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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권의 책을 데리고 노션에서 이사 나왔다

뼈문과표류기커리어

저번 글을 쓴 게 일주일 전인데, 그 사이 꽤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큰 사건은 이사다. 노션에 있던 ‘여우서가’ — 내가 읽은 책들을 정리해두던 데이터베이스 — 의 책 208권을 통째로 내 웹사이트로 옮겼다. 노션이 익숙하긴 했지만, 내 서재가 누군가의 플랫폼 안에 세 들어 사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옮기는 작업도 Claude한테 맡겼다. “노션에서 내려받은 파일을 내 사이트 형식에 맞게 바꿔줘”라고 말했더니 잠깐 사이에 208개의 파일이 만들어졌다. 책 표지 이미지까지 같이 옮겨주는데, 정말 이게 이사라면 포장 이사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었다.

옮긴 다음엔 “로컬에서 배포”라는 걸 처음 해봤다. 동료가 알려준 단어였다. 처음 들었을 땐 무슨 외계어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단순한 거였다. 내 컴퓨터에서만 보이는 사이트(로컬)와 인터넷에 올려서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는 사이트(배포)가 다른 거였다. 내 컴퓨터에 띄워서 “오, 이거 진짜 사이트 같네”라고 신기해하다가, 그걸 인터넷에 올리고 나니 갑자기 책임감 같은 게 생겼다.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한참을 다듬었다. 메인 페이지 우측에 있던 ‘요즘 좋아하는 것들’ 목록이 별로 안 예뻐서 소개글로 바꾸고, OG 이미지(링크 공유했을 때 미리보기에 뜨는 그 이미지!) 하나를 만드는 데 또 한참을 보냈다. 글씨가 너무 위에 붙어서 마음에 안 들고, 일러스트가 왼쪽으로 치우쳐서 마음에 안 들고. “여기를 가운데로 옮겨줘”, “글씨는 세로 가운데 정렬이면 좋겠어” 같은 말로 디자인을 다듬는 경험은 묘했다. 내가 직접 디자인 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말로 만들어내는 디자인.

aeho와 grapher 페이지의 부제목도 바꿨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읽습니다”로. “기록하는 사람”에서 “기록이 기억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로. 별것 아닌 한 줄인데 이 한 줄을 고치는 데 꽤나 고심했다. 내가 이 사이트를 통해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만들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사이트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되니까, 같은 화면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볼 때 “예쁘다”, “글이 좋다” 정도였다면, 이제는 “이 폰트는 뭘까”, “여백이 절묘하네”, “이 색이 본문이랑 잘 어울리네” 같은 게 눈에 들어온다. 만드는 일은 보는 일을 새롭게 만든다는 걸 새삼 배웠다.

아직 부족한 곳이 많다. 어딘가 어색한 여백, 손봐야 할 색깔, 채워 넣어야 할 글들. 그렇지만 노션 안의 데이터베이스였던 책장이, 이제는 인터넷 어딘가에 떠 있는 작은 집이 되었다. 누군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이 집의 문을 열어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 글은 Claude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Claude가 초안을 작성하고 제가 글을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