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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

2024-08-18 저자: 박혜윤 출판사: 동양북스

🔖 책갈피

5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공부는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딱 그거다. 내가 더 알아야 할 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러니까 영어 지식을 꼭 늘려가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이걸 모르는구나’ 그러면 그걸로 공부 끝!

7 우리가 어렸을 때 세상을 그토록 강렬하게 느끼고 즐겼던 건 따지고 보면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숨 쉬는 모든 순간 배우고 있었다.

33 사람들은 자신의 영어 실력을 모른다. 실력을 모르는데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모르는 걸 너머 대부분 자신이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한다. 뭘 못하는지도 잘 모르지만 자기가 잘하는 영어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다. 못하는 거야 어차피 모르니까 그렇다쳐도 잘하는 부분까지 내가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써먹지 못하는 거야말로 억울한 게 아닐까.

39 우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상태가 되는 게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할 때, 그 이유는 그야말로 아무 쓸모도 없고, 이성적이지도 않고,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되지도 않는 것이다. 사회적인 가치판단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니므로, 하면서도 ‘내가 이딴 걸 왜 하고 있지?’하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다. 이유를 알게 되는 대신 ‘아, 나는 이런 걸 하는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에 이른다. 나 자신만의 무엇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에는 어떤 이유도 없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보다 더 발전하고 나아지는 무엇이 될 필요가 없어진다.

47 한편으론 무한 경쟁 시대에 맞서는 항생제 같은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줄곧 생각해 왔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발견한 건 바로 ‘덕질’이었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다. 이렇게 영어를 쓰고 싶었다. 영어 공부도 아니고, 영어를 덕질하는 것. 나만의 방식으로 오로지 내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내 멋대로 영어를 대하는 것이다.

48 내가 이해하기에 덕질은 그런 것이었다. 아무런 실용적인 목적이 없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야’라는 확신을 만들어가는 과정.

50 내키는 대로 하는 영어 공부가 이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살아도 좋다는 그런 작디작은 허용이 될 수도 있다.

66-67 모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안다는 것은 괴로운 만큼 풍부하고 멋진 일이다.

68 ‘나는 이걸 모르지. 모른다는 걸 알게 됐으미,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적어도 나의 의식 안에 들어온 모른에 대해서는.’

78 성인이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모국어로 형성한 문법의 논리와 생각은 결코 방해물이 아니다. 내가 이미 가진 자산인데, 이걸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써먹지 않으면 절대로 나에게 이로워지지 않는다.

85 배움은 이렇게 정의 내려진다.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 영어라는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 영어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르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되는 건 ‘나’라는 사람이 그 전과 후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영어를 하지 않았던 이전의 나에게서 영어를 하는 ‘나’가 되는 과정에는 이런 복종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88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주 오랜 시간. 내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말이다. 그게 배움의 출발이다. 그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배우지 못하게 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다면 변할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은 어떠한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89 남들보다 뛰어난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려는 게 아니라, 배움은 다른 내가 되어보는 과정이다. 아무 것도 쌓이지 않는 시간, 그건 오로지 나 자신과 함께하는 지극히 은밀한 시간이다.

94 영어 공부를 할 때,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야 한다는 선입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른 맥락에서 새롭게 조합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써먹는 것도 공부다.

94 다만 나에게 필요한 공부와 적합한 속도를 찾기 위해 온전히 멈추고 몰입하는 데에는 어떤 고집과 자신감이 필요하다. (…) 주어진 공부를 하며 견디는 구간과 내 마음대로 실험을 하는 짧은 구간 모두 필요하다.

96 왜냐하면, 내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안 하기로. 못하는 상태에 머물기로 한 것도 나의 결정일 뿐이다.

99 내가 하는 말을 내가 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내 생각의 도구로서 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110 약자를 불리하고 어쩔 수 없이 피곤하다. 하지만 그것도 똑바로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혹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강자, 권력자가 되는 게 그렇게 많이 부럽지는 않다. 분노는 슬픔이 되기도 한다. 약자가 똘똘 뭉치지 않고 약자끼리 괴롭힐 때, 그래서 이 권력의 구도를 더 굳힐 때 말이다.

118 영어가 사람들의 능력이나 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들을 나누는 수단이 되게 하는 것이다.

126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편안함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인식하는 것이 발음이나 언어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먼저인 것이다.

129 이들에게 ‘배움은 새롭게 변하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대상은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들처럼 나의 편안함을 지키고 싶어서 거부하는 게 있다.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의 행동이 눈에 띄는 건, 결국 나아게 있는 문제인 것이다.

136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런 거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눈이 생기는 것.

144 하지만 영어로 말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나는 나만의 언어의 창조자니까. 그러면서 나는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됐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게 뭐야? 처음에는 별 거 아닌 질문 같지만, 이것을 꾸준히 해보길 추천한다. 변변한 답이 없어도 괜찮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그 질문을 끊임없이 떠올리는 것만으로 독특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154 감정을 조절하는 게 어려울 것 같지만 어떤 내용이든 내 생각을 말해도 된다는 안심을 하기만 하면 목소리를 낮추는 건 쉬워진다. 한국말로 할 때,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많아서 감정이 폭발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175 영어를 쓰면서 생긴 나 자신과의 거리, 나 자신에 대한 낯설음을 통해 나는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2 비교를 하지만 차별하지 않는 법에 대해서도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196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은 그렇게 고정된 것도 아니다. 나는 행동하기 때문이다. 행동함으로써 나는 훨씬 복잡한 나 자신을 발견해 간다. (…) 최고의 목표 달성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풍부한 가능성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206 그리고 교과 내용만 보면 학교에서 도대체 뭘 가르치나 싶은데,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프레젠테이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내용이 무엇인가보다는 내가 남들에게 무엇을, 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스스로 정하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무지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다. 너무도 편하게 말한다. 그런데 그게 핵심이었다.

206 (…) 한국에서는 유치원생이 공연을 해도 수준이 훌륭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야말로 제멋대로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발표를 하는 당당한 태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 당당함은 멋진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너무도 편안하게 자기 자신인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