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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소설

라스트 러브

2024-10-10 저자: 조우리 출판사: 창비

📝 감상

제로캐럿이라는 가상의 아이돌의 이야기와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이 교차되는 형식의 소설. 허구의 세계 속 또 한 겹의 허구의 세계가 앞선 허구의 세계를 너무나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조금은 서글퍼지는 소설


🔖 책갈피

11 아쉬움. 그 말을 다인은 계속 곱씹었다. 아쉽다는 건 다음이 없어서 생기는 마음이겠지. 다음에 할 수 없는 말, 다음에 볼 수 없는 얼굴, 다음에 전할 수 없는 마음.

63 보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고 그 순간엔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얼굴들.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얼굴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얼굴들. 그 짧은 순간, 그래서 너무나 생생한 순간, 그때의 마음.

67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바에야 차라리 선택의 순간이 오지 않는 것이 좋다고.

68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그려진다는 것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조합이 참 좋았지. 좋았어.” 과거형은 언제나 애틋하다.

83 팬들에겐 무엇이든 슬픈 결말이었지만, 끝이라는 말도 없이 서서히 잊히는 것이 가장 쓸쓸했다.

100 정말 전속력으로, 온 힘을 다해서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화살이 날아오는 것처럼. 과녁이 된 기분이었는데, 그게 왠지 좋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한 사람만은 반드시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믿음.

109 사람은 정말 이름만큼의 삶을 살게 되는 걸까. 그래서 마린은 자꾸만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는 걸까. 의미를 두지도 않으면서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걸까. “의미 없다, 의미 없어.” 그런 말을 버릇처럼 달고 살면서.

113 아이가 원하는 것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세계니까. 아이는 곧 체념하고, 어른에게 설득당하고, 인정할 수 없는 것들과 손을 잡고 살아야 하는 세계니까.


183 대체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음악을 듣거나 패션을 따라 하고 팬레터를 쓰는 정도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친구나 애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나에게 주는 건 좋은 음악과 볼거리가 전부인데, 어째서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돈과 시간을 바치는 게 아깝지 않았던 걸까.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테니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게 그 사람들은 불행한 십대를 버틸 수 있게 한 존재였다. 그들은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방식대로 그들을 봤다. 현실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랑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 사랑을 거부한 적은 없었다. 거부당하지 않는 사랑, 그 사랑이 부족하거나 과하다 말하지 않고 언제나 고맙다고 답해주는 사람. 그런 사랑이, 그런 사람이, 내 삶에 들어와 있는 게 좋았다. 그런 사랑과 사람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도록, 져버리지 않도록, 그렇게 팬질이라는 걸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 마음을 함께 나눈 사람들.

186 이 소설은 파인캐럭의 팬픽에 담긴 애틋한 사랑과 섬세한 성장 서사로 말미암아,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 콘서트를 앞두고 제로캐럿이 마주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에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때 묘사되고 있는 제로캐럿 멤버들의 감정, 즉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가기 위해 필요에 따라 쓰고 버려지는 시장에 주체성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딜레마, 너무 일찍 사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아 그 세계에 갇혀버린 막막함,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대중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불안, 끝없는 자기 증명에 대한 강박과 재능에 대한 열패감 등은 아이돌들의 직접 증언을 받아 쓴 현장 리포트로 보이기까지 한다.


194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은 나를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