한 상징적 의례다.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167 오근희의 행동은 해방운동과 거리가 멀었다. 산업과 연결되어 있는 해방운동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해방이 아닐 것이다.
169 내가 계를 너무 챙겨줬어. 걔가 그렇게 된 건 다 내 탓이야. 다들 첫째였기에 대놓고 동생들을 아메바로 취급했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첫째들의 동생 중 가장 상태가 심각한 것은 오근희였다.
174 손편지를 써주면 뭐한. 아이들은 이미 이 싣의 충실한 구독자가 되어버렸는데. 어른들을 훨씬 앞질러가버렸는데. 구독자 수가 권력이 된다는 걸 알고 있고, 그 권력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도 어른보다 잘 아는데.
183 김오리(버추얼 인플루언서)는 나와 다르게 늙지 않고 썩지 않는 거야. 하지만 그런 김오리도 언젠가 결국 잊히겠지. 그렇더라도 진짜가 아닌데 잊힌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김오리는 상처받지도 않을 거야. 상처받을 줄 모르는 존재이니까. 그건 너무 부러워.
언니, 어쩌면 이 세계에선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의미 없는지도 몰라. 순간만 존재하고, 모두가 비트 위를 가볍게 흘러다니는 건지도 몰라.
184 그러니까 언니,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야.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 탓이야. 사소한 나를 구독해주는 구독자 탓이야.
185 언니, 언니는 어떤 존재일까. 나와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나보다 먼저 살아본 사람일까. 언니가 성공한 일을 나도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성공한 일을 언니는 아무리 해도 실패하지 않을까.
언니, 나를 좀 믿어주면 안 될까. 약속할게. 절대로 벗방 안 할게. 하지만 언니가 말했듯 ‘걸레들이나 입는 옷’을 입고 방송은 계속할 거야. 나는 내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까.
186 그런데 어쩌면 가장 진화한 형태의 생물은 아메바이닞도 모른다.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던진 존재, 핍박과 식민지가 무언지 모르는 존재, 생을 가장 단순하고 솔직하게 설계한 존재, 그게 아메바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 이 세계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87 그때 근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니의 실패가 자신의 실패는 아닐 거라는 생각? 언니의 실패는 자신의 실패이기도 하다는 생각?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근희의 행진은 나의 행진과 명백히 다를 것이란 걸.
191 동생의 선택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이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행진처럼 보였다. 반면에 나의 선택은 그런 행진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동생은 시대에 발맞춰 걷지만 나는 시대 밖으로 걸어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대열 속으로 합류하길 반복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시대에 납치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은 시대가 나를 납치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시대를 납치하겠다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191 슬픔과 기쁨처럼 젊은 역시 감정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느 시기에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도감이 들고 더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194 문희의 성적 보수주의는 근희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합리화되고 있지만, 실상 이는 그 폭력의 원인이나 구조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문희의 태도는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몸을 이용해 돈을 버는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는 뿌리깊은 여성 혐오적 사고와 연동되어 있다.
195 이러한 사건의 공통점은 SNS 상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형태의 비윤리적 행위라는 점잉기도 하지만, 더 취약한 존재일수록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는 구조적 폭력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198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되고 이상한 세상이 만든 편견에 굴하지 않는 용기, 세상과 연루된 존재로서의 자기 인식과 공동의 책임 의식, 적대를 연대의 의지로 전환하는 각성, 그리고 이 모두를 가능케 하는 서로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일지 모른다.
정선임, 요카타
205 그러니까 눈을 감는다는 것은 눈꺼풀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검붉은 배경 위로 흑점이 떠다닌다.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날파리처럼 아른거리던 흑점들은 눈을 감으니 더 선명해진다. 나이가 들면서 흑점의 개수도 늘고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주위가 차츰 훤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흑점의 배경이 검붉은 빛에서 노을빛으로, 그리고 복숭앗빛으로 점차 옅어진다.
205 눈꺼풀 안쪽의 색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본 적은 없다. 아버지, 순덕이와 정순이, 남편들, 그리고 진에게도. 동이 완전히 트자 흑점은 더 선명해진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에서 시작되어 길게 늘어진 검은 실처럼 움직인다. 마치 붉게 물든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누군가의 그림자 같다.
208 무심코 혼잣말을 하다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본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는데 어느새 소리 내어 말하고 있는 일이 요즘 들어 잦아졌다.
210 몸은 점점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하긴, 생각해보면 젊었을 때도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인 적이 있긴 했던가.
218 포성이 완전히 멈추고 땅과 바다가 반으로 나뉜 뒤에야 이제 정말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밀려들었던 그 해방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 그냥 진을 쳐다봤다.
미역을 다듬듯, 내 삶에서 불편한 부분을 걷어내고 보기 좋은 부분만 남도록 다듬어 들려주었다.
222 요카타, 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요카타는 다행이다라는 말보다 더 다행 같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요카타라고 말하면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업시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요카타, 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 라는 말로 달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오늘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227 “세상이 달라 보일 거예요.”
진은 글자를 가르쳐주며 그렇게 말했었다. 다르게 본다는 것은 망원경처럼 멀리 있는 것을 확대해서 보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까지 보게 된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그대로 있고 싶다. 다르게 보고 싶지 않다.
228 밀물이 밀려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죽은 것들도, 살아있는 것들도 바다는 휩쓸어갔다.
231 이대로면 나도 혼자 살게 될 것 같은데. 왜 나이가 들수록 삶은 더 어려워지기만 할까. 아마 백 살이 가까워져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소설은 삼인칭에서 일인칭이 되었다.
234 잘 모르니까 쓰지.
235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익숙한 장소에서도 방향을 헷갈릴 때가 많은데 혼자 여행을 간다는 건 당연히 길을 잃겠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239 연화가 눈을 감을 때마다 보이는 흑점은 바로 언니의 삶을 대신 살았다는 부채감과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상실감을 증거하는 것인지 모른다.
239 차라리 아버지가 먼저 죽은 언니를 잊지 못했기 때문에 동생에게 호적을 물려주었다면 연화는 덜 고통스러웠을가. 평생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갖지 못한 연화와,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히 기억되지 못한 연화와 언니는 역사 속 주변부적인 존재다. “이름은 없어요. 태어나자마자 죽었거든요”라는 연화의 말은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한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인 동시에 언니의 죽음을 뒤늦게 애도하는 발화이다.
함윤이, 자개장의 용도
247 자개장을 쓸 땐 돌아올 거리부터 계산하라고. 앞으로 갈 곳에서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먼저 가늠해야 한다. 그래야만 집으로부터 너무 먼 곳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271 엄마는 말했다. 예전에 너더러 자개장을 쓸 때는 돌아올 거리를 꼭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지. 사실 그건 거짓말이야.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 누구한테도 이 말은 하지 않았어. 그게 나를 떠날 방법으로 쓰일까봐 무서웠기 때문이야.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너희가 갈까봐.
278 늘 먼 곳으로 떠나고만 싶었는데 지금은 나를 비롯한 친구들 덕에 돌아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그것이 무척 고맙노라고. (…) 내가 떠날 수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돌아올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정을 통해 알았다.
279 떠났더라도 언젠가 돌아오길 바라게 만드는 사람들이. 그사이, 나는 여기에 서 있거나 이동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색하겠다.
289 이제야 나는 자개장의 역사에 선명하게 각인된 세 여성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가려는 길을 그녀들이 앞서 걸었으며, 그 선택이 “아주 위험한 일”임을 알고도 감행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모든 역사를 이해한 끝에 나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먼 곳을 떠올리며 자개장의 문을 연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나는 무언가 떠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이 자개장의 숨겨진 용도임을 알게 된다. 자개장은 무엇을 보존해온 것일까. 나의 딸만큼은 자개장의 문을 열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기를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 그 마음을 보존하기 위해 무릅썼던 위험한 선택이 더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 염원을 담은 세 여성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지금 나의 얼굴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돌아올 길을 개의치 않는 것이 대물림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규칙이라면 나는 자개장 앞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딸이 맞이할 미래에도 자개장이 필요하다면 나는 다시 돌아와 자개장의 주인이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되든 그것은 희생이나 귀환이라는 말로 단순히 요약할 수 는 없다. 그리고 그 역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295 ‘순종은 참 고달픈 휴식이지.’
319 식이 장애는 세계의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때, 하지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자신의 몸뿐일 때 발생하곤 한다.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하지만 내 몸만은 어찌할 수 있을 때, 폭식/거식 행위를 통해 그 어긋남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섭식 행위는 세계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드러내는 가장 투명한 통로이자 가장 근원적인 징후다.
323 그러므로 나에게 구수한 맛은 단지 미각적 취향이 아니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 생존 자체가 민폐나 죄로 여겨질 때, 살아 있다는 이유로 주변 이들의 신경과 에너지를 갉아먹는 것처럼 생각될 때, 하지만 손쉽게 자기 존재를 폐기하거나 사라져버릴 수는 없을 때, 그래서 살아 있다는 송구함이라도 최대한 줄이고 싶을 때, 차라리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나무껍질을 씹어 그 즙을 먹는 곤충이 되고 싶을 때 선택하는, 아니 허락되는 가장 작은 맛이다.
323 그러나 동시에 구수한 맛은 생명을 살리는 최후의 맛이기도 하다. 죽어가고 작아지고 꺼져가는 이들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유일한 맛이다. 단것조차 먹지 못하데 된 할머니를 마지막 순간까ㅣ지 지켜주고, 말라가는 엄마에게 식당에서 일할 수 있는 힘을 마련해주며, 음식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먹을 수 있다고, 먹어도 된다고, 먹어보자고 끝까지 격려해주는 맛이다. 그러므로 구수한 맛은 최소의 맛이자 최후의 맛이다. 가장 낮은 밥상이자 가장 커다란 밥상이다.
335 젊은 근희의 행진 이 세상에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지만, 또 가족만큼 서로를 모르는 관계는 없다. 게다가 상대의 새로운 모습, 내가 모르는 훌륭한 모습은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건그 사람을 판단해온 나의 오랜 관점을 파괴해야만 가능하니까. 이 소설은 그 파괴에 관한 이야기다.
336 요카타 바로 그 부정이야말로 그녀가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사실과 다르게 말하고, 속내를 간직하는 것. 그렇게 진실은 그녀만의 것으로 남는다.
342 자개장의 쓸모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까지 인물들이 떠나고자 하는 걸로 봐서, 작가는 그곳이 어디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대신 우리가 발 디딘 세상이 닫힌 구조로서의 비좁은 착시적 의식 세계일 뿐임을 경쾌하고도 숙연하게 환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하니 설령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돌아온 그에게 이곳은 이미 떠났던 그 세계가 분명 아닐 것이다.
343 소설은 동시대의 새로운 인간형에 관심을 가진다. 다수 대중의 시선으로 또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음인 듯 보기 위해서다. 또 보는 것은 사실상 보지 않는 것과 같고, 처음 보는 것만이 정말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347 제 꿈 꾸세요 자기 자신으로 사는 데 큰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던 존재가, 이제는 자기 자신으로 죽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점에, 그 에너지를 생전에 사랑했던 사람들을 한번 더 살아하는 데 쓰기로 한다. 성소수자의 높은 자살 비율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 소설의 결말이 ‘결정’으로만 보이겠지만, 아니, ‘결단’일 것이다.
348 이 소설을 대상으로 안 뽑을 수는 없을까 고민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심사위원이 뽑은 게 아니다. 이 소설이 자기를 뽑은 것이다.
351 미수에 그칠 뻔 했던 자실 시도를 어이없는 방식으로, 심지어 원치 않게 성공해버린 <제 꿈 꾸세요>의 주인공 영혼이 자신을 둘러싼 죽음의 서사를 완벽하게 종결하는 대신, 삶과 죽음의 인과를 ‘빈 괄호’로 놔두는 까닭은 레즈비언으로 살아온 그가 오랫동안 부롹정성의 너른 품을 염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 자서전을 쓰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지만, 그 모든 기억을 반추하며 결국 사랑하는 이들에게 행복한 꿈을 빚어주기로 한 이 화자의 마지막 결심은 불온하고도 사랑스럽다. 우리의 꿈속에 나타나 미래의 씨앗을 심어준 이들을 기억하자. 사람은 꺼지지만 그들이 남긴 꿈을 우리 곁에 오래 머물며 내일을 만들어갈 테니 말이다.
352 합리적 인간이 네번 째 줄을 읽다가 다섯번째 줄로 넘어갈 만큼 마음이 흔들릴 것인가? 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계속 읽어나갈까?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왜 그러고 싶을까?
352 버섯 농장 이 소설의 많은 장점 가운데 특히 기억할 만한 것은 ‘여성 청년’이 한 덩어리의 단일한 존재가 아님을 차갑게 꿰뚫는 시선이다. 무엇이 인물들을 서로 가고 다르게 만드는지 그 사회관계적 조건을 살피고, 새롭게 파생되는 질문을 독자 앞에 남기는 것. 그 또한 문학이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354 요카타 구십육 세의 인간이 길 위해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고 중얼거리는 결말은 전율을 불러일으키는데, ‘모른다’는 느낌은 명백히 살아 있는 자만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갈 길을 몰라도 어디로든 혼자 가야만 하는 것이 생명의 처절한 특권임을 독자가 감촉하는 순간, 소설은 가벼운 흰 새처럼 다른 공간으로 날아오른다.
354 제 꿈 꾸세요 어떤 귀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슬퍼하고 있을까봐 걱정되어 온다. 그렇게라도 나를 보고 싶을 너를 위해, 너에게 잠깐이나마 나를 보여주려고 말이다. “나는 잘 있다고 말해주려고요.” 김멜라만큼 사랑의 힘을 강력하게 믿는 작가는 없다.
357 젊은 근희의 행진 물론 그것은 관계의 회복이 아니라 재편의 가능성일 것이다. 완전한 회복이란 이 세계에도, 문학에도 존재할 수 없음을 이서수는 잘 안다. 동시대의 한가운데를 주시하는 명민한 집중력으로 작가는 미묘한 전환의 순간을 포착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