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수식어
🔖 책갈피
22 모든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알아 가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와 호기심만 있다면 현실에서 매일매일 마주치는 이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47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그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는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았다. 가슴을 뛰게 하는 열정이 대부분의 장애물을 해결해 줄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60 정체성이란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주위 모두가 나와 같은 인종, 민족, 문화 배경을 갖고 있으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5 무엇보다 다는 이곳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처음으로 자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74 인생은 지난 사건들과 경험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79 소수가 되는 경험을 해 본 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수가 정해 놓은 편견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의식적으로 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정체성이라는 화두는 다수와 주류의 담론이 아닌 소수자들의 담론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변두리, 경계인, 소수자들이 자아를 인식하는 중요한 기제이고 주류와 다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묻고 드러내는 행위이다.
80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늘 소수로 존재하며 반복적으로 타자화되어 버리는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연민과 이해는 결국 나의 정신세계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1 한 인간,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운명이란 실제로 이렇게 유동적이고 우연적으로 결정된다.
109 아무리 한류와 케이팝이 중화권을 휩쓸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조선족 폄하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자신을 사과배로나마 규정하던 조선족 청년들마저도 점점 사라져 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0여 년간 여러 역사적 풍파에도 중국 국민으로,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 한인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조선족의 혼합적이고 다중적인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의 자리를 온전히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115 한인 입양아도 디아스포라이며 디아스포라는 디아스포라로서 각자 고유한 정체성이 있다. 외국 가정에서 자란 그들 자체의 인격과 존엄함, 그들만의 이중 정체성과 현지 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을 뿐이다.
130 이분법적 사고에 갇히지 않으려는 의시적 선택일 수도 있고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등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거부하는 무언의 몸부림이었을 수도 있다. 아버지 임천택 선생이 1905년 떠났던 조선, 원래 하나였던 조국에 대한 향수이자 염원이었을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는 북한을 개별적 디아스포라 집단이라고 인식하는 것보다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꿈꾸는 완성된 조국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형태의 조국을 꿈꾸었던 헤로니모 선생을 미지의 세계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나는큰 희열을 느꼈다.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이중, 다중적인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100퍼센트 쿠바인이자 100퍼센트 한인, 그 이상의 세계 시민성을 갖춘 헤로니모 선생의 모습에서 디아스포라가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와 이상을 보았던 것이다.
137 무엇이 그들을 한국인이게 할까, 이것은 그들의 피나는 의식적 노력일까 자연스러운 발현일까, 정체성이란 타고나는 공통의 기억인가 습득하고 유지되는 노력의 산물인가.
140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숭고할 수도 영원한 영웅일 수도 없다. 위인들의 숭고함과 현실의 초라함은 사실 손바닥의 앞뒤처럼 공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불완전성에 지나치게 실망할 필요가 없으며 동시에 우리 안에 내재한 영웅성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서도 안 된다. 헤로니모 선생들이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의 마지막 구절처럼 말이다.
네 스스로와 이 사회 앞에 존귀한 자녀들아, 너의 행동과 고결한 생각과 더 멋진 개념 의식이 아름다운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
148 회사를 그만두고 <헤로니모>에 전념하기로 결심했을 때 “절벽에서 뛰어내린 후에 낙하산 펴는 방법을 궁리하라.”라는 말을 들었다. 뉴옥의 한 커리어 워크숍에서 한인 디자이너가 한 말이었는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이 강력히 움직이는 방향을 우선 선택하고 그 이후에 수습해야 될 현실에 대해 생각하라는 의미였다. 인생을 계획적으로,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며 사는 이들에겐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 중요한 기로에서 늘 내 가슴을 강력히 움직이는 쪽을 선택한 것 같다. <헤로니모> 역시 그랬다. 그리고 나에겐 많은 운이 따랐다.
161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하면서 겪는 불확실함이다. 불확실함은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수반한다. 두려움은 긍정보다는 부정적 에너지를, 부정적 에너지는 자신감 결여와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위축으로 이어진다. 저 악순환을 깰 수 있는 방법은 믿음 하나뿐이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믿음으로 채우려는 것에 대해 나는 늘 회의감을 갖고 있지만, 불확실함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믿어 본단 말인가. 나의 잠재적 능력으로든 신의 도움으로든 결국 잘 풀릴 것이라고 한번 믿어 보자.
164 결국 생명력 있는 창작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끌렸던 초기의 열정과 감동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179 모두 각자의 삶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 그 선택에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95 나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질문 해 봤을 때, 내가 <헤로니모>를 선뜻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성공이라는 트랙에서 벗어나서 얻은 자유 때문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정당화하거나 성공적인 삶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커리어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면, 내 가슴이 이끄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담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세속적 성공을 이루면 이룰수록 자신이 이미 이룩한 성공 기준과 틀 안에 구속되기 쉽다. 성공으로 인한 딜레마다.
196-197 성공의 기준에서 내 결정은 분명 비합리적이고 순진해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저 기준에 모두가 속박될 필요는 없다. 각자 삶에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가치와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7 내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 마음의 목소리였다. 내게는 <헤로니모> 프로젝트가 그 어떤 성공적 커리어보다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성공의 트랙에서 이미 벗어난 자유로움이 있었다.
199 “부모들은 많은 경우 자식들을 감독하고 싶어 한다. 자식들은 배우, 부모는 감독이 되어 지도하고 명령한다. 엄마와 아빠는 언젠가부터 감독이 아닌 관객의 역할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너희의 고집을 못 이겨서이기도 하고, 너희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욕심에 얽매인 감독의 역할이 아니라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는 관객의 역할로 너희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다음 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게 된다.”
부모님은 가끔 영화에 빗대어 자신들의 교육 철학을 말씀하지만 뒤에서는 노심초사하며 우리를 간절히 응원하셨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관객의 시선으로 축복을 보내는 그들 덕분에 나는 가장 고유한 내가 되었고 가장 나다운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211 생각해 보면 내가 한국인에서 재미 한인으로, 다시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로 나아간 것은 한인의 범주를 축소한 결과가 아니라 한인의 범주를 확장한 결과이다. 그로 인해 나는 이전보다 더 풍성한 자아를 경험했고 더 넓은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속할 수 있는 공동체들이 많아지면서 동시에 나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의 범주 역시 넓어졌다.
213 유대인이라는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유대인의 범위가 배타적일수록 유대인의 자격을 충족할 수 있는 이들은 줄어들 것이고 결국 우리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유대인이 되고 싶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때 유대 전통 내 불필요한 요소들은 소멸할 것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요소들은 더 혁신적인 정체성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을 더 견고하게 하는 동시에 확장해 줍니다.
215 한국인, 한인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는 한국 국적자들만의 권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담론, 보다 넓은 인류학적이고 미래학적 개념, 단일 문화에서 다문화로 넘어가는 공동체의 이야기, 생명력이 있고 혁신적으로 진화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다.
218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역사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란 늘 바뀔 수 있으며 유동적이고 복잡한 것임을 보여 주었고 우리는 이를 지켜보며 한 집단의 존재와 투쟁, 연대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인권과 평화, 인류 보편 가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221 어느 지역에 정착했든지, 어떤 형태로 정체성을 유지했든지, 넓은 범주에서 각각을 독특하고 특별하고 동등하며 동시에 정당성이 있는 존재로 바라본다. 유대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리적으로 국한하지 않음으로써 더 다양하고 풍부한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것이다.
223 “사전적 의미로 나는 디아스포라의 일원이 아닙니다. 내가 태어난 조국 안에서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에게 디아스포라는 지리적, 사회정치적 개념이 아닙니다. 매일 나 스스로를 부수고 깨뜨리려는 사유 속에 작동하는 철학적, 존재론적 개념입니다. 나는 늘 디아스포라가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내가 스스로 멈추고 안주하는 순간(stasis) 나 자신을 깨뜨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ecstasis), 주류가 되어 편해지는 순간 경계인이 되어 불편해지려고 하고, 안도감으로 느슨해지는 순간 나 자신을 부정해 다시 깨달으려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디아스포라적 삶을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225 그 혁신성이란 전통과 유산을 재해석하고 현대화하고 새로운 환경에 접목시키며 더 확장된 자아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아우르는 개념일 것이다.
228 한국에 있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코리안이라는 정체성과 씨름하며 디아스포라들은 혼란을 경험하지만 그만큼 더 확장된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 단일 문화권에서 자라나는 이들보다 복잡하지만 그만큼 더 풍성한 자아를 갖출 수 있다.
236 우주의 영원함 속에 찰나같이 스쳐 지나가는 삶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일 것이다. 내 것이라 주장할, 영원한 나만의 수식어는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알아 가고 자기 삶의 비밀을 나름대로 풀어 가려는 소중한 벗들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디아스포라라는 존재들에 내재된 디아스포라적 사유를 통해 우리가 다 같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가 디아스포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존재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