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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

2024-12-03 저자: 지아 톨렌티노 / 노지양 역 출판사: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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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6 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지난 몇 년간 결론을 유보해도 된다는 사실을 배웠고, 그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진실만큼은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희망할 수 있었다.

17 어쩌면 나는 이제까지 내가 주워 먹을 빵 조각을 뿌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나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명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몇 년은 걸릴지언정 가치 있는 과정이라고 믿으려 한다.

1장 인터넷 속의 ‘나’

26 블로깅의 출현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타인에게 노출되는 공적 영역이 되었고 사회적인 이점, 즉 누군가 날 좋아해주고 누군가 날 보아주는 것은 경제적인 이점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나를 노출하거나 홍보하는 일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토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28 한때 우리는 인터넷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이제는 이것에 팔다리가 묶인 신세가 되었다. 이제 우리도 그 사실을 의식한다. 연대와 공감을 약속했던 플랫폼들은 군중 속의 고독을 유발한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자유를 약속했으나, 이제 이 자유라는 것의 가장 큰 잠재력은 얼마나 잘못 사용될 수 있는가뿐인 듯하다.

29 우리 중에서 이런 행동에 완전히 면역이 된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사실 미덕 과시는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적극적인 참여라는 건강한 욕망과 일부 겹치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하는 일은 국경에서 가족을 강제로 분리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미미하기 이를 데 없으나, 의미 있는 행동이며 도덕적 원칙의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과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개입된 행위이기도 하다.

34 첫째, 인터넷은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팽창시키는가? 둘째, 인터넷은 어떻게 나의 의견을 과대평가하도록 부추기는가? 셋째, 인터넷은 어떻게 우리의 적대감을 극대화하는가? 넷째, 인터넷은 어떻게 우리의 연대를 값없이 만드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터넷은 어떻게 규모의 감각을 망가뜨리는가?

44 고프먼은 무언가를 하는 것과 그 행동을 표현하는 것, 무언가를 느끼는 것과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 차이를 관찰한다. “행동의 재현은 그 행동 자체와는 어느 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잘못 재현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일몰을 감상하는 행위와 어떤 이에게 내가 일몰을 감상했다고 말하는 행위를 비교해보라). 인터넷은 이러한 류의 허위 진술이나 그릇된 설명을 조장한다. 인터넷은 “(우리) 행동에 따라오는 결과”로서의 인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인상을 지속적으로 창조하기를 권장한다. 그렇기에 인터넷에서는 진실하지 않아도 되고, 이성적이지 않아도 되고, 정치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기만 해도 된다.

51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대처하는 대신, 즉 자신들을 진정으로 호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하지 않은 채 - 그러니까 여성들이 그 오랜 세월 비싼 대가를 지불해가며 진심으로 노력한 방식은 절대 차용하지 않은 채 - 폭력적인 여성 혐오를 중심으로 한 집단 정체성을 형성한 후 포챈에 혹시라도 들어온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에 관해 유일하게 흥미로운 건 알몸이야. 가슴을 보여줘. 그러지 않으려면 꺼져.”

53 악플러들과 나쁜 기자들과 현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가 누군가를 끔찍하다고 욕할 때 우리는 그저 그들을 열심히 홍보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53 정치 철학자 샐리 슈월츠 Sally Scholz는 연대를 세 가지 종류로 구분했다. 먼저 사회적 연대가 있다. 이것은 공동의 경험에 기반한다. 그리고 시민 연대가 있다.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의무에 바탕을 둔다. 또한 한 가지 대의를 믿고 헌신하는 정치적 연대가 있다. 이러한 형태의 연대는 서로 겹치지만 별개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정치적인 것이 반드시 개인적일 것일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직접 경험에서는 그렇다. 똥을 밟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고 싶어서 실제로 똥을 밟을 필요는 없다. 부당함이 끝나기를 바라는 일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기 위해 부당함의 손에서 직접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54 연대는 정치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고 그것은 일상생활에서의 나를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 최대한 성취된다.

55 모든 남자가 여성을 두렵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여성은 남성을 두려워한 적이 있다.

56 그와 동시에 해시태그 자체에도 무언가 있었다. 이 해시태그의 디자인과 이것이 확신을 주고 연대하게 해주는 방식은 여성이 갖는 경험의 다양성을 지우고 페미니즘의 결정적 순간은 오직 여성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순간이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해시태그는 발언에서 맥락을 지우고 그 발언을 하나의 거대한 생각의 일부로 놓는다. 이 해시태그에 동참하는 여성은 예측할 수 있는 남성 공격성의 서사에서만 가시화된다. 상사가 덮쳤을 때, 낯선 사람이 집까지 따라왔을 때만 그녀가 보인다. 이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려운 그녀 삶의 나머지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금 서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YesAllWomen 이나 #Metoo를 사용하려 했던 여성들에게 이 해시태그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근절하고자 했던 것을 구상화했다. 즉 여성의 이야기란 언제나 통제력을 잃는 이야기로 느껴지는 방식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오직 그 이야기들만이 페미니스트를 연대하게 만들었다. 마치 연대하기 위해 서로의 아픈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다른 주제로는 연대할 수 없는 것처럼 만들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 공유하고 있는 이 주제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이들 이야기의 차이점을 - 즉 왜 어떤 이들은 살아남고 어떤 이들은 그러지 못했는지 - 세세하게 밝히는 행위가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지 않을까.

57 해시태그 때문에, 리트윗 때문에, 프로필 때문에 인터넷상에서의 유대는 가시성, 정체성, 자기 홍보와 필연적으로 얽히게 되어버렸다.

61 나는 한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불운의 양에는 한계가 없고, 이러한 정보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다고 썼다. 이렇게 동시에 발생하는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수용할 만큼 우리의 심장을 넓어지게 해주는 가이드북이 없고, 우리는 시시한 것과 심오한 것을 분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없다. 인터넷은 무언가를 아는 능력은 극적으로 증가시켰지만 무언가를 바꾸는 능력은 그 상태 그대로다. 아니, 어쩌면 우리 눈앞에서 쪼그라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터넷이 우리 손에 들려준 것은 쏟아지는 비극 앞에서 비통해하다가 냉랭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클일 뿐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지나친 참여가 우리를 점점 더 무감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63 그것만큼은 최대한 늦추고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한 작은 시도들뿐이다. 자신의 실제 자아가 비난받을 점이 많고 일관성 없으며 중요하지 않은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그 자아에 따라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무엇을 얻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돌아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덜 신경쓰고, 참을 수 없는 주장이란 것에 깊이 회의할 줄 알며, 반목과 증오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고, 나 자신부터 내세우지 않고는 연대감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의 대안은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세계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는 것을.

2장 리얼리티 쇼와 나

87 비에케스섬에서 나는 부지불식간에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에는 경험의 맥락과 경험의 기록과 그 경험 자체를 구분하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3장 언제나 최적화 중

113이 이상적인 여성은 언제나 과로를 하지만 그 티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은 여성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여긴다고 교육받은 모든 일을 추구해왔다. 가정 살림이라든가 외모 관리, 남성의 찬사, 공손한 태도를 위해 노력했고 다양한 형태의 비보수 일을 군말 없이 맡아왔다. 이상적인 여성이란 개념은 쥐꼬리만 한 개성 정도만을 인정한다. 이상적인 여성은 언제나 자기의 의지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고 믿는다. (…) 최근 몇 년간은 어떠할까? 그녀는 자신이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 더 완벽해지고 이 세상과 발맞추어 살아갈 수 있다면, 직업과 여가를 통해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115 그녀는 - 페미니즘의 온전한 응원을 받는 한 - 이 매혹적이고, 지속적이며, 대체로 기쁨을 선사하는 이미지 권력의 설계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시간과 돈과 결정권과 자아와 영혼이 저당 잡혀 있다는 사실을 못 본 척 밀쳐놓을 수 있다.

115 이러한 조건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일은 대체로 덫에 걸리면서 끝나고 의무와 요구사항은 끝도 한도 없이 늘어난다. 시스템이 제시하는 기준 안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만족의 느낌에 다다를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욱더 최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만 같다고 느낀다.

118 (1958년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말했다. “생산성이 낮을 때보다는 높을 때 복지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더는 가정이 아니다. 고도의 생산성 증대는 더 높은 수준의 결핍이고 이는 더 높은 만족을 생성한다.”)

130 내 몸은 대체로 괜찮게 느껴졌고 괜찮게 기능했다. 하지만 바 수업이 키운 지구력은 신체적인 것보다는 심리적인 쪽에 더 크게 작용했다. 정말로 기분 좋은 것은, 내 몸을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자본주의적 삶에 맞게끔 만들어준다는 느낌이었다.

132 우리를 지쳐 떨어지게 하는 사회 안에서 어떻게든 더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법을 배우는 것,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사람들이 수업 한 시간에 40달러를 낸다고 생각한다. 수익률이 보장되는 투자인 셈이다.

132 당신이 여성이라면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당신에게 적대적으로 사용된다. 혹은 그 반대로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많은 것들은 당신이 좋아해야 할 일로 설정되기도 한다. 성적 대상은 되는 것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친절한 태도나 관대한도 그렇다. 그낭 하면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 - 꾸미고 멋을 내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 - 또한 그렇다.

134 이제 미모는 여성의 가치와 도덕성 자체로 해석되고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가 미를 추구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를 윤리적 이상으로 보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한 다른 윤리적 이상이 늘 그렇듯, 완벽함이란언제나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고 아무리 애써도 절대 잡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상의 힘이 깎아내려지진 않는다. 성취하기 어렵기에 이상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이렇듯 미모가 윤리적인 이상이라는 믿음 아래 여성들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한 일상의 노력에 도덕적 가치까지 부여하게 되었고, 미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지엽적이거나 부분적인 실패가 아니라 자아의 실패로까지” 간주된다.

136 문제의 뿌리는 애초에 주류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타협하여 주류가 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지속된자격 요건들은 버리지 않았고 이름만 달라졌다. 미모 노동은 “자기 관리”라는 보다 진보적인 명칭으로 바뀌었다.

136-137 때때로 페미니즘은 현재 상황보다 더 만족스러운 진보를 더는 상상할 수 없는 듯하다. 50년대 잡지가 남편을 위해 시간과 돈을 사용해 아름다워지라고 조언했다면, 이제 우리는 서로서로 그때와 똑같은 일을 하라고 말한다. 다만 이번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149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그런 사람인 것은 두 가지 다른 개념으로, 행복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이려고 노력하는 건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능력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154 시스템에 대한 저항은 시스템의 조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어떤 괜찮아보이는 도구가 생기면, 그에 반대하는 것보다 적응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

사실 기술은 우리가 반대하는 건 고사하고 그에 따르게 한다. 특히 미모와 관련된 문제에서 우리는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이 제도의 요구에 맞추는 것을 넘어 이러한 요구를 증가시킨다.

155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 나는 사이보그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의 법칙을 깨고 나갈 의지가 있어야 하고 기반을 약화시키려 해야 한다. 사이보그가 힘이 있는 까닭은 자신의 인공성 안에서 잠재력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 인공성이 자신 안에 얼마나 단단히 박혀 있는지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기계는 우리이고 우리가 만들어진 과정이고 우리가 재현된 모습이다. 우리는 이 기계에 책임을 질 수 있다.” 사이보그의 꿈은 “공통의 언어를 사용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헤테로글로시아(이종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 이종언어란 타인의 언어에 포함된 말의 형태로, 이 언어 내부에서 갈등을 생산하는 것이다.

156 우리가 원한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원할까?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 어떤 욕망을 갖고 있으며 어떤 불복종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 - 만약 당신이 이상적인 여성이 되는 데 성공했다면, 그 여성의 모습으로 만족하고 사랑받는다면, 당신을 언제나 과장하게 하고 폄하하는 시스템 안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과연 탈출을 원할 것인가?

4장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

164 그래서 클로디아는 자기의 가출은 어딘가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되도력 넓고 안락하며 실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름다운 공간이라면 더 좋겠다. 그래서 클로디아가 집을 나와 가기로 한 곳은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170 <제2의 성>(1949)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말한다. “소녀는 여성이 되기 전에는 인간이었다. 소녀는 자신을 여성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체념이자 자기 훼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이들 어린 캐릭터들이 모두 이토록 열정적이고 독립적이며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 혹은 더 중요하게도, 그들을 창조한 작가들은 - 여성의 성인기는 언제나 뭔가 불길하고 우울하다는 것, 곧 결혼과 자녀를 의미하고 그것은 곧 인생의 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77 <제2의 성>(1949)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의 드라마”는 자아의 개별적 경험과 여성성의 집단적 경험 사이의 충돌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여성은 자기 자신에게는 본질적으로 이 세상의 중심이고 근본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그녀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이고, 부차적이고, 남성과의 관계라는 조건에 따라 정의될 뿐이다. 보부아르는 이것들은 “영원한 진실”이 아니지만 “모든 개별적인 여성의 존재 밑에 흐르는 기본 조건”이라고 말한다.

<제2의 성>을 읽다 보면 마치 근래에 출간된 책처럼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보부아르는 남성은 여성과 달리 자신의 젠더와 “한 인간으로서 갖는 소명의식” 사이의 갈등을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이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가는 길에는 짜릿함과 슬픔이 공존하는데 여성의 몸, 사람들이 그 몸에서 요구하는 것이 성인기의 삶을 결정하리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젊은 여성들이 종종 신경증적 증상을 보인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시련을 안기며 자신을 저주하게 만드는 지리멸렬한 운명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눈에 여성성은 역겨움, 고통, 죽음을 의미하지만 그녀는 이 운명에 사로잡혀 있다.”

184 어린 시절 만났던 동화 속 여주인공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보여주었지만, 십 대에 접어든 여주인공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지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외모와 매력 때문에 인생이 달라지고, 결국 파국으로 흘러야만 흥미로워지는 여자가 될까봐 두려웠다.

185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답해야 하는 건 아니며, 누군가 그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 질문은 여성이라면 아기를 가져야만 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여성의 생식권이 공공의 문제라고 가정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그 질문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적합한 방식은 그것 하나뿐이라고 가정한다.”

186 우리는 진심으로 여성이 행복해야 하기에, 이것이 행복의 조건이기에 여성들이 아름답고 이타적이고 근면한 아내이자 엄마가 되길 바란다고 하지만 사회가 말하는 여성의 행복 모델은 언제나 남성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여성을 경제적 약자에 위치시킨다.

(…) “우리는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해 단 하나의 줄거리만을 받았는데, 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나쁜 삶을 살게 되는데도 그러했다. 우리는 하나의 모범적인 플롯에서 하나의 행복한 결말이 나올 것처럼 말하지만 무수히 많은 삶의 형태가 우리 주변에서 피고 또 질 수 있다.”

202 2000년에 영어로 번역된 이 밀도 높은 책은 정체성이란 “완전히 해설적이고 관계적”이라고 말한다. 카바레로에 따르면 정체성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났다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제공하는 내러티브를 통해서 서서히 이해해가는 것이다.

206-207 나는 내 안에서 조 마치를 보지만 이 세계의 조 마치들은 내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고 보지도 못한다. (…) 여성이 인간의 조건을 대표하는 어떤 상징으로 보이도록 허락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여성의 조건을 대표하는 상징도 아니었다. 더 최악은 문학 속에서 여성이 처한 조건 - 백인이자 억압당하는 조건 - 은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웠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들어가고 싶지도 않은 영역에서 차단당했다. 여주인공의 텍스트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여성들이 최대한 잘해봐야, 그러니까 구조적 억압을 최소한으로 받는다 해도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에 의해 파괴된다는 점이다.

208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인식하지 않았던 사실을 인정했다. 우리는 똑같지 않다. 같았던 적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이유도 없다.” 차이점은 문제가 아니다. 해결책의 시작이다. 그들은 이러한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208 엄마를 볼 때 딸이 느끼는 그 복합적이고, 이중적이며,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감정을 느꼈다면 어땠을까. 딸들은 엄마에게 저항하는 동시에 의지한다. 딸은 때로는 지독하게, 때로는 사랑과 감사를 담아서 엄마를 이용한다. 자신이 그보다는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반으로 이용한다.

5장 엑스터시

215 그러나 기독교의 잔혹한 폭력성에는 절대적인 안전이 따라오기도 한다. 종교적 전능과 신비라는 만족스러운 장막 아래에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확실한 그림이 있었다.

241 포레트도 종교적 헌신이란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사포처럼 사랑의 추구가 “완전한 비움이며, 그것은 완전한 채움이다”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무의 상태로 놓는 것을 에로틱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영혼은 신으로 들어갈 때는 모든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감정이 없으며, 모든 생각을 넘어선다. (…) 인간이 갈 수 있는 그 어느 곳보다 높고 그 어느 곳보다 깊고 그 어떤 인간보다도 헐벗는다.”

242 카슨은 마지막으로 시몬 베유의 언어를 가져온다. 시몬 베유 또한 순수한 사랑에 다가가기 위해서 나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중에서 이보다 더 절대적인 자유는 없다.” 우리 자신을 신에게 완전히 굴복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녀의 글은 자신을 완전히 지우려는 강박적인 갈망으로 넘친다. “완벽한 기쁨은 그 완벽한 기쁨이라는 감정마저 제거한다. 그 영혼 안에는 내가 들어갈 어떤 공간도 남아 있지 않다.” 그녀는 완전히 사라지기를 꿈꾼다. “내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내가 보는 것들을 더는 내가 볼 수 없다는 사실 자체로 아름다움이 완벽해질 것이다.”

6장 일곱 가지 사기로 보는 이 세대의 이야기

금융위기

학자금 대출 재앙

268 대학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생들에게 복지 시설을 제공하지만, 결국 학생들은 이 등록금 때문에 졸업 후에도 대학생 때와 같은 삶의 질을 누릴 수가 없다. 취업 시장에서 각종 보장과 수입과 안정성이 서서히 깎여 나가면서 어마어마한 빚을 갚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268 말콤 해리스 Malcom Harris 가 <요즘 아이들 Kids These Days>이라는 책에서 말한 것처럼 밀레니얼이 이 직업에서 저 직업을 떠도는 이유로 우리가 꿈도 야망도 없으며, 철이 덜 들었고, “모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기는 쉽다. 사실은 취업 시장이 -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 가혹할 정도로 불안정하고, 심지어 점점 더 그렇게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

270 그런데도 대학들은 여전히 모든 젊은이가 성공의 기회 앞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쳐야 할 과정이라는 이유로, 학위라는 통행료를 팔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영역에 이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안정성으로 가는 길은 아마도 개인 브랜드를 갖는 것이 아닐까.

소셜 미디어 사기

273 그 시절에는 우리 모두가 어떤 새롭고 멋진 상품을 사용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10년 이상이 흘렀고, 이제 우리 사용자들이 상품이 되고 있다는 건 자명한 진리다.

274 페이스북은 순진한 나르시시즘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이용해서 우리의 주의력을 앗아가고 행동 데이터를 수집했다. 우리의 행동을 교묘하게 조종해서 미국인의 거의 절반이 페이스북의 뉴스에 의존하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구독자에게 다가가고 싶기에, 또 이 플랫폼이 디지털 광고 수익을 가져가는 기술에 대항할 힘이 없기에 페이스북에 의지하는 많은 미디어들은 - 페이스북은 마치 구독료를 모두 자기 주머니에 넣는 신문ㄴ 배달부와 같다 - 페이스북의 경제적 모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275 기본적으로 페이스북은 다른 소셜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이중화법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유대를 광고하지만 고립을 형성하고 행복을 약속하지만 두려움을 심어준다. 페이스북의 어법은 이제 우리 문화를 지배하며,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구조적 변화를 거시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그저 고립적이고 기만적이고 감정적인 반응만 전염시키는 작은 조각들로만 마주하게 한다.

걸보스들

281 책의 초반부에서 그녀는 자신의 접근법이 사실 더 크고 집단적인 문제의 그저 부분적이고 개인적인 해결책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시작한다. 그녀는 여성이 사회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 먼저 개인이 권력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어떤 이들은 먼저 그 장벽을 허물어야 더 많은 여자들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두 가지 방법이 “동일하게 중요하다”고 샌드버그는 쓴다. “나는 여성들에게 닭을 먼저 말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닭은 개인적 해결책이다. “그러나 나는 달걀에 집중하는 이들도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

안타깝게도, 치킨이 더 맛있는 법이다.

282 우리가 가진 건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실제로 더 나은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줄 구조적인 지원과 안전망이 아니라 답을 주지 못하는 상품으로 채워진, 바닥이 뚫린 풍요의 뿔이다.

283 이 안에 깃든 가장 큰 속임수는 이것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지만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 문제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페미니즘은 언제나 그 근본에서 집단을 우선시하는 페미니즘과 상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오늘날 여성이 어떤 이상을 붙잡고 믿고 이용하고 차용하지만, 그 방식이 실제로는 이상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성공 생태계가 여성에게 그렇게 하라고 등을 떠미는 행동이다.

너무나 확실한 사기들

혁신기업들 disruptor

294 우버와 에어비앤비와 함께, 지속적인 혁신의 미학은 - 결정적으로 이 저렴한 경험이 고객들에게 안심의 느낌을 주지만 이 고객들은 그와 밀접한 쥐어짜임을 당한다 - 이 기업들 성장의 가장 큰 돌파구가 무엇인지 못 보게 한다. 즉 이들이 후기 자본주의의 치열함과 스트레스를 성공적으로 자본화했다는 사실이다. 회사가 아니라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이 경쟁하게 하여, 노동자와 소비자가 이 기업이 져야 할 책임과 리스크를 부담하는 패러다임을 일반화한 것이다.

296 세상은 나의 편리함을 위해 모든 것을 이렇게 돌아가게끔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 삶은 상대적으로 너무 쉽다. 나는 딸린 식구도 없고 장애를 갖고 있지도 않다. 나는 사회적 합의를 어기면서까지 아마존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296 하지만 벤처 자본은 사회 자본이고 인맥과 접근성과 편안함에 따라 배분된다. 벤처 캐피털 기업의 파트너는 76퍼센트가 백인 남성이다. 흑인은 오직 1퍼센트다. 2017년 전체 벤처 캐피털의 4.4퍼센트가 여성이 설립한 회사로 갔는데, 이는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지금까지도 오직 백인 남성들만이 아마존과 우버가 가는 길로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다. 규제를 요리조리 피하고, 보호조치를 줄이고, 법적 책임은 남에게 미루고, 육체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빼앗는 비즈니스 모델 말이다. 세상이 변하여 여성과 소수민족도 그들만의 메조스가 되는 날이 온다 해도 모두를 위한 승리는 되지 못할 것이다.

선거

302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너지는 것이고, 무너지고 싶지 않으면 하루하루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타협해야 한다 - 즉 난파되거나, 난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304 이런 자그마한 행동들이 쌓이고 나의 편안함과 여유가 커지면서 결국에는 큰 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기도 한다 - 언젠가 나는 수많은 일에 매번 타협할 필요가 없는 계층이 되지 않을까. 정말로 사려 깊게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 상상 속 미래의 행동으로 그전에 했던 모든 자기중심적인 짓들을 상쇄시키게 되지 않을까. 이것은 유용한 판타지이지만, 그래도 결국 판타지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이고,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행동할 뿐이다. 나도 내 세대의 수많은 사람처럼 사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역시 사기가 가득한 세상에서 연약하고 정신 사납고 불안정한 어른이 되었다.

7장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

8장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

9장 결혼,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