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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람

2024-10-08 저자: 이자람 출판사: 창비

📝 감상

이자람 장군님의 <노인과 바다>를 본 이후, 글의 질감이 한층 더 다채롭게 다가온 책. 특히, <추임새>와 <소리앓이> 꼭지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 책갈피

7 내가 읽었던 모든 책 속 문장이 삶의 순간순간 영향을 주며 내 말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렇게 점차 내 것이 되었던 것처럼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는 순간이 있기를 바라며.

17 이 화려한 기간 동안 내 몸은 서서히 변했다. 내 기술과 재능이 눈을 뜬 첫번째 닦음이 스승님들과 보낸 도제 교육의 시간이었다면, 그것이 나만의 ‘에네르기파’로 성장하는 두번째 닦음은 수백번의 무대 경험이다. 무대 위에서 다양한 위기 상황들을 직면하고 이겨내면서 몇 가지 기술의 발견과 성장을 이루었다.

19 과거도, 약간 앞선 미래도 아닌 현재에 딱 서서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기분 좋게 살자고 수없이 되뇌었건만 정작 실천이 안 되는 것이다. 마음을 내 삶의 일순위로 올려놓고서는 자꾸 다른 것이 일등 자리를 치고 들어오려는 순간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사천가>와 <억척가>를 하며 난리블루스를 추던 그 시절처럼 일과 실력과 능력과 결과가 내 멱살을 잡고 뒤흔들게 내버려둔 것이다. 마음을 위해 그모든 것을 그렇게 지독히도 어렵사리 다 때려치우고도, 현재의 내가 열심히 빚은 소중한 공연들 앞에서 옛 버릇이 튀어나와 괴로운 것이다.

20 눈앞에 주어지는 시간을 그냥 온몸으로 맞는 거다. 다가오지 않은 시간 때문에 조급해져 스스로를 할퀴고 옆에 있는 이마저 그 손톱에 상처가 나게 하다니, 그만큼 못난 일은 없다. 응?

20 자기관리를 어덯게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이제는 이렇게 답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시라고. 이 세가지가 잘 굴러가는 삶이라면 못해낼 것이 없으므로 이것만 잘 지켜내면 삶의 기본이 튼튼한 거라고 말이다. 몸은 마음의 바로미터다. 몸은 세상 그 어떤 명예나 돈보다도 중요한데, 그 몸을 가장 크게 관장하는 것이 마음이니 결국 마음을 잘 다스리며 사는 사람이 진정한 삶의 주인이다.

22 늘 ‘기분’을 살핀다.

어려워하며 눈칯 보는 것이 아니다. 문장 그대로 살면서 늘 나의 기분을 열심히 살핀다. 그러다보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기분은 즉각적으로 내게 신호를 보내는 마음 기관이다. 사소한 것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상태를 내게 전달한다. 기분은 이유 없이 변화하지 않는다. 만약 갑자기 기분에 그늘이 진 듯하면 방금 지나온 시간 속에 무언가 켕키는 게 있다는 뜻이다.

28 연습의 효과는 연습 시간 동안 나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발견할 때 얻어진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기술과 신체 컨디션, 특정한 부분에 재미를 느끼는 나의 흥미,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 나의 욕망 등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주로 연습 시간 안에 왕왕 발생한다. 그런 순간들을 만나려면 적어도 한시간 이상 다른 잡념이 들어올 여지는 차단해두고 내 몸과 정신을 좀 지루하게 연습 속으로 던져야 한다. 그렇게 쓸쓸함 속에서 홀로 지루함을 견디다 보면, 그때부터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이러한 반복과 발견 속에서 얻어지는 기술 향상과 신체 훈련은 연습이 다져주는 내 판소리의 주춧돌이다. 이 능력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태도나 철학, 창작과 실험이 바로 주춧돌 위에 뿌리내리는 나무들이다. 연습은 주춧돌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나무들을 뿌리내리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좋은 기술이 생겼다면 거기가 연습의 끝이 아니라 긴 여정의 한 출발 지점인 셈이다.

32 매일의 연습은 다르고, 그 다름이 축적되어 내가 된다. 매일의 연습은 결국 나의 소리를 좀더 낫게 만들고, 그 향상을 위해 연습하는 것이지만, 연습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바로 이것이다. 무대에서 내가 ‘쫄지 않게’, 진땀 흘리지 않게 하는 것.

33 그리고 나는 무대 위의 그를 보며 그가 보냈을 치열한 시간도 함께 보았다.

34 마음속에 진땀이 나는 순간을 대비해 연습을 한다. 연습으로 모든 무대를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대는 늘 상상 이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 앞에서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대비하기 위해 연습한다. 경험을 가득 쌓은 연습은 종종 튼튼한 방패가 되어준다.

35 미래에 내게 바라기는, 딴청을 오래 피워도 좋으니, 결국은 다시 귀마개를 꽂고 방에 들어가서 지난하게 연습하기를 멈추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달라지는 내 신체와 마음과 기술과 욕망을 잘 맞이하고 싶다.

41 나다운 나를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의 지점부터 그 여정은 참 혼란스럽다. 습관적으로 친절하려는 순간에, 그것을 발견해내고 원하는 언어로 치환해내는 순발력과 강단이 필요하다. 굳이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가 싶을 때면 잠시 멈추는 노력도 하고 있다.

누구나 남이 원하는 나와 내가 원하는 나 사이에서 우왕좌왕 헷갈리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나를 항상 잘 알아내는 것이 참 어렵다. ‘내가 원하는 나’도, ‘그냥 나’도, 계속 주변과 유기적으로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모르겠고, 마찬가지로 당신도 모르겠다. 우리는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섣불리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아무리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순간이 생기더라도 이제는 착한 아줌마가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65 그래서 나는 공연 때마다 몹시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내 노력에만 달린 공연이 아니기에. 오늘은 어떤 관객과 어떤 상황 앞에 놓일지 미리 예측할 수 없기에. 그래서 늘공연이 무섭고 궁금하다. 할 수 있는 준비라고는 항상 최선을 다해 기본값을 준비하는 것뿐이며, 공연 때마다 늘 기본값 위 어디까지 다녀올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다

82 뒤늦게 알았다. 내 몸을 아끼는 것은 나 자신의 의무일뿐 다른 누가 챙겨주는 영역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몸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 내게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을 듣고 행동해야 할 주체는 나뿐이다. 무대 안팎의 모든 위험은 온전히 내 몫이다. 건강 중 무엇이라도, 잃으면 나 혼자 잃는 것이고 책임질 이도 나뿐이다. 이제라도 이것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제는 나의 한계치와 소멸점을 예민하게 감각한다. 우리 모두는 한계가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 한계를 한계로 만들 것인지 새로운 가능성의 출구로 인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내게 해를 가하는 한계점에서는 깨끗이 포기하고 뒤돌아서기를 스스로에게 원한다.

83 “예술가는 무대에서 죽어야 해.”

얼어 죽을. 나는 이 어리석은 문장에 침을 뱉고 싶다. 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몸과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에게 무언가를 시키고 있다면 단단히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거나, 그릇이 허용치 않는 야망을 넘보는 중일 것이다. 그러느라 바빠서 자신의 몸이 보내고 있는 신호를 못 본 척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둔해지면 점차 남에게도 둔해진다. 둔해지다보면 서서히 잃게 된다. 소중한 것들을.

91 세상에 싸워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내 몸과 정신은 하나뿐이었고,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고뇌하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실상은 판소리하나 제대로 해내는 것도 버거운 조약돌 같은 사람이었다.

95 수많은 질문 속에서 나는 다시, 나의 삶으로 모든 질문들을 끌어모은다. 한 개인이 부딪히는 것들이 바로 숙제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궁금하고 필요하고 부딪혀보고 싶어서 탐구하는 것이 내가 가진 기술적 도구(대본을 쓰는 기술, 작창을 하는 기술, 전달하는 기술, 소리를 하는 기술)를 만나 작품이 되고 노래가 된다. 이것을 나눌 만한 것으로 만들려고 유머와 위트, 다정함과 해학을 잃지 않으려 힘을 쓴다. 사람들이나 평단의 반응은 역시나 궁금하고 무섭고 기대된다. 그러나 남김없이 힘을 쓰는 만큼 반응에 좀더 당당해진다. 아픈 건 아픈 거고, 나는 할만큼 했으니까. 나의 예술은 그리 거창할 것이 없다. 애초에 작업의 목표에 이타적인 면이 없다. 남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에 서툴기에 스스로 뻥을 치지 않는 데 온 힘을 쓴다.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칭찬이나 응원은 감사하지만, 한 것에 비해 신격화되면 무섭다. 그것이 나를 또 스스로 속이게 만들까봐 그렇다.

97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히 쌓이는 것의 힘, 그것의 강함과 무서움을 안다.

98 이러한 순간들은 그저 순간일 뿐이지 내 기분을 엄청 나아지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축적된 것들은 매우 단단하고 깊숙하고 거대하다. 어느새 삶을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끈다.

99 오랫동안 묵묵히 갈고닦은 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세인들의 무관심과 조롱과 그 흐름을 뒤바꿀 만큼의 실력 닦기, 그리고 적당한 때를 기다림. 또한 그들은 그때가 왔다고 가벼워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신을 쌓아갈 뿐이다. ‘좋은 때’가 인생의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사건 때문에, 어떤 순간의 결정 때문에 인생이 뒤바뀌고 사람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그 순간이 너무 강력하니까. 하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실 인생을 바꾸는 건 삶의 이면에 쌓인,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이다. 옳지 않게 쌓여버린 시간의 축적은 어느새 인간과 사회를 비뚤어지게 만들고 세대를 병들게 한다. 옳게 쌓인 시간의 축적은 그렇게 휘어지는 사회 속에서도 버티며 살아가다가 필요한 순간 빛을 발하는 단단함이 된다.

99 사람을 진짜 무너뜨리는 것은 어떤 하나의 사건이나 순간이 아니라 쌓여온 어떤 작은 순간들의 집합이라고 늘 생각한다. 자신에게 무엇이 축적되고 있는지 알고 쌓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채 쌓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100 좋은 것과 나쁜 것, 가까이하고 싶은 것과 멀리하고 싶은 것 모두에서 보이지 않는 축적은 소리 없이 큰일을 하고 있다. 소중한 사람들이 부디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한두개씩은 더 많이 쌓여가는 삶을 일구기를 바란다.

130 지금처럼 연습하며 뚜벅뚜벅 걸어가면 다른 소리꾼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떳떳하게 소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해묵은 찝찝함은 드디어 해소되었고 그것이 진심으로 기뻤다.

139 언젠가 선생님께서 진도를 많이 나가길 바라는 제자 이야기를 하시며 “작은 배에 짐을 많이 실으면 배가 어찌 되겄느냐, 앞으로 가겄느냐? 자칫하면 가라앉고 말제”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굳이 그 말씀 때문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을 마주하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누리고 싶어서 아주 조금씩 배워갔다.

144 결혼이라는 제도에 참여하기에는 나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 지금도 충분히 나의 작업과 일들과 일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고 바쁘고 차고 넘친다. 잘 분배된 이 힘들을 또 한 챕터 커다랗게 늘려서 쏟으며 살고 싶지는,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144 이성애자인 내가 느끼는 결혼은, 여성보다 인간 이자람으로 잘 살고 있던 나를 졸지에 여성여성여성 이자람으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이다.

146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알 수 없는 미래다.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현재의 내가 원치 않는 것을 감당하는 것은 마치 더 맛있는 음식이 나올까봐 꾹 참는 배고픔 같은 것이다. 나는 이것이 싫다. 꾹 참았던 배고픔은 보답을 원한다. 더 맛있고 더 배부른 보답을.

146 더 맛있고 더 배부른 보답을 기다리며 허기를 참다보면 억울하고 분해서 망가지기 쉽다. 그래서 나는 그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한다. 나의 맛있는 한끼에, 소중한 만남에, 도울 수 있는 마음에, 할 수 있는 공연에, 움직일 수 있는 체력에, 주변에 있는 것들에.

147 지식은 참 불편하다. 얻을수록 불편해진다. 내가 무지해서 해온 언행들이 실은 사회구조 안에서 권력/피권력자로서 응당 당연히 여겨 행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창피함은 정말이지 많이 무겁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식이라는 숲의 탐험을 멈추기는 싫다. 지식은 멋지기 때문이다. 나와 남을, 지구와 동물을, 인류와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멋진 지식들이 계속해서 내 삶으로 스며들어오기를 소망한다.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며 불편하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더불어 나를 기분 좋게 용서하고 삶에서의 불편을 감수할 지혜를 원한다.

163 밴드 첫 앨범이 잘 안되었을 때 들었던 “아이밴(아마도이자람밴드의 줄임말)은 너무 외딴 섬처럼 굴잖아요”라는 핀잔이 그 당시에는 괜히 아팠지만 오랜 시간 동안 늘 어디 속한 느낌의 밴드가 아니다보니 점점 설 곳과 서고 싶지 않은 곳을 선택할 용기도 생겼다. 까짓것 아님 말어, 하는 배짱이 생긴 셈이다.

179 어떤 일이든 내가 만들면 기회인 거고 기회인 줄 알았는데 싱겁게 지나가면 그냥 내 것이 아닌 해프닝일 뿐이다. 기회는 끊임없이 내 안에서 발생해 내 손으로 확실해진다. 인생은 죽기 전까지 내게 기회를 주려고 애를 쓸 것이고 그럼 나는 날아오는 수많은 기회들을 그때그때 컨디션 따라 날아오는 피구공 잡듯이 배구 스파이크 하듯이 축구 골 넣듯이 농구 덩크슛 하듯이 받아내고 되치며 뚜벅뚜벅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서 말이다.

184 좋은 선생이 되려 하지 말고 명확하고 깔끔한 선생이 되기를. 만나면 헤어짐이 있을 것이니 헤어져야 할 때를 잘 알고 질척거리지 말기를. 아끼는 마음이 넘치려 들 때는 다른 곳에 신경을 분산해서 부디 오버하지 말기를. 부담스럽게 너무 많이 주려고도, 아까워하며 덜 주려고도 하지 말기를.

188 너의 두려움에 반응했던 나의 두려움, 그것의 크기와 종류, 부피와 무게를 알아내야 한다. 당신의 무지를 만나 격렬하게 고생했던 나의 분노 저 이면에 숨어 있는 나의 무지, 그것이 쌓은 상처와 실망을 인정해야만 다음 미션이 주어진다. 그렇게 뜨끈한 고생을 시킨 다음에야 겨우 하나의 깨달음을 준다.

189 기술과 건강과 사람. 이것이 나를 단단히 서서 버티게 하는 세가지다. 이 중 사람은 그 자체로 별안간 고난이 되기도 한다. 삶에 큰 힘이 되는 만큼, 마찬가지로 가장 위험한 요소다. 기술과 건강은 내 몫이지만, 사람은 반만 내 몫이기에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나를 무너뜨리면 그때는 기술과 건강으로 버틴다. 버티고 또 버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그 무너진 기둥을 또다른 사람이 나타나 함께 받쳐준다. 오랜 친구일 때도 있고, 새로이 나타나는 친구일 때도 있다. 그래, 다시 말하면, 나는 사람의 자리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기술과 건강을 돌보며 삶을 걸어간다. 그러다보면 사람의 자리에 진짜 내 사람들이 칸을 채워가고 있다.

197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은 틀림없이 과거가 되고 만다. 매 순간 과거로 등극되는 시간이, 때로는 너무 빠르게 느껴져 야속하다. 우리가 서로의 애수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다들 시간이 흐르는 것의 쩌르르한 감각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 하지만 차라리 무언가 폭발해버리는 게 나아. 공기로 사람을 짓누르는 게 제일 비겁하다.

202 그때의 우리들이 안쓰러우면서도, 언제나 바란다. 그 ‘적당한 용기’보다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다시 인생이 나를 원치 않는 게임 속으로 초대한다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피구공을 경기장 바깥으로 던져버릴 수 있기를.

206-207 어쩌면 어디서든 내가 나의 집이 되어줄 준비를 하며 살아온 것도 같다.

집에 가자, 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마음이 든든해진다. 내 한 몸 누일 곳이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나를 뜰어당기며, ‘야, 오늘도 힘들었지, 진짜 세상 만만치 않지, 고생했어, 이리 와’하며 세상으로부터 단절시켜주는 곳. 수많은 다름으로 기쁘기도 하고 상처 입기도 하며 풀가동했던 내 몸과 마음의 스위치를 꺼주는 곳.

그곳이 집이다.

209-210 세상은 우리에게 ‘권력을 갖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며 그러므로 권력을 갖기 위해 ‘지금은 제 살을 깎아야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억울했던 만큼 마음껏 모든 것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다’라는 거짓 환상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비뚤어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신기루를 향해 치달린 사람들이었을까, 권력을 쥔 사람들은 쉽게 후져지더라. 대부분의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유지하고 팽창시키기 위해 인간적으로 사는 방법들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치환하고, 그 선택을 부끄러워해야 할 감각은 자신의 삶에서 그냥 삭제해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과정에서 신념도 양심도 인간이나 생명에 대한 존중도 삭제되어버린다.

210-211 ‘나아지는 삶’이란 집 평수나 자동차 가격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내 마음과 기분이 하루 몇번 좋은지, 오늘 음식을 먹으며 얼마나 맛있다 좋아했는지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어슴푸레 알아가고 있다. (물론 이것들은 통장 잔고가 늘어났을 때 가능하다. 인간은 건강한 음식과 쾌적한 잠자리를 누려야 한다. 사회의 하한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져야 한다. 자신은 먹지 않을 음식을 가난한 이에게 주려는 자가 사회의 어른 역할을 하면 안 되고말고.)

212 분명한 사실은 지금도 나는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세포가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마음과 정신도 변화하고 있다.

213 만난다는 것은 값진 일이다. 참으로 용감한 일이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서로의 불완전함과 삶의 변화들을 함께 맞이해보자고 하는 일은 얼마나 무섭고 또한 믿음직한 일인가. 그리고 그것을 두려움에 찬 확인이 아닌 확신에 찬 반가움으로 용기 있게 시작해보는 만남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유쾌한가.

모든 만남들은 마치 물 위에 떠서 각자 중심을 잡고 서로의 손을 잡으려 하는 일과 같다. 자칫 나의 중심이 흐트러지거나 상대의 중심이 흐트러지는 순간, 둘 다 물에 풍덩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좋게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각자의 한중간에 잘 서서 서로의 한중간을 잘 발견해야 한다.

213-214 만난다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시작 같다. 그 과정과 끝에서 우리는 또다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며 챕터 하나를 쌓아간다. 어떠한 챕터는 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기도 하고 어떠한 챕터는 시작도 전에 찢겨나간다. 그 속에 쌓이는 이야기는 내 손으로 지어가는 듯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항상 나와 함께 써내려가고 있는 이가 있다. 내 삶에 쌓일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어느 방향으로 길을 틀며 챕터를 쌓아가고 있는지 지금의 내가 알 리 없지마는, 마지막까지 함께 이야기를 쌓아올리고 싶은 만남들이 단단히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재미난 만남들이 아름다운 방향에서 계속 흘러올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텃밭을 일구는 일에 게을러지지 말아야겠다.

221 나에게는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곧게 서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훌륭한 친구들이 있다.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내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아름답게 깊은 우정들이 있다. 이 깊은 우정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응원하며 계속 은은한 빛을 낸다. 자랑하지 않아도 된다. 소중한 만큼 소중히 여기면 그만이다. 우리는 그저 살아간다.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귀하고 오랜 관계들이 여기저기에서 잘들 살고 있다.

227 홀로 섰다고 정말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시다시피 삶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홀로 섰기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얻었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홀로 서 있는 사람과 헤쳐 모이며 일을 도모한다. 이 동료들과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응원하며 아껴준다. 언제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기에 그가 어떤 선택으로 어떤 변화를 시작하든 그저 좋은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본다.

243 말값을 지키려 하다보면 순간순간의 작은 약속과 지나가는 말들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넓게 퍼져 있던 얕은 관계는 점점 좁아지고 그 깊이는 서서히 깊어졌다.

244 남이 내게 해준 마음에 드는 말은, 나를 그 말 속의 나와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게 한다.

말은 그래서 무겁다. 말은 어렵다. 세상에 나온 모든 말들이 어떤 생명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한마디 말을 내뱉었을 때 그것의 반대, 그것의 오류, 그것의 맥락, 그것의 모순이 함께 따라온다.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문장이란 존재할 수 없고 완전한 참이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러한 말들로 인연을 맺고 살아긴다. 불완전한 말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서로를 기다려주거나 안아주면서. 그래, 미운 말들 열번 떠오를 때마다 아름다운 말을 한번 되뇌도록 해보자. 내뱉는다고 상황이 달라질 건 없지만 세상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차라리 좋은 걸 내뱉는 게 낫다.

250 이 일은 내게 흥미로운가?

이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가?

즐거울까? 즐거울 것 같은 느낌이라면, 정확히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할까?

나의 정체성과 방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섭외한 것인가?

다른 이가 아닌 내가 필요한 이유가 정확한가?

작업의 양과 내 일정들이 서로 감당 가능한 상태인가?

내 능력값을 금액으로 잘 매겨주고 있는가?

많은 시간 함께 일해나갈 사람이 나와 언어가 맞는가?

혹은 내게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줄 것 같은가?

251 여기서 명료함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리바리하고 있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욕망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욕망이 왜 부끄러운가? 원하는 것이 있는 만큼 내가 해낼 것인데. 일이라는 건, 내가 기분 좋게 해야 결과물도 좋을 것 아닌가?

252 당신에게는 당신에게 걸맞은 존중이 있고 자격과 권리가 있다. 그걸 지켜주는 건 당신뿐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존중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타인도 당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귀함을 잘 지켜내며 걸어가자.

252-253 거절에 있어서 솔직함은 참 중요한 힘이다. 솔직함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귀를 열고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좋은 거절은 사람을 얻기도 한다. 상대를 믿고 그 존중 위에서 큰 힘을 써서 거짓 없이 거절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이 있으면 우리는 잘 거절하면서 신뢰를 쌓을 수 있다. 거절하면서 솔직할 수 없는 상대라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상대라면, 내 인생의 궤도 위에서도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럼 힘을 좀 덜 들이고 거절할 수 있다. 거절을 어려워하지 말자. 잘해내고 나면 남은 하루가 참 상쾌해지는 것이 거절이다.

258 남이 말하는 최고는 실체가 없다. 어느 관객의 마음 속에 각 분야 최고의 자리가 있을지언정 내 엉덩이가 비비고 앉을 최고의 자리라는 건 처음부터 아예 실체가 없는 것이다.

259 무언가의 가치와 소중함을 말할 때 오로지 그것만을 말할 수 있는 우아한 화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