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
**일기 쓰는 사람으로서, 일기를 써온 시간이, 일기에 써온 이야기들이 무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해주어 위로이자 힘이 되었던 책**
🔖 책갈피
17 쫙 펴진 페이지 위에 어떠한 포장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나를 기록하는 것. 일기의 희열은 여기에서 온다. 슬픔을 감미롭게 꾸미거나 행복을 거북하게 부풀릴 필요 없이 스스로를 한 겹씩 벗어 낼 수 있다. 어느 지친 하루에 쓴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혹시 내가 지금 너무 편하게 가려고만 하는 걸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잘 모르겠다. 내 인생에도 잘 짜인 플롯이 필요하다.
78 어떤 하루를 보냈건, 큰맘 먹고 산 고급 바디용품과 기초케어 제품을 하나하나 꼼꼼히 펴 바를 여유는 늘 남아 있었음 좋겠다. 보송한 팔다리와 쫀쫀한 얼굴에 닿는 침구의 감촉 따위를 만끽하다 이내 까무룩 잠들었으면 좋겠다. 꿈속까지 데려가지 않을 자신 있는 고난만 감당하고 싶다. 이불은 머리끝이 아닌 가슴께까지만 덮고 싶다. 진심을 나눈 만큼 진실하고 싶다. 대책 없이 응원을 받아 먹고 덜컥 위선이 자랄까 겁이 난다.
만들 수 있는 반찬의 가짓수를 늘리고 젓갈의 구분이나 유통기한 따위를 익히다 보면 언제나 모자란 내가 조금은 만족스러울지도 모른다. 아니, 유의미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우스운 집착만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겠다. 불안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불안해하고, 불안해하면 안 될 것 같아 의연한 척 하지 말고.
82 아무리 생각해도 더해진 취양이 있을 뿐, 버려진 취향은 없어 보인다.
83 내 취향들이 이토록 소비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덕분에 취향을 오랫동안 쉽게 누려왔떤 건 아닐까. 노력해서 얻어지는 성질이 아니므로 포기하거나 버려질 일도 없는 채로 말이다.
89 눈꺼풀도 귓바퀴도 입술도 이미 그 모양부터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데, 감각의 촉수가 오직 나를 향해서만 뻗어 있다는 건 아무래도 아까운 일이다.
90 무언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건, 나를 지켜 주는 것들의 소리를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102 그저 내가 아주 오랫동안 주연의 입장에서 둘을 조연처럼 대하는 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 아프게 인정해야겠다. 나는 감히 당신들을 쓸 자격이 없다.
109 왜 늘 가족에겐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늦게 드는 걸까. 제일 완벽해지기 어려운 대상이기 때문이겠지. 남에게는 ‘척’할 수 있으니 말이야. 사실 그들에게 완벽한 존재로 남는 것이야, 쉬운 만큼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112 아빠가 내게 오직 아빠이기만 하다면 엄마는 좀 더 다양한 여성의 얼굴로 나와 함께하고 있다. 언니로, 동생으로, 선배로, 친구로, 또 내가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나로서도 내 삶에 등장한다. 엄마와 나는 속을 파헤쳐 보면 결코 좋은 모녀 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엄마는 내게 엄마로만 남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117 아, 혹시 친구가 될 수 없는 운명들이 가족으로 만나는 건 아닐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119 이젠 그 시간을 보답해야 할 차례가 온 것 같다. 아빠의 말을 끊지 않는 자식으로, 허투루 듣지 않고 적절히 맞장구치는 자식으로 말이다. 내가 아빠의 노년에 불행보다 행복이 자주 찾아오게 만들 순 없겠지만, 가능한 한 불행이 가까이 오다가도 저만치 달아나 버리도록 시간을 끄는 일은 할 수 있으리라. 그의 앞에 앉아 무엇이든 귀 기울여 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120 무엇이든 잘 궁금해하려면 대상을 향한 최소한의 애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니 궁금해한다는 것은 고백의 한 종류처럼 들리기도 한다. 무엇이든 말해보세요. 나는 이미 당신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131 “(…) 그런데 네가 건강하게 잘 지내더라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죽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할 텐데 이런 게 사는 거라면 모두 한번에 무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좋은 상상은 아니지. 그냥, 엄마도 이런 생각에 잠길 때가 있어.”
132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웬만한 일에는 무뎌질 줄 알았는데 절대 아니더라고. 느끼는 슬픔이나 불안은 큰데, 나 어리지 않으니까 잘 넘겨야 돼, 생각하면서 더 큰 괴리감이 생기는 것 같아.
140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꼭 그만큼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 가끔 인생에 크고 작은 시련이 와도 으레 받아야 할 벌이겠거니, 하게 된달까. 아무래도 지금의 행복에 겁을 많이 먹은 것 같다.
145 지금의 나로서는 그의 언어를 배운다는 게 새로운 책임을 져야 하는 일 같다. 당신의 내면이 얼마나 이판사판인지 내가 한번 들여다보겠다고. 당신이 말을 하다 멈추는 일이 없도록. 지레 겁을 먹고 숨기는 것들을 줄이기 위해, 지치지 않고 귀 기울이겠노라 장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한 깊이에 잠겨야 하는 미래가 내심 두렵기도 하다. 지금의 모든 모순을 반복할지언정 영영 피하고 싶은 책임인지도 모른다.
148 서로를 기억할 우리가 있다는 것. 삶을 사랑하는 이유이자 모종의 책임이 된다. 나를 기억하는, 기억할, 기억했던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기 위해.
159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한 글을 많았지만 결국 무엇이 된 글은 없었다. 무엇도 되지 못한 글들은 내 손끝으로 다시 스며들어 내가 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이 글을 쓴 나는, 내일 어떤 내가 되어 있을까. 내일은 또 무슨 글을 써 모레의 나를 빚어 낼까. 이렇게 또 멋대로 쓴 글에 책임감이 더해진다.
163 처음은 으레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씩 찾아오는 바람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생긴 대로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자꾸만 유턴해서 불어온다면 이유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노력일 테니까. 결국 쓰면서 고통받든지, 안 쓰고도 괴로워하든지 둘 중 하나다. 후자가 덜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하므로 나는 치사하게 그 편을 택하고 있는지 모른다.
181 울프는 비참하고 우울한 심정에 잠겨 있을 때만 일기를 쓴다고 했다. 그런데도 600쪽이 넘는 일기가 모였따니. 이와 정반대의 기분으로 보낸 하루를 왜 흩어지도록 두었을까. 혹시 모처럼 마음에 빛이 드는 날엔 글쓰기로부터 자신을 잠시 해방시켰떤 게 아닐까? 단 한 줄의 쓰기도 허락하지 않는, 울프만의 일탈로서 말이다.
181 일기와 나 사이의 관계는 내가 이 삶을 지탱하려는 노력, 꼭 그만큼만 견고하겠지. 지금 우리의 연결고리는 꽤나 팽팽하다.
182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195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사랑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읽으면서 책 여백에다 “일기는 시간을 건너게 한다”라는 문장을 따라 적는다는 게 그만 “시간을 건네게 한다”라고 잘못 써 버렸따. 이것 또한 그럴듯해 보였다. 과연 그동안의 일기 쓰기란 미래의 나에게 직므의 시간을 건네는 일이었떤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읽는 책은 모두 미래의 책이라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매일의 일기도 하나같이 미래의 일기가 될 것이라면 나느 틀림없이 일기 부자가 돼 있겠지.
211 일기장 앞에서는 스스로를 띄엄띄엄 볼 수가 업삳. 언젠가 “내가 겨우 내가 되기 위해 이렇게 열심인 거리니, 억울하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 말을 취소하고 싶다. ‘겨우 오늘’이 오기까지 지켜 내야 했던 일상을 헤아려 보면 스스로가 대견하다. 평범하고 당연한 것 같다가도 곱씹을수록 안도하게 되는 그런 하루. 내게 그런 오늘들이 아주 많았음을 이제는 펼칠 일 없는 나의 첫 번째 십년일기장이 말해 주었다.
212 반복된 일상에서 얼마나 큰 발전과 변동이 일어났는지는 그것을 기록한 사람, 기억을 꺼내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다. 10년간 써 온 나의 일기는 이 책을 채워 나가는 데 어떤 참고문헌보다 값졌따. (…) 그리고 각자의 일기는, 지금껏 이 세상에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글이다.
216 때문에 내가 방점을 찍은 것은 타자의 슬픔을 이해하는 데에 적용되는 문학의 효용가치보다도, 영원한 무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고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자세였다. 모르는 채로 무례해지는 것도, 모르므로 무참에 빠지는 것도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알아보겠다는 조심스러운 약속으로써의 노력 말이다.
219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에서 최은영 소설가는 박완서 선생을 기리며 이렇게 썼다. “선생님의 말씀을 읽으며 강한 사람이란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며 통과하고 기어이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이토록 끈기와 용기를 지닌 사람이어서, 선생은 결국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만 거겠지.
220 나도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을 쉬이 지우려는 시도 대신, 그 아픔에 천천히 접촉하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벌어진 상처에 딱지가 앉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232 그해 봄은 분명 그곳의 방식대로 다정했는데 내 마음만 날카롭게 돋아 있었따.
236 그때의 나에겐 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그저 또 다른 일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부지런히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엔 이따금씩 근사한 밥을 사 먹고, 청소를 한 뒤 일찍 잠이 드는 평범한 나날. 말하자면 낯선 곳에서 새롭게 성실하고 싶었떤 것이다. 애초부터 쉬려는 생각은 없었는지 모른다. 가끔 지난봄을 떠올리면 좀 더 머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겁에 질려 무엇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들이 아까워진다. 그래서 지금 이 일상을 가능한 한 느리게 지루해졌으면 좋겠따.
255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일기든, 그렇지 않은 일기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심어 준다. 오해받기 싫은 간절함, 더 이해하고 싶다는 의지가 나도 모르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261 가끔 혜은의 밑도 끝도 없는 따뜻함이 의아했떤 적이 있었는데, 도처에 깔린 작지만 소중한 조각들을 차곡차곡 모으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 출근길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안심했다. 그저 반복될 뿐인 자신의 매일매일에도 공들여 일기를 쓰는 사람이 다른 이가 살아낸 하루를 쉬이 여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