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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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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펼쳤다가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2024-02-17 저자: 이주현 출판사: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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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갈피

5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울병은 ‘사막’에 더 가깝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지글거리는 사막의 태양.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극단적 추위.다양한 생명체의 활극이 펼쳐지는 바다오 달리, 사막의 극한 환경은 생명을 품을 만한 곳이 못 된다.

6 조울병을 비롯해 다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를 놓고 싶었다.

9 고통은 끝이 없지만 우리는 서로의 ‘곁’이 될 수 있지.

78 쉬지 않고 걸어왔는데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무작정 걷기만 했다. 그때의 막막한 감정이 되살아나면 스스로가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계속 눈물이 흘렀따.

78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병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울병의 한복판을 지날 때 보였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나’를 재구성해봄으로써 위기에 처했을 때, 감정이 극도로 고양됐을 때 또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패턴을 발견한다면 그다음 찾아올 조울병의 폭압에 방어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87 옛 일기는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존한 중요한 기억화석이다.

122 슬픔이 감정의 습지라면, 우울은 감정의 사막이다. 그것도 사하라 같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라 남극 같은 동토의 사막. 우울은 귀를 막는다.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우울은 ‘셀프 감금’이다.

138 다만, 세상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불운이 피해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불행을 겪어야 한다.

163 심리란 일종의 ‘뇌의 사용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저인과 의사들이 뇌에 대한 전문 지식을 이용해 뇌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매뉴얼을 가르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167 계절이 변하면 철 지난 옷을 정리하는 것처럼 좋지 않은 것들은 기억의 서랍에 넣으라고 했다.

169-170 감정은 배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이성은 갈 곳을 알려주는 방향타다. 좌표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경험의 축적 덕분이다. 우리는 감정을 동력 삼아 나아가고 이성을 발휘해 길을 찾는다. 그리고 항해의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며 서툴렀던 선원은 베테랑으로 성장한다.

170 감정이 북받칠 때 이를 통제하고 이성의 힘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매뉴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상황 - 인지 - 감정의 사슬 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일기엔 선생님과 나눈 말들이 적혀 있다.

“인지는 상황을 해석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이를 왜곡된 논리와 부정적인 추론에 빠지지 않도록 인지하는 방법, 생각의 변화가 중요하다.”

“인간에게 생각, 마음, 영혼이 있다면 가장 바꾸기 쉬운 것은 생각이다. 마음을 흙, 생각을 물, 영혼을 식물에 비유해보자. 식물의 종을 아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고, 토양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중 물 공급이 가장 조절하기 쉽다. 영혼을 교체하는 것도 어렵고 마음을 고쳐먹기도 힘들다. 생각을 바꿔보도록 노력해보자.”

171 “자아엔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있는데, 질병, 업무 상 실패 등으로 사회적 자아가 훼손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적 자아가 굳건하다면 결국엔 어려움을 헤쳐나올 수 있다. 조울병 때문에 하던 일을 제대로 못 한다거나 중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평소 개인적 자아를 강화하는 훈련을 한다면 병 때문에 뿌리째 흔들리진 않을 수 있다.”

172-173 의사가 환자를 돕는 방법은 재발이 없을 거라고 안심시키는 게 아니라 환자가 위기에 봉착할 때 ‘모든 것’을 잃지 않고 헤쳐나올 수 있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환자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훈련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장려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고, 슬픔, 기쁨, 두려움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을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 불행이 발생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이런 훈련을 계속한다면 극복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186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행위는 극한 상황에서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한 조각 작은 마당이자, 자기 위로의 습관이자, 위축과 고립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209 우울의 늪에서 헤매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기보다는 가만히 곁을 지켜준 것도 ‘주변부’로서 겪은 경험 덕분 아닐까.

213 그러나 나를 잘 아는 사람들, 폐허에서 어떻게 일어섰는지 아는 사람들, 실수투성이, 오류 범벅이라고 하더라도 용기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비록 소수라도 조직 안에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217 “(…) 하지만 고통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다 안다고 말하거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 편협한 ‘관종’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217 그러나 아픔은 다른 아픔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풍부한 인생의 질감을 갖게 만든다.

218 “병이라는 것이 일상을 무너뜨리고 이전의 관계들을 복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함. 특히 이모의 글을 전반적으로 읽고 아파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내가 오롯이 지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얻음. 감사합니다. 환자로 지내는 것이 나을까, 환자의 주변인으로 지내는 것이 나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음. (…)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는 게 나의 최근 결론이었음. 환자든 환자의 주변이든 서로가 행복한 모습에서 다시 행복을 찾을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서. (…)”

229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공존 불가능해 보이는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어느 쪽이든 모두 나였다. 솔직했고 그래서 충만했다. 나의 연대기가 담긴 지질층을 발굴하는 탐험의 결론이었다.

245 간혹 황홀하게 타오르는 저녁놀을 마주하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석양을 맞는 기분이 들면서 경탄과 아쉬움이 뒤섞인다. 까미노를 걸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속삭였다. ‘지금이 바로 인생의 절정이야. 그러니 아무것도 놓치지 마.’ 그 달콤한 말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막 지나고 있다는 행복감, 그러나 곧 어둠이 내릴 거라는 안타까움이 스며 있었다.

246 그로부터 몇 년 뒤 네팔로 즐거운 트레킹 여행을 다녀온 뒤엔, 행복의 파랑새는 모든 길에서 지저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꼬불꼬불한 길의 주름을 보면 가슴이 뛴다. 모든 길은 새롭다. 그리고 길은 어디에나 있다.

252 개화가 화려함이라면, 낙화는 평화였다. (…) 만약 내가 개화와 낙화, 차오르는 것과 기울어가는 것에 동등한 아름다움을 부여한다면 조울병과 좀 더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 꽃 떨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를 가진다면, 낙화를 순리로 받아들인다면 조울병도 담담하게 맞을 수 있지 않을까.

254 주춤주춤하면서도 전진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고, 흔들리면서도 걸어갔다고, 그만큼 스스로를 사랑했다고, 눈을 감기 전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261 ‘완쾌’라는 것이 약을 완전히 끊는 의미라면, 조울병은 완쾌가 좀 어렵습니다. 치료cure가 아니라 관리care해야 하는 만성질환에 가깝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