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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023-10-01 저자: 최은영 출판사: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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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11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9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21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로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31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33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44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52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59 희영이 가진 장점들의 상당수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몇 가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63 정윤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정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정윤이 자신보다 더 돋보이는 것을 경계했던 용육의 마음을 꿰뚫어보았는지도 모른다고.

75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따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따.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79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일 년

91 어릴 때 그녀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발명될 미래에 대해 들었다. 그때 그녀는 하늘은 구름과 새의 집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어지러운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완성된 풍력발전기가 그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도살 시계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95 다희의 솔직함은 사람들에게 흠만 잡힐 경솔함이 아니었다. 솔직하되 스스로를 낮추는 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실수를 해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할 뿐, 자학하듯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매사에 눈치를 보고 저자세로 일관해온 그녀에게 다희의 그런 태도는 그녀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스스로를 질책하고 과도하게 몰아세우던 자기의 모습을, 그리고 이상하게도 다희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자신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115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따.

119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 붇곤 하니까. 그러니까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다희에게 그녀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120 다희씨는… 그년느 머뭇거리면서 말을 골랐다. 저는… 다희씨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좋아하게 됐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에요.

123 아희와 주고받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 서로를 비췄다. 다희에게도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빛이 되어주기를 그녀는 잠잠히 바랐다.

답신

131 창녀라는 말이 내개서 아주 멀리 있으면서도 사실은 나와 관련된 말일 거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거든. 그러다 아빠가 언니에게 고급 창녀가 되고 싶냐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단어가 내게 한 발짝 더 다가오는 걸 느꼈고, 그 말과 연결된 나의 존재가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졌어. 간이 지나서 그런 감정을 수치심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지.

178 때때로 사랑은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게 하니까.

파종

208 “소리야, 뭐하고 싶어? 네가 아무거나, 라고 답하면…”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눈을 꼭 감았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그랬지.”

210 소리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리가 흉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난 이게…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211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라지 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이모에게

219 “희진이 네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넌 여자애야.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널 두려워하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은 거야.”

239 아빠는 혀를 차며 말했다. 집안에서는 숟가락 하나도 자기 손으로 챙기지 않으면서, 엄마나 이모가 집에 없으면 밥통에 밥이 있어도 상을 차리지 않으면서, 늘 누군가가 닦아놓은 변기를 사용하면서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걸레질하는 이모를 멀뚱이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마음이 차가워졌다.

263-264 그 모든 평가와 판단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그것이 이모라는 사람의 진실에 가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307 그 어설픈 관심이 기남의 오래된 상처를 헤집고 일상의 평화를 침해했다는 것을 그녀는 끝끝내 몰랐을까. 기남을 통해 자신의 삶은 그래도 기남보다 나음을 확인하고자 했던 걸까. 기남은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312 나이가 들고 성숙해진다는 건 그저 자신의 환경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기남은 낯선 그곳에 앉은 채 자신이 여전히 미숙하고 여전히 두려움이 많은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남은 아홉 살 아이의 마음이 되었다. 아홉 살 아이처럼 두려워졌다.

319 마이클은 자신을 몰랐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애가 오히려 자신보다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무슨 이유였을까. 부끄러워도 돼요. 기남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말. 기남은 그 말을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기남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는지 모르는 마이클을 자리에 앉아서 계속 이야기했다.

[해설] 양경언, 더 가보고 싶어

324 이들(밝은 밤 속 영옥, 희자, 명숙 할머니)은 자신이 있는 곳 바깥에 또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독서를 통해 알게 된다.

<밝은 밤>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만 맴돌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해 시선을 더 멀리 둘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저와 같은 독서 행위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326 최은영의 여성은 ‘읽는 행위’를 통해 개인의 불운으로 여기기 쉬운 일들을 사회구조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시야를 얻음으로써 삶을 쉽게 등지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328 다시 말해 해진은 어떤 글은 특정 사안을 제대로 직시하게 만든다는 점, 그런 글은 흔히 누군가가 ‘재수가 없어서’ 겪는 일로 다뤄졌던 사안을 사회가 해결해야 할 사안이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즉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 무엇보다 글을 매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가는 것이다.

328 (…)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읽는 사람’은 결국 ‘쓰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해진은 ‘보이지 않는 잉크’로 새겨진 세상의 일들을 몸으로 직접 이해해나감으로써 세상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잉크를 꺼내드는 사람으로 변화한다.

330 읽고 쓰는 사람들의 몫은 지금 사회가 듣지 않으려는 목소리가 잘 들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못지않게 그 목소리가 저 혼자만의 역량으로 울릴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 한 사람의 목소리에는 이미 많은 이들의 삶이 담겨 있어 그러한 연결을 통해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331 우리 역시 그 이야기에 기대어 그로부터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와 연결된 또다른 이들을 떠올리기 때문에 최은영의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히 타인의 얘기가 될 수 없다.

332 최은영의 작품은 언제나 미묘한 파동이 만들어진 원인으로 여러 사회 조건 및 역사적,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짚어왔다. 이는 이번 소설지벵서도 이어지는 얘기다. 최은영은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여전히’ 용감하다. 최은영의 인물들에게 ‘공감의 유대’를 이루는 면이 있따면, 그것은 그들이 지금 시대가 사소하다고 앞서 판단하면서 축소시키려는 현실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물으면서,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형성된다.

334 그러나 소설은 “구조적 취약성 속에서 다른 삶보다 외부의 충격에 더 크게 상처받기 쉬운 ‘불아정한’ 상태에 놓인”이들에게 “책임”을 “철저하게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내던지는” 상황을 문제시한다. 이 여성 인물들이 어떤 맥락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남들이 보기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결정일지언정 그들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함부로 그들의 사연을 ‘개인 사정’이라며 외면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것이다.

336 소설은 참고 견디는 방식만이,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부정의한 상황을 용인한 스스로를 벌하는 방식만이 폭력의 세계를 살아내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참지 않는 방식도 있다. 폭력을 참아내지 않기로 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을 돌아볼 줄 알고, 책임을 다해 함께 있는 이들을 돌보고자 한다. 자신의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들의 삶을 존중하는 힘을 가진다.

337 <답신>은 서로 기대고 의존하면서 형성되는 유대와 사랑이 각자가 지닌 결핍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역량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337 두 작품(<파종>, <이모에게>)에 따르면 한 사람이 어엿하게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따는 의미뿐 아니라, 누군가가 제공하는 돌봄에 기대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도 갖는다.

338 자유로운 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으레 지양해야 할 태도로 꼽혀왔떤 ‘의존성’은 소리의 방식을 경유하면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줄 아는 역량이 된다.

339 소리와 희진이 각각 삼촌과 이모에게 의존했던 경험을 귀하게 여기며 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에 달려 있지 않은 in-dependent’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독립적인 independent’이란 표현은 ‘읜존하는 dependent’을 ‘안에 품은 in’ 표현으로 전환된다.

340 그러나 누군가의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른 이를 필요로 하고 동시에 다른 이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돌봄은 이를 인식하게 하는 활동이자, 실제로 사람을 사람답게 살려내는 행위이다. 어찌 보면 ‘돌봄 3부작’으로 읽히는 <파종>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홀로 남겨진 누군가를 보살피고 그 돌봄을 받은 이들이 종국에는 서로 기대고 의지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했을 때 다다를 수 있는 사랑을 담아낸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41 상호의존적인 관계는 독립적인 삶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삶을 더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삶을 누리지 말아야 할 사람은 없다는 의미에서, 최은영의 소설에서 상호의존적인 사람들은 공동의 책임이자 보편의 인권으로서의 돌봄을 사유하는 문을 연다.

341 최은영의 인물들은 약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아닌 스스로를 성찰하기를 망설이지 않음으로써 회복하는 자리에 있고자 한다. 소란으로 가득찬 침묵 속에서, 각각의 존재가 품고 있떤 목소리의 빛깔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최은영은 회복하는 이야기를 쓴다. 최은영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잉크로 적힌 세상의 일을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일은 읽는 사람들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들의 말을 적어서 보여주는 일이자, 소설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잉크로 세상을 쓰기 시작하는 일이 아닐까.

343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자꾸 보여주게 되면 어느 순간 이야기를 꺼낸 그 자신이 허기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러나 다희와 그녀는 차 안에서의 마지막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어떻게 건네받는지에 따라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허기지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귀와 입을 내어주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각자의 마음에 남아 또다른 힘을 채워나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345 그들은 참사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대신, 그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말한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내는 목소리에 ‘자신’만이 가득차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목소리는 언제나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포함한 채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348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고 나는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를 풀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나의 결핍을 안고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슬프면 슬프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나를 계속 지켜보는 일. 나는 지금 그런 일을 하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