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책 > 에세이

서울에서 도망칠 용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그 누구도 아닌 아파본 사람만이 스스로에게만 할 수 있는 말**

2023-09-23 저자: 조하나 출판사: 느린서재

🔖 책갈피

31-32 실패는 고되었지만, 반드시 일어나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알량한 자존심은 묵직한 자존감으로 변했다. ‘내 인생에 실패는 없다’는 문장은 ‘실패해도 괜찮아’로 다시 쓰였다.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마주하며 겸손과 용기를 배웠다.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됐다. 삶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삶의 다양한 경험과 고민과 사유가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얼마나 좋은 거름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떤 경험이든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실패를 열렬히 응원한다.

(…) 나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사람보다 실패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실패가 두렵지 않다.

39 사람들은 더 이상 꿈을 묻지 않았다. 꿈이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꿈을 묻지 않는다. 내 꿈은 ‘삶에 진짜 이야기가 넘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태어나 살아온 시대를 관통하면서 오직 나라는 사람만이 경험하고 선택해 온 순간이 합이 된, 압축된 이야기가 풍부한 사람. 다른 이의 문장을 인용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경험담을 빌려오지 않아도 살아온 삶 자체만으로 멋진 이야기를 채울 수 있는 사람.

55 인터뷰어가 던지는 모든 질문엔 자신의 가치관과 색깔, 방향, 의도가 내개되어 있다. 이걸 억지로 숨기고 객관적인 척 하는 것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 인터뷰이와 생각이 달라 부딪히는 갈등, 함께하는 공감이나 연대 역시 드러내는 게 좋은 기사라는 생각이다. 내가 독립적이고 독창적이며 나만의 스타일을 가진 기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편집장 덕분이었다. 그녀는 기획, 취재, 기사 송고 등 모든 과정에 최소한으로 개입했다. 스스로 깨치며 단단해질 거란 믿음이 있어 그랬다고, 그녀는 몇 년 후 그 이유를 들려줬다.

70 직업윤리도 절실하다.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인터뷰이가 나를 믿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안심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대화의 필터링을 멈춘다. 그래야만 진정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인터뷰가 끝나면 다신 안 보겠지만 인터뷰 내내 세상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인터뷰 도중 인터뷰이가 이 이야기는 쓰지 말아 달라고 말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쓰지 않는다. 그걸로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 나는 단 한 번도 인터뷰이를 배신한 적이 없다.

71 나 역시 잡지와 글을 배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잘 해냈다. 그게 진짜 멋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삶과 예술에 진심 어린 리스펙트를 표했다. 인간이 살아온 삶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과 애정이 마음에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마음이 온전히 상대에게 가 닿으면 마법처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삶의 비밀 하나씩을 들려줬다. 나이 서른에 시작한 늦깎이 에디터 생활이었지만 그런 내가 꽤 마음에 들었다.

76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남들보다 느리다는 게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졌다. 그러자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 두렵거나 외롭지 않았다.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행복은 학습이다. 행복해 본 사람이 행복을 안다. 점차 인생의 가치관과 방향이 단단하게 정해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일을 통해 나의 성장이 이뤄졌다.

88 나에게 ‘섹시’는 비욘세다.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어떤 옷을 왜 입었는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도 아는 여자. 또한, 그걸 당당하게 이용할 줄 아는 것. 그만큼 스스로 가치 있는 여자라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떳떳하게 요구하는 것.

94 그걸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어 욱여넣는 대신 펼쳐내 보이기로 결심했다. 부끄럽지 않으니까.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의 결과이니까.

124 자존하는 사람은 중심을 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깥을 봐요. 안을 보는 사람은 사색을 하지만 바깥을 보는 사람은 눈치를 보죠.

145 두 분야 모두 몰입, 몰입이지 양쪽에 한 발씩 걸쳐 놓은 게 아니에요. 그 사이의 조율감은 정말 본능적인 것 같아요.

146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면 기존에 하던 일이 피해를 안 받을 순 없겠죠. 잃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이미지라는 것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사는 건 족쇄예요.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이미지 변신은 어쩌면 변신이 아닐 수도 있어요. (…) 사람들에게 칭송받고자 시작한 건 변신이 아닌 것 같아요. 당연히 싫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하지만 어떻게 해, 내가 좋아하는 걸.

247 누구나 한번쯤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그러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다. 결국, 외로움이 또 다른 외로움을 위로한다. “결핍이 대상을 파괴하면서 제 결핍을 재확인하는 길은 욕망의 길이고, 결핍이 다른 결핍을 어루만지면서 제 결핍마저 넘어서는 길은 사랑의 길이다.”라는 신형철의 말을 좋아한다.

254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에 집착했던 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걸 회피하는 방법이었다. 그 진실을 트렁크 하나에 욱여넣은 30년이 넘은 삶을 경험하고서야, 이 섬에 와서야 깨달았다. 짐을 덜어낸 만큼 채워야 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사람의 인격, 그리고 자유라는 걸.

259 세상의 온갖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시야를 넓혀 그만큼 보고 듣고 생각하고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