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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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나는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었 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쉽지 만 정말로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렵다. 나는 이 게임이 단순히 탕비실에서 열리는 진상 콘테스트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130 나는 내 마음의 무게가 드러나지 않음에 감사하면 서도, 그간 봐왔던 수많은 방송들 속에서 나는 과연 보려고 마음먹은 것을 본 건지, 누군가 보여주려고 마음먹은 것을 덥석 건네받았을 뿐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134 싫은 사람의 수는 세상에 있는 사람의 수쯤 될 테니 그가 소재 고갈을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137 나는 이따금 그냥 좋다든가, 그냥 싫다고 말한다. 구태여 설명하기 귀찮게 느껴질 때보다는 좋고 싫음 이 극명할 때 그렇다. 대상이 그냥 좋은 나는 스스로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냥 싫다고 말하는 나는 어딘가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다. 감정이란 음식물을 소화하는 것과도 닮아 있 다. 좋아하는 감정은 온몸에 차근차근 흡수되어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반면에 내 속을 버려가며 싫어하는 감정을 소화시켜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토 하듯 분출해버리고 마는 건지도 모르겠다.
138 이 이야기는 ‘싫음’에 관한 내 나름의 분출이다. 탕 비실은 일상적 휴식의 공간이지만 원하는 만큼 무한 정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구비 되어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나의 소유는 아니다. 나 에게 허락된 공간이지만 나에게만 허락되지는 않았 다. 그래서 꼭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의 축소판 같다. 탕비실에서 겨우 인사 정도만 나누며 스쳐 가는 사 람들을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안면이 있다’ 는 애매한 관계의 정의는 이런 데 쓰기 딱 좋을 것이 다. 《탕비실》은 이런 애매한 관계 속에서조차 미운 털이 박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등장하는 인물 중 그 누구도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받은 적 없고, 타인 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우리가 그저 ‘안면 이 있는 사람에게 흔히 그러하듯이.
139 등장하는 인물들은 타인이 나를 싫어하는 것에 대해 각기 다채로운 면모를 보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라고 인정하기도 하고, 당최 영문을 모르거나 알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또는 자신은 미움받고 싶지 않으 면서 부단히도 싫은 상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이들을 조금씩 닮아 있다. 삶에서 내 가정할 수 있는 건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문이라고 했던가. 싫어하는 대상의 기분을 한 번쯤은 상상해보 는 것. 나는 단지 그 정도로 싫음을 대하기로 했을 뿐 이다, 그러고 나서 늘 토하듯 어냈던 싫음의 감정 이 얼굴은 찌푸려질지언정 조금은 소화가 되었다고, 단지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