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받지 못한 손님과 환대
불청객이라는 단어를 볼 때 부정적인 감정을 연상해왔던 것은 내가 그 단어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라고 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찾아온 손님이라는 뜻의 불청객이라는 단어를 오늘 내내 마음 속에서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지난 12월부터 국제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팀에서 일했다. 이전에도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국제 컨퍼런스는 처음이었다. 새로운 분야의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일을 했고, 함께했던 팀원들도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즐겁게 일을 해나갔다. 하지만 이 행사가 워낙 큰 행사다 보니 이해관계자가 상당히 많았고, 그 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내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3월부터 균열들이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4월에는 심한 파열음에 괴로워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둔 경험이었다.
4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준비하던 행사의 개막일이 바로 2025년 5월 21일 오늘이었고, 나는 이 행사의 불청객이었다. 사실 행사장에 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시 한번 다치고 싶지 않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기꺼이 여기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결국 행사장에 가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메일과 전화로만 커뮤니케이션하던 연사들의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과 팀장님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때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쾌적한 분위기 속에 조금씩 진정되었다. 팀장님과 호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출입 등록이 쉽지 않았지만, 나는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며 “짠해서 어떡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내 마음에 작은 구멍을 냈다. ‘초대 받지 않은 행사에 막무가내로 온 사람들처럼 비춰지겠구나.’ 구멍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때 담당 연사 중 한 분이었던 J에게 답장이 왔다. “It would be great to see you today. Give me ten minutes and I can come down and meet you.” 10분 뒤 호텔 로비에서 J를 만났다. 막상 프로필 사진과 줌콜로 보던 얼굴을 직접 마주하니 막막함 뒤에 숨어있던 반가움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호텔 카페에서 행사 참여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후 정적이 흘렀다. 그때 J가 물었다. 일을 그만두고 어떻게 지내냐고.
불쑥 진심이 올라왔다. 사실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조직 내 갈등이 있었고 상황이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조직을 좋게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고.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졌고 방황하고 있다고.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J가 말했다. 조직에서는 종종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커리어에 대해 계속 고민하는 것이 꼭 방황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어떤 일을 했었는지 더 상세히 이야기해준다면 함께 고민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시간은 개인 커리어 상담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J는 나의 일 경험과 고민을 듣고, 자신의 일 경험을 나눠주면서 방향성을 잘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자신의 커리어를 정리한 자료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고, 조직 내 신입 직원들을 위한 교육 자료까지 선뜻 메일로 발송해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이야기 나눴다.
문득 머쓱해졌다. 내가 서포트와 케어를 해야 하는 연사였는데, 그런 사람으로부터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더 큰 서포트와 케어를 받아도 되는 걸까?
J에게 민망한 얼굴로 그렇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한국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이 있어요. 사실 제가 J를 서포트해야 하는 역할인데, 오히려 J에게 엄청난 서포트를 받고 있네요.”
J가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덕분에 이렇게 한국에, 좋은 컨퍼런스 자리에 올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도 좋았고요.”
J와의 시간은 내게 환대와도 같았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후하게 대접해준 J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불청객이 아니게 되었다. 마음에 난 구멍이 더 커지기 전 그 자리에 반창고를 붙여준 J가 한없이 고마웠다. 덕분에 불편했던 감정들을 마주하고 이렇게 글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고, 미완이라 생각해 찜찜하게 남을 수 있던 행사에 나만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