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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한다는 것

직업인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은 그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2026-05-26 저자: 최강록 출판사: 클

🔖 책갈피

64 나는 살아오면서 맛의 모험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아왔다. 그 경험이 요리사라는 직업을 영위하는 데 실용적인 도움이 되었지만, 맛에 대한 좋은 기억은 나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내가 느끼는 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마큼 내 삶의 낙도 늘어난 것이다. 나는 일상적으로 밥을 먹을 때도, 누군가와 식사 약속을 잡을 때도 작게나마 모험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내가 음식을 확실하게 선택해야 할 때는 기억을 들춰내서 전에 가본 맛집을 다시 가보는 편이고, 누가 밥을 산다고 하면 “그럼 여기 한 번 가볼까?” 새로운 식당을 제안하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81 한번 칼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붙일 수 없다는 건 생선회를 조리하는 데도 필요한 말이지만,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좋은 말인 것 같다. 진지하되 두려워하지 말 것. 장난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될 테니까.

136 자기가 벌여준 일은 자기가 정리하는 게 나에게 중요한 언칙이다. 벌이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144 식당은 고정된 장소에서 정해진 음식을 내놓는 곳이다. 그런 공간에서 내 역할이 있으면 나는 그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역할이 시작되면 엉덩이에 힘이 빠짝 들어가서 “어서 오십쇼!” 인사도 크게 한다. 그러다 역할이 끝나면 힘이 쪽 빠지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는 것이다. 내향인이라면 알 것이다. 우리는 사회 생활을 하기다 위해 광장에 나가 ‘롤 플레잉’을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하고 나서 다시 동굴로 들어온다.

179 그런데 살아보니 출발선이 좀 달라도 기본을 지키면서 성실히 시간을 보내면 결국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학교를 1, 2년만 늦게 들어가도, 실패한 경험이 하나만 있어도 낙오자 같고 인생에서 뒤처지는 줄 알지만,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 내가 별로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콤플렉스가 많았는데, 세월을 견디다보니 내 단점들을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다 같이 어느 한 점에 모이고 나서, 그 후의 삶이다. 더 중요한 건 지속하는 것이다. 늦게 시작했더라도 지속하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 그만두지도 않고 지속하면 반드시 쌓이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189 나는 소심해서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걱정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체크하면서 그때그때의 걱정을 지워나간다. (곧 다시 그만큼 걱정이 생긴다.) 또 걱정이 스트레스로 연결되니 건강에는 안 좋겠지만 가게 운영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그렇게 사소한 걱정이 더 큰 안심으로 돌아온 경우가 있다. 가게를 제댈도 돌아가게 하려면 나는 늘 노심초사해야 한다. 그래도 다음에 가게를 열면 걱정은 내가 할 테니 옆에서 괜찮다 괜찮다 해주는 직원을 뽑고 싶다. 걱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서로 걱정해주다가 걱정이 폭발할 것 같다.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있는 게 좋겠다.

198 돌아보면 짜임새 있는 삶은 아니었다. 보통의 계단은 일정한데, 내 삶의 계단은 높낮이가 좀 들쭉날쭉했던 것 같다. 어떤 계단은 너무 낮아서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르기 쉬웠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의 계단은 한없이 높아 보였다. 다리를 아무리 올려도 닿지 않아서 기어올라가야 할 때도 있었다. 나에게 요리는 쉽게 지치긴 하지만 지금 여기까지 계단을 오르게 해준 두 다리다. 한편으로는 눈이 되어 요리를 통해 세상을 보게 했다. 요리로 트인 시야는 어떨 때는 답답했고, 또 어떨 때는 시원하게 펼쳐졌다. 그래도 이 끝없어 보이는 계단이 내리막길은 아니었다는 믿음이 있다. 남들보다 높이 빨리 오르진 못했어도.

204-205 그리고 어떤 순간이 되면 내가 늘 되뇌는 문장이 다시 생각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