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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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 실패하고 어떻게 살아갈까
9 현대에서 통용되는 실패와 성공의 모습은 경쟁의 관점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 승자를 가려내면 자연스레 패자도 생기기 마련이다.
11 실패는 절대로 개인의 행동으로만 해석할 사건이 아니다. 주변의 사회적, 정치적 맥락도 실패를 형성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실패를 경험한 개인의 깊은 감정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감정을 파고듦으로써 실패와 상실의 연결성이 가장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실패와 상실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이 둘은 중요하고 유의미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13 나는 오히려 상실이 삶에 들어오도록 공간을 허락하면 좋은 삶을 향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확인하고 소중히 여기게 된다.
17 내 경험을 비추어 보자면, 삶이 귀중하고 위태롭다는 사실을 절실히 일깨우는 경험을 오히려 삶의 중간에 두는 방법을 찾게 된다. 삶이 너무나 위태롭기에 그토록 귀중한 것이 아닐까.
19 틸리히의 책은 대안을 제시한다. 상실과 실패의 순간에 우리는 존재의 본질과 마주한다. 이 경험으로 진정 중요한 것에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
20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완전히 무너질 때,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기대치에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지진이 인식의 표면을 흔들고 파괴할 때, 비로소 우리 존재의 깊은 곳을 바라볼 마음이 생긴다.
20-21 ‘깊이 들어가지 않고는 깊이를 알 수 없다.’ 불안과 혼란은 더 잘 사는 방법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줄 것이다. (…)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서로의 역할을 이해한다면 성공과 실패에 관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을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21 실패와 상실이 남긴 상처를 영원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상처는 당신이 살았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1장 21세기식 좋은 삶
29 ‘왜’라는 질문이 힘이 있는 이유는 이 분주함이 실제로 성취감을 주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1 그러나 비판적 사고는 안일한 태도를 넘어서도록 하는 힘이 있다. 공기를 마시는 일상처럼 당연하게 여긴 세상을 낯설게 보는 힘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기존의 방식에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이 지닌 세계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야,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47 성공은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뿐 그것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이런 점이 일을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의 결점이다.
47 성공은 주로 타인이 우리를 보는 시선에 달려 있다. 성과나 업적 같이 겉으로 과시할 만한 요소를 잣대로,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는 정도가 달라진다. 이런 기준이 과연 삶의 의미를 평가하는 최선인지 의구심이 드는가.
48 성공은 개인이 자기의 재능과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에 달렸다. 하지만 불평등이 기저에 깔린 사회 구조 따위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며, 구조에 도전하고 저항하고 구조를 재건설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역시 간과하기 일쑤다.
49 사회적 불평등으로 취약해진 사람을 보호하는 대신, 빈곤을 개인적 이유로 치부하면서 상대적으로 잘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실패를 보고 위안 삼게 되었다.
55 그녀(한나 아렌트)는 활동적 삶의 의미를 세 가지 영역인 노동 labour, 일 work, 행위 action을 조사함으로써 철저히 탐구한다.
66 장인의 목표는 ‘행위 자체에 가치를 두고 능숙해지는 것’이다.
67 이 책은 신자유주의 지지자가 숨기고 싶은 메시지를 드러낸다. 바로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요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2장 이 세계는 왜 여성의 실패를 원하는가
74 소음은 사색을 몰아내고 분주함은 생각할 공간을 점령한다.
77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른바 여성적 기술이라는 능력을 반영하는 직업은 여전히 임금과 지위가 낮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78 산업화 이후 이상적인 노동자는 ‘젠더 수행성에 융통성 있고 유동적으로 대처하여 신속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성이라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일터에서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방법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융통성이 당신을 성공하도록 만든다.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속하는 가치는 오늘날의 일터에서 존중받지만 당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96 변화성을 대변하는 여성의 신체는 피해야 할 실패의 형태를 고스란히 떠안은 상징으로 전락한다. 죽을 때까지 육체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여성의 실패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상실을 형성화된 존재가 된다. 상실을 모든 인간이 겪는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퇴화하는 속성을 부여받은 대상은 오직 여성의 신체였다.
105 하지만 늙은 여자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둠으로써 모두를 괴롭히는 실존적 불안이 다룰만한 형태로 바뀐다. 이제 불안은 늙은 여자의 몫이지 모두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106 연민과 동정심이 드는 것은 우리도 결국 타인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8 상실을 경험할 때 ‘우리는 취약성에서 변화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깨닫는다.’ 고통도 있고 희망도 있으며, 이 두 감정은 나란히 있을 수 있다. 이제 다르게 생각했으면 한다. 남은 문제는 변화에 맞선 두려움을 넘어서 덧없는 삶의 의미를 정확히 어디에 둘 것인지 생각하는 일이다.
109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일반적인 상실을 실패의 형태로 해석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할 것이다. 자연스러운 상실이 실패로 해석되면 물리적 세계의 순리는 회피할 문제가 되고 만다. 현실적으로 순리는 피해갈 수 없다. 노화, 쇠퇴 그리고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며 오히려 인간임을 입증하는 증거다. 따라서 실패의 잣대를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기보다 자연의 순리를 오히려 필수적인 한계를 주는 기회로 보는 편이 타당하며, 이 한계 속에서 인간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
110 가장 성공한 사람도 실패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시달리는 이유는 바로 우연과 변화의 세상에서 성공은 종점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든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업적이 언젠가 사라지는 데서 오는 불안은 전혀 웃어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11 노년에 우리는 여전히 열정을 가짐으로써 자기 안으로만 파고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랑, 우정, 분노, 연민을 느끼며 타인의 삶에서 가치를 찾는 한, 자기도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다.
113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에서 도망치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할 공간을 확보한다. 덧없음과 의존성을 마주하면 인간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새롭게 대면할 가능성이 생긴다.
3장 언젠가 우리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120 우리가 죽는 것이 두렵다고 할 때, 죽음 자체보다는 대개 죽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불안의 원인은 우리의 활동 능력과 자아를 잃는 두려움이다.
127 ‘“건강”이란… “고용할 만한 상태”를 말한다.
141 죽음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괴로움에서 의미를 찾고, 일상에서 기쁨을 보도록’ 우리를 놓아준다. 지위나 성취를 좇는 데서 찾는 의미는 죽음의 지대 앞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결국, 다른 것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142 개인은 사회적 세상에 둘러싸여 형성되며, 죽음이 초래한 혼란을 헤쳐 나가게 해줄 의미도 그 안에서 찾는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타인의 삶에 의존적이라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145 신자유주의식 자주성의 어두운 면은 돈 있는 자의 선택할 자유와 돈 없는 자의 선택할 자유가 판이하다는 점이다.
152 그와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인 상황보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편’을 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한계가 없는 존재라고 믿고 싶다.
158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통제하려 들면 궁극적으로 충만하지 못한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며, 우연과 변화의 요소가 동반하는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보다 불행할 수밖에 없다.
4장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기
166 성숙은 우리 행동의 한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오게 된다. 이 교훈은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필요하다.
167 따라서 체계와 구조로 변덕스러운 인간 행동을 통제하고 실패를 부를만한 변수를 제거한다.
169 하지만 아렌트가 지적하듯, 인간의 창의력은 예측하지 못하는 특징에서 나온다.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는 능력은 놀랍고, 갑작스럽고, 기이하다. 이런 것이 바로 ‘창의력’의 의미 아닌가?
174 우리는 아이히만을 보며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 왜냐하면 그를 전범으로 몰고 간 환경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일상적이며, 아이히만이 실패한 위험에 우리가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177 이제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외부적 압력을 가하기보다, 절차를 점점 내재화하여 인간의 경험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178 이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의 내면을 훈련하여, 절제력 있고 회복력이 빠르며 실망과 불행에 빨리 대처하는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에서 ‘생산적’이고 ‘회복력’이 빠르고 ‘적응력’이 있는 구성원이 될테니까 말이다. 성공에 꼭 필요한 기술은 이제 우리 자아에 새겨두어야 할 실천사항이 되었다.
187 수치로 평가하는 구조 안에서 성공과 실패의 감정은 우리 자아에 단단히 자리 잡고, 생각과 관점을 왜곡한다. 통제하는 사람이 정한 목표에 미치지 못하면, 목표가 아무리 비현실적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라도 달려들어 당신이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게끔 만들어줄 것이다.
190 인간을 배제하려는 관료주의적 욕구가 빚는 문제는 세계를 공유하는 의식이 사라지는 점이다. 관료주의의 목표는 타인의 일상에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아렌트가 보여준 대안적인 각본에서 인간은 서로 싸우고 억압하고 착취한다. 하지만 잘못된 행실에도, 함께 공유하는 사회는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진다. 서로 표에 기재된 숫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193 성공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관계에 관해 생각할 공간을 내어주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업적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타인의 어려움을 심각하게 여기지 못하도록 만든 주범일지도 모른다.
194 예측 불가능한 것을 위협이라고 느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생기로 보자. 어차피 인간은 종잡을 수 없다! 1장에서 아렌트가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도 바로 이런 특징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능력이 있다. 확실성에 집착한다면 그리고 실패를 배제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아렌트가 말한 중요한 사실을 놓칠 것이다. ‘새로운 것은 사실상 거의 정확한 통계적 수치와 가능성의 엄청난 확률을 뚫고 일어난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은 언제나 기적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세상에 있는 모든 제도를 가동하고 실패를 배제하여 성공할 확률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결국 변수 때문에 놀랄 일이 생길 것이다. 수치화된 세상에 맞서는 참으로 멋진 도전장이 아닌가.
195 상황이 잘못될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용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인간은 기만하고 배신하는 경향이 있으며 무자비한 기질을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고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을 때조차 미래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관계는 새로 시작하면 된다. 이것이 용서에 내재한 희망이다. 용서를 쉽게 하고 쉽게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용서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도리어 관계의 경험에서 오는 기쁨과 고통으로 만들어진다.
197 그러나 타인에게 자기 자신을 절대 내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위험을 맞닥뜨린다. 고통을 피하려다가 풍성하게 삶을 사는 경험까지 놓치게 된다. 사랑의 고통은 다른 무언가로 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이야기는 경험의 깊이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기도가 된다. 이러한 마술은 내면 깊숙하게 있는 감정을 불러내고 자기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도 전해진다.
199 세상이 말하는 정확한 숫자는 인간의 미묘함과 복잡함을 포착하지 못한다.
202 우리는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불완전함을 삶의 일부로 보고, 큰 실패(이를테면 관계에서 겪은 실패)를 겪어도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의지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함께 잘 살까? 어떻게 해야 모든 구성원이 번영하는 공동체를 꾸릴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그리고 실패를 수용하며 잘 사는 법을 찾으려면, ‘경제적 인간’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된 인간상을 초월하는 본보기가 필요하다. 인간성, 예측 불가능성, 통제 불가능성을 삶의 중심에 둔 본보기가 필요하다.
5장 단절된 꿈에서 깨어나다
214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성찰할 능력은 불안을 동반한다. 존재를 위협하는 자연의 힘을 마주하며 우리의 연약함을 깨달을 때 느끼는 불안감이다.
223 심리 상담은 내담자가 세상과 관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도록 가능성을 연다. 그리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과의 경험을 구축하고 결정적으로는 부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포기해야 할 것이 있으며, 삶에 흔적을 남길 상실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방법을 찾도록 준비해야 한다.
228 대화는 타인에게 문을 여는 행동이다. 대화는 뭐랄까, 그저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다. 이야기에서는 다른 사람이 나와 동등한 위치라는 점을 굳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내 말만 죽 늘어놓아도 된다. 하지만 상호 간의 배려와 상호작용을 하며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이야기는 비로소 대화가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로 비인간적인 양상이 줄어들 가능성이다. 나는 각자 다른 모습을 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며, 함께 공유하는 그 순간에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229 좋은 대화는 직선적이지도, 미리 정해진 결론만을 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두서없이 보인다. 생각, 단어, 기억, 기분이 만화경처럼 바뀐다. 대화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될 때만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다.
230-231 친구는 나와 정확하게 같을 필요가 없다. 차이점이 들어설 공간을 서로 확보해주면서 동등함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존중하는 태도로 정치적 토론을 시작하면, 헐뜯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배우려는 목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의 관점이 바뀔지도 모르고, 상대방의 관점이 바뀔 수도 있다. 서로 배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믿음이나 행동의 가능성이 열린다. 즉, 함께 만들어낸 무언가를 낳을 것이다.
234 ‘자아selfhood 추구는 개인주의individual 추구와 다르다. 진정한 자아를 지향한다는 의미는 건강한 인격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신, 자기 자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나온다.’
236 니체는 동정심이야말로 우월한 사람이 열등하다고 인식되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만족감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말했다. 동정심은 관대한 개인과 고통 받는 개인의 거리를 더 확장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동정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괴로움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243 믿음은 인간적 자아의 완전하고 집중된 행위이며, 무조건적이고 무한하고 궁극적인 관심의 행위이다.
6장 우리 삶에 실패와 상실을 위한 공간이 생긴다면
254 좋은 관계의 조건을 찾기 위해서는 폭력의 순환을 끊을 방법이 필요하다. 악은 ‘삶의 관계를 위반’하는 행위이며,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면 우리 개인적인 태도부터 돌아봐야 한다. 이에 더하여 폭력적인 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공공 정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계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이런 방안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들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폭력적 관계에서 빚어진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을 마련하도록 정치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258 아마 사람들은 삶이 계획대로 잘 흘러갈 때는 이해하지 못하는 우주의 본모습을 바로 이런 고통 속에서 조금이나마 맛보지 않을까.
259 실패와 상실은 공통점이 있다. 평정심과 일상을 파괴하지만, 그 파괴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것, 삶의 중심을 형성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 가능성을 보여준다.
260 가장 깊은 나락을 직면하면서 깊이를 얻을 가능성도 열리기 때문이다.
262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바람이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세상을 직면한 이야기들이 알려주는 점은 우리가 실패와 상실을 직면할 때야 새로운 삶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더 깊게 살펴보면, 그들이 노력의 한계와 성공의 덧없음을 인정했다는 것을 볼 것이다.
266 실패와 상실을 중추적인 순간으로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이 경험을 성심성의껏 살펴봐야 한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서두르면 갈등이 일어나기 쉽다. 실패, 상실과 나란히 앉을 방법을 찾고,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고통과 불편함을 견디도록 연습해야 한다. 낯선 땅에 들어섰으므로 매우 힘들 수밖에 없다.
268 멈출 때 우리에게 공간이 생긴다. 평소에는 무시할 법한 대상이 들어오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멈춤으로써 우리는 자신 및 타인과 진솔한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반복적인 활동에서 잠시 벗어날 수도 있다. 실패와 상실로 일어난 혼란의 시기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진정 중요한 것에 관해 생각하는 기회로 만들면 어떨까.
268-269 삶이 주는 것은 의미를 찾거나 만드는 가능성이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일 순간은 삶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혼란스럽고 괴롭고 절망스러운 사건에서 의미를 찾도록 도전장을 내미는 순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프랭클의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정말 ‘모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한 가지가 남아 있다. 바로 ‘인간의 마지막 남은 자유는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자기 태도 그리고 자기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상실과 절망의 순간에 인간은 사는 방법을 재고하고, 일어난 일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시각을 키우라는 ‘삶의 요청’을 듣는다.
272 침묵에 편안해져야 자신의 욕구와 상처에서 눈을 돌려 사색이 가능해지고, 결국 삶의 의미를 뿌리내리는 만족스러운 방법을 세울 것이다.
273 실패와 상실이 일상에서 멈춤을 주는 사건이라면, 우리도 고요함과 침묵을 찾기 위해 일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낯선 장소에서 받는 충격으로, 좋은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공간에 입장할지도 모른다.
285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려면 일상의 평범함에서 정신이 갑자기 번쩍 들어야 한다.
290 나는 나를 아우르는 세상의 일부다. 슬픔, 불안함, 불행, 심란함은 다시금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주변 세상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내가 다시 안도감을 느끼리라는 사실도 안다. 삶이라는 끝없는 춤에서 내 두려움, 상실, 자아는 앞으로도 경험할 것이다.
295 ‘여러 색깔이 한데 모이고 섞이고, 미끄러지듯 움직여 넓어지고, 새로운 색깔이 등장하고, 모든 색깔이 함께 있었다. 색깔은 그렇게 계속 흘렀다. 한 가지 없는 색깔은 파란색뿐이었다.’ 흑백으로 된 세상은 그 순간 깨지고 ‘진실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다르게 사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296 우리는 실패자가 되는 날도, 상실을 경험하는 날도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여 좋은 삶을 살 것이다.
맺음말: 실패자가 되고도 잘 사는 법
299 결국 우리가 맺은 관계의 깊이에 따라 인생의 의미가 형성될 것이다. 나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좋은 삶을 가능케 한다고 앞서 제시했다. 이런 삶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이미 아는 사람과의 고나계로만 관계의 영역을 제한하지 않는다. 삶이라는 훨씬 넓은 망의 일부분으로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관계를 확장하여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연약한 세상의 모든 모습과 이 세상을 공유하는 모든 존재를 아우르게 된다.
300 단순히 상실과 살아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는 이를 끌어안을 수 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불완전하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우리는 훨씬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