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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아빠가 됐다

2023-05-29 저자: 조기현 출판사: 이매진

🔖 책갈피

9 가족 돌봄과 가장 구실까지 맞물려서 청년이라는 과제는 충돌하거나 가중됐다.

11 내 경험을 사회화하려는 시도이고, 내가 겪은 희생과 성찰, 고통과 보람이 개인만의 문제로 읽히지 않기를 바라는 균형추다.

18 돌봄 문제를 ‘사회가 해결’하려고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됐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50대 여성 요양보호사들의 나쁜 노동 여건과 낮은 임금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의 희생이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자원인 셈이다.

21 다른 가족들이 버는 소득이 합해지기 때문에 청년의 실제 삶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지 못하는 소득 빈곤율 대신 다차원적 빈곤율로 생애 주기별 빈곤을 측정해야 한다. 청년의 삶을 경제력, 주거, 건강, 고용, 사회문화적 자본, 안정성이라는 6개 차원으로 측정하면 경제력, 고용, 안정성 영역에서 중장년과 노인에 견줘 높은 빈곤율이 나타난다. ‘노오력’과 ‘존버’로 1인분을 잘해내기는 쉽지 않다.

22 청년 세대론에서 청년의 진짜 목소리가 빠져 있듯이, 청년이 떠맡게 될 미래의 돌봄 문제에서도 청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79 혼자 있었으면 망망대해 위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거센 파도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이 파이를 집어삼켰을지도 모른다.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자기를 위협하지만 자기가 돌봐야 하는 호랑이가 있어서 외로움도 무기력도 이겨냈다. (…)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 위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아빠를 보호하는 일은 버거운 과제였지만, 아빠를 보호할 때만 나는 인간의 지위를 얻었다.

99 이 활동을 지속할수록 선의와 가치를 자원 삼아 군림할 수 있는 사람만 이득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과 발이 하는 활동에서 어떤 효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100 대표가 가난한 자를 업신여길 때마다 저 말이 언제든 나를 향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134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힌 거짓말과 허상이 잘려 나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이으려는 노력이었다니. 아빠는 지금, 바로, 여기에 가장 충실하게 살아온 셈이었다. 현재에서 살아가는 나하고 소통하느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주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아빠하고 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몰랐다.

165 영화 속에서 돌봄은 누군가를 돌보는 삶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인공의 지독한 불행을 드러내는 요소로 쓰인 뒤 버려졌다. 내 안에 일어난 혼란을 나누고 상의할 사람도,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가늠할 발판도 없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례를 돌아보면서 비교하고 검열하기 바빴다.

167 ‘간병할 자유’라는 말을 여러 번 곱씹게 됐다. 간병은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간병을 하려고 할 때 간병하는 사람에게는 지원이 필요하지만, 반대로 간병보다는 자기 일에 집중하고 싶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강제로 떠맡은 간병에 경제적 보상을 안겨준다면 ‘어쩔 수 없느 선택을 합리화’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자유는 간병이나 돌봄을 둘러싸고 다시 형성돼야 한다. 그럴 때 혼자 고립되는 간병이나 가족 돌봄 분업을 두고 벌이는 다툼을 줄일 수 있다.

168 “이들은 간병에 지쳐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성적이 떨이지고, 어울려 지내기 힘들어 친구들이 떨어져 나가며, 같은 세대의 싸늘한 시선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외로운 처지로 내몰리며 장래의 꿈이나 목표까지 잃어버리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169 아버지는 자주 짐이 됐지만, 나한테 새로운 생각들도 불어넣었다. 아버지의 과거와 내 현재가 연결되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유동적이고 다양한 관계로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8년이나 걸렸다.

아버지와 나는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시민과 시민으로 관계 맺으려 한다. 내가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 큰 이뉴는 아버지가 사회적이고 신체적인 약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내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족 관계 증명서’가 있듯이, 아버지와 나의 돌봄 기간을 증명하는 ‘시민 관계 증명서’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 정부와 몇몇 지자체의 ‘의지’라도 확인하고 나니 이제 해외 사례는 희망의 근거가 된다.

204 요양 기관에서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가정에서는 공짜 돌봄을 수행하는 중장년 여성, 경제적 몰락과 사회적 고립에 떠밀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중장년 남성을 마주해야 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성별 역할 규봄이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

206 구태여 사회적 돌봄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돌봄은 사회적 활동이다. 돌봄은 국가와 사회의 책무이며, ‘시민-되기’의 한 속성이다. 돌봄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는 강력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207 돌봄을 이야기해야 하는 주체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다. 돌봄을 논의하는 주체로 중장년층만을 내세우는 현실을 의심해야 한다. 중장년기에 부모 부양이 배치된 일반적인 생애 주기에는 명백하게 가족주의가 포함돼 있다. 모든 세대가 돌봄을 이야기하고 고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