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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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바다
37 진짜 사랑 고백.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역시 좋아… 그것도 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롤링 선더 러브
42 사람들이 클래식을 듣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음을 증류해서 색과 맛과 향을 없애기.
43 하지만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을 세상에 얼마나 더 줘야 할까. 이것은 투자와 수익의 문제일까. 창가 테이블의 저 두 사람도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며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 활동 중일까.
48 “나이가 들어도 나다움을 지켜야죠. 삶이란 어차피 흘러가잖아요.”
그 취향, 너다움. 도무지 못생긴 빨래 건조대를 방 바깥에 둘 수 있어서 유지되는 거 아닐까. 이런, 내가 마음이 좁고 편견이 있네. 온화한 피아노곡을 틀어놓고 코튼향 인센스를 피운다고 육인용 테이블에 둘러앉은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51 바보 같지만 가끔 되풀이하고 싶은 모든 소란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27세의 삶에 신파를 그리워하다니 이것은 미성숙일까. 어쩌면 사랑은 새들보다 가깝고 빵보다 단단하며 조카보다 듬직한 무엇일지도. 퇴근하고 나니 비워져 있는 휴지통. 소화제를 먹을 때 옆에서 따라주는 더운물 한컵. 늙은 부모의 터무니없는 세계관을 함께 끄덕이며 흘려듣다가 주차장에 내려와 시동을 걸기 전 누가 먼저랄것 없이 뱉는 안도의 한숨. 물티슈와 수세미, 파스와 보행기. 암 보험과 노령연금과 장례 토털 케어 서비스 카탈로그를 함께 뒤적거리기.
사랑은 걷잡을수 없는 정열일까, 견고한 파트너십일까. 둘 다일 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왜 사람은 정체를 알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부재를 느낄 수 있는지. 걔였는지 쟤였는지 이름과 얼굴은 지워졌어도 촉감과 온도와 음향, 아득한 형체로 남은 것들.
74 속을 보이면 어째서 가난함과 평안함이 함께 올까. 그날 ‘맹이의 대모험’이었던 블로그 이름이 ‘돌멩이의 대모험’으로 슬쩍 바뀌었고, 이런 글이 올라왔다.
‘구르더라도 부서지진 않았지.’
76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전조등
91 ‘이상’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은 것을 지시해서 거꾸로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하는 듯도 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123 목에 건 리더기로 바코드를 스캔한 뒤 번호가 붙어 있는 바구니에 주문량만큼 나누어 담았다. 애플리케이션이 동선을 최적화해서 알려줬지만 하루에 이만 보쯤은 걸어야 했다. 그걸 사람이 하느 거였냐고 니콜라이가 물었을 때 진주는 답했다.
“그럼 사람이 하지 누가 해?”
127 그럼 그들은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할까. 마트에 와서 물건을 담는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오직 그 물건들이 주는 행목의 알맹이만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 물건들을 사기 위해 자기처럼 또다른 누군가에게 시간을 팔고 있을까.
보편 교양
로나, 우리의 별
189 진부한 악과 싸우는 일보다는 감춰진 위선을 폭로하는 일이 자극적이다.
190 진정성을 검증하는 눈이 많아지면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193 시리아에 지어진 학교 앞에서 로나가 한 금융사를 대신해 ‘안전’과 ‘신뢰’를 말할 때, 해당 금융사가 국내에서 전개하던 취약 계층 장학 사업은 절반으로 축소됐다는 걸 누가 알겠는가.
197 ‘이거 나만 이상해?’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거창한 계획이나 사상 이전에, 그냥 세상이 이해가 안 돼서 참을 수 없는거죠.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년 8월호 중에서
201 하지만 눈 내리는 12월 31일, 로나가 진부하지만 엄연한 가난 앞에 발걸음을 멈췄을 때부터, 천 명의 손을 거쳐 붉은 도브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의 이야기에는 효율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메시지가 있다.
그동안 제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만 집착했을지도요. 여러분들과 함께라면, 여러 사람과 함께라면 더 멋진 일이 가능하다는 영감을 얻었어요. -<로나 통신> 2024년 1월 7일 중에서
태엽은 12와 1/2바퀴
무겁고 높은
팍스 아토미카
305 사회의 한편에는 남다른 개성과 능력을 계발하라는 강한 압력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에는 평범하고 무난한 기준에 맞춰 살아가라는 강한 압력이 존재한다. 한쪽에는 평범함을 넘어서라는 압력이 존재하고, 한쪽에는 평범함에 도달하라는 압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이중의 압력은 ‘평범함’을 벗어날수 없지만 달성할 수도 없는 특징으로 만든다. 종종 평범함은 흔해 빠진 것, 개성 없는 것, 성찰적이지 못한 것, 양식 없는 것으로서 경멸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평범함은 ‘정상성’과 결부되어 도달할 수 없는 - 또 일반적인 궤를 벗어난 것들을 배척하는 - 사회적 도덕적 규범이 되기도 한다.
306 ‘규범’ ‘정상’ ‘평균’ 같은 억압적 개념들에서 평범함을 떨어뜨려놓을수록, 평범함이 얼마나 다양하고 비일관적이며 풍부한 것인지 볼 수 있게 된다. (…) 이것들은 하나의 특색이나 주제로 집약되지 못하므로 특별한 의미나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 김기태의 소설은 이처럼 우리가 평범한 일상에서 간과하는 평범함을 조명한다. 그것의 비일관성과 다면성을 단순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321 그는 타협 없이 이상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세속적이고, 그저 세속적인 계산만 하며 살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며, 자신의 이러한 이중성을 반성할 만큼 충분한 ‘메타 인지’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327 무겁고 심각한 것은 느리다. 무게를 잃어버릴수록 - 상징적인 무게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크기라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 말과 이미지는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순환하고 전파된다. 인터넷 밈은역사적 지역적 사회적 거리와 차이들을 마구잡이로 넘나든다. 그래서 인터넷 밈은 역사적 맥락을 제거해버리는, 모든 것을 피상적인 이미지로 만드는 웹의 순환과 공허한 ‘레트로’ 유행을 보여주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