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의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읽으며 그가 구도자처럼 보였다. 세상에 다정하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비롯하여 앞에 놓인 것들을 성실히 해나가는 사람은 구도자나 다름 없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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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딱히 다른 사람들의 인지를 바꾸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삼을 마음도 없고, 담담하게 스스로 만들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가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최후의 한 곡이 반드시 좋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사카모토 류이치=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런스’라는 프레임을 깨부수는 데 제 마지막 삶의 목표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 남겨진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죠. 이런저런 생각의 변천을 거친 지금, 이것이 저의 거짓 없는 심경입니다.
46 ’암과 싸운다’가 아닌 ’암과 살아간다’는 표현을 택한 것은 마음 한구석에 무리하게 싸워본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72 본래의 자연계는 모든 것이 이어져 있는데 언어에 의해 선이 그어지는 것이죠. 물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이것이 인간이 범하는 오류의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LIFE - fluid, invisible, inaudible…> 에서는 점차 변해가는 물의 형태를 그 총체로서 표현해보고 싶었죠.
97 억압한 사람들은 금방 잊지만, 억압 당한 사람들은 세대가 바뀌어도 잊지 못하는 법이죠.
103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언젠가는 부서지고 만다는 사실을 통감했죠.
104 ’자연에는 대적할 수 없다‘는 전제를 인정하지만, 한편으로 거기에 두어 개쯤 자신의 소리를 더해 즐길 권리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지진이라는 재해를 계기로 그동안 막연히 품어온 가치관에 더욱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110 그러고 보면 피아노라는 것은 원래 목재라는 물질을 자연에서 가져와 철로 연결해 우리가 선호하는 소리를 연주하도록 만든 인공물이잖아요. 그러니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나미라는 자연의 힘에 의해 인간의 에고가 파괴되어, 비로소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146 그는 과거에 세 번, 여행을 하다가 짐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세 번 모두 짐을 찾지는 못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때까지의 인생을 리셋하고 재출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요. “과거에 얽매일 필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버리는 용기다”라는 선불교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그다운 사고방식에 관해 들으며 ’과연 그렇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182 하지만 반년 동안의 비건 생활이 쓸데 없는 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크로바이오틱을 시작하며 식이요법의 본질을 배울 수 있었고, 그 후로 몸에 닿는 물건들은 가급적 자연 소재를 사용하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오누키 씨의 충고대로, 어떤 면에서는 살기 불편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것, 해야할 것을 구분하는 버릇이 생겨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게 된 것은 틀림 없습니다.
185 미국 병원을 본격적으로 다닌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 이래저래 놀라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병원 안이 춥습니다. 옛날부터 미국인들이 에어컨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와인셀러랑 같은 온도잖아요. 그런데도 주변을 둘러보면 저 같은 암 환자가 반소매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아무렇지 않게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습니다.
197 그러나 뭐가 어찌 됐든,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역시 옳지 않은 일이구나, 하고 반성했습니다. 고집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가능성을 좁힐 수 있음을 통감했죠. 충분한 여유 시간을 갖게 되면서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이었습니다.
207 블루스는 19세기 후반, 강제적으로 미국에 끌려갔던 흑인 노예들이 만들어낸 음악 장를인데, 신기하게도 그들의 출신자인 아프리카 국가에는 정작 블루스 같은 음악이 없습니다. 이미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죠. 그래서 저는 향수의 감각이야말로, 예술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209 그런데도 자신(야마다 감독)보다 30살 이상 어린, 타국의 영화감독(이냐리투 감독)의 재능을 순수하게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저 헝그리 정신이야말로 일류의 증거구나, 하는 생각에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214 그런데 <레번넌트>를 작업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좌절을 맛봤습니다. (…) 이 씁쓸하기도 한 겨험 덕분에 저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도 사실이었고, 이후 참여한 <분노>(2016년), <남한산성>(2017년)의 영화음악에는 어떤 면에서는 <레버넌트>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60 그러고 보면 저라는 인간은 그야말로 주위 어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69 긴 시간 동안 유지해온 피아노와 전자음이라는 역할 분담이 무너지자, 우리에게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소리가 탄생했습니다.
282 결국 사용 편리성의 좋고 나쁨은 기술 그 자체보다, 설계자가 얼마나 사용자의 입장을 깊이 고려했는가에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316 그래도 아이들에게 병에 대해 고백한 뒤로는 마음이 깔끔하게 정리돼, 비교적 냉정하게 죽음을 내다보며 여러 가지 구체적인 검토를 해나갔습니다.
329 가본 적 없는 나라라 할지라도 단 한 명이라도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단순한 이국이 아닙니다. (…)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없는 나라의 일은 모른 척해도 되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지만요. 그러나 세계 어디든 그곳에 사는 누군가의 얼굴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순간, 뉴스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29-330 저는 어느 시기부터인가 제 사회적 활동에 “이름을 판다”라는 여유를 듣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 일본에서는 아직도 예술가 등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한 세간의 거부감이 존재합니다만, 저는 그날 이후 ‘만약 내가 정말 유명해 팔 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설령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는다해도, 그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싶어서요. 환경에 관한 운동도, 지진 재해 후 활동도 이런 신념의 힘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번 연결되면 쉽게는 그만둘 수 없죠.
343-344 그리고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시험 삼아 피아노를 마당에 그냥 놔둬보기로 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수차례 비바람을 맞으며 도장도 다 벗겨진 지금은 점점 본래의 나무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어떻게 썩어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나이 먹어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자를 대신한 에필로그
383 내 멋대로의 생각을 마지막으로 적는다.
사카모토 씨는 말 없는 것, 말을 갖지 못한 것의 말이었다. 소리 내지 못하는 것, 소리 낼 수 없는 것의 소리였다. 음악이 되지 못한 것들의 음악이었다. 나아가 발언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 발언하고 표현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자유를 모르는 이에게 자유의 영감을 불어넣는, 자유를 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자유가 그를 음악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자유롭게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