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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이돌

**덕질 길라잡이 - 바깥으로 향하는 좋아하는 마음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올 것임을**

2023-09-24 저자: 윤혜은 출판사: 제철소

🔖 책갈피

5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구원할 것이므로(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덕후로 사는 삶은 이로울 수밖에.

25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오빠들은 모두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노래가 재생되면 멀리서 빛나고 반짝이는 사람들을 좇던 그때의 내 모습도 함께 따라온다. 멜로디 사이사이 끼어드는 나에게서 근심없는 행복이 느껴진다.

29 잔잔했던 삶을 불쑥 비집고 들어오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에게 계속 지고 마는, 자신으로 하여금 자꾸만 무리한 요구를 받들게 하는, 가장 무력한 상태이면서 가장 생생하게 스위치가 켜져있는 상태. 나는 종종 이런 상태에 빠진다.

46 사방이 온통 하늘색 풍선뿐인 객석을 둘러보며 나는 끝없는 충만함에 문득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너무 기뻐도 서글플 수 있는 걸까.

65 그러니 지금은 새로이 찾아노느 설렘을 아낌없는 애정으로 마주해야지.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둬야지. 오늘과 내일의 덕질이 가능한 한 천천히 추억이 되기를 바라면서.

70 그건 현실의 나 역시 누가 나를 제대로 알아봐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과 꼭 닮아 있었다.

71 그럴 때마다 똑같은 노래로 무대에 서면서도 처음인 양 새롭게 임하는 아이돌들을 보면서 모종의 자극을 받곤 했다. 그들은 나에게 현실을 잊게 하는 동시에 현실에 기합을 넣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돌이야말로 ‘지금’을 가장 멋지게 보내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72 내가 세상과 호흡하며 나아가는 궤적이 누군가의 마음도 스윽 훑고 지나갔으면 하는구나.

72 그 무렵 책도 아이돌도 누군가 끊임없이 읽어줘야 유의미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81 확실히 소녀들은 우상화된 남성 아이돌에 더 쉽게 장악당하고 압도당했지만 우리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우상보다는 롤 모델이었다. 아쉽게도 내가 자라던 때는 사회 전반적으로 롤 모델로서의 여성 역할을 획일화하는 데 부지런했던 시절이었지만 말이다.

95 더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틀림없이 지금의 달짝지근한 만족이 깨지고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깨진 마음을 이어 붙이고 부서져 가루가 된 마음을 뭉쳐서 새롭게 빚기를 반복해야만 ‘진짜 노래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도.

96 자신의 선택을 따를 것, 최선을 다할 것, 그에 따른 결과를 감내할 것.

96 섣불리 결과를 예측하기보다는 쓰고자 하는 이유와 들일 수 있는 노력에만 집중하며 말이다. 최선을 완성하는 것보다 최선으로 향하는 길에 오래 머무는 법을 배운다.

101 덕생은 사방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떤 하루를 보냈든 다 괜찮아 지 것 같은 대책 없는 안심을 준다. 그러는 사이 비루하거나 비대해진 자아는 회복된다. 미간에 잡혀 있던 주름이 펴지고 평온한 표정을 되찾는다.

그러니까 덕질은 아이돌과 내가 얼마나 연결돼 있는지를 따져보며 셈하는 일이 아니다. 특별한 성취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순수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반갑게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덕질도 능력이다

109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꺼내놓을 때 독특해지고, 또 고유해졌다.

110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능력인 것 같아요.”

112 덕질은 마음의 문이 언제나 밖으로 활짝 열려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문 너머로 쏟아 보내는 무작정인 너그러움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어렸을 때야 순진한 구석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따 쳐도, 약아빠진 어른이 된 지금도 덕질을 하며 조건 없이 열정을 쏟고 무한히 이타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데 자주 놀라곤 한다.

113 고슴도치 덕후는 시나브로 제 삶도 기꺼이 돌볼 힘과 용기를 얻는다. 아이돌과 무관한 삶의 풍경에서도 찬란한 조각을 발견하고 덕생에서의 충만함을 현생과도 자연스레 나눈다. 머글에겐 궤변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끝없이 차오르는 덕심은 보통의 일상마저 기어이 근사하게 만든다.

122 어어릴 때는 예쁘고 근사한 것들을 그냥 지니치지 못하는 사람 특유의 무구함이 가끔 거북하거나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한사코 형편에 납작해지지 않았던 그 마음을 지켜본 시절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140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선다.

146 내 눈에 아직 완전히 익지도 않은 얼굴들이 마침내 하나둘 불이 켜지듯 환해지는 걸 지켜보면서 그들이 겪어온 인내와 품어온 간절함의 그림자를 상상했다.

147 그 무렵의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깨달아가고 있었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호시탐탐 끼어드는 막막함을 다스리며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도. 필연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주기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어떤 부분을 체념하게 되는 함정은 덤이다.

150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기본 중의 기본을 당당히 제 무기로 삼을 수 있다면 그 내공은 얼마나 깊고 단단한 걸까? 하고.

152 하지만 재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겪지 못한 행복, 충만하고도 영원한 사랑이 타인을 통해 어디선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159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어 보이는 일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곤 해요. 나는 계속해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 내가 낼 수 있는 힘껏, 목소리 높여 응원하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요.

160 “너희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only one이 돼. number one은 우리가 만들어줄 테니까.”

163 덕질을 하다 보면 가끔 스스로에게 하고픈 말을 이 친구들에게 하고 있느 건 아닐까 싶다. 꼴사납지만 그만큼 내가 쓰고도 위로받는 말들이 있다.

165 저도 하루하루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의 고민에 답하면서 그 말을 지키고 싶어서예요. 말하기 전에는 몰랐던 내 생각들, 내 모습들이 있거든요. 여러분들 덕분에 채워지고 알게 되는 부분이 되게 많아요.

166 재영이 타인의 고민에 귀 기울이며 제 안에 목소리를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며 스스로를 희망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166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가장 마지막에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두었는데, 그 시간은 어쩌면 내가 세상에 전송한 사랑의 총합을 기다리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이라면 기꺼이 할 만한 게 아닐까. 이 사랑의 결과로 앞으로의 나는 자신을 더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될 테니 말이다.

188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단절시킬 수 있다면 더없이 깔끔하겠지만, 예측할 수 없음으로 앞으로 올 사랑을 포기하는 일은 내 머리와 가슴 어느 구석에서도 겉도는 다짐에 불과할 것이었다. 나는 씁쓸하게 마음 단속을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나를 좀 더 인정하고 홀가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다.

192 “(아이들을) 잠깐 쓰는 아이템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흐름에 따라 경험과 가치를 쌓아가는 인간 자체로서 바라보고 존중해야 한다고 봐요.”

201 아이돌은 물론 대중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직업이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201 오늘날의 케이팝을 해석하는 유연함처럼, 여성 아이돌이 제 존재를 구체적으로 증명해나가는 모습에도 관대한 시선이 신속히 더해져야 할 때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금’을 놓치지 않는 연습이겠지. 여성에게 ‘지금’ 너그러워지기, 다양한 여성의 존재를 ‘지금’ 수용하고 존중하기. 이 글을 쓰는 나의 ‘지금’도 이제 막 시작된 훈련이라는 걸 밝혀둔다. 과거를 애도하고, 미래를 희망하기 위해서는 나에겐 아주 많은 새로운 지금들이 필요할 테다. 바라건대, 그 길에 더는 어떤 여성도 제 존재가 함부로 모욕당하거나 거부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 여성들이 제 삶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를 찾기에 좀 더 온기 있는 무대를, 안전한 사회를 꿈꿔본다.

203 “사랑이란, 상태가 아니라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과 시간을 쓰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221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건 어쩌면 아이돌보다 함께 덕질했던 친구들이라는 거구나. 탈덕해도 덕친은 남는다,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