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최애 작품은 공현진 작가님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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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 이응이응
9 이름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어떤 이름이든 나무 스스로 지은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10 “그 짓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번 더 해 봐.”
작가노트 - 소설이 굴러가는 길
51 만약 미래의 어떤 기술이 우리의 삶을 좀더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건 우리로 하여금 그 기술이 탄생하기 이전의 삶을 다시 한 번 더 충실히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술이란 본질적으로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는 정보를 배열하는 방식인데, 그 정보란 것이 인간에겐 뇌에 입력된 과거의 기억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자기의 삶에서 그 어떤 것도 돌이켜 추억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현재를 지각할 수도없고, 기억이란 재료를 혼합해 내일을 꿈꿀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래의 신기술은 우리의 지난 삶을 위해, 우리를 다시금 어린아이로 돌려보내 또 한번 배우고 자라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해설 - 몸짓의 진화
59 인간은 명확한 경계나 개념으로 분절되지 않는 물질적인 존재다.
66 김멜라의 인물들은 어디까지나 무수한 차이들로 이루어진 자기-타자들이다. 그래서 ‘이응’과의 결합을 통해 발생되는 오토 에로티즘은 자아로의 유폐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자기 내부의 차이들을 생성하고 발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가 자신의 욕망을 자연적인 것으로 긍정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놓여나는 아이러니의 역학이다.
67 소설을 통해 우리는 각각의 구획된 경계의 표지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들이 연결된 접면들을 더듬을 수 있다. 김멜라의 세계에서 ‘퀴어’는 자신에 대한 차이를 생산하고 긍정하는 초월적 상상력의 다른 말이다. (…) 김멜라의 인물들이 행하는 ‘나’로부터의 거리 두기는 규정하는 자아와 규정되는 대상으로서의 자아를 불일치시키는 행위이며, 이로써 김멜라의 퀴어들은 정체성 정치를 가뿐하게 넘어서며 ‘퀴어’의 차이를 생성하는 역동적인 기호로 전환한다.
69 소설이 선형적인 형식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실과 애도에 대한 해법 또한 선형적이지 않다. ‘기억’이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 중 하나인 이상, 우리는 언제라도 또다시 슬퍼질 것이고, 그때마다 몇 번이고 다시 애도를 수행해야 한다. 삶은 죽음으로 구성되며 죽음 또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이 반복은 실상 무수한 차이들의 나타남이며 인과론의 저편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너’를 애도하는 일은 ‘나’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너’와 만나는 일이 되고, 그러한 ‘너’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로 자연히 나아가게 된다.
차이들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순환이 바로 우리 자신이며, 자연이고, 세계이자 우주다.
✨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텐데
85 주호는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책임이 없는 걸까, 그 생각에 사로잡혔고 무슨 일을 대하든 습관처럼 이 질문을 마주했다. 점점 주호는 자신과 상관없는 뉴스들을 보면서도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몸이 물속 깊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인터넷 기사 댓글들은 책임자가 책임을 회피한다고 화내고 분노했다. 하지만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주호는 그 물음에 더 마음을 기울였다. 기울어진 마음은 점점 가라앉고 가라앉아서 주호의 세계를 무너뜨렸다.
86 힘을 빼면 빼는 거고, 주는 거면 주는 거지. 그게 바로 균형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남들은 어떻게 이런 균형을 어렵지 않게 잡을까. 희주는 너무 몸에 힘을 주지 않아서 혼이 났다가, 곧바로 너무 많은 힘을 주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87 물속에서는 물 밖에서와 반대로 숨을 쉬어야 한다. 물속에서 코로 숨을 뱉고, 물 밖에서 입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그 숨이 간절해진다. 숨쉬기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부자연스럽고 절실한 일이 된다는 점. 그 점이 주호는 마음에 들었다.
작가노트 - 갑자기 열리고 골몰히 닫히는 세계
103 나는 이 소설과 관련해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겐 물 밖이 물속과 같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사실 ‘누군가’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라고 말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라고 말하길 택했다. 그것은 내가 나의 삶을 견디기 어려울 때 택하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나를 통과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면서, 글을 썼다.
해설 - 그러므로 갈 수 있는 만큼 가보려 합니다.
107 소설은 두 개의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도, 그 현실들 사이의 단절을 견디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그럴 만한 사연이나 트라우마가 있다고설득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실을 필요에 따라 나누어 ‘이중의 현실’로 만드는 대신 ‘하나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어쩌면 이들이야 말로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일 수 있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누군가의 눈에 희주와 주호는 지나치게 선량하고 비현실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때 말하는 ‘현실’이란 무엇인가. (…) 주호와 희주는 그저 “살아있어서 좋”고 계속 “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그러나 세상이 점점 그와 반대의 것들로 뒤덮이고 있음을 고통스러워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인 건 아닐까.
김기태, 보편 교양
139 역시 달콤했다. 경박한 단맛이 아니라 깊이가 있고 구조가 있는, 하지만 묘사해보려고 하면 이미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쩐지 조금 외로워지는 달콤함.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
해설 - 이토록 달콤한 멜랑콜리
149 소중한 대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애도의 과정을 통해 상실감을 극복하고 현실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며, 이때 상실의 대상은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유나 이상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만일 애도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인간은 슬픔의 과정을 계속 되풀이 하는 멜랑콜리(melancholy) 상태로 빠져든다.
김남숙, 파주
해설 - 허무에 매겨진 보상 청구서
196 어쩌면 이 시시한 복수극을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고 할지라도, 현철은 자기 자신을 위해 공포를 무릅쓰고 트라우마와 맞선 경험을 얻음으로써 최소한의 자기 존엄은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지연, 반려빚
207 그날 밤 꿈에서 정현은 반려빚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목줄을 한 쪽이 정현이고 목줄을 쥔 쪽이 반려빚이었다는 점이 좀 다르긴 했지만 개와 산책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217 정현은 서일을 믿고 싶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번 더. 하지만 문제는 정현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점이었다. 그간 자신이 선택했던 것들이 자신을 배반한 역사가 너무 길고 깊었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뭔가를 배웠다면 자신은 더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됐다. 특히 서일을. 그러니까 자신이 내리는 판단을, 그 근거가 될 만한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신뢰해서는 안 됐다. 정현은 서일을 너무나 믿고 싶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해설 - 망한 삶의 천재
237 꿈을 꾼다는 말이 돈을 꾼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지금 필요한 사유는 속물적 세태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인간이 소외되고 있다는 성찰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돈이 없이는 사유하고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속물이 왜 나쁜 말인지 알지 못하는 모태속물이며, 자본주의의 바깥을 상상하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염려조차 하지 않는 자본주의 네이티브다. 경제체제를 능숙히 소화하고 생산과 소비를 저울질해 냉정하게 현실을 가꾸는 우리에게 삶은 시장이고, 미래는 가격이며, 매력은 자본이다. 오늘날 가장 인간적인 것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것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희망한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238 쾌락을 얻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쾌락뿐이라는 무능이다. 기만적인 쾌락이 정치를 대체하고 마는 이 상실에는 어떤 우울증적 고갈, 즉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불모가 숨어 있다.
성해나, 혼모노
267 나이들어 야심까지 강하면 사람들도 그걸 알아채고 달아나. 좋은운도 다 황이 되는 법이다.
작가노트 - 케세라세라
283 인생은 계획하고 예측한 대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뭐가 되든 될 거라는 격언이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는 것도.
해설 - 반항하는 자는 부조리가 있나니, 그 가짜가 참되도다
285 노력과 보상이 연결되지 않는, 오히려 어느 때는 반비례하는 이 사회에서 노력하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한 치의 어긋남만으로도 공든 탑과 함께 삶이 무너리리라는 불안감에 잠을 설치는 현대인들과 그는 빈틈없이 겹친다.
286 이는 재능을 얻고 잃는 일에 문수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으며 재능의 습득과 상실이 우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287 이처럼 불공정해 보이는 인과는 낯설지 않다.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메커니즘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신분이나 계급, 인종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오로지 개인의 능력만을 평가 준거로 삼겠다는 능력주의는 언뜻 계층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하는, 차별로부터 거리를 둔 공평한 체제로 보인다. 그러나, 노력한 자가 그 대가로 능력을 얻고 이를 인정받아 차등적으로 대우받게 된다는 이 접근법은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은폐한다. 편향적으로 축적된 부와 권력이 세습되므로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하기 어려우며 누구나 노력하여 재능을 얻고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노력은 능력과 직결되지 않는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녀의 능력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세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289 ‘한정된 재화를 애초에 공평하게 누릴 수 없으므로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믿게 하며, 원하는 대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지배 이데올로기를 의심하기보다 그것을 누리는 구체적인 인물을 대신 원망하게 한다. 이는 보현보살이 문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문수는 신애기를 시기하는 감정의 연쇄에서 잘 드러난다. 체제 내에서의 분투 외에는 돌파구가 없다고느끼게 하며, 그것이 지극한 현실이라고 세뇌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인 세계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처럼’ 꾸며져 있을 뿐, 유일무이한 ‘진짜 현실’은 아니다.
291 이는 진짜와 가짜를 판명하는 기준이 전부 타자에게 달려 있었다는 데 대한 문수의 자각으로 이어진다. 유튜브를 보며 접신 연습을 하거나 거짓된 점괘를 읊으며 타인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애쓰는 문수는 신의 존재 여부로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해왔다. 그러나 신이 부재함에도 자신이 진짜임을 내보이려고 나서는 순간, 이를 판별하는 기준은 ‘나’에게로 옮겨간다.
전지영, 언캐니 밸리
300 술에 취하면 진심이 드러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대개는 진심 속에 숨어 있던 야만성이 드러나곤 했다.
해설 - 시선과 수치심, 권력과 아름다움
334 그것이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지만, 그 힘을 실제로 실행했는지의 여부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응시하는 권력은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은 드러내지만, 응시하고 있는 위치를 숨김으로써 힘을 얻는다.
심사평
343 뭔가를 배우려면 잘해야 하고, 못한다면 잘하려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고 빠질 것. 유교적 성장 제일주의 사회의 기본명제는 걷고 움직이는 기본적인 몸동작부터 서로를 대하는 마음은 물론이고, 사회적 관계 맺음의 형식과 공간의 규칙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 보편적 질서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상응하는 처벌이 온다.
344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도 되는 속도로 이루어진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345 타인에 대한 미움과 폭력은 기실 자기 안의 공포와 분노 때문이라는 진실도.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책임질 수 없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결국 일생 동안 안고 살아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결론은 서늘하고 묵중하다. 이 소설의 시시한 복수극은 더없이 강렬한 죄의식을 담아냈다.
359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한다는 리베카 솔짓의 말처럼 이들이 수영을 ‘배우고’ 있다는 건 학습과 연습을 통해 타인과 세계에 다가서고자 하는 태도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애를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