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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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회사에서 평가하는 업무는 아니지만, 함께 일하는 공간과 시간을 더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모두의 눈에 공평하게 띄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배분되지도 않으며, 노동으로 잘 인식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 일을 함으로써 조직 안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거나 승진한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일이 바로 ‘사무실 가사일’이다.
(…) 빨래, 청소, 설거지, 요리와 같은 재생산 노동이 있어야만 집 바깥에서의 임금 노동이 가능하듯, 사무실 가사일 역시 회사를, 중요한 프로젝트를 돌아가게 만든다. 그렇다면 성과를 평가할 때는 사무실 가사일이 조직 구성원들에게 어떻게배분되어 있는지, 주로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성과’의 정의도 달라져야 할 테고 말이다.
47 자주 대화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거기에 의견을 보태고, 이 아이디어를 함께 더 낫게 만들었음을 인정하기. ‘전략’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 간의 ‘돌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55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막내가 아니라면, 일터의 막내들이 점심 메뉴 선택권뿐 아니라 어떤 권리를 조용히 빼앗기고 있는지 잘 살펴봐주시길.
59 단지 이런 시대에 일이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들을 일하게끔 만드는 동력은 뭘까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다.
63 국어사전에서는 ‘성장’을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끝없이 자라는 생명체는 없다. 어느 순간이 되면 성장을 멈추고 크기나 부피를 유지한다. 일에서의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65 『내 인생을 바꾼 거절』을 읽다가 조이스 서트펀의 「당신이 이력서에 쓰지 않은 사실들」이라는 시를 만났다. 일을 중심으로 나를 설명하는 문서인 이력서에는 한 사람의 다면적인 모습을 담을 수 없다는 걸 보여 주는 시다. 이따금 이 시를 떠올리면서 나도, 일하면서 만난 타인도 저마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67 실패했다거나 망했다는 말은 그런 결과를 맞이하기까지의 시간과 사람들의 노력을 조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일은 성공과 실패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고, 모든 일에는 숫자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뒷면이 존재한다.
83 하나의 일에 긴 시간을 투입한 전문가라는 환상 대신, 다른 관점에서 전문성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고, 거기서 알게 된 것을 또 다른 분야에 적용할 줄 아는 게 새 시대의 전문성일 수 있다.
91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최소한 내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이자 다른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혼자인 나는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타인의 손길이 나를, 내 일을 더 낫게 만든다.
95 그러니까 마감을 지킨다는 건 내가 지금은 이 정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포기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부족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여도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음 마감에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자 자신의 빈틈과 모자람을 견디는 훈련인 셈이다.
105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 안에는 이런 뉘앙스가 담겨 있다고 느낀다. 돈 안 되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격려 또는 안쓰러운 시선. 나는 그 일을 할 수도 없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다는 선 긋기. 대개 일은 돈과 의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시선 안에서 돈과 의미를 언제나 상충하는 가치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새로운 일을 만드는 건 불가능할까. 돈도 조금, 의미도 조금 챙기는 일은 애매해서 별로인 걸까. 일을 해서 얻는 이득이 정말 돈이 아니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의미밖에 없는 걸까.
121 집안일을 할 시간과 기력이 없다는 건, 내게는 삶이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125 수영마저도 성과의 영역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는 걸, 그건 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를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잘하든 아니든 순수하게 즐거울 수 있는 영역을 필사적으로 확보해야겠다고, 아주 오랜만에 수영장에 드러누워 다짐했다.
137 재택근무는 ‘이렇게까지 일과 생활의 경계를 흐리면서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139 그 속에 섞여서 나도 모르게 이제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다가도 이런 관점이 과연 개인들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의향이 없는 기업이나 사회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고민하느라 골똘해진다. 평생직장이 환상이라면, 조직도 평생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불안을 줄이는 방법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일에 관해 고민하면 할수록 별 고민 없이 해 왔던 말들, 일을 바라봤던 관점 등 모든 것을 다시 낯설게 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정답을 찾고 싶은 게 아니라 하던 대로 생각하기는 싫어서다.
141 일의 형태와 방식은 변하는데, 법은 언제까지 멈춰 있을까. 노동자/근로자의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
151 돌봄을 저숙련 노동으로 인식하는 것은 돌봄 제공자의 역량을 낮춰 볼 뿐만 아니라, 돌봄 대상자의 구체적인 욕구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기도 하다. 일본의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 소장인 무라세 다카오는 돌봄이 고도화될 수밖에 없는 노동이라고 강조한다. 돌봄 대상자의 상태와 필요를 면밀히 살피고 그에 맞춰 돌봄의 종류와 강도를 섬세하게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이야말로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고숙련 노동이다.
155 그럴 때마다 나는 돌봄도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노동이라고, 그 일에서도 타인과의 협업에 필수적인 다양한 기술을 쌓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간 관리, 소통, 공감, 유연성, 끈기, 적응력… 돌봄 기간 동안 이런 역량을 충분히 단련하고 발휘할 수 있다.
161 모두에게는 언제든 어떤 사정이든 생길 수 있고, 모두가 그 사실을 조직 안에서 죄책감 없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때 조직은 일하는 방식을, 원칙을, 시스템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라고, 개인의 사정이 가급적 업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일은 그 정도로 가치 있지도 않고, 삶과 깨끗하게 분리될 수도 없다.
165 같은 해 국제노동기구에서는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을 기조로 한 190호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누구도 인종, 신념, 성별, 국적 등의 이유로 일터에서 폭력과 괴롭힘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회사나 조직이 아니라 ‘일의 세계’라고 표현한 게 좋았다. 누군가 일하고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일의 세계일테니 말이다.
169 일은 누구도 혼자 해낼 수 없다. 여러 사람의 힘을 합칠 때라야 제대로 완수할 수 있다. 일과 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단하게 이어 붙이는 게 다정함과 친절함 같은 태도라면 여기에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그건 어떤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닌 본성이 아니라, 부단히 노력하여 발휘할 수 있게 된 전문적인 역량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 부러 마음과 에너지를 쓰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177 내가 생각하는 피드백이란, 잘해 내지 못한 일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일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는 것이다. 내가 당신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잘하는 걸 알고 있으며 더 잘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어떻게 더 낫게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리액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185 거기에는 아주 오랫동안 그 일을 해 온 사람 특유의 부드러운 흐름이 있었다.
(…) 누군가 하는 일이 그의 몸에 새겨지고, 일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특정한 리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187 ‘나’는 어떤 흐름과 접근법으로 일을 기획하는지 한 번쯤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저마다 지닌 기획법은 어떤 일을 하든 우리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189 어떤 일을 두고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진다는 건 다양한 일을 해 본 데이터가 쌓여 있다는 의미다.
191 그동안 ‘다들 그렇게 하니까’ 관성적으로 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일이 어떤 맥락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 일을 ‘그렇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197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이유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는 일, 내 마음이 온전히 동하는 일만 하기는 어렵다. 때때로, 실은 자주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고 동력을 찾아내야 하는 일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럴 때 어떻게든 그 일의 맥락을 구성해 내는 사람들을 나는 존경한다. 일을 ‘되게’ 만드는 건 그런 사람들이다.
199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에는 불안이 내포되어 있지만, 생각지 못한 기쁨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 기쁨은 보통 내가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 모두 파악했다고 여겼던 것이 깨지면서 생겨난다.
203 정영선이 일하는 태도를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픈 마음’이라는 모호한 말로는 부족하다. 내 생각에 그의 태도는 ‘나의 일이 타인 그리고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고민하고 그 관계에 책임을 지려는 노력’에 가까운 것 같다. 어떤 일도 사람도 완전히 홀로 떨어져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5 사람들은 일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 구조와 규범을 경험하고 학습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는 어떤 삶을 꿈꾸는지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과 사회가 내게 미치는 영향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도 일은 일이고 일터는 일터일 뿐이지 거기에 정치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일과 일터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정치’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왜 상사의 눈치를 보는지, 왜 어떤 이는 빠르게 승진하고 어떤 이는 그럴 수 없는지, 왜 일터에서 나는 나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대해 말하지 않는지, 일터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만 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일터에서 배제되는 이들은 또 누구인지. 이 모든 질문은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일과 일터의 문제를 인식하고 바꾸려는 노력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일과 나/우리의 관계를 정말 건강하게 만들려면 시선을 넓혀야 한다.
207 능력만 뛰어나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은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든다. 이것이 능력주의다.
(…) 능력주의의 가장 나쁜 점은,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나 혼자 잘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속에 함께 있다.
211 이동이 어렵다는 건 단지 편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노동과 사회적 관계 등에서도 쉽게 소외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ㄷ스이다.
그러니까 ‘왜 하필 출근길 지하철이냐’라는 질문은 전제부터 틀린 것이다. 이 질문은 ‘내가 알지 못했던 타인의 불편함은 무엇인가’ 또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떤 방식으로 배제하고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215 결국 일하며 가장 오랫동안 남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상황에서도 뭔가 해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