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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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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언어

2024-01-06 저자: 김겨울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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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갈피

9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글을 쓰면서는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 글로 구현된 ‘나’는 이미 내가 아니라 나로부터 기원한, 나보다 조금 더 낫기를 바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거짓말들을 우리의 상으로 삼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철학자들처럼, 모두 거짓말을 향해 나아가는 진실한 인간들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가 상으로 삼은 나의 어떤 측면이다. 전부가 나는 아니지만, 그 어느 곳을 떼어놓더라도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6 겨울과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내가 나를 절망시키면서도 동시에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다고 믿는 것.

49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미했던 준비의 시간은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도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하나의 글감이 되어.

50 예술의 경험이란 작가와 향유자가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삶의 경험이다.

51 시간을 견디는 경험이란 삶의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고 의미 없는 삶에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노력이며 흘러가는 감정에 집중하고 타인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다. 그 모든 시도와 노력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고 나는 믿는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속에서만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가볼 수 있다. 누구든지 태어나서 해볼 수 있는 경험보다 해보지 못하는 경험이 까마득하게 많기에 우리는 함께 있을 때만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그래서 함께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 혹은 예술만이 서로의 연장이 된다.

51 바라건데 진심으로 경청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살고 싶다. 판단을 잠시 멈추는 살마들의 세계, 상대방의 삶에 자신의 상을 욱여넣으려고 들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 복잡함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세계.

52 그러는 동안 나의 편견과 아집을 내려놓고 마음을 활짝 열어두는 일. 그럴 때 왠지 인류의 일원이 되었다고 느낀다. 표현하고 경청해온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한 발짝씩 다가선다고 느낀다. 이 바쁜 세상에서 시간을 견디는 인내심이란 진화에 불리한 성정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인내심이 없다면 내가 꿈꾸는 다정한 사람들의 세계는 그 꿈의 흔적조차 파르르하게 사라질까 두렵다.

55 사진은 시선이고, 대상과 배치와 정서가 만나는 순간이고, 본능처럼 손이 나가는 장면이고, 그렇게 찍힌 어떤 사진들은 아주 ‘사진적’이라는 말들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됐다.

57 세상을 나의 시선으로 담아두고 싶다는 큰 욕망보다 내 삶만을 복기하겠다는 소박한 욕망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상한 타인의 삶은 어디까지나 나의 솜아이 반영된 것은 아니었던가?

60 그것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그렇다고 박제하려 들지도 않았던 관계에 대한 향수라는 것을 알겠다.

61 눈으로 바라본다. 계속 눈으로 바라보기로 한다. 피사체 역시 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무방비 상태가 되기로 한다. 아쉽지만 답을 얻을 때까지는 모르는 사람의 순간을 소유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내가 알고 사랑하는 이들의 순간을 바라보기로 한다. 최선을 다해 바라보기로 한다.

75 삶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말도,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타당하다.

76 내가 아닌 사람, 여기가 아닌 곳, 지금이 아닌 때로 나를 데려가주기를. 그래서 나의 오래된 시야도 생각도 감각도 재편해주기를. 만나본 적 없는 사람과 겪어본 적 없는 일을 하게 허락해주기를.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78 그는 책과 책을 거치며 계속해서 다른 사람이, 더 넓은 사람이 되어 간다.이것은 단순한 ‘갈아타기’가 앙니라 인간의 애석한 운명을 넘어 다른 이의 몸을 입어가는 ’확장하기‘의 과정이다. 그리고 ’확장‘은 필연적으로 홀로 성공하기보다 여러 삶을 끌어안기를 요청한다. 그렇기에 동일하게 맞부딪히는 주문 속에서 “인간이라면 모두를인제치고 성공하라”라는 주문은 유일하게 힘을 잃는 주문이 된다.

80 무언가 놓치고 있어. 나는 삶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늘 모르는 무언가가 저기에 있다는 느낌, 손에 닿지 않는 따듯함이 손끝에 걸릴 듯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그것을 잡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바라지도 못하고 속지도 못하고 있다는 막연한 공포감. 어딘가 결여되어 있고, 나사가 하나 부족하고, 결정적인 부분이 비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으로 살아왔다. 뒤늦게 삶을 겨우 알아가는 이의 밤은 매일같이 서늘하다.

83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 되기를 바랐다. 나에 점점 가까워지는 삶, 내가 아닌 부분을 줄여나가고 나인 부분을 늘려나가는 삶,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삶을 살기를. 그럴 수만 있다면.

84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삶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 안에는 수없이 많은 책의 사람들이 살아 숨쉬고 있으나 내가 분유받은 살아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대개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을 뚝 떼어다 나눠주곤 하는데, 그렇게 나눠 받은 살마들의 합이 자기 안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다.

92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이란 없고 언제나 예전의 삶을 계속 이어갈 뿐’이므로, ‘무엇이든 무마할 시간이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됩니다.’ 계속 무마해보겠습니다.“ 무마의 약속은 곧 도전의 약속이다.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에게만 무마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와 무마의 순환 속에서 항해는 이어진다.

102 하지만 우리는 안다. 목표지도 시간도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삶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고통이 나에게서 유리되어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삶이 아니라는 것을.

110 함께 시간을 경험하는 사이를 친구라고 부른다는 걸, 그건 꼭 1분 1초 곁에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그렇지만 어떤 무의미한 순간부터 가장 재미있는 순간까지를 함께 한다는 뜻이라는 걸, 가장 무의미한 말부터 가장 재미있는 말까지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라는 걸 설명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게 독서라는 마지막 말까지는, 갈수도 없었다.

113 책은 다른 그 어떤 곳에서도 뱅루 수 없는 가장 깊은 수준의 경청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118 누군가의 삶과 책은 그 자체로 우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그런 삶을 살았던, 또 살고 있는 이들을 잊지 않고 싶다. 어쩌면 그게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150 삶은 인간에게 마음대로 통제되고 라벨이 붙을만큼 약하지 않다. 삶은 혼돈이고, 무질서는 승리하며, 성취는 무너진다. 삶은 인간의 자존감이 편안히 기댈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151 내가 나의 못남을 탓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나의 오만일지도 모른다고. 그만 투덜대고, 다시 한 발짝 내디뎌야 한다. 혼돈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반가이 맞이하며.

170 머리로는 인간 김겨울과 자각 김겨울과 유튜버 김겨울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어쨌든 다 김겨울이니까 완벽히 분리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내 책에도 내가 있고 내 유튜브 영상에도 내가 있다. 그게 100% 나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또 100%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몇 달 주기로 분리가 되었다 안 되었다 한다. 사람들이 모르는 나를 남겨두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언제까지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가?

171 어떤 책이든 비판하긴 쉬우니까 이왕이면 책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싶다. 그게 독자로서의 나에게도 알찬 돋것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저자의 가장 취약한 맨살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쪽이 좋다. 작가로서의 나는 독자로서의 나도 바꿔가고 있다. 그게 책 쓰기의 성과라고 하면 너무 소소한 것일까?

174 이게 이런 경험인 줄 알았으면 시작할 때부터 다른 마음가짐으로 다른 책을 썼을 것 같다. 마치 삶을 살고 나서야 어떻게 살았어야 했을지 감을 잡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고, 이게 나의 최선이었음을 인정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제 공은 넘어갔다. 이 책은 이제 독자들의 것이다.

184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증언과,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애쓸 모든 시간과, 그렇게 넘어서게 될 벽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186 정신과 몸이,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기를 바라는 마음.

205 이해와 판단은 한 끗 차이. 판단보다는 이해의 도구로 MBTI가 쓰였으면 한다.

223 책도 그렇고 CD도 그렇고, 하여간 일관성 있게 물성에 집착하는 인간이라는 점이 내가 나를 좋아하는 지점이다. 무형의 예술이 유형의 형질을 얻을 때 그 물건을 구성하고 직조해내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결코 애플뮤직이라든가 화면 스크롤의 모습으로는 전달될 수가 없으니까.

242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선택할 수 있다. 질문은 시간을 정지시키는 주문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길 때 질문이 자라난다.

243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기는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질문이 자라나는 곳에서 시간이 멈추듯, 질문이 멈춘 곳에서 관성이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